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공기] 제36화 - 넘김

제36화 「넘김」
1. 622미터
토요일 아침 여덟 시에 첫 토막이 올라왔다.
616에서 619, 619에서 622. 두 토막이었다. 캠프 철수까지 27일, 새 날로는 열닷새째였다.
내려가는 데 23분, 올라오는 데 22분. 스물닷새째였다.
토막 길이는 2.94미터와 2.95미터. 열사흘 동안 같던 값이 오늘은 한 눈금 달랐다. 재혁은 그것을 적고 아무 말도 붙이지 않았다.
케이블 눈금 84.00미터, 코어 길이 누계 82.68미터. 차이는 1.32미터였다.
“오늘 벌어진 건 0.11입니다. 열네 점째요.”
“가운데는.”
“짝수라 둘이에요. 일곱째하고 여덟째.”
재혁이 열네 개를 작은 것부터 늘어놓았다. 일곱째는 0.09였고 여덟째는 0.10이었다.
”…달라요.”
“그럼 사이라고 적어.”
「가운데: 0.09와 0.10 사이.」
재혁은 그다음 칸에서 손이 멈췄다. 흩어짐은 가운데를 정하고 각 점이 거기서 떨어진 거리를 다 더해 점 수로 나누는 것이다. 가운데가 사이면 거리를 어디서부터 재는가.
“흩어짐은 어디서 재요. 0.09에서요, 0.10에서요.”
“둘 다 해 봐.”
재혁이 0.09에서 쟀다. 0.06은 0.03, 0.08 둘은 합해서 0.02, 0.09 넷은 0, 0.10 넷은 0.04, 0.11 둘은 0.04, 0.12는 0.03. 합 0.16. 열넷으로 나누니 0.011이었다.
0.10에서 쟀다. 0.04, 0.04, 0.04, 0, 0.02, 0.02. 합 0.16. 0.011이었다.
“같은데요.”
“가운데 둘 사이 어디서 재도 같아.”
“왜요.”
“위에 일곱, 아래 일곱이니까. 사이 안에서 재는 자리를 조금 올리면 아래 일곱은 그만큼 멀어지고 위 일곱은 그만큼 가까워져. 일곱씩이라 더하면 없어져.”
재혁은 반신반의하며 0.095에서 한 번 더 쟀다. 0.16이었다.
“그래서 사이라고 적어도 셈이 되는 거네요.”
“사이는 값이 아니고 자리야. 그런데 이 셈은 자리만 있으면 돼.”
「흩어짐: 0.011(14점). 사이 어느 쪽에서 재도 같음. 나흘째 같은 값.」
30점까지는 열여섯 점이 더 남아 있었다. 재혁은 이제 그 칸을 쓰면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케이블 늘어남 후보에 날짜 하나가 더 붙었다. 다음 청소일 9월 18일까지 나흘이었다.
서진이 야장 뒤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한 장짜리 서식이었다.
“오늘 토요일이지.”
“예.”
“보고 나가는 날이야. 오후에 보자.”
2. 12분
인천은 저온시료동 347일째였다. 첫 절단까지 18일. 한 대 운용 열아흐레째. 이호기 단독 −30.0.
토요일 아침 여섯 시 십 분에 은재는 혼자 들어왔다.
가을 표 열여섯째 줄에 어제 것을 옮겨 적었다. 쌓은 시간 13시간 10분, 바깥 22.4도, 문 한 번, 반출입 없음, 습도 「안 잼」, 관측소 값 66퍼센트. 일곱째 칸에 「6시 20분. 주걱. 통. 11분.」, 그 옆 좁은 칸에 「은재」, 여덟째 칸에 「6시간」. 왼쪽 표시는 나흘째였다.
여섯 시 제상이 끝나고 20분 뒤에 앞판을 열었다.
주걱을 대고 긁었다. 어제와 같은 주걱, 어제와 같은 통이었다. 다른 것은 옆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팬 바닥이 보일 때까지. 구석 안 긁음.」
7분쯤 지나자 팬 가운데에 쇠 바닥이 얼룩처럼 드러났다. 은재는 손을 멈췄다. 보였다. 그런데 팬의 절반은 아직 하얬다.
