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공기] 제35화 - 그음

제35화 「그음」
1. 616미터
금요일 아침 여덟 시 오 분에 첫 토막이 올라왔다.
610에서 613, 613에서 616. 두 토막이었다. 캠프 철수까지 28일, 새 날로는 열나흘째였다.
내려가는 데 23분, 올라오는 데 22분. 스물나흘째였다.
토막 길이는 2.95미터와 2.95미터. 열사흘째 같은 값이었다.
케이블 눈금 78.00미터, 코어 길이 누계 76.79미터. 차이는 1.21미터였다.
“오늘 벌어진 건 0.10입니다. 열세 점째요.”
“가운데는.”
“홀수라 하나예요. 일곱째. 0.09입니다.”
재혁은 열세 개의 거리를 더해 열셋으로 나눴다. 0.011미터였다.
사흘째 같은 숫자였다. 재혁은 이번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0.011, 13점」만 적었다. 늘었다도, 줄었다도, 그대로다도 없었다.
그런데 연필을 놓고 나서 물었다.
“이 칸은 언제까지 이렇게 적어요.”
“뭐가.”
“판정도 안 하는 칸을 매일 계산하는 게요. 사흘째 0.011이면 내일도 0.011일 것 같은데요.”
“그럴 것 같지.”
“그럼 계산은 왜 해요.”
서진이 야장을 자기 쪽으로 돌려 놓고 점의 수를 셌다.
“점이 서른 개 되면 다시 봐. 그때도 눈금 밑이면 이 칸은 접어. 그때까지는 계산해.”
“서른은 어디서 나온 숫자예요.”
“대충. 열셋보다 많고 시즌 끝보다 앞이면 돼.”
재혁이 그 말을 적었다.
「흩어짐 칸: 30점에서 다시 봄. 그때도 눈금 밑이면 접음. 9월 13일에 정함.」
“접는 날짜를 왜 지금 정해요. 그때 가서 보면 되잖아요.”
“그때 가서 보면 그때 값에 맞춰서 정하게 돼. 값이 0.012면 조금만 더 하자고 할 거고 0.010이면 접자고 할 거야. 그건 우리가 정한 게 아니라 값이 시킨 거지.”
재혁은 그 옆에 작게 덧붙였다.
「30은 대충. 대충이라도 미리 정한 것.」
케이블 늘어남 후보는 어제 그대로였다. 「적어만 놓음.」 그 밑에 오늘 날짜 하나만 더 붙었다.
다음 청소일은 9월 18일이었다. 닷새 남았다. 재혁은 그날 훑개로 올라올 것을 이번에는 어느 구간 것으로 셀지 물었다. 서진은 세지 말라고 했다. 바닥에서 올라온 것은 어느 구간의 것도 아니었다.
2. 10초
인천은 저온시료동 346일째였다. 첫 절단까지 19일. 한 대 운용 열여드레째. 이호기 단독 −30.0.
가을 표 열다섯째 줄에 어제 것을 옮겨 적었다. 쌓은 시간 13시간 20분, 바깥 23.6도, 문 한 번, 반출입 없음, 습도 「안 잼」, 관측소 값 71퍼센트. 일곱째 칸에는 어제 정한 그대로 「6시 20분. 주걱. 통. 11분.」, 여덟째 칸에는 「6시간」. 왼쪽 표시는 사흘째였다.
아침 여섯 시 제상이 끝나고 20분 뒤에 두 사람은 앞판을 열었다. 은재가 주걱으로 긁어 담았다. 11분이었다.
저울은 전실에 있었다. 저온실 안에서는 저울이 안 돈다. 전지가 죽고 화면이 안 켜진다. 그래서 통을 들고 문을 한 번 나온다.
통을 올렸다. 통 무게를 뺀 값이 떴다.
“어제보다 57 적어요.”
은재가 그렇게 말하고 값을 적으려는데, 화면이 584로 바뀌었다.
”…지금 바뀌었어요.”
경옥이 저울을 봤다. 584였다. 두 사람은 잠깐 더 서 있었다. 숫자는 584에 머물러 있다가 한참 뒤에 585가 됐다.
“팬에서 물이 더 나올 리는 없잖아요. 통은 닫혀 있는데요.”
