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공기] 제73화 - 걸림

제73화 「걸림」

1. 서른둘 점 오

「10월 21일. 월요일.」

깊이 칸에 「안 팜」을 적었다. 열째 날이었다. 편을 기다린 지 아흐레였다.

재혁은 6시 40분에 기상 쉘터로 갔다. 흰 나무 상자를 열었다. 유리관 안의 기둥이 어제보다 눈에 띄게 올라와 있었다.

영하 32.5도였다.

한 발짝 물러났다가 다시 봤다. 각도를 바꿔도 같았다.

수첩에 열 수를 나란히 적었다. 41, 38, 36, 37, 39, 38, 36, 35, 34.5, 32.5였다.

모눈종이에 열째 점을 찍었다. 자는 꺼내지 않았다. 10월 31일에 긋기로 적어 둔 것이 그대로 있었다.

판정 칸을 봤다. 시작 자가 영하 34도였고 멈춤 자가 영하 36도였다.

32.5는 34보다 따뜻했다.

재혁이 연필을 쥔 채로 한참 서 있었다.

여덟 시에 서진이 시추동에서 나왔다.

“오늘은 몇이야.”

“영하 32.5입니다.”

“사이야?”

“사이 밖입니다. 시작 자보다 따뜻합니다.”

“그러면.”

“「함」입니다. 열흘 만에 처음입니다.”

서진이 수첩을 받아 열 수를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어제 네가 걸린 게 온도계 어긋남이었지.”

“걸렸습니다. 1도까지 어긋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재혁이 셈을 했다.

“1도 어긋나도 영하 33.5입니다. 여전히 자 밖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그게 안 들어.”

“안 듭니다.”

재혁이 연필 끝으로 모눈종이를 짚었다.

“어제는 수가 자에서 반 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오늘은 한 도 반 떨어져 있습니다.”

“같은 온도계인데.”

“같은 온도계인데 날마다 쓸모가 다릅니다. 자에서 먼 날은 어긋남이 안 듣고 자에 가까운 날은 어긋남이 다 듭니다.”

“그걸 적어 둬. 온도계를 고치지 않고도 쓸 수 있는 날이 있다는 뜻이니까.”

재혁이 한 줄을 달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활주로 쪽을 봤다.

“선생님.”

“왜.”

“오늘 못 팝니다.”

서진이 장갑을 고쳐 꼈다.

“편이 안 왔지.”

“편이 안 왔습니다. 쓸 것이 없으면 사람 넷이 나와도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 깊이 칸에 뭐라고 적을 거야.”

“「안 팜」입니다.”

“어제도 「안 팜」이었고.”

“열흘 내내 「안 팜」이었습니다.”

서진이 야장을 넘겨 열 줄을 손끝으로 쓸어내렸다.

“이 열 줄이 다 같은 줄이야?”

재혁이 줄을 하나씩 짚었다.

“이레는 자가 아니라고 해서 안 팠습니다. 하루는 못 정해서 안 팠습니다. 하루는 사이라서 유지로 안 팠습니다. 오늘은 자가 하라는데 못 합니다.”

“넷이 섞여 있네.”

“넷이 한 글자로 적혀 있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누가 이 야장을 보면.”

“열흘 동안 한 번도 자가 안 울린 걸로 읽습니다.”

서진이 야장을 재혁 쪽으로 밀었다.

“그 자가 쓸 만한 자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아보지.”

“자가 말한 것하고 실제로 한 것을 따로 적어 놓아야 합니다.”

“둘이 똑같으면.”

“자를 검사할 수가 없습니다. 자가 틀린 날이 안 보입니다.”

재혁은 깊이 칸 옆에 세로줄 둘을 더 그었다.

「오늘부터 칸을 셋으로 둠.

판정 칸: 자가 뭐라고 했는지. 오늘 「함」.

실행 칸: 실제로 뭘 했는지. 오늘 「못 함」.

까닭 칸: 못 했으면 왜 못 했는지. 오늘 「편 안 옴. 저쪽 일」.

열흘 치를 거슬러 올라가 판정 칸만 채움. 실행 칸은 전부 「안 함」이라 안 고침.

결과만 적으면 자가 한 번도 울린 적 없는 것처럼 보임. 자를 고치려면 자가 울린 날이 적혀 있어야 함.」

서진이 그 줄을 읽고 손가락으로 한 군데를 눌렀다.

“하나 더 물어볼게. 오늘 이후로 네 상태가 뭐야.”

재혁이 멈췄다.

“상태라면.”

“그 자는 하던 쪽을 그대로 간다는 자잖아. 사이가 나오면 하던 쪽으로 가는 거고. 그런데 오늘 네가 「함」인데 못 했어. 내일 영하 35가 나오면 사이야. 그때 하던 쪽이 어느 쪽이야.”

재혁이 종이를 한 장 넘겼다가 다시 돌아왔다.

“판정을 따르면 「함」이고 실행을 따르면 「안 함」입니다.”

“어느 쪽으로 할래.”

“판정을 따릅니다.”

“까닭.”

“이 자는 바깥 날씨를 재는 자입니다. 실행 사정으로 상태를 바꾸면 이 자가 우리 형편을 재게 됩니다.”

“형편을 재면 뭐가 나빠.”

“편이 늦을수록 자가 차가운 쪽으로 끌려갑니다. 그러면 편이 온 날에 날씨가 어땠는지를 못 말합니다.”

서진이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내렸다.

“그러면 내일 사이가 나오면 넌 넷을 불러야 돼.”

“부릅니다. 부르고 못 하면 또 까닭 칸에 적습니다.”

여덟 시 반에 재혁은 적외 온도계를 꺼내 쉘터 밖 선반에 십 분 두었다.

십 분 뒤에 눈 표면에 대고 쐈다. 공기가 영하 32.5도일 때 표면은 영하 35.5도였다.

차가 3도였다.

앞의 여덟은 6, 6, 7, 6, 7, 6, 7, 8이었다.

“처음으로 밑으로 나갔습니다.”

재혁이 풍속계를 들고 30초를 셌다.

“초속 9미터입니다.”

“어제가 4였지.”

“4였습니다. 차가 8이었습니다.”

“그제는.”

“7에서 8 사이였고 차가 7이었습니다.”

재혁이 모눈종이 한쪽에 점 셋을 찍었다.

“점이 셋이 됐습니다.”

“둘일 때하고 뭐가 달라.”

“둘은 어떤 둘이든 한 줄이 됩니다. 남는 게 없습니다. 셋부터 남는 게 생깁니다.”

“남는 게 뭔데.”

“줄에서 벗어난 몫입니다. 오늘 처음으로 그게 생겼습니다.”

“그 몫이 뭐야.”

