[오래된 공기] 제77화 - 번짐

제77화 「번짐」
1. 서른다섯 둘
「10월 25일. 금요일.」
재혁은 6시 40분에 기상 쉘터 문을 열었다. 어제보다 성에가 두꺼웠다.
유리관을 봤다.
영하 35.2도였다.
수첩에 열네 수를 나란히 적었다. 41, 38, 36, 37, 39, 38, 36, 35, 34.5, 32.5, 35, 37, 33.5, 35.2였다.
모눈종이에 열넷째 점을 찍었다. 어제 점보다 1.7만큼 내려간 자리였다.
칸을 폈다. 어제 줄이 거기 있었다.
판정 칸에 「모름」이 있었고, 실행 칸에 「함」이 있었고, 그 옆 칸에 한서진이라는 이름이 있었다.
상태 칸에는 「함」이 있고 별표가 붙어 있었다.
재혁은 오늘 수 칸에 35.2를 적었다.
시작 자가 영하 34도였고 멈춤 자가 영하 36도였다.
35.2는 34보다 추웠고 36보다 따뜻했다.
사이였다.
사이면 어제 상태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규칙이었다. 어제 상태가 「함」이었으므로 오늘도 「함」이었다.
재혁이 상태 칸에 「함」을 적었다.
적고 나서 별표를 봤다. 어제 별표가 붙어 있었다.
재혁은 오늘 「함」 옆에 별표를 붙일지 말지를 한참 생각했다.
여덟 시에 서진이 왔다. 어제처럼 장갑을 낀 채로 수첩을 받았다.
“내려갔네.”
“1.7도 내려갔습니다. 사이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어제 거 가져오는 날이고.”
“가져오는 날입니다. 어제가 「함」이니까 오늘도 「함」입니다.”
서진이 수첩을 돌려주려다가 멈췄다.
“어제 그 「함」은 내가 정한 거잖아.”
“선생님이 정하셨습니다.”
“그러면 오늘 네가 적은 「함」은 뭐야.”
재혁이 연필 끝으로 어제 줄과 오늘 줄을 차례로 짚었다.
“어제 걸 베낀 겁니다.”
“재서 나온 게 아니고.”
“아닙니다. 오늘 제가 잰 건 35.2 하나입니다. 35.2는 사이라서 아무 말도 안 합니다. 상태 칸의 「함」은 전부 어제에서 왔습니다.”
서진이 팔짱을 끼었다.
“그러면 별표를 붙여야 하나.”
“그게 아침부터 걸립니다. 어제 별표는 사람이 정했다는 표입니다. 오늘은 사람이 정한 게 아니고 어제를 가져온 겁니다.”
“가져온 게 사람이 정한 거고.”
재혁이 잠깐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렇습니다. 가져왔으니까 사람 값입니다. 그런데 어제 별표하고는 다릅니다. 어제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정했고 오늘은 정한 일이 없습니다.”
“둘을 어떻게 적어.”
“표를 하나 더 만들겠습니다.”
재혁이 여백에 표시 둘을 그렸다. 하나는 별표였고 하나는 속이 빈 별표였다.
“꽉 찬 별표는 그날 사람이 정한 날입니다. 빈 별표는 사람이 정한 걸 물려받은 날입니다.”
서진이 둘을 번갈아 봤다.
“빈 게 몇 날이나 가.”
“사이에 있는 동안 계속 갑니다. 사이를 벗어나는 날에 끊깁니다.”
재혁이 적었다.
「10월 25일. 영하 35.2. 시작 자 영하 34.0 / 멈춤 자 영하 36.0. 사이임.
사이이므로 상태는 어제 것을 그대로 가져옴. 어제 상태 「함」. 오늘 상태 「함」.
어제 「함」은 ★사람이 정한 값임. 오늘 「함」은 그것을 물려받은 값임. 물려받은 것도 사람 값이지만 그날 사람이 정한 것은 아님. 둘을 가름.
★ = 그날 사람이 정함. ☆ = 사람이 정한 것을 물려받음. 오늘 상태 「함」☆. 물려받은 날수 1.
☆를 안 적으면 내일부터 이 줄이 재서 나온 줄처럼 보임. 사이에 머무는 동안에는 재는 일이 상태를 안 만듦.」
서진이 유리관 쪽으로 가다가 돌아섰다.
“그런데 판정은.”
재혁이 손을 멈췄다.
“판정이 남았습니다.”
“어제처럼 어긋남을 보고.”
“봐야 합니다. ±1이니까 34.2에서 36.2 사이입니다.”
재혁이 그 두 수를 적고 멈춤 자 36.0을 가운데쯤에 적었다.
“멈춤 자가 그 안에 있습니다.”
“또 걸터앉았네.”
“걸터앉았습니다. 참값이 35.5면 사이라서 「함」이고 36.1이면 멈춤 자를 넘어서 「안 함」입니다.”
서진이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그런데 어제는 반반이었잖아. 오늘은 36.2까지 가야 넘어가는데.”
“그게 아침에 제가 센 겁니다. 36.0에서 36.2까지가 0.2입니다. 구간 전체가 2.0입니다.”
“열에 하나고.”
“열에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거의 다 「함」 쪽입니다.”
“그러면 「함」이라고 적어.”
재혁이 연필을 내려놓았다.
“못 적습니다.”
“왜.”
“열에 하나라는 셈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봤습니다. 제가 ±1을 네모라고 치고 셌습니다.”
“네모.”
“34.2에서 36.2 사이 아무 데나 똑같이 있을 수 있다고 치고 길이로 나눈 겁니다. 그런데 자가 그렇게 생겼는지는 모릅니다.”
서진이 수첩 쪽으로 몸을 숙였다.
“어떻게 생겼을 수가 있어.”
“가운데가 두터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 35.2 근처에 있을 확률이 크고 36.2 근처는 훨씬 작습니다. 열에 하나가 아니라 백에 하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 더 좋은 거 아니야.”
“더 좋습니다. 그런데 그 수를 저는 못 적습니다. 모양을 모르니까요.”
“±1이라고 적혀 있는데 모양이 안 적혀 있다는 거야?”
“안 적혀 있습니다. 제가 그 ±1을 어디서 가져왔는지를 아침에 찾아봤습니다. 한 점 검교정 하고 눈금 반올림 하고 순응 시간에서 대충 잡은 겁니다. 그 셋을 어떻게 더했는지도 안 적혀 있습니다.”
서진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 ±1은 뭐야.”
“넘지 않는다고 본 폭입니다. 그 안에서 어떻게 퍼져 있는지는 안 들어 있습니다.”
재혁이 적었다.
「판정. 구간 영하 34.2~36.2. 멈춤 자 36.0이 구간 안에 있음.
구간 중 「안 함」 쪽은 36.0~36.2 = 0.2. 구간 전체 2.0. 네모로 치면 열에 하나.
그 셈은 ±1을 네모(어디나 똑같음)로 볼 때만 성립함. 자의 모양을 모름. 가운데가 두터우면 열에 하나보다 훨씬 작음. 모양을 모르므로 걸친 몫을 수로 적을 수 없음.
±1의 출처: 한 점 검교정 어긋남 + 눈금 반올림 + 순응 시간. 합치는 방법이 안 적혀 있음. 폭만 적힌 자는 「넘지 않는 폭」이고 「안에서 어떻게 퍼져 있는지」는 안 알려 줌.
그러므로 판정 「모름」. 어제와 같은 글자이나 모양이 다름. 어제는 구간이 자를 가운데 두고 반반 갈렸음. 오늘은 한쪽 끝 0.2만 갈렸음. 그래도 보장은 둘 다 없음. 보장에는 정도가 없음. 걸치면 걸친 것임.
다만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는가」는 적을 수 있음. 판정 칸이 아니라 옆 칸에 적음. 옆 칸: 「거의 함 쪽. 단 네모로 쳤을 때만 열에 하나. 모양 모름.」 이 칸을 판정처럼 쓰지 않기로 적어 둠. 칸 이름을 「기울기」로 함.」
서진이 그 줄을 다 읽고 물었다.
“그러면 오늘도 일은 하네.”
“합니다. 쓸 것이 한 날 치 남았고 사람이 넷 있습니다.”
“어제하고 같은 까닭이고.”
“같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선생님이 정하셨고 오늘은 안 정하셔도 됩니다.”
“왜.”
“어제 정하신 게 오늘로 넘어옵니다. 상태가 「함」이니까 실행도 「함」입니다. 오늘은 새로 정할 일이 없습니다.”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게 좀 이상하지 않아?”
재혁이 눈을 들었다.
“뭐가 이상합니까.”
“내가 어제 한 번 정한 걸로 오늘도 파는 거야. 오늘 날씨는 아무 말도 안 했고.”
재혁이 한참 가만히 있었다.
“그렇습니다. 오늘 날씨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그러면 며칠까지 그래.”
“사이에 있는 동안입니다.”
“그게 며칠이야.”
재혁이 수첩을 뒤로 넘겨 열네 수를 다시 봤다.
연필로 두 수 사이에 줄을 긋고 셈을 시작했다.
“선생님. 이게 좀.”
“왜.”
“사이가 34에서 36까지입니다. 폭이 2도입니다.”
“그렇지.”
“제 어긋남이 ±1입니다. 위아래로 합치면 2도입니다.”
서진이 손을 멈췄다.
“같네.”
“같습니다. 그러니까 사이 안 어디에 서 있어도 두 자 중 하나가 1도 안에 들어옵니다.”
“하나도 안 빠지고?”
“안 빠집니다. 35.0 딱 가운데에 서면 34.0까지 1도고 36.0까지도 1도입니다. 양쪽이 다 닿습니다.”
서진이 수첩을 받아 들고 두 수를 번갈아 봤다.
“그러면 사이에 들어온 날은 다 모름이야?”
“다 모름입니다. 사이 안에는 깨끗한 자리가 없습니다.”
“한 군데도.”
“한 군데도 없습니다. 어제는 제가 「수가 자에서 충분히 멀어지는 날」에 모름이 끊긴다고 적었습니다. 그런 날이 사이 안에는 아예 없습니다.”
둘이 잠깐 유리관을 봤다. 바늘은 움직이지 않았다.
서진이 물었다.
“그럼 언제 끊겨.”
재혁이 열네 수를 하나씩 짚으며 셌다.
“33.0보다 따뜻한 날입니다. 그러면 어긋남을 다 넣어도 34.0 밖입니다.”
“반대쪽은.”
“37.0보다 추운 날입니다. 그러면 어긋남을 넣어도 36.0 밖입니다.”
“열네 날 중에 몇 날이 그랬어.”
재혁이 수를 하나씩 세었다. 41, 38, 39, 38이 37.0보다 추웠다. 32.5가 33.0보다 따뜻했다.
“다섯 날입니다.”
“나머지는.”
“나머지 아홉 날은 어제를 봐야 하는 날입니다.”