“팬에서 나온 게 아니에요. 전실 공기에서 온 거예요.”
경옥이 통 옆면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하얗게 서리가 앉아 있었다.
“이 통은 지금 영하 30도예요. 전실은 8도고 물기가 있고요. 찬 것에 닿으면 공기 속 물이 서리로 앉아요. 코일에 성에가 끼는 거하고 똑같은 이유예요.”
“통이 코일이 된 거네요.”
“그렇죠. 저울 위에 있는 동안 계속 무거워져요.”
은재가 표를 봤다. 어제 640이 있었다.
“그럼 어제 640은요. 몇 초 뒤에 읽은 거예요?”
경옥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것이 없었다. 어제는 눈금이 멎는 것을 보고 읽었고, 그것이 올리고 몇 초 뒤였는지는 아무도 안 셌다.
“모르겠어요.”
“그러면 어제 값은 638일 수도 있고 642일 수도 있는 거예요?”
“몇 그램쯤은요.”
경옥이 노트를 폈다.
「저울에 올리고 10초 뒤에 읽음. 그 뒤로 바뀌는 것은 안 적음. 9월 13일에 정함. 어제 9/12 값 640은 읽은 시각 안 정함. 몇 그램 흔들릴 수 있음.」
“10초는 왜 10초예요.”
“올려놓고 숫자가 서는 데 대여섯 초 걸리고, 서리는 그 뒤부터 붙어요. 10초면 선 뒤고 많이 붙기 전이에요. 정확한 숫자는 아니에요.”
“그럼 오늘 값은 583이에요?”
“10초 세고 읽은 건 아니잖아요. 오늘도 「읽은 시각 안 정함」이에요. 내일부터가 10초예요.”
은재가 오늘 줄에 583을 적고 옆에 「읽은 시각 안 정함」을 붙였다. 어제 줄에도 같은 말을 붙였다. 두 줄이 같은 조건이 됐다.
“그러면 어제하고 오늘은 맞대도 되는 거예요?”
“맞대요. 둘 다 스물네 시간치고 둘 다 몇 초짜리인지 모르니까요. 모르는 게 같으면 맞댈 수 있어요.”
“57 적은 건요.”
“문이 한 번 덜 열렸고, 바깥이 1.3도 낮았고, 읽은 시각이 달랐을 수도 있어요. 셋 다 후보예요.”
“그럼 아무 말도 못 하네요.”
“차이는 나왔어요. 이유가 안 나온 거예요. 값이 둘이면 차이는 생기는데 이유는 안 생겨요.”
3. 열한 시 반
정한의 손이 선반 셋째 칸으로 간 것은 아침 아홉 시 이십 분이었다.
여덟 시 반, 여덟 시 오십오 분, 아홉 시 이십 분. 25분씩 세 점이었다. 정한은 세 점이 같은 방향인 것을 보고도 늦어진다고 적지 않았다. 세 개의 차 두 개가 같은 방향일 확률은 넷에 하나다. 「9월 13일. 안 봄. 손은 감. 9시 20분.」까지만 적었다.
다섯째 릴의 통에서 종이 조각을 꺼냈다. 색표에 댔다.
초록에 가까웠다. 1.0.
어제는 1.5였다. 정한은 1.0을 적다가 연필을 멈췄다.
어제 그는 통 안에 흡착제를 새로 넣었다. 흡착제는 통 안의 산을 먹는다. 종이는 통 안의 산을 색으로 바꾼다. 흡착제가 먼저 먹으면 종이는 덜 먹는다.
그러니까 1.0은 릴이 좋아진 값이 아니었다. 통 안 공기가 좋아진 값이었다. 릴은 어제와 같은 속도로, 혹은 조금 느려진 속도로 자기를 재촉하고 있을 것이고, 그것을 종이는 못 본다.
「A-D 1.0. 흡착제 넣은 뒤 첫 값. 1.5와 잇지 말 것. 이 종이가 재는 것은 릴이 아니라 통 안 공기임. 통 값.」
낮에 동규가 들렀다.
“조명은 못 구했습니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그것도 적으세요?”
“적죠. 안 구한 거랑 못 구한 건 다르니까요.”
정한이 처리 내역 뒤 장에 한 줄을 적었다.