재혁이 잠깐 입을 다물었다.

“모릅니다. 제 손 흔들림일 수도 있고 참말로 줄이 아닌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점이 셋이라 그 둘을 못 가릅니다.”

“그러면 뭐라고 적어.”

“「남는 몫이 처음 생김. 크기는 적되 뜻은 안 붙임」이라고 적습니다.”

장대 뿌리를 쟀다. 북쪽은 어제 깎임이 13밀리였고 오늘은 19밀리였다.

남쪽은 어제 쌓임이 4밀리였는데 오늘은 1밀리였다.

“남쪽이 줄었습니다.”

“쌓인 게 줄어?”

“쌓인 것도 다시 날아갑니다.”

재혁이 누적 칸 둘째 줄에 적다가 손을 멈췄다.

「누적 칸에 적던 수가 사실은 차임.

쌓임 4에서 1이 된 것은 3이 날아간 것임. 그런데 그 하루 사이에 더 쌓였다가 더 날아갔을 수도 있음.

내가 적는 수는 두 번 본 사이의 차이고, 사이에서 일어난 일은 한 수로 눌려 있음.

「누적」이라는 이름이 잘못임. 「사이 차」로 고쳐 적음. 읽은 간격을 머리에 같이 적음.」

2. 사백열다섯과 사백열

둘이 자국 밭으로 걸어갔다.

재혁은 어제 박은 가는 막대 둘부터 쟀다. 서쪽 것이 415밀리였고 동쪽 것이 410밀리였다.

어제는 412와 408이었다.

“서쪽이 3밀리, 동쪽이 2밀리 늘었습니다.”

“늘었다는 게.”

“막대는 가만히 있고 눈이 내려갔습니다. 둘레가 그만큼 깎였습니다.”

“어느 쪽을 쓸 거야.”

“가운데를 보려면 둘의 가운데를 씁니다. 2.5밀리입니다.”

“둘이 1밀리 다른데 가운데를 써도 돼?”

재혁이 두 막대를 번갈아 봤다. 밭은 둘 사이에 있었다.

“써도 되는지는 그 1밀리가 뭔지에 달렸습니다.”

“뭔지가 뭐야.”

“제 손 흔들림이면 자입니다. 서쪽이 진짜로 더 깎이는 자리면 기울기입니다.”

“오늘 가를 수 있어?”

“못 가릅니다. 하루밖에 없습니다. 내일도 서쪽이 더 깎이고 모레도 그러면 기울기입니다.”

“그때까지는.”

“자로 치고 넉넉하게 잡습니다. 그런데 자로 치면 진짜 기울기를 자 안에 넣어 버리는 겁니다. 그것도 적어 둡니다.”

재혁은 자국 아홉을 차례로 쟀다. 사진을 들고 장대 둘에 겹쳐 각도를 맞춘 뒤에 기준점에서 거리를 재서 자리를 찾았다. 걸음은 세지 않았다.

「1번 2.9 → 2.2 2번 1.8 → 1.1 3번 3.6 → 3.0 4번 0.4 → 못 찾음 5번 2.3 → 1.6 6번 2.0 → 1.3 7번 3.1 → 2.5 8번 2.2 → 1.5 9번 2.4 → 1.7」

“4번이 없어.”

“자리는 찾았습니다. 사진으로 찾은 자리에 자를 댔는데 바닥이 둘레하고 같습니다.”

“없어진 거야?”

재혁이 자를 눕혀 놓고 옆에서 봤다.

“없어진 건지 제 자가 못 읽는 건지 모릅니다. 제 자는 0.1까지 읽고 제 손은 0.2쯤 흔들립니다. 0.1이 남아 있어도 저는 0을 적습니다.”

“그러면 뭐라고 적어.”

“「0」이 아니고 「자 아래」라고 적습니다. 0은 쟀는데 없는 것이고 자 아래는 있어도 못 읽는 것입니다.”

“어제 0.4였던 걸 오늘 못 읽었으면.”

“어제 0.4도 별표였습니다. 둘 다 별표로 묶어 두고 남은 여덟하고 한 칸에 안 넣습니다.”

“왜 안 넣어.”

“4번이 빠지면 남은 여덟의 평균이 올라갑니다. 얕은 게 먼저 빠지니까요. 평균이 올라간 걸 보고 자국이 깊어졌다고 읽으면 안 됩니다.”

재혁은 사라진 것을 따로 적는 칸에 4번의 마지막 값을 옮겨 적었다.

그러고 나머지 여덟의 줄어든 양을 셌다. 0.6에서 0.7 사이였다. 평균이 0.68이었다.

“둘레가 2.5 내려갔는데 깊이는 0.68 줄었습니다.”

“그러면 바닥은.”

“바닥도 1.8쯤 내려갔습니다.”

서진이 쪼그려 앉아 자국 하나를 손바닥으로 덮어 보였다.

“어제는 못 하던 셈이지.”

“어제는 둘레 고도가 없었습니다. 오늘 둘째 점이 생겨서 처음으로 뺐습니다.”

“그 1.8을 믿어?”

재혁이 셈한 종이를 내려다봤다.

“방향은 믿습니다. 둘레가 내려가고 바닥도 내려가고 바닥이 더 느립니다.”

“크기는.”

“못 믿습니다. 두 막대가 1밀리 다릅니다. 제가 뺀 차는 0.7입니다. 자가 차보다 큽니다.”

“자가 차보다 크면.”

“얼마나 느린지는 말할 수 없습니다. 느리다는 것만 말할 수 있습니다.”

재혁이 밭 가장자리에 막대 둘을 더 박으려다가 손을 멈추고 수첩에 적었다.

「막대를 넷으로 늘리면 가운데 자가 줄어듦. 다만 막대마다 제 발밑을 조금씩 깎음.

넷으로 늘리면 밭 안에 바람을 막는 것이 넷이 됨. 재는 것을 좋게 하려고 재는 대상을 더 건드리는 일임.

오늘은 둘로 둠. 사흘 뒤에 둘의 차가 늘 같은 쪽이면 기울기로 보고 그때 셋째를 밭 밖에 박음.」

마지막으로 재혁은 세 칸을 채웠다. 깊이가 1밀리를 넘은 것이 여덟이었다. 모서리가 각진 것이 넷이었다. 긴 쪽이 직선인 것이 다섯이었다.

셋을 다 넘은 것은 넷이었다.

“어제 여섯이었습니다. 오늘 넷입니다.”

“깊이는.”

“어제도 여덟이고 오늘도 여덟입니다.”

“깊이가 그대로인데 개수가 둘 줄었어.”

“모서리로 둘이 떨어졌습니다.”

재혁이 연필 끝으로 어제 그은 세 칸을 짚었다.