서진이 수첩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자를 둘로 만든 게 엿새 전이지.”
“열아홉 날에 만들었습니다. 자가 하나일 때 날마다 뒤집히는 걸 막으려고 둘로 벌렸습니다.”
“막혔고.”
“막혔습니다. 열네 날 동안 뒤집힌 날이 없습니다.”
“대신.”
재혁이 아홉 날에 연필로 점을 찍었다.
“대신 열넷 중 아홉이 어제를 보는 날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 아홉 날은 전부 모름이 될 수 있는 날입니다.”
“벌리면서 그걸 안 셌네.”
“안 셌습니다. 벌릴 때는 뒤집힘만 봤습니다. 사이를 벌리면 사이에 들어오는 날이 많아지고, 사이에 들어온 날은 어제에 매입니다. 그걸 안 적었습니다.”
서진이 잠깐 창고 쪽을 봤다.
“그럼 좁혀.”
“좁히면 뒤집힘이 돌아옵니다. 이번 시즌 수를 보면 34.5하고 35.2 사이에 점이 넷 있습니다. 사이를 1도로 좁히면 그 넷이 경계에 걸립니다.”
“그러면 자를 고쳐.”
“어긋남을 줄여야 합니다. 두 점 검교정을 하려면 기준이 있어야 하고 여기 없습니다.”
“여기선 못 하고.”
“여기선 못 합니다. 그러니까 이번 시즌은 이대로 갑니다. 대신 다음 사람 몫으로 한 줄 적어 두겠습니다.”
재혁이 적었다.
「사이의 폭과 자의 어긋남 폭이 같음. 둘 다 2.0.
그러므로 사이 안에는 상태와 무관하게 정해지는 자리가 없음. 사이에 들어온 날은 전부 「모름」이 될 수 있음. 가운데(영하 35.0)에 서도 두 자에 각각 1.0이라 양쪽이 다 닿음.
모름을 끊는 날 = 영하 33.0보다 따뜻한 날 또는 영하 37.0보다 추운 날. 열네 날 중 다섯 날만 해당. 나머지 아홉 날은 어제 상태에 매인 날.
10월 19일에 자를 둘로 벌린 까닭은 뒤집힘을 막는 것이었음. 뒤집힘은 열네 날 동안 0. 치른 값: 열넷 중 아홉이 어제에 매이는 날이 됨. 벌릴 때 이 값을 안 셌음.
적어 둠(다음 사람 몫): 자를 둘로 벌릴 때 사이의 폭은 자의 어긋남 폭의 두 배보다 커야 함. 그래야 사이 가운데에 어제를 안 봐도 되는 자리가 생김. 폭이 어긋남 폭과 같으면 사이 전체가 어제에 매임. 뒤집힘은 막히고 모름이 그 자리에 들어옴.
이번 시즌은 못 고침. 기준이 없어 두 점 검교정 불가. 사이를 좁히면 뒤집힘이 돌아옴(34.5~35.2에 점 넷). 그러므로 고치지 않고 「고칠 수 없는 까닭」을 적어 둠.」
적고 나서 재혁이 판정 칸으로 돌아가 「모름」 옆에 작게 둘을 적었다.
「모름 둘째 날. 번진 날수 1.」
그 아래 한 줄을 달았다.
「번진 날수를 세는 칸을 어제 만들었는데 오늘 바로 2가 됨.
모름이 번지는 것은 상태 칸이 어제를 데려오기 때문임. 데려오는 칸에서는 한 번 들어온 모름이 뒤로 상속됨. 그리고 상속되는 동안에는 재는 일이 상태를 안 만듦. 오늘 잰 35.2는 판정에도 안 쓰이고 상태에도 안 쓰임.
쓰인 데가 한 군데 있음. 「사이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데 쓰였음. 그것만으로도 재야 함. 사이 밖으로 나가는 날을 알아야 번짐이 끊김.」
아홉 시에 쓸 것 상자가 열렸다. 한 날 치였다.
재혁이 상자를 세고 깊이 칸을 폈다.
“선생님. 오늘이 마지막 한 날 치입니다.”
“쓰면 끝이고.”
“끝입니다. 밀린 양이 1에서 0이 됩니다.”
“열나흘 걸렸네.”
“열나흘 걸렸습니다. 12일에 밀리기 시작했고 오늘 끝납니다.”
서진이 상자 더미가 있던 자리를 봤다. 빈 눈이 네모로 눌려 있었다.
“재고는.”
“0입니다. 다음 편이 27일입니다. 그날 사람 넷이 나갑니다.”
“그러면 27일부터는.”
“27일부터는 사람 쪽이 다시 0입니다.”
재혁이 적었다.
「10월 25일. 실행 「함」. 쓸 것 한 날 치 씀. ㉯ 밀린 양 1 → 0.
10월 12일에 생긴 밀린 양이 열나흘 만에 0이 됨. ㉮ 이어진 「함」 날수 2.
재고 0. 다음 편 10월 27일. 그 편으로 사람 넷이 나감. 그러므로 27일부터 사람 항이 다시 0임. 쓸 것이 와도 손이 없음.
27일 편에 보낼 종이: 「사람이 언제까지 있는지」를 먼저 묻는 것. 어제 고쳐 적어 둔 그대로 보냄. 쓸 것은 쌓아 두면 기다리고 사람은 안 기다림. 그래서 사람 쪽을 먼저 묻는 것임.
밀린 양이 0이 된 날에 재고도 0이 됨. 둘이 같은 날에 끝나는 것은 우연이 아님. 밀린 양을 지우려고 재고를 다 쓴 것임. 지운 자리에 다른 0이 생김.」
2. 열과 열넷
열 시 반에 둘이 자국 밭으로 걸어갔다.
재혁이 가는 막대 둘부터 쟀다. 서쪽이 422밀리, 동쪽도 422밀리였다.
“같습니다.”
“오늘 처음이네.”
재혁이 수첩에 여섯 점을 적었다.
「서: 412 / 415 / 417 / 419 / 421 / 422 동: 408 / 410 / 413 / 416 / 419 / 422」
“서쪽이 1 올랐고 동쪽이 3 올랐습니다. 누적은 서쪽 10, 동쪽 14입니다.”
“차가 4고.”
“4입니다. 어제가 2였습니다.”
서진이 장갑을 벗어 손끝을 불었다.
“자가 1.0이라고 했지.”
“1.0입니다. 그러면 4 나누기 1.0이라 4배입니다.”
재혁이 말해 놓고 연필 끝을 종이에 댄 채로 멈췄다.
“선생님.”
“왜.”
“어제 제가 3배가 되면 판정한다고 적었고 판정일을 29일로 적었습니다.”
“오늘 4배고.”
“오늘 4배입니다. 판정일보다 나흘 먼저 기준을 넘었습니다.”
서진이 두 막대를 번갈아 봤다.
“그럼 오늘 판정하면 되지.”
“그게 걸립니다. 오늘 하면 제가 넘은 날을 골라서 보는 게 됩니다.”
“고르는 게 왜.”
재혁이 쪼그려 앉아 눈 위에 손가락으로 줄을 그었다.
“날마다 보다가 넘는 날에 멈추면 아무것도 아닌 것도 언젠가는 한 번 넘습니다. 날마다 보는 눈은 넘은 날을 찾아냅니다.”
“그러면 29일까지 기다려.”
“기다리면 또 이상합니다. 오늘 넘은 걸 알고도 나흘을 더 재는 겁니다. 넘은 걸 알면서 재는 거하고 모르고 재는 거는 다릅니다.”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좀 그렇네.”
“둘 다 그렇습니다. 어제 제가 기준하고 날짜를 둘 다 적었는데 둘 중 어느 쪽이 먼저인지를 안 적었습니다.”
재혁이 종이로 돌아가 한 줄을 그었다.
“적어 둘 걸 그랬습니다. 중간에 몇 번 볼 거고 그때는 기준을 얼마로 할 건지를요.”
“중간에 보는 기준이 따로 있어?”
“있어야 합니다. 여러 번 보면 한 번 볼 때보다 넘기 쉬우니까 중간에는 더 엄하게 걸어야 합니다.”
“얼마나.”
“그걸 미리 정해야 하는데 안 정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못 합니다.”
재혁이 적다가 다시 멈췄다. 이번에는 더 오래 멈췄다.
“선생님. 4배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서진이 돌아봤다.
“방금 4라며.”
“차가 4입니다. 나누는 수가 1.0이 맞는지를 모르겠습니다.”
“1.0이 어디서 나왔는데.”
“제가 막대를 읽는 어긋남입니다. 한 번 읽는 데 0.5쯤이고 네 점이 들어가니까 1.0입니다.”
“그러면 맞잖아.”
재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제 눈이 틀리는 몫만 센 겁니다. 막대가 날마다 똑같이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서진이 두 막대 밑동을 봤다. 서쪽 밑동 옆에 작은 턱이 져 있었다.
“바람이 다르게 불면 다르게 깎이고.”
“다르게 깎입니다. 그건 제가 잘못 읽은 게 아니라 진짜로 다른 겁니다.”
“그게 어디로 가.”
“쌓입니다. 제가 잘못 읽은 몫은 첫 점하고 끝 점만 남고 가운데가 다 지워집니다. 그런데 날마다 다르게 깎인 몫은 안 지워집니다. 날수만큼 쌓입니다.”
재혁이 다섯 수를 새로 적었다.
「하루 차(서 − 동): +1 / −1 / −1 / −1 / −2」
“평균이 −0.8입니다. 흩어짐이 1.1입니다.”
“그걸로 다시 재면.”
“다섯 날 쌓은 자는 1.1 곱하기 다섯의 제곱근입니다. 2.5쯤 됩니다.”
서진이 눈썹을 올렸다.
“4 나누기 2.5면.”
“1.6배입니다.”
둘이 잠깐 아무 말도 안 했다. 멀리서 눈가루가 한 번 쓸려 갔다.
서진이 먼저 말했다.
“같은 수인데 4배하고 1.6배가 나오네.”
“같은 수입니다. 나누는 자를 어디서 가져오느냐만 다릅니다.”
“어느 게 맞아.”
“1.6배입니다. 제가 알고 싶은 건 두 자리가 다르게 깎이느냐인데, 날마다 다르게 깎이는 몫이 섞여 있으면 그것도 자에 넣어야 합니다.”
서진이 수첩을 받아 다섯 수를 봤다.
“그런데 1.0으로 재면 날이 갈수록 저절로 세지겠네.”
“세집니다. 차는 날수만큼 커지는데 자는 안 커지니까요. 가만 놔두면 언젠가는 반드시 3배를 넘습니다.”
“아무 차이가 없어도.”
“없어도 넘습니다. 그러니까 그 기준은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날짜를 적어 놓은 거하고 같습니다.”
재혁이 적었다.
「막대 여섯째 점. 서 422 / 동 422. 닷새 누적 서 10 / 동 14. 차 4.
