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공기] 제30화 - 가라앉음

제30화 「가라앉음」

1. 쉰다섯 분

일요일 아침에 시추동으로 들어가면서 재혁은 코어 배럴을 떼는 일부터 했다. 서진이 시키기 전이었다.

586미터에서 멈춰 있는 케이블 끝에 부스러기 통만 달았다. 얼음을 깎을 것이 아무것도 안 달린 드릴이 구멍으로 들어갔다. 오늘 파는 깊이는 0미터였다.

내려가는 데 23분. 열아흐레째 같은 숫자였다.

바닥에서는 55분이 걸렸다. 훑개를 돌려 가라앉은 것을 쓸어 담는 시간이었고, 지난번보다 15분 길었다.

“깊어져서요?”

“깊어져서고, 오늘은 한 번 더 돌렸어.”

올라오는 데 22분. 통을 열자 회색에 가까운 얼음 가루가 젖은 채로 뭉쳐 있었다. 젖은 무게가 7.9킬로그램이었다.

체 위에 받쳐 두고 5분마다 읽었다. 변화가 0.05 아래로 떨어진 것이 52분 만이었고, 마른 무게는 5.2킬로그램이었다.

재혁이 야장을 폈다. 8월 29일 자리에 젖은 11.9, 마른 6.9가 적혀 있었다.

“이번엔 자가 같아요.”

서진이 손을 멈췄다.

“8월 29일에도 항량으로 쟀고, 체도 안 내리고 쟀어요. 그 뒤로 재는 방법은 하나도 안 바꿨어요. 그러니까 이번엔 두 번 잰 거예요. 두 번 재야 변화라고 하셨잖아요.”

재혁이 부족분 줄을 손끝으로 훑으며 더했다. 8월 30일부터 어제까지 아흐레치였다. 0.65, 0.71, 0.70, 0.74, 0.69, 0.72, 0.70, 0.73, 0.71. 합이 6.35킬로그램이었다.

“6.35 중에 5.2가 바닥에서 나왔어요. 0.82예요. 저번엔 9.38 중에 6.9였으니까 0.73이고요.”

“자는 같아.”

“그럼요.”

“잰 물건이 안 같아.”

서진이 야장 위에 손가락을 짚어 가며 셌다. 지난번은 판 날 여드레였고 이번은 아흐레였다. 지난번은 다 닳은 커터로 판 부스러기였고 이번은 8월 30일에 갈아 끼운 날로 판 것이었다. 지난번 바닥은 532미터였고 오늘 바닥은 586미터였다.

“쉰네 미터 깊은 데야. 밑에 것은 결이 굵어. 굵은 걸 깎으면 부스러기도 굵게 나와.”

“그건 알아요. 그래도 자가 같으면 절반은 온 거 아니에요?”

“넷째가 있어.”

서진이 통 안쪽을 손등으로 훑었다. 벽에 얇게 남은 가루가 손등에 묻어 나왔다.

“저번에 훑개가 못 담고 남긴 게 있었어. 그건 어디로 갔어?”

재혁이 잠깐 있다가 대답했다.

”…바닥에 있죠.”

“오늘 그것도 같이 올라왔어.”

야장 위에서 재혁의 연필이 멈췄다.

오늘 담아 올린 5.2킬로그램은 아흐레 동안 가라앉은 것만이 아니었다. 지난번에 못 담은 것이 얼마인지 모르는 채로 그 안에 섞여 있었고, 오늘 못 담은 것은 바닥에 남아 다음번 통에 들어갈 것이었다.

“우리가 재는 게, 다음번에 우리가 잴 것 안에 들어 있는 거예요.”

“그래.”

“그럼 이 값은 어디에 붙여요? 8월 30일부터 9월 7일까지에 붙일 수가 없잖아요.”

“못 붙여. 날짜도 없고 구간도 없어.”

재혁이 8월 29일 자리로 되돌아갔다. 바닥에서 6.9킬로그램이 나왔으니 통 밖으로 새어 나간 것과 벽에 붙은 것을 다 합쳐도 2.5킬로그램을 못 넘는다는 문장이 있었다. 그날 두 사람이 소득이라고 불렀던 뚜껑이었다.

“이거 못 쓰는 거예요?”

“이월분을 안 세고 만든 뚜껑이야.”

“그럼 틀린 거네요.”

“덜 안 거야. 그리고 그건 오늘 알았어.”