「다른 조명 장비: 못 구함. 9월 13일. 안 구한 것 아님.」
동규가 작업대 위를 봤다. 폐테이프 한 토막이 자로 재어 놓은 채 놓여 있었다.
“뭘 깎으세요.”
“다섯째 릴이 폭이 줄었어요. 0.15밀리쯤요. 가이드를 거기에 맞추려면 그 폭짜리 시험용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못 쓰는 테이프를 그만큼 깎아요.”
“시험용을 망가뜨려서 본물건에 맞추시는 거네요.”
“망가뜨리는 건 시험용이 할 일이에요.”
정한은 깎은 폐테이프를 텐션을 낮춘 통로에 걸고 몇 번 돌렸다. 헤드에 닿는 자리가 어긋나는지 보는 것이 전부였다. 소리는 안 들었다. 본물건은 아직 통 안에 있었다.
밤에 정한은 오른쪽 조명 생각이 나기를 기다렸다. 그저께 아침, 어제 오후 네 시, 어제 저녁 일곱 시. 오늘은 오지 않았다.
열한 시 반에 정한은 불을 껐다. 끄기 전에 적었다.
「조명 생각: 열한 시 반까지 안 남. 그 뒤는 잠. 「안 남」이 아니라 「열한 시 반보다 늦음」임.」
그것을 적고 나서 정한은 잠깐 앉아 있었다. 안 났다고 적으면 그것은 값이 된다. 그런데 그는 열한 시 반 뒤를 재지 않았다. 잰 데까지만 적고, 안 잰 데는 안 잰 것으로 남겨야 한다. 열한 시 반은 생각이 넘지 않은 시각이 아니라, 그가 보기를 그만둔 시각이었다.
4. 안쪽
금요일은 서른다섯째였다.
순서는 여덟째 날이었다. 최영숙, 실 양, 실패, 바늘, 또렷하셨던 것.
최영숙의 종이는 스물여섯 번째였다.
「금요일. 6시 35분 문 한 번. 계단 참. 손잡이 잡으셨음. / 흐림 / 새것 / 슬리퍼 / 손에 든 것: 없음.」
손잡이는 닷새째였다.
제비는 남은 둘에서 뽑았다. 실패가 나왔다. 남은 것은 바늘 하나였고, 그것은 내일이었다.
실 양은 짧게. 흰 실 그대로, 검정 그대로, 쓰레기통에 실밥 없음.
실패는 길게 적을 줄이었는데 길게 적을 것이 없었다. 열한 개. 어제 자리 그대로.
하람은 「없음」이라고 쓰지 않았다.
「실패: 열한 개. 어제 자리 그대로. 길게 볼 것 없음. 길게 볼 줄에 길게 볼 것이 없는 날.」
바늘은 넷째 날이었다. 종이갑에 다섯, 핀쿠션에 없음, 바늘대에 하나, 박던 천에 없음. 여섯이었다.
어제는 넷이었다. 하람은 잠깐 늘었다고 생각했다가, 종이갑 안의 다섯 개를 다시 봤다.
둘은 어제 바닥에서 자석에 붙어 올라온 것이었다. 어제 하람이 그것을 갑에 넣었다. 녹슨 하나는 「아닌 것」 상자에 넣었다.
여섯은 어머니가 만든 수가 아니었다. 넷에 하람이 둘을 얹은 수였다.
「자리 넷의 바늘: 여섯. 그중 둘은 내가 어제 바닥에서 옮겨 넣은 것. 넷·다섯과 잇지 말 것. 내가 바꾼 날.」
지난주에 최영숙이 먼저 문을 연 날에 썼던 말이었다. 없는 날이 아니라 우리가 바꾼 날.
오후에 하람은 가방을 하나 꺼냈다. 월요일에 들려 보낼 것이었다. 센터에서 옷과 가방에 이름을 써 달라고 했다.
하람은 다림질로 붙이는 이름표를 사 왔다. 어머니가 그것을 집어 들었다.
“이건 떨어져.”
“다리미로 붙이는 건데요.”
“떨어져. 빨면 한 번에 떨어져.”
어머니가 실을 골랐다. 회색이었다. 카디건 안감 색이었다.
“누구 거야?”