보일 때까지가 어디까지인가. 한 군데 보이면 보이는 것인가, 다 보이면 보이는 것인가.
어제까지는 그것을 물을 사람이 옆에 있었다. 오늘은 없었다. 은재는 팬을 보다가, 15분마다 손을 주머니에 넣는 것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손을 꺼내고 정했다. 가운데에 손바닥만큼 보이면 보이는 것. 그 이상은 안 긁는다.
한 번 더 긁고 그쳤다. 12분이었다.
전실로 나왔다. 저울에 통을 올리기 전에 은재는 전화기의 초시계를 꺼냈다.
10초는 언제부터인가. 통을 내려놓은 순간부터인가, 숫자가 서는 순간부터인가. 어제 정한 말에는 「올리고 10초 뒤」라고만 있었다. 올리는 데도 한두 초가 걸린다.
내려놓으면서 눌렀다.
숫자가 흔들리다가 6초쯤에 611에 섰다. 8초에 612. 10초.
그 뒤로 613이 됐고 615가 됐다. 은재는 보지 않았다.
「걷은 물: 612그램(24시간치). 10초. 통 내려놓은 순간부터. 초시계. 걷은 사람 은재. 첫 10초 값이라 맞댈 데 없음.」
「팬 바닥 보임: 가운데 손바닥만큼. 내가 정함. 9월 14일. 선생님 안 계신 날.」
「10초의 시작: 통을 내려놓은 순간. 내가 정함. 같은 날.」
은재는 노트를 덮으려다가 도로 폈다. 한 줄이 더 있었다. 적어야 하는지 한참 생각했다.
「내 이름이 적히는 줄 알아서 더 긁고 싶었음. 바닥 보일 때까지에서 멈춤. 멈춘 것은 규칙이 먼저 있어서.」
3. 40그램
정한의 손이 선반 셋째 칸으로 간 것은 아홉 시 사십오 분이었다.
여덟 시 반, 여덟 시 오십오 분, 아홉 시 이십 분, 아홉 시 사십오 분. 25분씩 네 점이었다. 세 개의 차가 다 같은 방향일 확률은 여덟에 하나였다. 정한은 아직 늦어진다고 적지 않았다. 「9월 14일. 안 봄. 손은 감. 9시 45분.」
다섯째 릴의 통에서 종이를 꺼냈다. 색표에 댔다. 1.0. 어제와 같았다.
「A-D 1.0. 통 값 둘째. 어제 1.0과 같음. 1.5와는 안 이음.」
통 값이 둘이 됐다. 둘이 같다는 것은 통 안의 공기가 어제와 오늘 같다는 것이지, 릴이 어제와 같다는 것은 아니었다. 정한은 그 말을 다시 적지 않았다. 종이가 무엇을 재는지는 어제 적었다.
오전에 정한은 처리 내역 뒤 장을 폈다. 다섯째 릴을 위해 어제까지 적어 놓은 절차였다.
「흡착제 교체. 서늘한 쪽으로 옮김. 텐션 낮춘 통로에 걸 것. 가이드는 줄어든 폭 0.15에 맞춤. 소리는 아직 안 들음.」
그는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동규에게 보냈다. 붙인 말은 하나였다.
「이대로 하실 수 있으면 하시고, 못 하시면 어디서 막히는지만 적어 주세요.」
동규는 한 시간 뒤에 전화를 했다.
“세 군데서 막힙니다.”
“말씀하세요.”
“「텐션 낮춘」이 얼마나 낮춘 겁니까.”
정한은 대답하려다 말았다. 그는 손으로 낮췄다. 몇 그램인지 재지 않았다.
“둘째는요.”
“「서늘한 쪽」이 어느 쪽입니까. 저는 선생님 방을 모릅니다.”
“셋째는요.”
“가이드를 0.15에 맞춘다는 게, 양쪽 벽을 0.075씩 좁힌 겁니까, 한쪽만 0.15 옮긴 겁니까. 테이프가 어느 쪽에서 줄었는지 아십니까.”