재혁이 지우개를 들었다가 놓았다. 8월 29일 줄은 그대로 두고 그 옆 여백에 오늘 날짜를 적었다.

「9월 8일에 봄. 이 뚜껑은 저번에 못 담고 남은 것을 안 세고 만든 것임. 뚜껑 아님. 지우지 않음.」

오늘 줄에는 이렇게 적었다.

「9월 8일. 진척 0미터. 바닥 회수 젖은 7.9 / 마른 5.2. 자는 8월 29일과 같음. 잰 물건은 같지 않음. 왜: 구간 아흐레(저번 여드레) / 새 날(저번 헌 날) / 깊이 586(저번 532) / 저번에 못 담은 것이 섞여 있음. 0.73과 0.82를 잇지 말 것.」

“자가 같아도 안 되는 거였네요.”

“자가 같아야 되는 건 맞아. 그것만으로 되는 게 아닌 거지.”

서진이 통 뚜껑을 닫았다.

“우리는 같은 얼음을 두 번 못 파. 그러니까 우리한테 두 번은 영영 안 와. 그래도 자는 같게 해 놔야 돼. 안 그러면 뭐가 달라서 다른지도 못 세.”

야장을 덮기 전에 재혁이 어제 미리 그어 놓은 줄을 봤다. 「9월 8일 청소일. 시추 없음. 그래서 잴 것 없음. 예정.」 토막 길이 칸도 벌어짐 칸도 어제 만든 가운데와 흩어짐 칸도 적어 놓은 대로 비어 있었다.

재혁이 「예정」에 가로줄을 긋고 옆에 「그대로 됨」이라고 적었다.

“예정만 적고 어떻게 됐는지를 안 적으면요, 예정이 맞았는지가 안 남아요.”

2. 일곱째 칸

341일째였다. 첫 절단까지 24일이 남아 있었고, 2호기 한 대로 방을 도린 지 열사흘째였다. 온도계는 영하 30.0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어제 벽에 붙인 아홉째 장에는 8월 26일부터의 아홉 줄이 옮겨져 있었다. 은재가 열째 줄을 채웠다. 9월 7일 자리였다.

쌓은 시간 13시간 26분. 바깥 온도 26.9도. 문 0회. 반출입 없음. 습도 칸에는 「안 잼」.

“올라갔어요.”

여섯 번 내리 내려오기만 하던 값이었다. 13시간 41분에서 38, 33, 29, 24, 19, 11까지 왔는데 오늘 다시 26분이 되었다.

“착상이 진행돼서요?”

“어제 우리가 앞판을 3분 40초 열었어요.”

”…아.”

“둘 중에 뭐 때문인지 알 수 있어요?”

“못 알아요.”

경옥이 표를 들여다봤다. 여섯 칸 어디에도 어제 앞판을 열었다는 사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문 칸은 방문이었고 반출입 칸은 통이었다.

“어제 우리가 뭐라고 적었죠?”

“이 줄은 우리가 건드린 줄이라고요.”

“그건 옆에 연필로 쓴 거예요. 칸이 아니에요.”

경옥이 자를 대고 표 오른쪽에 세로줄을 그었다. 일곱째 칸이었고, 머리에 「우리가 한 것」이라고 적었다.

9월 7일 줄에 「앞판 3분 40초 엶」을 넣었다. 9월 6일 줄에는 「없음」을 넣었다. 그날은 두 사람 다 아무것도 안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앞의 여덟 줄에서 손이 멈췄다.

“26일에 더미 통 자리 바꿨고, 30일에 0점 검교정 했고. 기억나잖아요.”

“적을 건데요.”

경옥이 그 여덟 칸에 작게 별표를 붙이고 표 아래에 뜻을 적었다.

「기억으로 적음. 그날 적은 것 아님.」

“틀렸을 수도 있고, 빠졌을 수도 있고요. 기억으로 적은 거랑 그날 적은 걸 같은 글씨로 두면 나중에 못 가려요.”

은재가 어제 앞판을 열고 본 것을 꺼냈다. 코일 여섯 열 중 첫 열만 4밀리미터가 앉아 있었고 나머지 다섯 열은 1밀리미터도 안 됐다.

“제상 주기를 줄여야 하는 거 아니에요? 6시간마다 하는데, 첫 열이 그렇게 막히면요.”

“오늘 줄이면요.”

“그럼 첫 열이 덜 앉겠죠.”

“그리고 이 방은 오늘부터 예전 방이 아니에요.”