“어제 이 칸을 안 갈랐으면 오늘 개수가 둘 준 걸 보고 또 깊이 탓이라고 적었을 겁니다.”

“하루 만에 쓰였네.”

“쓰였습니다.”

열 시 십오 분에 시추동 무전기가 울렸다.

재혁이 들어가서 받았다. 서진이 문가에 서서 들었다.

끊고 나서 재혁이 돌아섰다.

“목요일에 편이 뜰 것 같다고 합니다. 날씨 보고 다시 알려 준답니다.”

“「같다」지.”

“「같다」입니다.”

재혁이 야장을 폈다가 한 장을 뒤로 넘겼다. 그 장에 10월 19일에 적어 둔 줄이 있었다.

「활주로 램 경도 다시 잴 날: 편 소식이 오는 날 전.」

재혁이 그 줄을 한참 봤다.

“선생님. 제가 날짜를 잘못 잡았습니다.”

“어떻게.”

“소식이 오는 날 전에 재겠다고 적어 놨는데, 소식이 언제 오는지는 제가 모릅니다.”

“그걸 아는 사람이 따로 있지.”

“저쪽에 있습니다. 저쪽이 말해 줄 때까지 저는 오늘이 그 전날인지 아닌지를 모릅니다.”

“그러면 그 날짜는 뭐야.”

“지킬 수 없는 날짜입니다.”

서진이 활주로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오늘은 어때.”

재혁이 밖을 봤다. 롤러는 아직 창고 앞에 세워져 있었다.

“오늘 오후에 다지기 시작할 겁니다. 다지기 전에 재면 됩니다.”

“그러면 됐네.”

“됐습니다. 그런데 된 건 제가 잘해서가 아닙니다.”

“뭐 때문인데.”

“소식이 아침에 왔고 롤러가 오후에 나가기 때문입니다. 반나절이 남은 건 제 몫이 아닙니다.”

재혁이 그 줄 밑에 적었다.

「조건으로 잡은 날짜는 그 조건을 아는 사람이 따로 있을 때 못 지킴.

고침: 조건 일정에는 「조건을 누가 언제 알려 주는가」를 같이 적음. 안 알려 주는 조건이면 날짜로 잡지 않고 「미리 해 둠」으로 바꿈.

오늘 된 것은 운으로 됨. 운으로 된 것을 「됐음」으로만 적으면 다음에 또 이렇게 잡음.

칸에 「운으로 됨」을 적음.」

점심 전에 재혁은 눈굴로 내려갔다. 판독일이었다. 사흘 간격이었다.

기록계를 꺼내 읽었다. 사흘 치 최고가 영하 43.6도였다. 지난번이 영하 44.9도였다.

“1.3도 올라갔습니다.”

“바깥이 오늘 따뜻했잖아.”

“바깥은 안 들어옵니다. 1미터 반이면 하루치 더위는 다 꺼집니다. 여기 들어와 있는 건 몇 주 전 바깥입니다.”

“그러면 뭐가 올렸어.”

재혁이 입구 쪽을 봤다.

“제가 들어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 하나가 백 와트입니다.”

“지난번에도 들어왔잖아.”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둘 다에 제가 들어 있습니다. 둘을 빼도 제가 안 빠집니다.”

“기록계가 언제 최고였는지를 안 주지.”

“안 줍니다. 그래서 제가 들어온 시각하고 맞춰 볼 수가 없습니다.”

재혁이 기록계를 다시 넣다가 손을 멈췄다.

“들어오지 않는 사흘을 한 번 만들면 됩니다.”

“어떻게.”

“엿새 동안 안 들어가고 한 번 읽으면 교란이 한 번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간격이 엿새가 됩니다. 간격이 길면 최고값이 저절로 올라갑니다. 간격 탓하고 교란 탓이 또 섞입니다.”

서진이 눈굴 벽에 손을 대고 기다렸다.

재혁이 손가락 셋을 폈다.

“셋을 만들면 됩니다. 사흘에 한 번 들어가서 리셋하는 것. 엿새 동안 두 번 들어가되 가운데 날은 읽기만 하고 리셋을 안 하는 것. 엿새 동안 한 번도 안 들어가는 것.”

“둘째하고 셋째가.”

“간격이 둘 다 엿새입니다. 들어간 횟수만 다릅니다.”

“그 둘을 빼면.”

“사람이 올린 몫만 남습니다.”

재혁이 적었다.

「눈굴 기록계. 세 가지로 돌림.

ㄱ: 간격 사흘, 입실 한 번. ㄴ: 간격 엿새, 입실 두 번(가운데는 읽기만 하고 리셋 안 함). ㄷ: 간격 엿새, 입실 한 번.

ㄴ과 ㄷ은 간격이 같고 입실만 다름. 둘의 차가 사람 몫임.

ㄱ과 ㄴ은 입실 횟수가 다르고 간격도 다름. 둘만 보면 못 가름.

오늘 수는 ㄱ임. 영하 43.6. 지난번 영하 44.9와의 차 1.3은 아직 아무 뜻이 없음.

다음 ㄷ은 10월 27일. 그날까지 눈굴에 안 들어감. 안 들어가는 날을 미리 적어 둠.」

3. 한 바퀴

인천 저온시료동은 영하 30도였다.

경옥은 9시에 들어가 안 잘린 통 번호를 확인했다. 384일째였다. 잘린 통은 열아흐레째였다.

은재가 선반 앞에 섰다. 왼쪽이 ㄱ, 가운데가 ㄴ, 오른쪽이 ㄷ이었다.

“오늘 1-ㄱ입니다. 1번을 왼쪽, 2번을 가운데, 3번을 오른쪽입니다.”

통 셋을 옮겨 놓고 저울 앞에 섰다. 어제 수를 적어 둔 종이는 주머니에 넣은 채였다.

ㄱ이 0.44였다. ㄴ이 0.49였다. ㄷ이 0.40이었다.

은재가 셋을 더했다.

1.33이었다.

“1.31이 아닙니다.”

경옥이 장갑 낀 손으로 종이 끝을 잡았다.

“어제 수 봤어?”

“안 봤습니다. 주머니에 넣고 안 꺼냈습니다.”

“처음 안 보고 읽은 날이지.”

“첫날입니다.”

“그런데 수가 달라졌어.”

은재가 계산기를 들었다가 내려놨다.

“그래도 이게 ②를 지우는 증거는 아닙니다.”

“왜.”

“합의 자가 0.035입니다. 1.31도 자 안이고 1.33도 자 안입니다. 둘 다 이상한 수가 아닙니다.”

“그러면 뭐가 이상했던 거야.”

“수가 아니라 모양입니다. 사흘 내내 소수 둘째 자리까지 같았던 게 이상했습니다.”