정한은 세 번째 물음에서 오래 말이 없었다.
“모릅니다.”
“그럼 어느 쪽에 맞추셨습니까.”
“아래 가장자리요. 녹음할 때도 그 가장자리로 안내됐을 테니까요.”
“그건 적혀 있지 않습니다.”
전화를 끊고 정한은 장력계를 꺼냈다. 테이프를 살짝 걸어 당기는 힘을 그램으로 읽는 것이었다. 보통 통로는 80그램 언저리였다. 낮춘 통로는 40그램이었다. 그는 손으로 절반을 낮춰 놓고 있었고, 그것을 오늘 처음 숫자로 봤다.
「텐션: 보통 통로 약 80그램, 낮춘 통로 약 40그램. 장력계로 잼. 장력계 마지막 교정은 모름. 이 장력계 값.」
「서늘한 쪽 = 북쪽 벽 아래 선반, 창에서 먼 자리. 방 온도계로 낮에 2도 낮음.」
「가이드: 아래 가장자리를 기준으로 두고 위쪽 벽만 0.15 옮김. 폭이 어느 쪽에서 줄었는지는 모름. 골고루 줄었으면 트랙도 조금 내려와 있을 것. 그것은 못 맞춤.」
세 줄을 적고 나서 정한은 앞의 다섯 줄을 다시 읽었다. 어제까지 그 다섯 줄은 다 적힌 것으로 보였다. 자기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으면 대답할 사람이 그 종이 옆에 앉아 있어서, 종이는 비어 있는 데를 보이지 않았다.
오후 두 시에 오른쪽 조명 생각이 났다. 사흘 전 아침, 그저께 오후 네 시, 그저께 저녁 일곱 시, 어제는 열한 시 반보다 늦음, 오늘 오후 두 시.
「조명 생각: 오후 2시. 다섯째. 어제 것은 「열한 시 반보다 늦음」이라 어제와 오늘 사이가 얼마인지는 모름.」
셋째 릴은 밀린 채였다. 정한은 거기에도 날짜만 하나 더 붙였다.
4. 냉장고
토요일은 서른여섯째였다.
순서는 아홉째 날이었다. 실 양, 실패, 바늘, 또렷하셨던 것, 최영숙.
제비는 남은 하나였다. 하람은 그래도 종이컵에 손을 넣어 그것을 꺼냈다. 바늘. 뽑을 것이 하나뿐인 제비는 제비가 아니지만, 다섯을 다 쓸 때까지 도로 안 넣기로 한 것이었고, 마지막 하나를 안 뽑으면 그 규칙은 넷까지만 지킨 것이 된다. 하람은 뽑은 것을 적었다. 내일부터 다섯 장이 새로 들어간다.
실 양은 짧게. 흰 실 그대로, 검정 그대로, 실밥 없음.
실패는 짧게. 열한 개, 자리 그대로.
바늘은 길게였다. 닷새째였다.
종이갑에 넷, 핀쿠션에 하나, 바늘대에 하나, 박던 천에 없음. 여섯이었다.
어제도 여섯이었다. 그런데 어제는 갑에 다섯이었고 핀쿠션에 없었다. 하나가 갑에서 핀쿠션으로 갔다.
하람은 핀쿠션의 하나를 뽑아 봤다. 11호였다. 갑의 넷도 11호, 바늘대의 하나는 14호. 11호 다섯, 14호 하나. 종류는 어제와 같았다.
「자리 넷의 바늘: 여섯. 갑 4 / 핀쿠션 1 / 바늘대 1 / 천 0. 수 같음, 자리 다름. 갑에서 핀쿠션으로 하나. 어머니가 옮기신 것. 어제 여섯은 내가 바꾼 날 값이고 오늘 여섯은 바뀐 뒤 첫 값. 오늘부터 새 줄.」
수가 같은데 적을 것이 있었다. 길게 뽑힌 날이 아니었으면 갑을 열어 보지 않았을 것이고, 여섯이라고만 적었을 것이다.