“어머니 거요.”
어머니가 이름표를 한 번 보고 하람을 한 번 봤다.
“내 옷에 내 이름을 왜 박아.”
하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잃어버릴까 봐?”
하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더 묻지 않고 카디건을 뒤집었다.
“이름은 안쪽에 박는 거야. 밖에 보이면 남이 부르잖아.”
바늘이 들어가고 나왔다. 되박음질 두 번. 시작과 끝이었다. 「아닌 것」 상자에서 나왔던 파란 실 이름표와 같은 손이었다. 그 손은 그 이름표를 누가 박았는지 모르는 채로 그것과 똑같이 박았다.
하람은 또렷하셨던 것 줄에 적었다.
「이름은 안쪽에 박는 거야. 밖에 보이면 남이 부르잖아. / 물어서 나온 것 아님. / 되박음질 두 번.」
그리고 그 밑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월요일 얘기는 월요일 아침에. 미리 말하면 매일 처음 듣게 됨.」
5. 15밀리
남극은 점심 뒤에 사진부터 봤다.
610-613의 아래끝이 6밀리, 613-616의 위끝이 5밀리. 합 11밀리였다.
“11, 10, 10, 12, 11. 다섯 점째입니다.”
“남은 후보는.”
“첫날만 높았던 거요. 그런데 오늘이 첫날하고 같아요. 11이요. 그러니까 첫날만 높은 것도 아니에요.”
“그럼.”
”…지워집니다. 남은 게 없어요.”
재혁은 후보 칸을 내려다봤다. 넷이 있던 자리에 줄이 넷 그어져 있었다.
“후보가 하나도 안 남으면 어떻게 해요.”
“그게 답이야. 지우고 나서 아무것도 안 남으면, 남은 건 후보가 아니라 바탕이라는 뜻이야. 10 근처에서 오르내리는 게 이 자의 바탕이야.”
재혁이 다섯 점의 가운데를 잡았다. 11이었다. 거리를 더했다. 0, 1, 1, 1, 0. 다섯으로 나누니 0.6밀리였다.
밀리 자의 눈금은 1밀리였다.
“눈금 밑이에요.”
“그렇지.”
“그럼 이 표는 뭐 하러 적어요. 오르내리는 걸 볼 수도 없는데요.”
“오르내리는 걸 보려고 적는 게 아니야. 튀는 날을 잡으려고 적는 거야.”
서진이 재혁의 연필을 받아 표 옆에 선을 하나 그었다.
「15 이상이면 그날 멈추고 봄.」
“15는 어디서 나왔어요.”
“10 근처에서 눈금 몇 개 위. 정확한 숫자는 아니야.”
“14는요.”
“14는 안 튄 거야. 15는 튄 거고.”
“그게 이상하지 않아요?”
“이상해. 그런데 선이 없으면 매일이 이상해. 선이 있으면 이상한 날만 이상해.”
재혁이 선 밑에 날짜를 적었다.
“이 선은 왜 지금 그어요. 튀는 날 보고 나서 그으면 되잖아요.”
“튀고 나서 그으면 그 날에 맞춰서 긋게 돼. 20이 나온 날 보고 그으면 19에 긋고, 16이 나온 날 보고 그으면 15에 긋겠지. 그건 선이 아니라 그날이야.”
“그래서 대충인데 미리 긋는 거예요?”
“미리 그은 대충이 나중에 그은 정확보다 나아.”
재혁은 아침에 적었던 「30은 대충」 옆에 「15도 대충」이라고 적었다.
“자를 바꾸면 이 선도 다시 긋는 거죠.”
“응. 다시 그은 날짜를 적고.”
헛돎은 둘째 날이었다. 첫 토막에서 한 번, 2.1초. 둘째 토막에서 한 번, 2.6초. 누른 사람 재혁. 다른 사람 잼 없음.
부족분은 열네 점째였다. 마른 무게 15.18과 15.24, 합해서 30.42킬로그램. 계산치와의 차이 0.78. 쏠림 뺀 값 플러스 0.07.
「안 봄. 넷째 날.」
입도는 열한째 날이었다. 세 종을 21분에 끝냈고 토막 번호를 같이 적었다.
야장을 덮으면서 재혁이 물었다.