경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양은 한 점으로 안 깨져.”

은재가 적었다.

「10월 21일. 안 보고 읽은 첫날. 합 1.33.

한 점으로는 ②를 못 지움. 1.31도 1.33도 자 안의 수임.

이상했던 것은 값이 아니라 「사흘 내리 같음」이라는 모양이었음.

앞으로 닷새를 안 보고 읽음. 닷새 중 1.31이 몇 번 나오는지를 셈. 자가 0.035이므로 ±0.07 안에서 흩어지는 것이 보통임.

흩어지지 않으면 ②가 남아 있는 것임. 판정 기준을 오늘 적어 둠.」

경옥이 선반을 돌아보고 말했다.

“오늘로 한 바퀴지.”

“한 바퀴입니다. 통 셋이 자리 셋을 다 거쳤습니다.”

“그러면 이제 뭘 할 수 있어.”

은재가 종이에 아홉 칸을 그렸다. 사흘과 자리 셋이 가로세로로 놓였다.

“통 몫하고 자리 몫을 따로 낼 수 있습니다.”

“오늘 낼 수 있어?”

“오늘 됩니다. 돌림이 한 바퀴 돌면 통하고 자리하고 날이 서로 고르게 섞입니다. 통 평균을 내면 자리가 한 번씩 다 들어가 있어서 자리가 빠집니다.”

“그러면 어제까지는 못 했던 거네.”

“어제는 통 하나가 자리 둘만 거쳤습니다. 통 평균에 자리가 치우쳐 들어가 있었습니다.”

은재가 아홉 칸을 채웠다. 1번은 0.50, 0.38, 0.44였다. 2번은 0.37, 0.43, 0.49였다. 3번은 0.44, 0.50, 0.40이었다.

통 평균을 셋 냈다. 0.440, 0.430, 0.447이었다.

자리 평균을 셋 냈다. ㄱ이 0.437, ㄴ이 0.497, ㄷ이 0.383이었다.

“통 몫 폭이 0.017입니다. 자리 몫 폭이 0.113입니다.”

“자는.”

“평균 하나가 세 점이니까 0.02를 루트 3으로 나눠서 0.0115입니다. 둘을 빼면 0.0163입니다.”

“통 몫은.”

“0.017이니까 자하고 거의 같습니다. 못 봅니다.”

“자리 몫은.”

“0.113이니까 자의 일곱 배쯤입니다. 있습니다.”

경옥이 선반 가운데 칸을 손으로 짚었다.

“그러면 통이 아니라 자리가 하는 일이네.”

“그런데 한 바퀴로는 모자랍니다.”

“뭐가 모자라.”

“섞이는 건 오늘 다 됐습니다. 모자란 건 남은 흔들림을 잴 점이 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 둘로 자를 만들면.”

“자 자체가 많이 흔들립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울에서 따로 구한 0.02를 썼습니다.”

은재가 날짜를 적었다.

「한 바퀴 끝. 섞임은 오늘 이미 다 됨. 모자란 것은 남은 흔들림을 잴 점임.

통 몫 0.017(자 0.0163) → 「못 봄」. 자리 몫 0.113(자 0.0163) → 「있음」.

두 바퀴 끝나는 10월 24일에 새 자로 다시 판단함. 오늘 수는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둠.」

“가운데가 왜 제일 클까.”

은재가 선반 세 칸을 차례로 봤다.

“온도부터 보겠습니다.”

세 자리에 온도계를 놓고 20분을 기다렸다. ㄱ이 영하 30.2도, ㄴ이 영하 29.9도, ㄷ이 영하 30.3도였다.

“가운데가 0.3도에서 0.4도 따뜻합니다.”

“그러면 설명이 되는 거야?”

은재가 계산기를 두드렸다.

“얼음 위의 수증기압은 온도를 많이 탑니다. 영하 30도 근처에서 1도 오르면 10퍼센트쯤 오릅니다.”

“0.3도면.”

“3퍼센트쯤입니다.”

“실제로 본 차는.”

“0.113을 0.44로 나누면 26퍼센트입니다.”

경옥이 짧게 웃었다.

“3으로 26을 못 메우네.”

“못 메웁니다. 나머지 23퍼센트는 다른 데서 옵니다.”

“뭐 때문일 것 같아.”

“공기가 지나가는 양입니다. 승화는 표면에서 수증기가 떨어져 나가는 일인데, 떨어져 나간 수증기가 바로 옆에 머물러 있으면 더 안 나갑니다. 공기가 지나가면 쓸고 갑니다.”

“가운데가 통로 쪽이지.”

“통로 쪽이고 송풍구에서 나온 공기가 선반 앞을 지나갑니다. 양쪽 끝은 옆에 통이 하나뿐이라 가려 주는 것도 적지만 공기도 덜 지나갑니다.”

“재 볼 수 있어?”

“미풍속계가 없습니다.”

은재가 잠깐 생각하다가 주머니에서 실 한 가닥을 꺼냈다.

“이걸 세 자리에 매달아 두겠습니다. 수는 안 나오고 흔들리는지 안 흔들리는지만 압니다.”

“수가 안 나오면.”

“수가 안 나오는 걸 적습니다. 「가운데만 흔들림」까지는 쓸 수 있습니다. 그것도 수 없는 줄이라고 표시해 둡니다.”

경옥이 실을 받아 가운데 칸 앞에 매달아 보고 손을 뗐다. 실 끝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은재가 양쪽 끝에도 하나씩 달았다. 양쪽은 움직이지 않았다.

「자리 몫 0.113 중에 온도로 설명되는 몫은 3퍼센트쯤. 나머지는 온도가 아님.

실 셋을 매달아 봄. 가운데만 흔들림. 수 없음. 정성 관찰로 표시함.

이 줄은 자리 몫의 까닭을 「공기 흐름 쪽」으로 기울이는 줄이지 정하는 줄이 아님.

까닭을 정하려면 수가 있어야 하고 지금은 잴 것이 없음. 「못 잼」으로 적어 둠.」

칸마다 자를 적는 일은 엿새째였다. 사람과 방을 따로 적는 칸은 열여드레째였고 「봄」도 열여드레째였다.

4. 짐작 봉투

열한 시에 은재가 새 시험 종이를 가지고 왔다.

여섯째 날이었다. 어제부터 뒷면은 경옥이 적었다.

은재가 앞면에 적기 시작했다.

「10월 21일. 점검함. 기계 돌아감. 빈 칸 없음. 통 안 움직임. 방 온도 영하 30.1도.」

적다가 연필이 멈췄다.

“선생님.”

“왜.”

“제가 방 온도를 적고 있습니다.”

“적어야지. 깨는 조건 넷째가 방 온도야.”