자를 두 가지로 셀 수 있음. ①읽기 자: 한 번 읽는 어긋남 0.5, 끝점 넷 → 1.0. 차 4 ÷ 1.0 = 4배. ②흩어짐 자: 하루 차 다섯 값(+1 −1 −1 −1 −2)의 흩어짐 1.1. 닷새 누적 = 1.1×√5 = 2.5. 차 4 ÷ 2.5 = 1.6배.
①은 내가 잘못 읽는 몫만 셈. 누적차에서는 가운데 날이 지워지므로 날수와 무관하게 1.0으로 남음. ②는 날마다 실제로 다르게 깎인 몫까지 셈. 이것은 지워지지 않고 날수만큼 쌓임.
알고 싶은 것은 「두 자리가 다르게 깎이는가」임. 날마다 다르게 깎이는 몫은 방해가 아니라 셈에 들어가야 할 몫임. 그러므로 ②를 씀. 오늘 1.6배. 못 가름.
①로 재면 차는 날수만큼 커지고 자는 상수이므로 참 차가 0이어도 언젠가 반드시 3배를 넘음. ①에 건 기준은 기준이 아니라 날짜였음.
어제 적은 「3배」는 어느 자로 재는지가 안 적혀 있었음. 설계가 빠진 것이므로 수와 무관함. 고침. 판정일 10월 29일 그대로. 그날 ②로 판정함. ①은 옆에 적어만 둠.
1.6배가 3배가 되려면 날이 열여덟쯤 필요함(배수는 날수의 제곱근만큼 큼). 11월 초임. 철수 전에 닿을 수 있는 수임. 그러므로 계속 잼.
중간에 보는 일에 대해: 날마다 보다가 넘는 날에 멈추면 아무것도 아닌 것도 한 번은 넘음. 중간 점검을 할 거면 횟수와 그때 쓸 더 엄한 기준을 미리 적어야 함. 안 적었으므로 오늘 판정하지 않음. 오늘 넘은 사실은 「넘은 날」 칸에 적어만 둠. 판정에 안 씀.」
서진이 그 줄을 읽고 물었다.
“그러면 부호로 센 건.”
“다섯에 넷입니다. 어제가 넷에 셋이었습니다.”
“늘었네.”
“늘었는데 다섯에 넷도 그냥 나옵니다. 열에 두 번쯤 나옵니다.”
“몇이면 되는데.”
“여섯에 여섯이면 예순네 번에 한 번입니다. 그 정도면 조금 됩니다.”
“그럼 내일이네.”
“내일 동쪽이 크면 여섯에 다섯입니다. 여섯에 여섯은 안 됩니다. 첫날에 서쪽이 컸으니까요.”
서진이 짧게 웃었다.
“첫날 하나가 끝까지 따라오네.”
“따라옵니다. 부호로 세면 지난 날을 못 고칩니다.”
재혁이 사진기를 들고 장대 둘에 각도를 맞춘 뒤 자국 아홉을 차례로 쟀다.
「1번 0.6 → 자 아래 2번 자 아래 3번 1.3 → 0.9 4번 자 아래 5번 자 아래 6번 자 아래 7번 0.8 → 자 아래 8번 자 아래 9번 자 아래」
재혁이 세었다.
“읽히는 게 하나입니다.”
“어제 셋이었지.”
“셋이었습니다. 오늘 하나입니다.”
서진이 밭을 둘러봤다.
“그럼 깊이는 끝났네.”
“어제 끝났습니다. 오늘은 겹쳐 재는 날입니다.”
“겹쳐 재는 게.”
“어제 적었습니다. 깊이를 끊고 폭으로 갈아타면 두 수가 한 줄로 안 이어지니까, 둘이 같이 읽히는 날에 둘 다 재서 고리를 만들자고요.”
재혁이 손을 멈췄다.
“그런데 겹치는 날이 하루입니다.”
“하루면 안 돼?”
“고리가 안 됩니다. 점이 하나면 두 줄의 높이는 맞출 수 있는데 기울기는 못 맞춥니다.”
“기울기가 왜 필요해.”
“깊이 1밀리가 폭 몇 밀리인지를 알아야 두 줄이 한 줄이 됩니다. 점 하나로는 오늘 깊이 0.9가 오늘 폭 52라는 것만 압니다. 내일 폭이 55가 되면 깊이로 치면 얼마인지를 모릅니다.”
서진이 3번 자국 쪽으로 걸어갔다.
“그럼 못 잇는 거야?”
“못 잇습니다. 두 칸으로 둡니다.”
“그러면 앞에 쟀던 건.”
“앞에 쟀던 건 깊이 칸에 그대로 둡니다. 나중에 폭으로 바꿔 적지 않습니다. 바꿔 적으면 안 잰 수를 적는 겁니다.”
재혁이 적었다.
「깊이 다섯째 재방문. 읽힌 것 하나(3번 0.9). 어제 셋.
깊이와 폭을 겹쳐 재는 날로 적어 두었으나 겹치는 날이 하루뿐임. 점 하나로는 두 줄의 높이만 맞출 수 있고 기울기는 못 맞춤. 그러므로 두 줄을 하나로 못 이음.
고침: 잇지 않음. 깊이 칸과 폭 칸을 따로 둠. 깊이 칸은 3번만 남은 채로 끝까지 적음. 하나라도 읽히는 동안에는 적음. 앞의 깊이 수를 폭으로 바꿔 적지 않음. 바꿔 적으면 재지 않은 수를 적는 것이 됨.
이어 붙이려면 둘이 같이 읽히는 날이 여럿 있어야 했음. 그런 날은 어제까지였고 어제는 폭을 안 쟀음. 겹침은 끝나고 나서 만들 수 없음. 바꿀 때가 아니라 바꾸기 전에 만들어야 함.」
재혁이 핀 통을 꺼냈다.
“선생님. 폭은 따로 재는 날입니다.”
“따로.”
“어제 적었습니다. 경계를 글로 먼저 적고 둘이 따로 재서 맞대 보기로요. 맞대기 전에 서로 수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럼 나부터.”
서진이 3번 자국 앞에 쪼그려 앉아 자를 대고 읽었다. 읽은 수를 손바닥만 한 종이에 적어 주머니에 넣었다.
재혁이 같은 자국을 쟀다. 다음에 1번과 7번을 차례로 쟀다. 서진도 따라왔다.
셋을 다 재고 나서 둘이 종이를 펴 나란히 놓았다.
「3번: 서진 58 / 재혁 52 1번: 서진 50 / 재혁 44 7번: 서진 52 / 재혁 47」
서진이 세 줄을 봤다.
“내가 다 크네.”
“다 크십니다. 차가 6, 6, 5입니다.”
“비슷하네.”
“비슷한 게 중요합니다.”
재혁이 수첩에 두 줄을 그었다.
“제가 한 자국을 다섯 번 재면 1.6쯤 흩어집니다. 그런데 선생님하고 저 사이는 거의 안 흩어집니다. 6, 6, 5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우리 둘이 자국마다 다르게 보는 게 아니라 늘 같은 만큼 다르게 본다는 뜻입니다.”
서진이 일어나 손을 털었다.
“한쪽으로 치우쳤고.”
“치우쳤습니다. 그리고 치우침은 흩어짐하고 다릅니다. 흩어짐은 여러 번 재면 작아지는데 치우침은 백 번 재도 안 작아집니다.”
“그러면 누가 맞아.”
재혁이 잠깐 가만히 있었다.
“모릅니다.”
“모른다고.”
“치우침은 어느 쪽이 맞는지를 안 알려 줍니다. 둘이 다르다는 것만 알려 줍니다. 참값을 아는 데가 없습니다.”
서진이 자국 가장자리에 손을 댔다.
“그럼 어디가 갈렸는지 보자.”
둘이 3번 자국 양쪽에 각각 앉아 끝이라고 보는 자리를 손끝으로 짚었다.
서진이 짚은 자리가 재혁이 짚은 자리보다 3밀리쯤 바깥이었다.
“여기가 아직 눈이 부풀어 있잖아.”
“저는 거기서 기울기가 한 번 꺾인다고 봤습니다. 그 바깥은 부푼 거라고 보고 뺐습니다.”
“나는 부푼 것도 자국이 밀어 올린 거라고 봤고.”
재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정의가 더 필요합니다. 어제 적은 건 꺾이는 자리까지였는데, 꺾이는 자리가 어디인지를 또 사람이 봅니다.”
“더 좁게 적어.”
“더 좁게 적어도 끝이 있습니다. 눈 위에 또렷한 선이 없으니까 마지막에는 사람이 짚습니다.”
재혁이 핀 통을 열어 작은 나무 핀 둘을 꺼냈다.
“그래서 오늘부터 짚은 자리에 핀을 꽂겠습니다.”
“핀을.”
“핀을 꽂고 그 위에서 사진을 찍겠습니다. 그러면 다음에 잴 때 어디를 끝으로 봤는지가 물건으로 남습니다.”
“핀 꽂는 사람은 또 사람이고.”
“사람입니다. 사람을 없애는 게 아니라 사람이 정한 자리를 물건으로 바꿔 두는 겁니다. 다음 사람이 적어도 같은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재혁이 핀 둘을 3번 자국 양쪽에 꽂았다. 둘이 짚은 자리의 가운데가 아니라 재혁이 짚은 자리였다.
“가운데로 안 하고.”
“가운데로 하면 둘 다 안 쓴 자리가 됩니다. 한쪽을 고르고 누가 골랐는지를 적겠습니다.”
재혁이 적었다.
「폭 첫 맞대기. 자국 셋. 서진 58 / 50 / 52. 재혁 52 / 44 / 47. 차 6 / 6 / 5.
한 사람이 한 자국을 다섯 번 재는 흩어짐은 1.6임. 두 사람의 차는 세 자국에서 6 / 6 / 5로 거의 안 흩어짐. 그러므로 둘의 차는 자국마다 다른 것이 아니라 늘 같은 방향 같은 크기임. 치우침임.
흩어짐은 여러 번 재면 작아지고 치우침은 안 작아짐. 치우침은 어느 쪽이 참값인지를 안 알려 줌. 눈 위에 참값을 아는 데가 없음.
갈린 자리: 자국 둘레에 부푼 부분을 넣는가. 서진은 넣고(자국이 밀어 올린 것), 재혁은 뺌(꺾이는 자리 바깥). 글로 적은 정의(기울기가 꺾이는 자리)가 있어도 꺾이는 자리를 사람이 봄. 정의를 좁히는 데는 끝이 있음.
고침: 끝이라고 본 자리에 나무 핀을 꽂고 위에서 사진을 찍음. 사람이 정한 자리를 물건으로 바꿔 둠. 핀 자리는 재혁 기준으로 꽂음. 가운데로 안 함(둘 다 안 쓴 자리가 되므로). 고른 사람 이름을 적음.