은재가 입을 다물었다.

“지금 쌓는 시간이 왜 오르내리는지 우리는 아직 몰라요. 여기서 주기를 바꾸면 앞의 열 줄하고 뒤의 줄이 다른 방 값이 돼요. 그럼 오늘까지 센 열흘이 없어져요.”

“그럼 그냥 둬요?”

“조건을 먼저 적어요.”

경옥이 서식 뒤쪽에 한 줄을 썼다.

「다음에 앞판을 열었을 때 첫 열이 6밀리를 넘으면 제상 주기를 6시간에서 5시간으로 줄인다. 9월 8일에 정함.」

“이렇게 적어 두면요?”

“그때 가서 값을 보고 정하는 게 아니게 돼요.”

경옥이 자를 다시 대고 여덟째 칸을 그었다. 머리에 「제상 주기」라고 적고, 열 줄 전부에 「6시간」을 채워 넣었다.

“이건 안 바꿨는데도 적어요?”

“안 바꾼 것도 적어야 나중에 바꾼 날이 보여요.”

경옥이 연필을 놓았다.

“칸에 있는 걸 바꾸면 표가 안 끊겨요. 칸에 없는 걸 바꾸면 끊겨요. 그러니까 바꾸기 전에 칸부터 만드는 거예요.”

3. 누가 한 번

셋째 릴의 마지막 구간을 옮기고 나서 정한은 넷째 릴을 꺼냈다. 마감으로 잡아 둔 날에서 여드레가 지나 있었다.

플라스틱 통을 열자마자 손이 멈췄다.

테이프가 앞쪽으로 감겨 있었다. 처음이 바깥에 나와 있는 상태였다. 릴은 끝까지 돌린 채로, 그러니까 마지막이 바깥에 나오게 감아서 넣는다. 그래야 층 사이로 배어드는 소리가 본소리 뒤로 가서 묻힌다. 1983년 방송국도 그렇게 넣었고, 이 릴의 앞 세 통도 그렇게 와 있었다.

“거꾸로 왔네.”

층 옆면을 갓등에 비스듬히 대 보았다. 톱니처럼 들쭉날쭉했다. 장력을 고르게 걸고 천천히 감으면 옆면이 종이 끝처럼 반듯해진다. 이렇게 되는 것은 빨리 감았다는 뜻이었다.

정한이 종이를 한 장 꺼내 적었다.

「이 릴은 누가 한 번 들었음. 헤드가 바깥으로 감겨 있음. 층 옆면 고르지 않음. 언제인지 모름. 누구인지 모름. 무엇을 했는지 모름.」

상한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이었다. 상한 것은 어디가 어떻게 상했는지 알면 방법이 있고, 모르는 것에는 없다.

오후에 의뢰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제 보낸 다섯째 장 이야기였다. 「우리가 한 것」이라고 머리를 붙이고 무엇을, 왜, 언제, 몇 번, 되돌릴 수 있는지 다섯 칸을 만들어 놓은 종이였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손을 대셨다는 겁니까?”

“예. 장력을 낮춰서 한 번 다시 감았습니다.”

“그런 것까지 안 적으셔도 되는 거 아닙니까? 저는 그냥 소리만 있으면 되는데요.”

“안 적으면 안 댄 게 됩니다.”

수화기 저쪽이 조용했다.

“지금 제 앞에 있는 릴이 아버님 것 중 넷째 것입니다. 이건 누가 한 번 들었습니다. 그 사람이 언제 뭘 했는지가 아무 데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릴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를 모릅니다.”

”…그럼 그것도 소리는 나옵니까?”

“나옵니다. 나오는 거하고 믿는 거는 다릅니다.”

의뢰인이 한참 있다가 물었다.

“아버지가 들으셨을까요.”

“모릅니다.”

“선생님 짐작으로는요.”

“그건 제가 적을 수 있는 칸이 아닙니다.”

전화를 끊고 정한은 다섯째 장 옆에 한 줄을 더 썼다.

「의뢰인이 물음. 1983년 뒤에 누가 재생한 적이 있는지. 답: 모름. 들은 자국은 있음. 누구인지는 없음.」

물어본 것을 적어 두는 칸은 이 종이에 원래 없었다. 오늘 생겼다.

저녁에 30분을 채웠다. 지워진 세 글자 사진을 들여다보는 일이었고 여드레째였다. 여드레 내리 새로 읽은 것이 없었다.