“그런데 방 온도를 알면 오늘 수가 어느 쪽일지 짐작이 됩니다.”

경옥이 종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짐작이 돼?”

“방이 따뜻한 날은 승화가 큽니다. 방금 자리 몫에서 보셨잖습니까. 0.3도에 3퍼센트입니다.”

“그러면 네가 뒷면을 안 봐도.”

“어느 쪽인지는 조금 압니다.”

경옥이 팔짱을 꼈다.

“그러면 방 온도를 안 적으면 되나.”

“안 됩니다. 영하 28도 위로 올라가면 깨기로 했는데, 안 적으면 깨는 조건을 못 지킵니다.”

“깨는 조건을 버리면.”

“그러면 기계가 멈춰도 열흘을 모르고 갑니다.”

둘이 잠깐 아무 말도 안 했다.

은재가 먼저 적었다.

「맹검을 끝까지 하려면 깨는 조건을 못 지킴. 깨는 조건을 지키려면 맹검이 샘.

둘 다 가질 수 없음. 어느 쪽을 얼마나 내줄지를 사람이 정해야 함.

정함: 깨는 조건을 지킴. 맹검은 새는 쪽으로 둠.」

“새는 걸 그냥 두면.”

“안 둡니다. 얼마나 새는지를 재겠습니다.”

“어떻게 재.”

은재가 빈 봉투를 하나 더 꺼냈다.

“날마다 제가 짐작을 적겠습니다. 오늘 수가 어제보다 클지 작을지, 마이너스 0.05보다 큰 쪽일지 작은 쪽일지만 적습니다.”

“그걸 봉해 두고.”

“30일에 뒷면하고 같이 뜯습니다. 제 짐작이 열 번 중에 몇 번 맞았는지를 셉니다.”

“반쯤 맞으면.”

“찍은 거나 같습니다. 안 샌 겁니다.”

“여덟 번 맞으면.”

“샌 겁니다. 그러면 제가 본 수가 아니라 제가 짐작한 수가 판정에 들어가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경옥이 봉투를 받아 들었다.

“그걸 미리 세어 두면 뭐가 달라져.”

“결론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결론을 얼마나 믿을지가 달라집니다.”

은재가 첫 장을 적었다.

「10월 21일 짐작: 어제보다 조금 큼. 마이너스 0.05보다 작은 쪽.

까닭: 방 온도가 어제보다 0.1도 높음.

짐작은 봉투에 넣고 안 봄. 10월 30일에 뒷면·사전등록 사본과 같이 뜯음.

세 봉투를 한 자리에 둠. 하나만 먼저 뜯지 않음.」

경옥이 봉투 셋을 나란히 세워 두고 겉에 날짜를 적었다.

“이게 다 덮는 일이네.”

“덮는 일이고 덮은 자리를 적는 일입니다.”

열한 시 반에 수송팀에서 전화가 왔다. 월요일 정기 물음이었다.

은재가 받아서 두 가지를 묻고 끊었다.

“지나간 날 서른둘, 물은 날 스물셋입니다.”

“답은.”

“「이달 안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입니다.”

경옥이 종이를 봤다.

“그 말이 또 나왔네.”

“두 번째입니다. 금요일에 한 번 나왔고 오늘 또 나왔습니다.”

“어제 정한 대로.”

“사이가 사흘입니다. 어제하고 오늘 두 번이랑 같은 두 번이 아니니까 약하게 셉니다.”

은재가 쪽 옆에 사흘을 적다가 손을 멈췄다.

“선생님.”

“왜.”

“금요일에 받은 사람하고 오늘 받은 사람이 다릅니다.”

경옥이 전화기 쪽을 봤다.

“이름 적어 놨어?”

“금요일은 적어 놨습니다. 오늘은 안 물어봤습니다.”

“그러면 두 번이 누구 두 번이야.”

은재가 종이를 내려다봤다.

“한 사람이 두 번 말한 건지, 두 사람이 한 번씩 말한 건지 모릅니다.”

“그 둘이 같아?”

“다릅니다. 한 사람이 두 번 말하면 그 사람 생각이 굳은 겁니다. 두 사람이 한 번씩 말하면 그건 거기 분위기입니다.”

“어느 쪽이 더 센 거야.”

“두 사람 쪽이 셉니다. 그런데 그건 그 둘이 서로 안 맞춰 봤을 때만 그렇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말을 듣고 나왔으면 한 번하고 같습니다.”

경옥이 짧게 웃었다.

“물어봐야 아는 거지.”

“물어봐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름은 적어야 합니다.”

은재가 적었다.

「수송팀 칸에 「말한 사람」 줄을 새로 만듦.

오늘 것은 이름을 안 물었음. 비워 둠. 거슬러 올라가 채우지 않음.

두 번이 한 사람의 두 번인지 두 사람의 한 번씩인지를 가르지 못하면 「두 번」이라는 수가 무슨 수인지 모름.

말에는 말한 사람이 붙어 있음. 수에서 그 사람을 떼어 놓으면 조직의 말처럼 보임.」

5. 육십 점 일구

오정한의 작업실은 스무 평이었다.

아침 아홉 시에 험을 쟀다. 열여덟째 점이었다. 짧게 잰 아침 칸은 60.00이었고 열 분 동안 잰 칸은 59.998이었다.

방 온도와 모터 온도의 차는 열째 점이었다. 0.13에서 이어 0.14가 나왔다.

쿼츠 데크는 내일 돌려줘야 했다. 하루가 남았다.

정한은 할 일 목록을 폈다. 어제 만든 「한 번만 할 수 있는 일」 칸이 맨 뒤에 있었다.

그 칸을 보다가 연필 끝으로 목록 위쪽을 짚었다.

이관 대기 릴 넷의 험 측정이 저녁 칸에 있었다. 쿼츠 데크가 있어야 하는 일이었다.

정한은 새 칸을 하나 더 그었다.

「칸이 둘 필요함.

①한 번만 할 수 있는 일: 하면 되돌릴 데가 없음. 순서는 맨 뒤. ②오늘까지만 할 수 있는 일: 안 하면 기회가 없어짐. 순서는 맨 앞.

어제 ①만 만들었음. ②에 해당하는 일은 저녁 칸에 넣어 두었음. 저녁에 기계가 탈이 나면 그걸로 끝임.

둘은 반대쪽으로 가야 함. 이름을 하나로 두면 뒤로 가면 안 되는 것이 뒤로 감.」

정한은 저녁에 하기로 했던 릴 넷을 오후로 당겼다.

그 전에 릴 넷의 베이스를 봤다. 끝을 자르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했다.

허브 안쪽 각인을 봤다. 둘은 1972년과 1974년이었고 둘은 1981년과 1983년이었다.