이제부터 폭은 재혁이 혼자 잼. 치우침이 있는 두 사람이 번갈아 재면 수가 사람 따라 뜀. 한 사람이 계속 재면 치우침은 줄 전체에 똑같이 들어가 기울기에는 안 들어감. 대신 다른 자료와 못 맞댐. 그러므로 칸에 사람 이름을 적음. 사람이 바뀌는 날에는 그날 둘이 같이 재서 차를 적음(어제 램 자리를 옮긴 것과 같은 방법).」
점심 뒤에 재혁이 활주로 가장자리로 나갔다.
램은 안 들었다. 다음 점은 28일이었다.
대신 어제 새로 잡은 가장자리 자리에서 가는 막대를 꽂아 표면 고도를 쟀다.
가장자리가 20이었다. 가운데 대조 자리가 21이었다.
“차가 1입니다. 어제도 1이었습니다.”
서진이 옆에 와 섰다.
“두 번 다 1이면 1인 거 아니야?”
“자가 2.0입니다. 1은 자 안입니다.”
“그런데 두 번 다 같은 쪽이잖아.”
재혁이 잠깐 생각했다.
“같은 쪽입니다. 그런데 두 점으로 같은 쪽이 나오는 건 네 번에 한 번입니다. 동전 두 번 던져서 둘 다 앞이 나오는 거하고 같습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만 자 안이라고 같다고 적으면 안 됩니다. 차가 1이고 못 가른다고 적어야 합니다.”
재혁이 적었다.
「가장자리 자리 둘째 값. 가장자리 20 / 가운데 21. 차 1. 어제 차 1.
두 점 다 가장자리가 작음. 두 점이 같은 쪽으로 나오는 것은 넷에 한 번이므로 셈이 안 됨. 자 2.0 안이므로 「못 가름」으로 적음. 「같음」으로 안 적음.
차가 자보다 작을 때 적는 말을 정해 둠. 「같음」 = 차가 0으로 나옴. 「못 가름」 = 차가 있으나 자보다 작음. 두 날 다 「못 가름」임. 차 1이 계속 같은 쪽이면 날을 더 모아서 다시 봄.」
오후에 넷이 나와 마지막 한 자리를 끝냈다. 반나절이 조금 넘게 걸렸다.
재혁이 돌아와 깊이 칸에 오늘 한 양을 적었다.
「10월 25일. 실행 「함」. 둘째 날.
밀린 양 1 → 0. ㉮ 이어진 「함」 날수 2. ㉯ 밀린 양 0.
롤러 안 돌림. 까닭: 램 자리를 지켜야 함(다음 점 10/28). 23일과 같은 까닭이고 어제와는 다른 까닭임. 눈굴 안 들어감. 안 들어가는 날 닷새째. 다음 들어가는 날 10월 27일.
열나흘 만에 밀린 양이 0이 됨. 0이 된 칸에 무엇을 적을지를 정해 둠. 빈칸으로 두지 않고 0을 적음. 안 밀린 것과 칸이 없는 것은 다름.」
3. 영
인천 저온시료동은 영하 30도였다.
경옥은 9시에 들어가 통 번호를 확인했다. 안 잘린 통은 388일째였다. 잘린 통은 스무사흘째였다.
은재는 선반 앞에 섰는데 통을 안 내렸다.
경옥이 돌아봤다.
“안 올려?”
“오늘은 판정부터 하겠습니다.”
“재고 나서 해도 되잖아.”
은재가 고개를 저었다.
“재고 나면 오늘 수를 판정에 넣을지 뺄지를 제가 정하게 됩니다.”
“미리 안 적어 뒀어?”
“자료를 어디까지 쓸지를 안 적었습니다. 날짜만 적고 끝을 안 적었습니다.”
경옥이 선반에서 손을 뗐다.
“오늘 수가 좋으면 넣고 싶어지고.”
“넣고 싶어집니다. 그러니까 재기 전에 끝을 긋겠습니다. 어제까지로 하겠습니다.”
은재가 책상에 종이를 폈다. 사전등록문 사본이 그 위에 있었다.
경옥이 사본을 받아 읽었다.
“어제 수를 보는 것이 합을 움직이는가.”
“그 하나입니다. 다른 건 안 묻습니다.”
“기준은.”
은재가 다음 줄을 짚었다.
“보고 읽은 날들의 합이 안 보고 읽은 날들보다 덜 흩어지면 움직인다고 봅니다. 덜 흩어진다는 건 반 이하로 적어 뒀습니다.”
경옥이 일곱 날 종이를 폈다.
「보고 읽음: 10/18 1.31 / 10/19 1.31 / 10/20 1.31 안 보고 읽음: 10/21 1.33 / 10/22 1.29 / 10/23 1.30 / 10/24 1.35」
은재가 계산기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앞의 셋은 셈할 것도 없습니다. 흩어짐이 0입니다.”
“뒤는.”
“0.028입니다.”
“0이면 반 이하네.”
“반 이하입니다. 그러니까 기준으로는 「움직임」입니다.”
경옥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0이면 너무 깨끗하지 않아?”
은재가 연필을 들었다.
“그게 오늘 셈해 볼 겁니다. 합의 자가 0.031입니다. 저울 눈금이 0.01입니다.”
“그게 무슨 뜻인데.”
“수가 0.031만큼 흔들리는데 눈금이 0.01이면, 한 수가 어느 한 칸에 떨어질 확률은 제일 큰 칸이라도 여덟에 하나쯤입니다.”
경옥이 종이 끝을 잡았다.
“그걸 세 번 다.”
“세 번 다 같은 칸입니다. 예순에 한 번쯤입니다.”
“안 나오는 거네.”
“가끔은 나옵니다. 그런데 예순에 한 번을 봤다고 치고 넘어가려면 다른 까닭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는 다른 까닭이 있습니다.”
“어제 수를 봤다는 거.”
“봤습니다. 그리고 1.31을 맞췄습니다.”
은재가 판정 칸에 글자를 적었다.
「10월 25일. 판정. 사전등록문: 「어제 수를 보는 것이 합을 움직이는가.」
자료 범위: 10월 18일~24일. 오늘 수는 안 넣음(재기 전에 끝을 그음). 보고 읽음 사흘: 1.31 / 1.31 / 1.31. 흩어짐 0. 안 보고 읽음 나흘: 1.33 / 1.29 / 1.30 / 1.35. 흩어짐 0.028. 기준: 반 이하. 0은 0.014보다 작음.
판정: 움직임.
보탬: 합의 자 0.031, 눈금 0.01. 한 수가 한 칸에 떨어질 확률은 제일 큰 칸이 여덟에 하나쯤. 세 번 다 같은 칸일 확률은 예순에 한 번쯤임. 우연으로 보기 어려움.」
경옥이 다 읽고 물었다.
“그럼 끝난 거야?”
은재가 연필을 든 채로 한참 가만히 있었다.
“선생님. 끝난 게 아닙니다.”
“왜.”
“보고 읽은 사흘이 앞의 사흘이고 안 보고 읽은 나흘이 뒤의 나흘입니다.”
경옥이 날짜를 다시 봤다.
“붙어 있네.”
“붙어 있습니다. 조건이 바뀐 날하고 날이 간 날이 같은 날입니다. 그러니까 앞뒤가 다른 게 조건 때문인지 날 때문인지를 못 가릅니다.”
“날 때문이면 뭐가 다른데.”
“제가 익숙해졌을 수 있습니다. 통 상태가 달라졌을 수도 있고 방이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경옥이 선반 쪽을 보고 돌아섰다.
“익숙해지면 어느 쪽으로 가.”
은재가 잠깐 생각하다가 손을 멈췄다.
“덜 흩어지는 쪽입니다.”
“그럼 뒤가 더 깨끗해야지.”
“깨끗해야 합니다. 그런데 뒤가 더 흩어졌습니다.”
“반대로 갔네.”
“반대로 갔습니다. 그러니까 익숙해진 몫은 제 결론을 깎는 게 아니라 보탭니다. 익숙해진 걸 이기고도 앞이 더 깨끗했다는 뜻입니다.”
경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건 괜찮고.”
“그건 괜찮습니다. 방향을 아는 교란이라서요. 방향을 모르는 건 그대로 남습니다.”
“뭐가 남아.”
“저울이 날마다 조금씩 어긋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어긋나는지는 모릅니다. 통이 날마다 마르는 몫도 있는데 그건 합을 한쪽으로 미는 거라 흩어짐에는 덜 들어갑니다.”
은재가 적었다.
「한계. 조건과 날이 완전히 붙어 있음. 앞 사흘이 「봄」이고 뒤 나흘이 「안 봄」임. 그러므로 두 묶음의 차가 조건의 것인지 날의 것인지 이 자료로는 못 가름.
교란 중 방향을 아는 것: 손에 익음. 익으면 덜 흩어지는 쪽임. 그런데 뒤가 더 흩어졌음. 그러므로 이 교란은 결론을 깎지 않고 보탬. 교란이 결론과 반대 방향이면 교락이어도 결론이 남음.
교란 중 방향을 모르는 것: 저울의 날마다 어긋남, 방 상태, 통의 상태. 이것들은 그대로 남음. 그러므로 결론을 「조건의 것」이라고 못 박지 않음.
적는 법: 「움직임. 단 조건과 날이 붙어 있음. 손에 익는 몫은 반대 방향이어서 결론을 깎지 않음.」
푸는 설계: 보고 읽는 날과 안 보고 읽는 날을 제비로 섞어 날 사이에 흩음. 하지 않음. 하려면 일부러 나쁘게 재는 날을 만들어야 함. 판정이 이미 났으므로 그만한 값이 없음. 안 하기로 한 것도 적음. 「풀 수 있었으나 안 풂. 까닭: 일부러 나쁘게 재는 날이 필요함.」」
경옥이 사전등록문 사본을 접으며 물었다.
“그러면 이제 1.31은 뭐야.”
은재가 손을 멈췄다.
“1.31이 뭐냐면.”
“맞는 수는 아니라는 거지.”
“맞는 수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모여 있는 거하고 맞는 거는 다릅니다.”
경옥이 고개를 기울였다.
“모여 있으면 맞는 거 아니야?”
“아닙니다. 당기면 수가 모입니다. 그런데 어디로 모이는지는 당김이 정합니다. 1.31은 18일에 처음 나온 수입니다.”
“첫날 수로 모였네.”
“첫날 수로 모였습니다. 첫날 수가 참값일 까닭이 없습니다. 그냥 첫날에 나온 수입니다.”
경옥이 종이를 책상에 놓았다.
“그러면 그 사흘은 못 쓰는 거야?”
“값으로는 못 씁니다. 버리지는 않습니다.”
“버리면 왜 안 돼.”
“그 사흘이 당김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버리면 증거가 없어집니다. 칸을 나눠서 「값으로 안 씀」이라고 적어 두겠습니다.”
은재가 계산기를 들었다.
“그러면 지금 쓸 수 있는 날이 넷입니다.”
“일곱 중에 넷이고.”