「9월 8일. 30분. 새로 읽은 것 없음.」

그 아래에 오늘은 한 줄이 더 붙었다.

「열흘째까지 새로 읽은 것이 없으면 매일 30분을 그만두고 열흘에 한 번 30분으로 바꾼다. 9월 8일에 정함.」

정한이 그 줄을 다시 읽고 끝에 덧붙였다.

「안 본다가 아니라 덜 본다. 안 본다고 적으면 다음 사람이 안 봐도 되는 줄 안다.」

4. 제비

일요일 아침에 하람은 어머니 집 부엌에서 종이를 다섯 조각으로 찢었다. 최영숙, 실 양, 실패, 바늘, 오늘 또렷하셨던 것. 하나씩 적어서 접어 컵에 넣었다.

어제는 오늘 길게 적을 줄을 하람이 정했다. 실패로 정했고, 실패 줄은 처음으로 길어졌다. 밤에 자다가 그게 마음에 걸렸다.

내가 정하면 내가 궁금한 게 길어진다.

컵에서 하나를 뽑았다. 바늘이었다.

수첩 앞장에 오늘 순서를 먼저 적었다. 셋째 날이었으므로 최영숙, 실 양, 실패, 바늘, 오늘 또렷하셨던 것 순이었다. 그 옆에 작게 「길게 적을 줄: 바늘. 뽑음.」이라고 썼다.

최영숙 씨의 종이는 스물한 번째였다.

「일요일. 6시 45분 문 한 번. 계단 참에서 잠깐 섰음. 손잡이 안 잡으셨음. / 비 옴 / 새것 / 슬리퍼 / 우산 들고 계셨음.」

손잡이를 잡으신 날이 열이틀 연속이었다. 오늘 끊겼다.

마지막 항목은 부탁한 다섯 가지에 없는 것이었다. 최영숙 씨가 덧붙여 준 것이었고, 판단이 아니라 본 것이었다.

수첩에 이렇게 적었다.

「9월 8일. 손잡이 안 잡으셨음. 열이틀에서 끊김. 단, 우산을 들고 계셨음. 손이 하나 비어 있어야 잡는다는 것을 여태 안 적었음.」

그 아래에 「손에 든 것」 칸을 하나 더 그었다. 앞의 스무 장에는 그 칸이 없었으므로 「안 잼」이라고 소급해 채웠다. 없었다고 적으면 스무 날 동안 손이 비어 있었다는 말이 된다.

「열이틀 연속이 끊긴 게 아님. 열이틀 동안 손에 뭐가 있었는지를 안 적었던 것임.」

실 양은 열흘째였다. 흰 실이 조금 줄었고 검정은 그대로였다.

실패는 열한 개, 자리도 색도 감긴 양도 어제와 같았다. 어제 길게 적어 놓은 덕분에 오늘 맞댈 것이 있었다.

바늘 갑을 열었다.

네 개였다.

어제는 다섯 개였다. 11호가 넷이고 14호가 하나였다. 오늘은 11호가 셋이 갑 안에 있고, 하나는 핀쿠션에 꽂혀 있었다. 어제와 같은 자리였다. 14호가 없었다.

미싱 바늘대를 봤다. 반짇고리를 다 쏟았다. 무릎을 대고 미싱 밑을 봤다. 없었다.

하람이 갑 안쪽을 갓등 밑으로 가져갔다. 바늘을 꽂아 두는 얇은 스펀지에 자국이 다섯 개 있었다. 눌린 자리가 다섯이었고 꽂혀 있는 것은 셋이었다.

자국은 남아 있고 물건이 없었다.

그 자국이 어제 것인지 훨씬 오래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스펀지는 눌리면 잘 안 펴진다.

「자국 다섯. 바늘 넷. 갑 안 셋, 핀쿠션 하나. 14호 없음. 자국이 어제 것인지 오래된 것인지 모름.」

한 줄 띄우고 다시 적었다.

「없어짐 / 못 찾음. 두 칸으로 나눌 것. 오늘은 못 찾음 칸에 적음.」

부엌에서 어머니가 비 오는 날 좌판에 비닐 씌우던 이야기를 했다. 네 귀를 어떻게 눌러야 바람이 들어가도 안 벗겨지는지까지 손짓을 섞어 말했다.

“오늘 무슨 요일이야?”

”…낮이지.”

수첩 맨 아래 줄은 오늘도 짧았다. 뽑기에서 안 나왔기 때문이었다.