릴을 들어 창 쪽에 대고 테이프 끝을 비춰 봤다. 앞의 둘이 더 뿌옇고 두꺼웠다.

통을 열고 냄새를 맡았다. 앞의 둘에서 아주 옅은 식초 냄새가 났다.

「넷 중 둘은 아세테이트, 둘은 폴리에스터로 봄.

근거: 각인 연도, 두께, 빛 투과, 냄새. 넷 다 테이프를 안 자르고 할 수 있는 것임.

끝을 조금 떼어 태워 보면 확실함. 그것은 떼면 돌아오지 않으므로 ① 칸 맨 뒤에 둠.

지금 필요한 것은 「확실히」가 아니라 「갈라 두기」임. 갈라 두는 데는 지금 것으로 충분함.」

정한은 쿼츠 데크에 첫 릴을 걸었다. 그런데 거는 손을 멈추고 수첩을 봤다.

내일이면 이 데크가 없었다.

정한은 첫 릴을 올려놓고 같은 구간을 네 번 연달아 쟀다.

60.20, 60.18, 60.21, 60.17이었다.

흩어짐이 0.02헤르츠쯤이었다. 퍼센트로 고치면 0.03쯤이었다.

「자를 먼저 챙김. 넷을 한 번씩만 재면 넷이 다르다는 말을 못 함.

내일 데크가 없으므로 자를 내일 구할 수 없음. 자는 재는 것과 같은 날에 같은 기계로 구해야 함.」

넷을 차례로 쟀다.

1972년 것이 60.19였다. 1974년 것이 60.22였다. 1981년 것이 60.17이었다. 1983년 것이 60.20이었다.

60으로 나눠 퍼센트로 적었다. 더하기 0.32, 0.37, 0.28, 0.33이었다.

정한은 넷을 나란히 놓고 봤다.

재질로 묶었다. 아세테이트 둘의 가운데가 0.345였고 폴리에스터 둘의 가운데가 0.305였다.

차가 0.04였다. 자가 0.03이었다.

「재질로 갈라도 차가 자의 한 배 남짓임. 못 가름.」

정한은 거기서 연필을 놓았다가 다시 들었다.

어제 구한 수가 있었다. 아세테이트 시험 테이프가 더하기 0.45퍼센트였고 폴리에스터 시험 테이프가 빼기 0.09퍼센트였다.

그 몫을 빼 봤다.

아세테이트 둘은 빼기 0.105가 되었다. 폴리에스터 둘은 더하기 0.395가 되었다.

차가 0.5가 되었다.

정한은 두 줄을 나란히 놓고 한참 봤다.

보정을 안 하면 넷이 모여 있었다. 보정을 하면 둘로 갈라졌다.

정한은 담배를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보정을 넣느냐 마느냐로 결론이 뒤집힘.

0.45라는 수는 어디서 나온 수인가. 1970년대 아세테이트 한 롤에서 나온 수임.

아세테이트가 줄어드는 양은 보관 온도·습도·감긴 힘·통 재질에 따라 다름. 그 한 롤은 내 선반에서 삼십 년을 지냈고, 이 넷은 어디서 왔는지 모름.

한 롤에서 구한 수를 네 롤에 가져다 쓰면, 내가 쓴 것은 「아세테이트의 수축」이 아니라 「내 선반 한 롤의 수축」임.

조건이 붙은 수를 조건 밖에 가져다 쓴 것임.

그러므로 보정 안 함. 날것으로 적음.」

정한은 넷을 날것으로 적고 그 아래에 한 줄을 달았다.

「넷이 더하기 0.28에서 0.37 사이에 모여 있음. 폭이 0.09이고 자가 0.03임.

넷이 똑같다고는 못 함. 다만 재질로 갈릴 만큼 벌어지지도 않았음.

재질이 다른데도 모여 있음. 재질이 틀리는 방향을 정한다면 재질이 다른 둘은 갈라져야 함. 안 갈라졌음.

읽는 법 둘. ①넷이 다 같은 데서 녹음됐고 그 데크가 0.3퍼센트 빨랐음. ②재질 몫과 데크 몫이 서로 반대로 들어가서 우연히 모였음.

②는 넷 다에서 우연히 그래야 함. 그럴 법하지 않으나 아니라고 못 함.

지금 적을 수 있는 것: 넷이 모여 있음. 모인 것 자체가 처음 나온 수임.」

해가 지기 전에 정한은 수첩을 조명 밑에 놓았다. 압흔 판독 둘째 날이었다.

어제는 뒷장에 글자가 아니라 세게 쓴 획만 남는다는 것을 적었다. 오늘은 그 세게 쓴 데가 어디인지를 봤다.

낮은 각도로 빛을 넣고 장을 천천히 돌렸다.

깊게 남은 자리를 표시해 나갔다.

표시가 끝났을 때 정한은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아봤다.

숫자였다. 날짜와 번호가 글자보다 훨씬 깊게 눌려 있었다.

「뒷장에 깊게 남은 것은 거의 숫자와 날짜임.

까닭: 숫자는 또박또박 씀. 글자는 흘려 씀. 흘려 쓰면 필압이 낮고 면이 넓음.

그러므로 뒷장이 주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또박또박 쓴 것」임.

중요한 것과 또박또박 쓴 것이 겹칠 때가 있고 안 겹칠 때가 있음. 겹쳤는지 아닌지는 뒷장만 보고는 모름.

뒷장을 읽을 때 「이게 제일 중요했던 줄이구나」라고 읽지 않음.」

이관 마감은 10월 27일이었고 엿새가 남았다.

「안 지나감」은 열사흘째였다. 창밖 셔터를 안 적은 날이 여드레째였고 안 보는 날이 열하루째였다.

짐작 칸은 열일곱째였다. 다음 판단은 11월 14일이었다.

6. 서른여섯 줄

월요일이었다.

하람은 열 시에 어머니 집에 들어가 처음 세 마디를 적었다. 열하루째였다.

「①너 오늘 회사 안 가 ②밥은 ③비 오냐」

말 아닌 것 칸은 열이틀째였다. 창 쪽을 네 번 봤고 손을 한 번 비볐다.

핀 칸은 열넷째 점이었다. 여섯이었다.

하람은 수첩 앞쪽을 한 장 넘겼다. 어제 줄 옆에 「내가 정해서 온 날」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수는 평소 칸에 안 들어가 있었다.

「어제 수를 뺐으므로 평소 칸의 점이 하나 덜 쌓였다.

치우침을 막는 데 점 하나를 냈다. 점이 줄면 자가 커진다.

둘 다 적어 둔다. 공짜로 막은 것이 아니다.」

열한 시에 센터에서 차량 일지 복사본이 왔다. 8월 1일부터 10월 18일까지였다.