“넷입니다. 넷의 평균이 1.3175이고 그 평균의 자가 0.014입니다.”
“일곱 다 쓰면.”
“일곱 다 쓰면 자가 더 작아집니다. 그런데 셋이 치우쳐 있으니까 작아진 자가 틀린 자리를 가리킵니다.”
경옥이 짧게 웃었다.
“알고 나니까 쓸 게 줄었네.”
은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줄었습니다. 알게 되는 값을 쓸 수 있는 수가 줄어드는 걸로 치릅니다.”
은재가 적었다.
「판정 뒤 처리.
보고 읽은 사흘은 값에서 뺌. 버리지 않고 「값으로 안 씀」 칸에 둠. 그 사흘이 당김의 증거임.
쓸 수 있는 날 넷. 평균 1.3175. 평균의 자 0.014. 일곱 날을 다 쓰면 자는 작아지나 치우친 셋이 들어가므로 작아진 자가 틀린 자리를 가리킴.
모여 있는 것과 맞는 것은 다름. 당김은 수를 모으되 어디로 모을지는 당김이 정함. 모인 자리 1.31은 10월 18일에 처음 나온 수임. 첫날 수가 참값일 까닭 없음.
알게 되는 값은 쓸 수 있는 수가 줄어드는 것으로 치름. 공짜가 아님.」
적고 나서 은재가 통을 내렸다.
쪽지를 폈다. 1-ㄴ이었다.
“세 바퀴 첫날입니다. 1번을 가운데, 2번을 오른쪽, 3번을 왼쪽입니다.”
“오늘은 옛날 방식이고.”
“옛날 방식입니다. 새 설계는 내일부터입니다. 오늘 바꾸면 오늘 수가 어느 쪽 수인지 모르게 됩니다.”
은재가 어제 종이를 봉투에 넣고 저울 앞에 섰다.
1번을 올렸다. 0.44였다.
2번을 올렸다. 0.42였다.
3번을 올렸다. 0.46이었다.
더하니 1.32였다.
“1.32입니다.”
경옥이 수를 받아 적었다.
“또 가운데쯤이네.”
“가운데쯤입니다. 앞의 두 수 합이 0.86이고 셋째가 0.46입니다.”
“어제 말한 그거.”
“앞의 둘이 작으면 셋째가 큽니다. 오늘도 그 모양입니다.”
경옥이 손을 멈췄다.
“그럼 또 당긴 거야?”
은재가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앞의 둘이 작은 날에 셋째가 큰 건 당겨서도 나오고 그냥도 나옵니다.”
“그냥도 나와?”
“세 통을 재는데 그중 하나가 큰 날이 있으면 나머지 둘은 작습니다. 서로 반대로 가는 게 당김 없이도 조금은 생깁니다.”
“그럼 어제 그건.”
“어제 건 정확히 메운 게 세 번이었습니다. 합이 0.01도 안 어긋났습니다. 오늘은 1.32라 어긋났습니다.”
은재가 적었다.
「10월 25일. 1-ㄴ. 1번 0.44 / 2번 0.42 / 3번 0.46. 합 1.32. 짝 열, 날 넷. 세 바퀴 첫날.
앞의 두 수 합 0.86, 셋째 0.46. 반대로 감. 그러나 합이 1.32로 어긋났으므로 메운 것이 아님. 세 통 중 하나가 큰 날에 나머지가 작은 것은 당김 없이도 생김. 한 날로는 아무것도 안 나옴.
오늘 수는 판정에 안 들어감(재기 전에 끝을 그었음). 새 설계 전 마지막 날의 수임. 칸 머리에 적음. 「구 설계 마지막 날.」
자: 짝 열, 날 넷. 자유도 여섯. 한 번 잰 것 0.018, 합의 자 0.031. 어제와 거의 같음. 짝이 늘어도 자가 안 줄어듦. 줄이려면 날이 아니라 다른 것이 필요함.
저울 흩어짐 열 점 추가일 10월 27일 그대로.」
4. 열에 둘
열한 시에 둘이 선반 끝으로 걸어갔다. 실 세 가닥이 그대로 있었다.
은재가 사진기를 들고 옆에서 찍었다. 종이 각도기를 사진 위에 댔다.
“가운데가 5도입니다. 왼쪽이 1도, 오른쪽이 2도입니다.”
경옥이 세 실을 봤다.
“또 가운데네.”
“네 번 다 가운데입니다.”
“그럼 자리야.”
은재가 각도기를 내려놓았다.
“자리 쪽입니다. 이번에는 다른 실을 걸었는데도 가운데가 컸으니까요.”
“그럼 됐네.”
“한 점입니다. 그리고 읽기 자가 ±3인데 5하고 2입니다. 자 안입니다.”
경옥이 오른쪽 실을 봤다.
“옮긴 건 어떻게 됐어.”
“어제 가운데에서 6이었고 오늘 오른쪽에서 2입니다. 작아졌습니다.”
“그럼 자리 쪽이 맞잖아.”
“맞는 쪽으로 보이는데 둘 다 자 안입니다. 자 안에서 두 번 같은 쪽으로 간 겁니다.”
경옥이 팔짱을 끼었다.
“자 안인데도 자꾸 같은 쪽으로 가네.”
“갑니다. 그래서 세어야 합니다. 세려면 자리 셋에 실 셋을 다 돌려 봐야 합니다.”
은재가 수첩에 네모 아홉을 그렸다. 가로가 자리였고 세로가 실이었다.
“아홉 칸입니다. 한 바퀴 돌리면 아홉 칸이 하나씩 찹니다.”
경옥이 네모를 들여다봤다.
“통 돌리는 거하고 같은 거네.”
“같습니다. 선생님이 통에 쓰시는 것하고 같은 모양입니다.”
“다른 일인데 같은 게 나오네.”
“일이 달라도 섞인 모양이 같으면 푸는 모양도 같습니다.”
은재가 네모 아홉 중 한 칸에 점을 셋 찍었다.
“그런데 제 앞의 세 점이 여기 다 들어갑니다.”
경옥이 그 칸을 봤다.
“한 칸에 셋이.”
“한 칸에 셋입니다. 사흘 동안 같은 실이 같은 자리에 있었으니까요.”
“처음부터 돌렸으면.”
“세 칸이 하나씩 찼을 겁니다. 늦게 돌리기 시작하면 앞의 점들이 한 칸에 쌓입니다.”
“쌓인 건 못 써?”
“그 칸이 다른 칸보다 두껍다는 것만 압니다. 셈에는 들어가는데 고르게 안 들어갑니다.”
은재가 적었다.
「실 넷째 점. 가운데 5 / 왼쪽 1 / 오른쪽 2. 읽기 자 ±3도.
가운데가 네 번 다 큼. 이번 가운데는 바꿔 단 다른 실임. 자리 쪽으로 한 표. 옮긴 실은 어제 가운데 6 → 오늘 오른쪽 2. 작아짐. 역시 자리 쪽. 그러나 둘 다 자 안의 움직임임. 한 점으로는 못 가름.
세려면 자리 셋 × 실 셋 = 아홉 칸을 한 바퀴 돌려야 함. 통 돌리는 것과 같은 모양임. 일이 달라도 섞인 모양이 같으면 푸는 모양도 같음. 수법을 칸에 적어 두면 다른 일에서 꺼내 씀.
앞의 세 점은 아홉 칸 중 한 칸에 전부 들어감. 처음부터 돌렸으면 세 칸이 하나씩 찼을 것임. 늦게 돌리기 시작하면 앞의 점들이 한 칸에 쌓임. 쌓인 칸은 버리지 않되 고르지 않음을 적어 둠.
오늘부터 돌림 시작. 돌림표를 수 보기 전에 적어 종이 뒤에 붙임.」
열한 시 반에 은재가 짐작 봉투를 꺼냈다. 맹검 열째 날이었다.
방 온도계를 봤다. 영하 30.1이었다. 어제가 영하 29.8이었다.
“내려갔습니다. 규칙으로는 「작음」입니다.”
은재가 느낌 짐작 쪽을 들고 선반을 한 번 봤다. 「작음」을 적었다.
“오늘은 같습니다.”
경옥이 두 장을 봉투에 넣었다.
“갈린 건 그대로 둘이고.”
“그대로 둘입니다. 열 장 중에 둘입니다.”
은재가 봉투를 묶다가 손을 멈췄다.
“선생님. 30일에 뜯어도 셀 게 없습니다.”
“둘뿐이라서.”
“둘뿐입니다. 두 장으로 나올 수 있는 모양이 넷입니다. 어느 모양이 나와도 넷에 하나씩 그냥 나옵니다.”
경옥이 봉투를 들여다봤다.
“그럼 뜯어 봐야 모른다는 거네.”
“모릅니다. 그리고 그걸 지금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지금입니다. 뜯기 전에 셈만 해 보면 그 판정이 아무것도 안 알려 준다는 게 나옵니다.”
경옥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걸 지금 보는 게 괜찮아? 뜯는 거랑 비슷한 거 아니야.”
은재가 고개를 저었다.
“다릅니다. 제가 본 건 갈린 장이 몇 장이냐입니다. 어느 쪽이 맞았는지는 안 봤습니다.”
“갈렸다는 것만.”
“갈렸다는 것만 압니다. 그건 설계가 얼마나 큰지를 재는 수지 결과를 재는 수가 아닙니다.”
경옥이 봉투를 선반에 올려놓았다.
“봐도 되는 수하고 보면 안 되는 수가 따로 있네.”
“따로 있습니다. 가린 걸 안 깨고 볼 수 있는 수가 있습니다. 그런 수는 봐도 됩니다. 오히려 봐야 합니다.”
“왜 봐야 돼.”
“안 보면 셀 수 없는 판정을 날짜만 믿고 하게 됩니다. 그날 가서 뜯고 나서야 둘뿐이라는 걸 압니다.”
은재가 계산기를 들었다.
“갈린 장이 다섯이면 한쪽이 전부 맞을 확률이 서른둘에 하나입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셈이 됩니다.”
“지금 속도면.”
“열흘에 둘입니다. 셋이 더 있어야 하니까 보름쯤 더 걸립니다.”
“그럼 30일에 안 뜯어?”
은재가 잠깐 생각했다.
“뜯습니다. 미리 적어 둔 날이니까요. 안 뜯으면 수를 보고 미룬 게 됩니다.”
“뜯고 나서는.”
“뜯은 열다섯 장은 「셀 수 없음」으로 적고, 봉투는 그날부터 다시 쌓습니다. 뜯은 장이 다음 셈에 안 들어가게 칸을 가릅니다.”
은재가 적었다.
「10월 25일. 맹검 열째. 방 온도 영하 30.1(어제 영하 29.8). 규칙 짐작 「작음」. 느낌 짐작 「작음」. 같은 장.
갈린 장 둘. 열 장 중 둘. 어제와 같음.