또렷하셨던 것은 오후에 나왔다. 어머니가 하람의 블라우스 단추를 보고 말했다.
“단추는 실을 두 겹으로 하는 거야. 한 겹으로 달면 첫 빨래에 돌아가.”
「물어서 나온 것 아님.」
저녁 일곱 시에 하람은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아흐레 전에 써 놓고 안 붙인 것이었다.
「월요일 아침 9시. 하람이 옴. 같이 나감. 두 시간. 카디건.」
그리고 수첩을 폈다. 9월 5일에 자기가 적은 줄이 있었다.
「9월 14일 저녁에 한 번, 가는 날 아침에 한 번. 두 번 말할 것. 왜 두 번인가: 한 번은 잊으시고, 세 번은 채근이 됨. 근거 없음. 해 보고 고칠 것.」
그 아래, 어제 적은 줄이 있었다.
「월요일 얘기는 월요일 아침에. 미리 말하면 매일 처음 듣게 됨.」
두 줄은 서로 달랐다. 하나는 오늘 저녁에 말하라고 했고, 하나는 월요일 아침에만 말하라고 했다.
하람은 두 줄을 한참 봤다.
9월 5일의 줄은 아무 일도 없던 날에 적은 것이었다. 어제의 줄은 이름표를 박고 나서, “잃어버릴까 봐?”에 대답을 못 하고 나서 적은 것이었다. 어제의 줄은 어제에 맞춰서 그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9월 5일의 줄에는 「해 보고 고칠 것」이 있었다. 안 해 보고 고치면 그것은 고친 것이 아니었다.
「금요일 줄은 지우지 않음. 9월 5일 것을 따름. 이유: 9월 5일 것은 미리 정한 것이고 금요일 것은 그날 정한 것. 그리고 해 보고 고치기로 한 것을 안 해 보고 고치면 고친 게 아님.」
하람은 종이를 냉장고에 붙였다. 그 옆에 작은 쪽지를 하나 더 붙였다. 「오늘: 토요일.」 내일 와서 「일요일」로 바꿀 것이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모르면 월요일 아침이라는 말은 아무 데도 안 붙는다.
“어머니.”
“응.”
“월요일 아침에 저랑 같이 어디 가요. 두 시간이요. 사람들 있고, 앉아 있다 오는 데요.”
어머니가 미싱에서 고개를 들었다.
“어디를.”
“센터요. 동네에요.”
“왜.”
하람은 준비한 말을 했다.
“어머니 낮에 혼자 계시는 시간이 길어서요.”
어머니는 잠시 하람을 보다가 다시 미싱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 보고 말할게.”
일곱 시 이십오 분에 어머니가 물었다.
“월요일에 뭐라고?”
두 번이었다. 저녁에 한 번, 아침에 한 번. 그런데 어머니가 물으시면 그것은 세 번째인가, 아니면 두 번째의 되풀이인가. 9월 5일의 줄에는 물으시는 경우가 없었다. 그때는 그런 일이 있을 줄 몰랐다.
“월요일 아침에 다시 말씀드릴게요.”
“그래.”
「7시 10분 말함. 7시 25분 「월요일에 뭐라고」 물으심. 다시 안 말함. 「월요일 아침에」까지만. 물으시면 어떻게 하는지가 9월 5일 줄에 없었음. 오늘 정함: 물으시면 「월요일 아침에」까지만. 채근 아님. 물으신 것.」
돌아가는 길에 받은 최영숙의 종이는 스물일곱 번째였다.
「토요일. 6시 30분 문 한 번. 계단 참. 손잡이 잡으셨음. / 맑음 / 새것 / 슬리퍼 / 손에 든 것: 없음.」
손잡이는 엿새째였다.
5. 13밀리
남극은 점심 뒤에 사진부터 봤다.
616-619의 아래끝이 6밀리, 619-622의 위끝이 7밀리. 합 13밀리였다.
“13이요. 여섯 점째입니다.”
“선은.”
“15요. 밑이에요.”