하람은 식탁에 펼쳐 놓고 줄을 셌다. 서른여섯 줄이었다.

날짜와 승차 시각과 하차 시각과 비고가 있었다.

하람은 먼저 날짜만 따로 옮겨 적었다. 자기 수첩에 「갔는지 안 갔는지」 칸이 비어 있는 날이 열한 날 있었고, 그중 아홉 날이 일지에 있었다.

「내가 안 간 날이 메워졌다.

여태 내 수첩은 내가 본 날만 적혀 있었다. 일지는 내가 없는 날에도 적혔다.

메워진 것: 갔다/안 갔다. 안 메워진 것: 그날 어떠셨는지.

일지에는 상태를 적는 칸이 없다. 칸이 없으면 안 적힌다.」

비고란에 글이 있는 줄이 열한 줄이었다. 「부축함」 「기다리심」 「문 앞에서 한참」 같은 짧은 말이었다.

하람은 날짜 순서로 세어 봤다. 8월에 둘, 9월에 넷, 10월에 다섯이었다.

연필을 들었다가 멈췄다.

줄 끝에 서명이 있었다. 두 가지였다.

하람은 서명으로 나눠 다시 셌다.

한 서명이 스무 줄이었고 그중 비고가 둘이었다. 다른 서명이 열여섯 줄이었고 그중 비고가 아홉이었다.

두 번째 서명이 처음 나온 날이 9월 12일이었다.

하람은 두 수를 나란히 적고 한참 봤다.

「비고가 8월에 둘, 9월에 넷, 10월에 다섯으로 늘었다.

그런데 기사가 바뀐 날이 9월 12일이다.

한 사람은 열에 하나 적고 한 사람은 둘에 하나 넘게 적는다.

「비고가 늘었다」와 「많이 적는 사람으로 바뀌었다」가 같은 날짜에 겹쳐 있다. 겹친 둘은 이 일지로 못 가른다.

못 가르는 것을 못 가른다고 적는다. 9월부터 나빠지셨다고 적지 않는다.

가르려면 두 사람이 같은 날 같은 분을 태운 날이 있어야 한다. 서른여섯 줄에 그런 날은 없다.」

하람은 그다음에 시각을 봤다.

승차 시각이 09:10, 09:15, 09:20, 09:10, 09:25로 이어졌다.

분을 끝자리로만 뽑아 세어 봤다. 0이나 5로 끝나는 줄이 서른한 줄이었다.

하람이 계산기를 들었다.

끝자리가 0에서 9까지 고르게 나온다면 0이나 5는 다섯에 하나였다. 서른여섯 줄이면 일곱 줄쯤이어야 했다.

서른한 줄이었다.

「시각이 5분 눈금으로 적혀 있다.

기사가 시계를 보고 어림해서 적는다. 어림은 5분 쪽으로 몰린다.

그러므로 이 칸의 자는 5분이다. 3분이 늘었는지 줄었는지는 이 일지로 못 본다.

「승차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졌다」를 보려면 5분보다 크게 길어져야 한다.

못 보는 폭을 적어 둔다. 이 칸에서 아무 변화가 안 보여도 그것은 「안 길어졌다」가 아니다.」

한 시에 하람은 동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정숙의 유족 연락을 어디에 물어야 하는지를 물었다.

담당자는 연락처는 알려 줄 수 없다고 했다. 개인정보라고 했다.

하람이 다른 것을 물었다.

“혹시 돌아가셨을 때 연고자를 못 찾으면 공고를 내시나요.”

“무연고 사망이면 공고를 냅니다. 시 공보에 올라갑니다.”

“그러면 공고에 안 올라가 있으면요.”

“연고자가 확인된 겁니다.”

하람은 전화를 끊고 두 줄을 적었다.

「막힌 길: 센터와 주민센터에서 유족 연락처를 받는 길. 개인정보로 막힘. 다시 안 해 본다.

열린 길: 공보 공고 목록. 거기 이름이 없으면 연고자가 확인됐다는 뜻이다.

이 칸은 반드시 적히는 칸이다. 절차상 빠뜨릴 수 없는 칸이다.

반드시 적히는 칸에서는 빈 것이 뜻을 가진다. 안 적어도 되는 칸에서는 빈 것이 아무 뜻이 없다.

막힌 것과 안 해 본 것을 가른다. 막힌 줄을 안 적어 두면 다음 사람이 또 해 본다.」

한 시 반에 최영숙에게서 전화가 왔다. 63차였다.

명단을 확인했다고 했다. 가족이 다녀간 기록은 없다고 했다.

하람이 물었다.

“그 명단이 언제부터 있는 거예요.”

“방명록은 2024년 3월부터요. 그 전에는 안 받았어요.”

“그 전에는 오셔도 안 적혔겠네요.”

“적을 칸이 없었어요.”

하람이 수첩에 적었다.

「「기록 없음」의 기간을 먼저 적는다.

2024년 3월부터 지금까지: 안 오셨다는 뜻이 된다. 그 전: 적는 칸이 없었다. 안 오셨다는 뜻이 아니다.

한 줄에 같이 적으면 「한 번도 안 왔음」이 된다. 두 줄로 가른다.」

통화 끝에 최영숙이 28일 방문 얘기를 꺼냈다. 하람은 그날 일정만 확인하고 다른 말은 안 했다.

센터조 이름 셋을 세척하는 첫날이었다. 10월 27일까지 아무 데서도 안 꺼내기로 한 이름들이었다.

전화를 끊고 하람은 한 줄을 달았다.

「세척은 「안 묻기」만이 아니다. 「안 꺼내기」까지다. 내 입에서 나가면 그쪽 귀에 들어간다.

어머니가 먼저 그 이름을 말하는 것은 내가 넣은 것이 아니므로 셈에 넣는다. 다만 「그날 먼저 나옴」을 표시한다.

표시를 안 해 두면 28일에 나온 것이 그날 처음 나온 것인지 그 전 주에 이미 나와 있던 것인지 모른다.」

세 시에 하람은 제비 봉투에서 여섯째 블록 여덟째 장을 뽑아 접은 채로 수첩에 끼웠다.

조사표를 낸 뒤 엿새째였다. 「안 옴」이 열세 줄이 되었다. 통보를 물을 날은 10월 29일이었다.

본 것 없는 짐작 칸은 열다섯째였다. 좁게 적기는 여드레째였고, 좁은 것만 열이 되는 날은 10월 23일이었다.

옆집 쪽지는 10월 24일이었다.

정숙의 유족 줄 옆에는 기한이 적혀 있었다. 10월이었고 열흘이 남았다.