미리 셈: 갈린 장 둘로는 나올 수 있는 모양이 넷이고 어느 모양도 넷에 하나씩 그냥 나옴. 그러므로 10월 30일 판정은 셀 수 없는 판정임. 이것을 뜯기 전에 알 수 있음.
「갈린 장 수」는 가린 것을 안 깨고 볼 수 있는 수임. 어느 쪽이 맞았는지는 안 들어 있음. 설계가 얼마나 큰지를 재는 수와 결과를 재는 수를 가름. 앞의 것은 봐도 되고, 안 보면 날짜만 믿고 판정하게 됨.
갈린 장 다섯이면 한쪽이 전부 맞을 확률 서른둘에 하나. 지금 속도(열흘에 둘)로 보름쯤.
10월 30일에 예정대로 뜯음. 안 뜯으면 수를 보고 미룬 것이 됨. 뜯은 열다섯 장은 「셀 수 없음」으로 적고 그날부터 봉투를 새로 쌓음. 뜯은 장은 다음 셈에 안 넣음. 규칙은 안 바꿈. 바꾸면 앞 장과 못 맞댐.」
점심 전에 은재가 전화를 걸었다. 어제 청한 운행일지 때문이었다.
받은 사람이 잠깐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왔다.
은재가 듣고 적다가 손을 멈췄다.
끊고 나서 경옥에게 말했다.
“선생님. 운행일지는 사본을 못 준답니다.”
“없대?”
“있습니다. 있는데 밖으로 못 내보내는 서식이랍니다. 기사 이름하고 번호가 같이 적혀 있어서요.”
경옥이 종이를 봤다.
“그러면 안 오는 거네.”
은재가 어제 적은 줄을 폈다.
“선생님. 제가 어제 「안 옴」을 셋으로 갈라 놨습니다. 안 보냄, 보냈는데 안 닿음, 청이 안 전해짐입니다.”
“넷째가 왔고.”
“못 보냄입니다. 보낼 뜻이 있는데도 못 보내는 겁니다. 셋 안에 없습니다.”
“그럼 어디에 넣어.”
“셋 중에 넣으면 안 됩니다. 넣으면 안 보낸 걸로 세어집니다.”
경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칸을 하나 더 만들어.”
“만들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배운 게 그겁니다. 없음의 종류를 셋으로 적어 두면 넷째가 와도 셋 중 하나에 밀어 넣게 됩니다.”
“미리 넷으로 적으면.”
“다섯째가 옵니다. 그러니까 칸 끝에 「그 밖」을 두고 거기 들어간 건 글로 풀어 적겠습니다.”
은재가 수첩 뒤쪽에 한 줄을 더 그었다.
“그리고 길이 아주 막힌 건 아닙니다.”
“뭐래.”
“날짜를 불러 주면 그날 차가 나갔는지 아닌지만 알려 준답니다. 종이는 못 주고 답은 준다고요.”
경옥이 선반에 기댔다.
“그럼 물어보면 되잖아.”
은재가 잠깐 가만히 있었다.
“물으면 제가 날짜를 고릅니다.”
“고르면 왜.”
“제가 궁금한 날만 고르게 됩니다. 이상해 보이는 날을 고르면 이상한 날만 모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
“제비로 뽑겠습니다. 뽑은 날을 먼저 적고 그다음에 묻겠습니다.”
“궁금한 날은.”
“궁금한 날도 따로 묻습니다. 다만 칸을 나눕니다. 제비로 뽑은 날하고 제가 고른 날을 같은 칸에 넣으면 나중에 못 가릅니다.”
은재가 적었다.
「「받은 자료」 칸 둘째 줄. 수송팀 운행일지. 결과: 못 보냄.
어제 「안 옴」을 셋으로 갈라 두었음(안 보냄 / 길에서 안 닿음 / 청이 안 전해짐). 오늘 넷째가 옴: 보낼 뜻은 있으나 서식 때문에 못 보냄. 셋 중 하나에 넣지 않음. 넣으면 「안 보냄」으로 세어짐.
없음의 종류를 미리 몇으로 정해 두면 그다음 것이 와도 있는 칸에 밀어 넣게 됨. 칸 끝에 「그 밖」을 두고 거기 들어간 것은 글로 풀어 적음.
대신 얻은 것: 날짜를 부르면 그날 운행 여부만 알려 줌. 종이는 못 받고 답은 받음. 질문의 모양을 바꾸면 막힌 길이 열리는데, 이번에는 대가가 있음. 날짜를 내가 고르게 됨.
고침: 묻는 날을 제비로 뽑음. 뽑은 날을 먼저 적고 그다음에 물음. 따로 궁금한 날도 묻되 칸을 가름. 제비로 뽑은 날과 내가 고른 날을 같은 칸에 넣지 않음. 제비 쪽만 전체를 말하는 데 씀. 고른 쪽은 그날 하나만 말하는 데 씀.」
점심 뒤에 은재가 칸 머리 종이를 폈다.
어제 열하나를 채웠고 둘을 소급해 적었고 하나를 「기억 안 남」으로 두었다.
은재가 그 하나를 보다가 손을 멈췄다.
“선생님.”
“왜.”
“어제 기억 안 난다고 적은 게 오늘 생각납니다.”
경옥이 종이 쪽으로 왔다.
“그럼 적으면 되지.”
은재가 연필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어제부터 오늘 사이에 제가 그 칸 수를 봤습니다.”
경옥이 멈췄다.
“보고 나서 생각났네.”
“생각났습니다. 수에 맞게 생각난 건지 진짜 생각난 건지를 제가 모릅니다.”
“그럼 안 적어?”
“적습니다. 적되 두 줄로 적겠습니다. 어제 안 났고 오늘 난다고요.”
“그게 뭐가 달라.”
“나중에 읽는 사람이 이 줄을 얼마나 믿을지를 정할 수 있습니다. 한 줄로 적으면 그냥 기억난 걸로 읽힙니다.”
경옥이 짧게 웃었다.
“그 사이에 네가 본 걸 적어 두는 거구나.”
“그겁니다. 기억이 언제 났는지가 아니라 그 사이에 뭘 봤는지가 중요합니다.”
은재가 적었다.
「칸 머리 세 줄 점검 둘째 날. 칸 열아홉. 세 줄이 다 있는 칸 열여섯(어제 열하나 채움). 경계값이 이미 나온 칸 셋 중 둘은 어제 소급 기재. 하나는 「기억 안 남」이었음.
오늘 그 하나가 생각남. 다만 어제와 오늘 사이에 그 칸의 수를 봄. 수에 맞춰 생각난 것인지 진짜로 생각난 것인지 본인이 못 가름.
적는 법: 두 줄로 적음. 「10/24 기억 안 남 / 10/25 기억남. 그 사이에 해당 칸의 수를 봄.」 한 줄로 적으면 그냥 기억난 것으로 읽힘. 기억이 언제 났는지보다 그 사이에 무엇을 봤는지가 중요함.
이 줄은 약하게 셈. 「기억남」 칸이 아니라 「나중에 남」 칸에 넣음.
칸마다 자를 적는 일 열흘째. 사람과 방을 따로 적는 칸 스무이틀째. 「봄」도 스무이틀째.」
5. 이음 자리
오정한의 작업실은 스무 평이었다.
아침 아홉 시에 정한은 수첩을 펴고 험 칸 앞에 앉았다.
「기계 없음, 셋째.」
방 온도와 모터 온도의 차 칸에도 같은 것을 적고 「셋째」를 달았다.
적고 나서 선반을 봤다. 왼쪽에 둘이 남아 있었다.
마감이 모레였다. 둘이면 오늘 하나, 내일 하나였다.
정한은 왼쪽 둘 중 하나를 내려 받침대에 올렸다.
올려놓고 돌리기 전에 릴 가장자리를 봤다.
감긴 테이프 옆면에 가는 선이 세 군데 비쳐 있었다.
정한은 조명을 낮추고 가장자리에 눈을 가까이 댔다.
이음 자리였다. 세 군데 다 들떠 있었다.
정한은 손을 떼고 받침대에서 물러났다.
돌리면 그 자리에서 떨어질 것이었다. 떨어지면 릴 안에서 네 토막이 되고, 네 토막은 감긴 것이 풀리면서 순서를 잃을 것이었다.
정한은 받침대를 잠그고 수첩을 폈다.
「돌리기 전에 멈춤. 이음 자리 셋이 다 들떠 있음. 돌리면 네 토막이 됨.
순서는 지금 감긴 모양이 지키고 있음. 풀면 그 순서를 지키는 것이 없음. 순서를 종이로 옮긴 뒤에 풂.」
정한은 옆면 사진을 먼저 찍었다. 세 자리가 다 나오게 찍고 자리마다 가까이 한 장씩 더 찍었다.
그다음 봉지 넷에 번호를 적었다. 바깥쪽부터 ①②③④였다.
적고 나서 한 줄을 더 썼다.
「바깥이 ①. 감는 방향은 머리가 안쪽임. 그러므로 소리의 앞은 ④임. 번호 순서와 소리 순서가 거꾸로임.
이것을 봉지마다 같이 적음. 번호만 적으면 다음 사람이 ①을 앞으로 읽음.」
정한은 조심해서 풀었다. 세 자리가 차례로 떨어졌다.
네 토막을 봉지에 하나씩 넣었다.
넣고 나서 떨어진 끝을 조명 밑에 놓고 들여다봤다.
끝이 수직이 아니었다. 비스듬했다.
정한은 각도기를 꺼내 셋을 차례로 쟀다.
둘이 같았다. 하나가 달랐다.
「떨어진 자리 셋. 끝이 다 비스듬함. 기계로 자르면 수직임. 비스듬한 것은 손으로 이은 것임.
①②사이와 ②③사이는 기운 각이 같음. ③④사이는 다름.
같은 각은 같은 자리에서 같은 때에 이은 것으로 봄. 다른 각은 다른 때에 이은 것으로 봄. 그러므로 이 릴은 적어도 두 번에 걸쳐 손이 갔음.
적어 둠: 이음 자리는 소리의 경계가 아님. 사람이 손으로 붙인 자리임. 무엇을 붙였는지는 알 수 있어도 그 사이에서 무엇을 뺐는지는 테이프가 안 알려 줌. 이은 자리를 소리의 장 바뀜으로 읽지 않음.」
정한은 떨어진 끝 네 군데를 다시 봤다. 끝마다 접착제가 말라붙어 있었고 한 군데는 테이프 면이 같이 뜯겨 있었다.
뜯긴 자리를 자로 쟀다. 8밀리였다.
정한이 셈을 했다. 19센티에 1초였다. 8밀리면 0.04초쯤이었다.
「③④ 사이에서 테이프 면이 8밀리 뜯김. 19cm/s로 0.04초쯤.
이 0.04초는 없어진 것임. 이어 붙일 때 그 자리를 메우지 않음. 메우면 그 자리가 조용했던 것으로 읽힘. 없어진 것과 조용한 것은 다름.