재혁은 그렇게 말하고도 사진을 내려놓지 않았다.
“제일 높은 값인데요.”
“선 밑이야.”
“11, 10, 10, 12, 11, 13이에요. 13이 제일 커요. 내일 14 나오고 모레 15 나오면요.”
“그럼 모레 멈추고 봐.”
“그 전에 미리 보면 안 돼요?”
서진이 사진을 집어 봉투에 넣었다.
“선은 튀는 걸 잡는 거야. 미는 건 선이 못 잡아.”
“미는 건 뭐로 잡아요.”
“점이 쌓여야 보여. 미는 걸 잡는 선을 어떻게 긋는지는 내가 몰라.”
“그럼 대충 그으면요. 어제처럼요.”
“어제 15는 대충이지만 어떻게 긋는지는 알고 그은 거야. 오늘 건 어떻게 긋는지를 몰라. 대충하고 모르는 건 달라. 모르는 선은 안 그어.”
재혁은 여섯 점의 가운데를 잡았다. 작은 것부터 10, 10, 11, 11, 12, 13. 셋째 11, 넷째 11. 거리는 1, 1, 0, 0, 1, 2. 합 5, 여섯으로 나누니 0.83밀리였다.
“눈금 밑이에요.”
“그렇지.”
「짝 표기 여섯째: 13. 선 15 밑. 이력 중 제일 높으나 선 밑. 안 봄. 흩어짐 0.83, 눈금 밑.」
헛돎은 셋째 날이었다. 첫 토막 0회, 둘째 토막 1회 2.3초. 누른 사람 재혁. 다른 사람 잼 없음.
부족분은 열다섯 점째였다. 마른 15.16과 15.21, 합해서 30.37킬로그램. 계산치와의 차이 0.83. 쏠림 뺀 값 플러스 0.12.
「안 봄. 닷새째.」
재혁은 플러스 0.12를 적으면서 어제 플러스 0.07이었던 것을 봤다. 보지 않기로 한 것을 적는 동안에는 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판정하지 않았다.
입도는 열두째 날이었다. 세 종을 20분에 끝냈다.
오후 네 시에 서진이 아침에 꺼내 놓은 서식을 재혁 앞으로 밀었다.
“이번 주는 네가 써.”
한 장이었다. 칸이 여섯 개였다. 주 시작 깊이, 주 끝 깊이, 진척, 장비 상태, 인원, 이상 유무.
재혁은 다섯 칸을 채웠다. 586에서 622. 36미터. 장비 정상. 두 명. 그리고 마지막 칸에서 멈췄다.
“이상 유무요.”
“뭐라고 쓸 건데.”
“없음이요. 그런데….”
“그런데.”
“지난주에도 없음이라고 쓰셨죠.”
“썼지.”
“지난주 없음하고 이번 주 없음이 같아요?”
서진이 잠깐 있다가 대답했다.
“달라. 지난주 없음은 안 본 거야. 볼 선이 없었으니까. 이번 주 없음은 안 넘은 거고.”
“글자는 같은데요.”
“같아.”
“본부는 모르잖아요.”
“그래서 한 줄 붙여.”
재혁이 이상 유무 칸에 「없음」을 쓰고 그 밑에 작게 붙였다.
「관리한계 2건 설정(9/13). 초과 없음.」
“이 줄을 본부가 읽어요?”
“안 읽을 수도 있어. 그런데 이 줄이 있는 없음하고 없는 없음은 달라. 읽는 사람이 없어도.”
“넘긴 다음에는요.”
“넘기고 나면 이 종이는 우리 게 아니야. 거기 없는 건 없는 거야. 그러니까 넘기기 전에 넣어.”
재혁이 서식을 접었다. 위성 전송은 여섯 시였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넘었네요.”
“응. 넘긴 건 있고.”
6. 온도만
오후 세 시에 경옥이 저온시료동에 들렀다.
토요일 오후에 한 번 온도만 보러 오는 것은 23년 된 일이었다. 벽 온도계는 −30.0이었다. 그것을 보고 돌아가면 됐다. 오늘은 사무실에 들어갔다.