버스에서 하람은 차량 일지를 무릎에 올려놓고 다시 폈다.

서른여섯 줄 중에 어머니가 안 가신 날은 적혀 있지 않았다. 간 날만 줄이 되었다.

하람은 달력을 폈다. 8월 1일부터 10월 18일까지가 일흔아홉 날이었다. 서른여섯 줄을 빼면 마흔세 날이 줄 없는 날이었다.

그 마흔셋 중에 차가 아예 안 다닌 날이 얼마인지를 하람은 몰랐다.

하람이 마지막 줄을 적었다.

「간 날만 줄이 되는 장부다. 안 간 날은 줄이 없다.

줄이 없는 것과 안 간 것이 같아 보이지만, 차가 안 온 날도 줄이 없다.

줄 없는 날을 안 간 날로 세면 차가 고장 난 날이 어머니가 안 나가신 날이 된다.

차가 운행한 날의 달력을 따로 받는다. 받을 데를 적는다.」


자가 처음으로 하라고 말한 날에 할 수가 없었다. 열흘 내내 같은 글자가 적혀 있었지만 그 글자 안에는 넷이 섞여 있었다. 자가 아니라고 한 날과 못 정한 날과 사이라서 유지한 날과 자가 하라는데 못 한 날이 한 글자로 눌려 있었다. 결과만 적으면 자가 한 번도 울린 적이 없는 것처럼 보였고, 울린 적 없는 자는 고칠 데가 없었다. 그래서 판정과 실행과 까닭을 따로 적었다. 그리고 다음 날의 상태는 실행이 아니라 판정을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안 하면 바깥 날씨를 재려고 세운 자가 우리 형편을 재게 되었다.

같은 온도계가 날마다 쓸모가 달랐다. 수가 자에서 멀면 어긋남이 안 들었고 가까우면 다 들었다. 고치지 않고도 쓸 수 있는 날이 있었다.

조건으로 잡은 날짜는 그 조건을 아는 사람이 따로 있을 때 지킬 수 없었다. 소식이 오는 날 전에 하겠다고 적어 놓으면, 소식이 언제 오는지 모르는 쪽은 오늘이 그 전날인지 알 수 없었다. 오늘 된 것은 반나절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 반나절은 아무도 준 적이 없었다. 운으로 된 것을 됐다고만 적으면 다음에도 그렇게 잡았다.

둘레의 둘째 점이 생겨서 처음으로 바닥이 얼마나 내려갔는지를 뺄 수 있었다. 뺀 수의 방향은 믿을 수 있었고 크기는 믿을 수 없었다. 막대 둘이 서로 1밀리 다른데 빼서 얻은 차가 0.7이었으므로, 느리다는 것까지는 말할 수 있었고 얼마나 느린지는 말할 수 없었다. 막대를 늘리면 자는 줄었지만 밭 안에 바람을 막는 것이 늘었다. 재는 것을 좋게 하는 일이 재는 대상을 더 건드리는 일이었다.

깊이는 그대로인데 개수가 줄었고, 전날 칸을 셋으로 갈라 두었기 때문에 어느 문으로 떨어졌는지가 남았다. 하루 만에 쓰인 칸이었다.

한 바퀴가 돌자 통과 자리가 갈렸다. 섞이는 일은 그날로 다 끝나 있었고 모자란 것은 남은 흔들림을 잴 점이었다. 자리 몫은 자의 일곱 배였고 통 몫은 자와 같았다. 가운데가 0.3도 따뜻했지만 그것으로는 26퍼센트 중 3퍼센트밖에 메워지지 않았다. 나머지는 잴 것이 없어서 실 한 가닥으로 흔들리는지만 보았고, 그 줄은 까닭을 정하는 줄이 아니라 기울이는 줄로 적혔다.

맹검을 끝까지 하려면 깨는 조건을 못 지켰고 깨는 조건을 지키려면 맹검이 샜다. 둘 다 가질 수 없어서 어느 쪽을 얼마나 내줄지를 사람이 정했다. 새는 것을 그냥 두지 않고 날마다 짐작을 적어 봉해 두기로 했다. 열 번에 다섯 번 맞으면 찍은 것이었고 여덟 번 맞으면 본 것이었다. 세어 둔다고 결론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결론을 얼마나 믿을지가 달라졌다.

같은 말이 두 번 나왔는데 받은 사람이 달랐다. 한 사람의 두 번과 두 사람의 한 번씩은 같은 두 번이 아니었다. 말에는 말한 사람이 붙어 있었고 수에서 그 사람을 떼어 놓으면 조직의 말처럼 보였다.

되돌릴 수 없는 일과 오늘까지만 할 수 있는 일은 반대쪽으로 가야 했다. 칸 이름을 하나로 두었더니 앞으로 가야 할 것이 뒤로 가 있었다. 그리고 내일 기계가 없으므로 자를 오늘 같은 기계로 먼저 구했다. 자 없이 적은 넷은 서로 다르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한 롤에서 구한 수축을 네 롤에 가져다 쓰면 보정이 아니라 다른 물건의 사정을 섞는 일이었다. 보정을 넣으면 갈라지고 안 넣으면 모였다. 어느 쪽이 참인지는 오늘 못 정했으므로 날것으로 적었다. 넷이 모여 있다는 것 자체가 그날 처음 나온 수였다.

뒷장에 깊게 남은 것은 숫자였다. 또박또박 쓴 것이 깊게 눌렸을 뿐이어서, 뒷장이 보여 준 것은 제일 중요했던 줄이 아니라 제일 반듯하게 쓴 줄이었다.

장부는 간 날만 줄이 되었고 안 간 날과 차가 안 온 날은 똑같이 줄이 없었다. 비고가 늘어난 날과 많이 적는 사람으로 바뀐 날이 같은 날짜에 겹쳐 있어서 둘을 가를 수 없었다. 시각은 5분 눈금으로 몰려 있어서 3분의 변화는 처음부터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폭을 적어 두지 않으면 아무 변화도 없는 것이 변화가 없다는 뜻이 되었다.

반드시 적히는 칸에서는 빈 것이 뜻을 가졌고, 적는 칸이 없던 때에는 빈 것이 아무 뜻도 없었다. 같은 빈칸이 두 가지였다.

자는 섰는데 손이 못 따라간 날이었다. 선 것과 한 것을 갈라 적어 두면 나중에 둘을 겹쳐 볼 수 있었고, 한 칸에 눌러 두면 겹쳐 볼 것이 남지 않았다. 밖에서는 자국 여덟이 둘레와 함께 아래로 내려가며 조금씩 얕아지고 있었고, 그 아래 얼음 속 공기는 오늘 적힌 어느 숫자보다 오래되었고 자기를 감싸고 있던 얼음보다는 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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