이관 파일에 그 시각을 적고 「여기서 0.04초 없음」으로 둠. 소리를 안 넣는 대신 종이에 적음. 종이가 그 자리를 지킴.」
정한은 이음 테이프를 꺼냈다. 새것이었다.
잇기 전에 수첩을 한 번 더 폈다.
원본은 안 건드린다고 적어 둔 지 오래되었다.
정한은 그 줄 아래에 새 줄을 달았다.
「원본을 건드리는 일. 오늘 함.
까닭: 이어야 돌아가고 돌아가야 옮김. 안 이으면 아무것도 못 함. 원본 불변은 지킬 수 있을 때 지키는 것이고 오늘은 지킬 수 없음.
그러므로 건드린 데를 목록으로 둠. 「내가 이은 자리」 칸을 새로 둠. 오늘 셋. 자리마다 토막 번호와 시각과 새 이음 테이프를 쓴 것을 적음.
새 이음 테이프는 옛것과 생김새가 다름. 다음 사람이 보면 가름. 일부러 같은 것을 안 씀. 다음 사람이 「원래 이랬다」고 읽으면 안 됨. 내 손은 내 손으로 보이게 둠.」
정한은 셋을 이었다. 다 잇고 나서 한 번 돌려 봤다. 이음 자리에서 소리가 한 번씩 걸렸으나 끊기지는 않았다.
그 릴 하나를 옮기는 데 오전이 다 갔다.
점심 뒤에 정한은 선반을 봤다. 왼쪽에 하나가 남아 있었다.
내일 하나면 모레 마감에 맞았다.
정한이 적었다.
「10/6에 구운 다섯 중 넷 끝남. 하나 남음. 내일 함. 마감 10/27. 10/9에 구운 셋은 10/30. 손 안 댐.
오늘 하나만 한 까닭: 이음 자리 셋이 떨어져 오전이 다 감. 적어 둠. 어제 마감을 물건마다 갈라 적어 두지 않았으면 오늘 넷을 못 했다고 적었을 것임. 오늘은 다섯 중 넷을 했음. 같은 하루인데 적는 말이 다름.」
세 시에 정한은 압흔 종이를 폈다. 판독 엿새째였다.
「보낼 데를 모르는 것」 칸에 번호 하나가 적혀 있었다. 어제 미뤄 둔 일이었다.
정한은 지난 일 장부를 꺼내 날짜로 훑었다.
9월 30일 쪽을 먼저 봤다. 그날 들어온 일이 하나였다.
정한이 그 일 이름을 옮겨 적었다.
9월 22일 쪽을 봤다. 그날 들어온 일이 둘이었다.
정한은 두 이름을 다 적고 한참 봤다.
둘 중 하나를 고를 근거가 없었다.
「날짜로 훑음.
9월 30일: 그날 일이 하나. 좁혀짐. 보낼 데가 나옴. 9월 22일: 그날 일이 둘. 안 좁혀짐. 둘 중 하나를 고를 근거 없음.
같은 수법이 한 번은 되고 한 번은 안 됨. 되는 쪽만 세면 수법이 좋아 보임. 안 된 쪽을 같이 적음.
9월 22일 것은 「둘 중 하나」로 적어 둠. 하나를 고르면 그 순간부터 짐작이 사실 자리에 앉음. 둘을 다 적어 두면 나중에 다른 자료가 왔을 때 하나가 빠짐. 하나를 고르면 그 자료가 와도 안 빠짐.」
정한은 적고 나서 「도착」 칸을 폈다. 어제 만든 칸이었다.
우체국 조회 종이가 책상에 있었다. 아침에 떼어 온 것이었다.
거기 배달이 끝났다고 적혀 있었다.
정한은 그 줄을 「도착」 칸에 적으려다가 멈췄다.
회신 봉투는 안 왔다.
정한은 「도착」 칸에 줄을 하나 더 그어 둘로 나눴다.
「「도착」을 둘로 가름.
①겉이 닿음: 우체국 조회. 10월 25일 배달 완료. 남의 종이로 확인됨. ②안이 멀쩡함: 회신 검사 수. 아직 안 옴.
①은 상자가 거기 갔다는 것만 말함. 안에 든 것이 길에서 상했는지는 ①에 안 들어 있음. 둘을 한 칸에 적으면 ①만 보고 다 된 것으로 읽음.
①이 채워지고 ②가 비어 있는 기간이 생김. 그 기간에 할 수 있는 일은 없음.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칸이라고 칸을 안 두면, 나중에 ②가 영영 안 와도 모름.
①은 남의 종이임. 「받은 자료」 칸 규칙을 그대로 적용함. 이 종이가 적는 것: 상자가 문 앞에 닿은 것. 안 적는 것: 안에 든 것의 상태.」
정한은 수첩을 덮고 짐작 칸을 폈다. 스물한째였다. 다음 판단은 11월 14일이었다.
「안 지나감」은 열이레째였다. 안 보는 날이 열닷새째였고 창밖 셔터를 안 적은 날이 열이틀째였다.
정한은 마지막 줄에 오늘 한 일을 한 줄로 적었다.
「오늘 한 일: 감긴 것을 풀기 전에 순서를 종이로 옮김.
풀기 전에는 물건이 순서를 지키고 있었음. 풀고 나서는 종이가 지킴. 종이가 틀리면 되돌릴 데가 없음. 그래서 적을 때 사진을 같이 찍음.
물건이 지키던 것을 종이로 옮기는 자리가 제일 위험함. 옮기는 동안에는 둘 다 지키고 있어야 함.」
6. 셋 중 둘
금요일이었다.
하람은 열 시에 어머니 집에 들어가 처음 세 마디를 적었다. 열닷새째였다.
「①왔냐 ②밥은 ③추우냐」
적고 나서 하람은 둘째 자리를 접었다. 열다섯 중 열넷이 「밥은」이었다.
첫째와 셋째만 봤다.
셋째 자리에 날씨 말이 또 나왔다. 어제가 「비 오냐」였고 오늘이 「추우냐」였다.
하람이 연필 끝을 종이에 댄 채로 멈췄다.
어제는 새 말이 나왔다고 적었다. 오늘은 같은 종류가 또 나왔다.
하람이 적었다.
「어제 셋째에 날씨 말이 처음 나왔다. 오늘 또 날씨 말이 나왔다.
어제 나는 그걸 한 번이라고 적었다. 오늘 보니 시작이었을 수 있다.
한 번과 시작은 그날에는 똑같이 생겼다. 다음 날에만 갈린다.
그러니까 어제 줄을 고치지 않는다. 어제 나는 한 번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대신 오늘 줄 옆에 적는다. 「어제 것과 같은 종류. 어제 줄의 뜻이 오늘 바뀜.」
줄의 뜻이 나중에 바뀌는 일이 있다. 줄을 고치는 게 아니라 바뀐 날을 적는다.」
「말 아닌 것」 칸은 열엿새째였다. 창 쪽을 두 번 봤고 손을 세 번 비볐다.
핀 칸은 열여덟째 점이었다. 넷이었다.
하람은 식탁에 수첩을 펴고 「본 것 없는 짐작」 칸을 열아홉째로 채웠다.
그러고 좁게 적기 종이를 꺼냈다. 둘째 줄이었다.
하람이 적었다.
「둘째 줄: 전화가 울리면 안 받으신다.
까닭: 열나흘 동안 전화가 울린 날이 나흘이고 나흘 다 안 받으셨다. 적혀 있다.」
적고 나서 하람은 첫 줄을 다시 봤다.
첫 줄 까닭은 열사흘 중 아홉 날이었다. 둘째 줄은 나흘 중 나흘이었다.
하람이 연필을 내려놨다.
「첫 줄은 열셋에 아홉이고 둘째 줄은 넷에 넷이다.
둘째 줄이 더 깨끗해 보이는데 센 날이 넷뿐이다. 넷에 넷은 열여섯에 한 번쯤 그냥 나온다. 첫 줄은 열셋에 아홉이라 덜 깨끗한데 센 날이 많다.
같은 종이에 적어 놓으면 판정일에 한 묶음으로 세어진다. 줄의 세기가 다른데 한 묶음이 된다.
그러므로 줄마다 「몇 날 중 몇 날」을 같이 적는다. 판정일에 세기별로 나눠서 센다.
열 줄을 다 적고 나면 센 날이 열 넘는 줄과 다섯 안쪽인 줄이 섞여 있을 것이다. 섞인 채로 맞으면 몇 줄 맞았다고만 말할 수 있고, 나누면 어떤 줄이 맞는지를 말할 수 있다.
판정일 11월 2일.」
열한 시에 하람이 차량 일지를 폈다.
안 간 날 중에 아직 까닭이 안 적힌 날이 셋이었다. 9월 2일 화요일, 10월 2일 목요일, 10월 10일 금요일이었다.
어제 요일로도 날짜로도 묶이지 않았다.
하람은 달력을 덮고 대신 자기 수첩을 꺼냈다.
9월 10일에 시작한 수첩이었다. 방문한 날에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10월 10일을 찾았다.
동그라미가 있었다.
하람이 한참 봤다.
그날 줄에 적힌 것이 있었다. 점심을 같이 먹었고 오후에 장을 봐 왔다고 적혀 있었다.
하람이 연필을 내려놨다.
그날 어머니는 차를 안 타셨다. 내가 왔기 때문이었다.
하람은 10월 2일을 찾았다. 동그라미가 없었다.
9월 2일을 찾았다. 수첩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하람이 적었다.
「10월 10일 금요일. 차가 안 간 까닭: 내가 그날 집에 있었다.
내가 와서 어머니가 안 나가셨다. 장부에 안 간 날로 적힌 것을 내가 만들었다.
10월 2일 목요일: 내 수첩에 동그라미가 없다. 내가 안 간 날이다. 다른 까닭이 있다. 9월 2일 화요일: 내 수첩이 9월 10일에 시작한다. 그날은 수첩 밖이다. 설명이 못 닿는다.
내 수첩이 닿는 데까지만 설명이 된다. 수첩을 시작한 날이 설명의 경계다. 경계 밖을 「모름」으로 적는다. 「까닭 없음」으로 적지 않는다.
셋이 둘로 줄었다.」
하람은 적고 나서 손을 멈췄다.
한 날이 그렇다면 다른 날도 그럴 수 있었다.
하람은 수첩에서 동그라미를 세었다. 9월 10일부터 오늘까지 마흔여섯 날 중 스물세 날이었다.
차량 일지에서 안 간 날을 세었다. 같은 기간에 열한 날이었다.
둘이 겹치는 날을 세었다. 여섯 날이었다.
하람이 셈을 했다.
내가 간 날이 반쯤이고 안 간 날이 열하나면, 그냥 겹치는 날이 다섯이나 여섯이었다.
여섯이 나왔다.
하람이 연필을 책상에 놓았다.
「내가 간 날이 마흔여섯 중 스물셋. 차가 안 간 날이 열하나. 겹치는 날이 여섯.