노트가 펴져 있었다. 은재의 글씨였다.
「걷은 물: 612그램(24시간치). 10초. 통 내려놓은 순간부터. 초시계. 걷은 사람 은재. 첫 10초 값이라 맞댈 데 없음.」
「팬 바닥 보임: 가운데 손바닥만큼. 내가 정함. 9월 14일. 선생님 안 계신 날.」
「10초의 시작: 통을 내려놓은 순간. 내가 정함. 같은 날.」
경옥은 아래 두 줄을 오래 봤다.
「팬 바닥이 보일 때까지」는 어제 자기가 말한 것이었다. 말하면서 경옥은 팬을 떠올리고 있었고, 그 팬에는 바닥이 보이는 정도가 있었다. 그런데 종이에는 정도가 없었다. 어제 은재가 그것을 안 물은 것은 물을 필요가 없어서였다. 옆에 자기가 있었으니까.
「올리고 10초 뒤」도 그랬다. 올리는 데 몇 초가 걸리는지는 자기가 올리면서 알았다. 종이는 몰랐다.
두 줄은 다 자기가 옆에 없어서 생긴 줄이었다.
경옥이 펜을 들었다.
「바닥 보임 = 가운데 손바닥만큼. 은재 정의 채택. 9월 14일. 내가 없어서 생긴 정의.」
「10초 시작 = 통 내려놓은 순간. 채택. 같은 날.」
그리고 은재가 마지막에 적은 한 줄을 봤다.
「내 이름이 적히는 줄 알아서 더 긁고 싶었음. 바닥 보일 때까지에서 멈춤. 멈춘 것은 규칙이 먼저 있어서.」
경옥은 그 줄 옆에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적을 것이 없었다. 「걷은 사람」 칸을 만든 것은 사람마다 손이 달라서였는데, 칸이 생기자 칸이 손을 바꿨다. 그것까지 은재는 적어 놓았다.
수송팀 회신은 없었다. 토요일이었다. 은재가 「아직」 밑에 「토요일. 안 오는 날.」이라고 적어 놓았다. 경옥은 그 옆에 「그래도 하루.」라고 붙였다. 「아직」은 일하는 날을 세는 것이 아니라 날을 세는 것이었다.
다섯 시에 은재가 전화를 했다.
“온도 보셨어요?”
“봤어요. 30.0이요.”
“제가 적어 놓은 거요.”
“읽었어요. 둘 다 그대로 써요.”
잠깐 말이 없었다.
“제가 정해도 되는 거였어요?”
“제가 없었잖아요. 없는 사람이 적은 줄은 있는 사람이 채우는 거예요.”
“내일은 선생님 혼자시네요.”
“내일은 제가 은재 씨 줄을 읽고 하는 거죠. 손바닥만큼, 내려놓은 순간부터.”
“그럼 그 표는 이제 누구 거예요?”
“넘어간 거예요. 넘어간 건 받은 사람 거예요.”
그날 선을 넘은 것은 없었다.
13밀리는 15 밑에 있었고, 플러스 0.12는 닷새째 안 보는 칸에 있었고, 손이 셋째 칸으로 간 시각은 아직 여덟에 하나였고, 어머니는 가 보고 말하겠다고 했다.
대신 넘긴 것이 넷 있었다.
한 장짜리 보고서와 그 밑의 한 줄, 팬 하나와 거기서 생긴 정의 둘, 다섯 줄짜리 절차와 거기 뚫린 구멍 셋, 냉장고에 붙은 종이 한 장.
넘는 것은 값이 하고, 넘기는 것은 사람이 한다.
넘긴다는 것은 내가 없는 자리에서 그것이 읽히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규칙은 쓴 사람이 옆에 없을 때 처음으로 읽힌다. 그때에야 빈 데가 보인다.
빈 데는 쓴 사람이 못 본 것이 아니다. 쓴 사람이 옆에 있어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넘어간 것은 받은 사람의 것이 된다.
그리고 받은 사람이 빈 데를 채운 날짜가, 그 규칙이 규칙이 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