“오늘 선을 두 개 그었네요.”
“응.”
“둘 다 아직 아무것도 안 넘었고요.”
“넘기 전에 긋는 거니까.”
6. 걷은 사람
저녁의 저온시료동 사무실에서 경옥이 달력을 폈다.
내일은 토요일이었다.
「매일 아침 6시 제상 뒤 20분, 하루 한 번, 24시간치.」 어제 정한 말에는 요일이 없었다. 매일이었다.
“주말에는 제가 오후에 한 번 들러요. 온도만 보고 가요. 아침 여섯 시 이십 분은 아니에요.”
“그럼 토요일 아침 것은 누가 걷어요.”
“그게 오늘 정할 일이에요.”
은재가 손을 들었다.
“제가 토요일 할게요. 근처에 사니까요.”
“그럼 일요일은 제가 하고요.”
경옥이 표를 봤다. 사흘 동안 앞판을 연 것은 은재였다. 주걱을 든 것도 은재였다. 11분도 은재의 11분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어요.”
“뭐요.”
“제가 긁으면 은재 씨가 긁는 만큼 안 나와요. 아니면 더 나오든가.”
“주걱이 같은데요.”
“주걱은 같은데 손이 달라요. 팬 구석까지 긁는 사람이 있고 안 긁는 사람이 있어요. 세게 긁으면 더 나오고요. 얼마나 남기고 그만두는지가 사람마다 달라요.”
은재가 팬 안을 떠올렸다. 구석에 남은 얼음이 있었다. 어제도 그저께도 있었다. 얼마나 남겼는지는 안 쟀다.
“그럼 일요일 값은 제 값하고 다른 물건이에요?”
“다를 수 있어요. 그래서 칸을 하나 만들어요.”
경옥이 가을 표 일곱째 칸 옆에 좁은 칸을 그었다. 「걷은 사람」이었다. 앞 사흘에는 「은재」를 소급해 적었다.
“한 사람으로 고정하면 안 돼요? 제가 매일 오면요.”
“365일을요?”
은재가 입을 다물었다.
“한 사람으로 못 하면 사람을 적는 거예요. 그러면 나중에 은재 씨 값끼리, 제 값끼리 따로 셀 수 있어요. 사람 칸이 없으면 그 둘이 섞여서 못 빼요.”
은재가 노트에 적었다. 칸이 또 하나 늘었다.
「걷은 사람 칸. 9월 13일. 사람이 자의 일부라서.」
“그리고 하나 더요. 남기는 양을 정해요. 다 긁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 긁는지를요.”
“어디까지요.”
“팬 바닥이 보일 때까지. 구석은 안 긁어요. 구석까지 긁으면 사람마다 더 달라져요.”
「긁는 데까지: 팬 바닥이 보일 때까지. 구석 안 긁음. 9월 13일에 정함.」
수송팀 회신은 오늘도 없었다. 「아직」에 하루가 더 붙었다. 12월 심의 둘은 그대로 벽에 나란히 있었다.
문을 나서면서 은재가 물었다.
“오늘은 뭐 정한 날이에요?”
“10초하고, 사람하고, 어디까지요.”
“셋 다 값이 아니네요.”
“값이 아니에요. 값이 나오기 전에 긋는 거예요.”
그날 네 군데에서 그어진 선은 모두 아직 아무것도 넘지 않은 선이었다.
15밀리를 넘은 날은 없었고, 10초를 세고 읽은 값은 아직 하나도 없었고, 열한 시 반은 생각이 넘지 않은 시각이 아니라 보기를 그만둔 시각이었고, 이름표는 안쪽에 있어서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선은 넘기 전에 그어야 한다. 넘고 나서 그으면 그 선은 넘은 날에 맞춰서 그어진다.
그래서 미리 그은 선은 대개 대충이고, 나중에 그은 선은 대개 정확하다.
그리고 대충인 쪽이 낫다.
값은 자가 만들고, 튐은 선이 만든다. 선이 없으면 매일이 이상하고, 선이 있으면 이상한 날만 이상하다.
그날 그은 선들을 언제 무엇이 넘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다만 넘는 날이 오면, 그날의 값이 아니라 오늘의 선이 그것을 튀었다고 부를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