아무 관계가 없어도 다섯이나 여섯이 겹친다. 여섯이 나왔다.
그러니까 내가 가는 것이 차가 안 가는 것을 끌고 간다는 증거는 없다.
그런데 10월 10일은 내가 와서 안 나가신 날이 맞다. 그날 일은 내가 기억하고 적혀 있다.
둘이 다 맞는다. 한 날에 까닭이 또렷해도 그 까닭이 전체를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전체에서 안 보인다고 그날의 까닭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두 수가 다른 것을 묻고 있다. 하나는 「그날 왜 안 갔나」를 묻고 하나는 「내가 가면 덜 가나」를 묻는다.
하나는 셈이 아니다. 셈이 아닌 것도 적어 둔다. 다만 셈 칸에 안 넣는다.」
한 시에 하람은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정숙 쪽 일이었다. 10월이 기한이라고 적어 둔 것이 있었고 닷새가 남아 있었다.
하람은 오늘 다른 것을 물었다.
10월이 지나면 무엇이 안 되는지를 물었다.
받은 사람이 한참 찾아보고 답했다.
분기마다 모아서 올리는 보고가 있고 10월 말이 그 묶음의 끝이라고 했다. 넘기면 다음 묶음으로 간다고 했다.
하람이 되물었다. 다음 묶음은 언제냐고 물었다.
1월 말이라고 했다.
하람이 끊고 적었다.
「10월이 기한이라고 적어 놓고 그 뒤에 무엇이 안 되는지를 안 적어 뒀다.
오늘 물었다. 닫히는 게 아니라 미뤄진다. 다음 묶음은 1월 말이다.
석 달 미뤄지는 일이다. 영영 못 하게 되는 일이 아니다.
나는 이 줄을 맨 위에 두고 있었다. 급한 줄만 알았고 급한 까닭을 몰랐다.
기한을 적을 때 「그 뒤에 무엇이 안 되는가」를 같이 적는다. 닫히는 기한과 미뤄지는 기한은 다른 줄이다. 닫히는 것이 앞이고 미뤄지는 것이 뒤다.
이 줄을 맨 위에서 내린다. 내린 날짜와 까닭을 적는다. 28일 방문이 위로 올라간다. 그건 날짜가 정해져 있고 미룰 데가 없다.」
세 시에 하람은 제비 봉투에서 여섯째 블록 열두째 장을 뽑아 접은 채로 수첩에 끼웠다.
센터조 이름 셋을 세척하는 일은 엿새째였다. 오늘은 두 번 걸렸다. 27일까지였다.
조사표를 낸 뒤 열흘째였다. 「안 옴」이 열일곱 줄이 되었다. 통보를 물을 날은 10월 29일이었다.
옆집 쪽지는 회신이 없었다. 어제 넣었으니 하루였다.
하람은 그 칸에 「안 옴, 첫날」이라고 적고 그 아래 한 줄을 달았다.
「어제 보냈고 오늘 안 왔다. 어제 보낸 것이 오늘 올 수는 없다.
안 옴을 세기 시작하는 날을 정해 둔다. 닷새 뒤부터 센다. 그 전의 「안 옴」은 안 옴이 아니라 아직 아니다. 둘을 같이 세면 안 옴이 커 보인다.」
28일 방문까지 사흘이 남아 있었다. 하람은 어제 적은 물을 것 셋에 하나를 더 적었다.
버스에서 하람은 오늘 적은 줄들을 넘겨 봤다.
한 날에 또렷한 까닭을 본 것과 여러 날을 세어 아무것도 안 나온 것이 같은 종이에 나란히 적혀 있었다.
하람이 마지막 줄을 적었다.
「오늘 나는 한 날의 까닭을 찾았고 여러 날에서는 아무것도 못 찾았다.
찾은 것이 못 찾은 것을 덮지 않게 적는다. 못 찾은 것이 찾은 것을 지우지 않게도 적는다.
내가 간 날이 장부에 안 간 날로 적혀 있었다. 내가 보려고 간 날이 내가 보려던 것을 하나 지웠다.
적는 사람이 적히는 데로 번진다. 번진 자리를 지울 수는 없고 어디까지 번졌는지를 적을 수는 있다.」
사이에 들어온 날은 재도 아무 말이 없었다. 수는 두 자 가운데 서 있었고 두 자 중 어느 쪽도 어긋남 폭 밖에 있지 않았다. 사이의 폭이 자의 어긋남 폭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이 안에는 어제를 안 봐도 되는 자리가 한 군데도 없었다. 뒤집힘을 막으려고 벌린 사이가 벌린 만큼의 날들을 어제에 매어 두었고, 그 값은 벌리던 날에는 세어지지 않았다. 어제가 사람이 정한 값이면 오늘도 사람이 정한 값이었다. 다만 어제는 그 자리에서 정한 날이었고 오늘은 물려받은 날이었다. 두 가지를 같은 표로 적으면 물려받은 날이 잰 날처럼 보였다.
걸친 몫을 셈하려면 자의 모양을 알아야 했다. 폭만 적힌 자는 넘지 않는 폭을 알려 줄 뿐 그 안에서 어떻게 퍼져 있는지는 알려 주지 않았다. 그래서 구간이 자를 반쯤 걸치든 끝에서 조금 걸치든 보장은 똑같이 없었다. 보장에는 정도가 없고, 기울어 있다는 말은 판정 칸이 아니라 다른 칸에 적는 말이었다.
같은 수를 두 가지 자로 나누면 네 배가 되기도 하고 한 배 반이 되기도 했다. 읽기 어긋남만 세면 가운데 날이 상쇄되어 자가 날수와 무관하게 남았고, 그러면 차는 날수만큼 커지는데 자는 그대로라 아무 차이가 없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기준을 넘었다. 그런 기준은 기준이 아니라 날짜였다. 날마다 다르게 깎인 몫은 상쇄되지 않고 쌓였으므로 그 몫까지 넣은 자로 재야 했다. 그리고 날마다 보다가 넘는 날에 멈추면 아무것도 아닌 것도 한 번은 넘었다. 중간에 볼 거면 몇 번 볼지와 그때 쓸 더 엄한 기준을 미리 적어야 했다.
두 사람이 같은 자국을 재서 나온 차가 자국마다 거의 같았다. 흩어짐은 여러 번 재면 작아지지만 치우침은 백 번 재도 작아지지 않았고, 어느 쪽이 참값인지는 알려 주지 않았다. 글로 적은 정의를 좁히는 데는 끝이 있어서 마지막에는 사람이 짚었다. 그래서 짚은 자리에 핀을 꽂았다. 사람을 없앤 것이 아니라 사람이 정한 자리를 물건으로 바꿔 둔 것이었다.
흩어짐이 영이었다. 모여 있는 것과 맞는 것은 달랐고, 당김은 수를 모으되 어디로 모을지는 당김이 정했다. 모인 자리는 첫날에 나온 수였고 첫날 수가 참값일 까닭은 없었다. 조건이 바뀐 날과 날이 간 날이 같은 날이어서 둘을 가를 수 없었지만, 교란 중에 방향을 아는 것 하나는 결론과 반대로 가 있었다. 교란이 결론과 반대 방향이면 섞여 있어도 결론은 남았다. 방향을 모르는 교란은 그대로 남아서, 판정은 났으되 조건과 날이 붙은 채로 났다. 그리고 알게 된 값은 쓸 수 있는 날이 일곱에서 넷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치러졌다.
가린 것을 깨지 않고 볼 수 있는 수가 있었다. 갈린 장이 몇 장인지는 어느 쪽이 맞았는지를 말해 주지 않으면서 그 판정이 셀 수 있는 판정인지를 말해 주었다. 그것을 미리 보았기 때문에 뜯는 날이 오기 전에 뜯어도 셀 것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없음의 종류를 셋으로 적어 두었더니 넷째가 왔고, 넷째는 셋 중 하나에 밀어 넣어지려 했다. 질문의 모양을 바꾸자 막힌 길이 열렸는데 이번에는 대가가 붙어 있었다. 날짜를 내가 고르게 된 것이었다.
감긴 것이 순서를 지키고 있었다. 풀면 그것을 지키는 것이 없어지므로 풀기 전에 순서를 종이로 옮겼다. 옮기는 동안에는 물건과 종이가 둘 다 지키고 있어야 했다. 떨어진 끝이 비스듬한 것은 사람이 손으로 이었다는 뜻이었고, 기운 각이 서로 다른 것은 다른 때에 손이 갔다는 뜻이었다. 이음 자리는 소리의 경계가 아니라 사람이 붙인 자리였으므로 거기서 장이 바뀐 것으로 읽지 않았다. 없어진 0.04초를 소리로 메우지 않고 종이에 적었다. 메우면 그 자리가 조용했던 것으로 읽혔다. 원본을 건드리는 날에는 건드린 자리를 목록으로 두고 제 손이 제 손으로 보이게 두었다.
같은 수법이 한 번은 통하고 한 번은 안 통했다. 통한 쪽만 세면 수법이 좋아 보였다. 둘 중 하나를 고르면 그 순간부터 짐작이 사실 자리에 앉았으므로 둘을 다 적어 두었다. 닿은 것과 멀쩡한 것은 다른 칸이었고, 겉이 닿았다는 남의 종이는 안에 든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번과 시작은 그날에는 똑같이 생겼고 다음 날에만 갈렸다. 그래서 어제 줄을 고치지 않고 오늘 줄 옆에 어제의 뜻이 바뀌었다고 적었다. 넷에 넷은 열여섯에 한 번쯤 그냥 나왔고 열셋에 아홉은 덜 깨끗한 대신 센 날이 많았다. 세기가 다른 줄을 같은 종이에 적어 두면 판정일에 한 묶음으로 세어졌다. 기한을 적을 때 그 뒤에 무엇이 안 되는지를 적어 두지 않으면 급한 줄만 알고 급한 까닭을 모른 채 맨 위에 두게 되었다. 닫히는 기한과 미뤄지는 기한은 다른 줄이었다.
한 날의 까닭이 또렷해도 그 까닭이 전체를 움직이지는 않았고, 전체에서 안 보인다고 그날의 까닭이 없어지지도 않았다. 두 수가 서로 다른 것을 묻고 있었다. 보려고 간 날이 보려던 것을 하나 지웠다. 적는 사람은 적히는 데로 번졌고, 번진 자리를 지울 수는 없었으며 어디까지 번졌는지를 적을 수는 있었다.
밖에서는 막대 둘이 닷새 동안 열과 열넷만큼 드러났고 오늘 처음으로 같은 높이가 되었다. 자국 하나의 양쪽에 나무 핀 둘이 꽂혔고 그 자리는 누가 짚었는지가 적힌 자리였다. 그 아래 깊은 데 갇힌 공기는 오늘 적힌 어느 숫자보다 오래되었고 자기를 감싸고 있던 얼음보다는 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