하람은 그 짧은 줄 옆에 작게 적었다.

「짧음. 오늘 뽑힌 줄이 아니어서 짧음. 어머니가 짧아서가 아님.」

5. 1번 자리

청소일은 정비일이었다. 오후에 두 사람은 드릴 머리를 작업대에 올리고 커터 세 매를 들여다봤다.

8월 30일에 갈아 끼운 날이었고, 떼기 전에 각인해 둔 1, 2, 3이 자리마다 붙어 있었다. 사흘 전에 잰 값은 0.14, 0.09, 0.11밀리미터. 그때가 574미터였다.

오늘 잰 값은 0.19, 0.13, 0.15였다. 586미터였다.

“1번이 제일 무디네요. 저번에도 1번이었어요.”

“그래.”

“두 점이라 선은 못 그어요.”

“값은 그렇지.”

서진이 세 자리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순서는?”

재혁이 야장을 봤다. 두 번 다 1, 3, 2 순이었다.

”…순서는 두 번 다 같아요.”

“두 점으로 선은 못 그어도 순서는 두 번 같았다고 적을 수는 있어. 그건 다른 말이야.”

재혁이 그렇게 적고 나서 자를 들고 드릴 머리 쪽으로 갔다. 한참 쟀다.

“1번이 제일 바깥에 있어요. 중심에서 5.8센티, 3번이 5.0, 2번이 4.1이요.”

“한 바퀴 돌면 얼마씩 가?”

재혁이 계산했다. 36.4센티미터, 31.4, 25.8이었다.

“…1번이 2번보다 한 바퀴에 10센티 더 가요.”

“그럼 나눠 봐.”

0.19를 36.4로, 0.13을 25.8로, 0.15를 31.4로 나눴다. 세 값이 거의 붙었다.

재혁이 연필 끝으로 그 자리를 두드렸다.

“1번이 무딘 게 아니라, 1번이 멀리 갔던 거예요.”

“그래.”

“그럼 교체 기준을 1번으로 잡을 필요가 없네요. 세 개가 똑같이 닳는 건데요.”

“기준은 1번으로 잡아.”

“방금 설명이 됐잖아요.”

“이유가 설명된 거지.”

서진이 커터 하나를 들어 날 끝을 등 쪽으로 비춰 봤다.

“가루를 곱게 만드는 건 세 개 평균이 아니야. 제일 무딘 한 매야. 오늘도 제일 무딘 건 1번이고. 왜 그런지를 알았다고 그게 없어지는 건 아니야.”

야장에 두 줄이 들어갔다.

「마모 차이는 자리 탓이 아니라 거리 탓으로 보임. 한 바퀴에 가는 거리가 1번 36.4 / 3번 31.4 / 2번 25.8센티.」

「그래도 교체는 1번 자리를 보고 함. 이유 칸과 기준 칸은 다름.」

1번이 0.19밀리미터였다. 첫 벌은 다 쓰고 났을 때 2.4밀리미터였다. 오늘 갈 이유가 없었다.

「9월 8일. 정비일. 커터 안 바꿈. 왜: 1번 0.19밀리.」

안 한 일을 적는 데에는 이제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어제 토막 끝 사진 규칙 넷을 정해 놨는데 오늘은 토막이 하나도 안 나왔다.

“오늘은 사진이 없는데요. 안 찍은 거예요, 없는 거예요?”

“찍을 게 없었던 거지. 그것도 다른 말이야.”

「9월 8일. 토막 끝 사진 없음. 안 찍은 것이 아니라 찍을 토막이 없었음. 청소일임.」

6. 못 묻는 날

저녁에 은재가 서류철을 폈다. 3월 14일 인수 작업일에 사람 하나가 비는 일로 어제 세 군데에 물어 놓았다.

“아무 데도 답이 없어요.”

“오늘 일요일이에요. 어제도 토요일이었고요.”

”…아.”

“오늘은 뭐라고 적어요? 아직이 이틀째라고요?”

“이틀째가 아니에요.”

경옥이 연필을 들었다.

「9월 8일. 아무 데도 안 물어봄. 토요일과 일요일임. 「아직」이 아니라 「못 물음」임. 기다린 날에 넣지 말 것.」

“차이가 커요?”

“열흘 기다렸다고 적어 놓으면 나중 사람이 열흘 동안 저쪽이 안 답했다고 읽어요. 그중 사흘이 저쪽이 일을 안 하는 날이면 답을 안 한 게 아니에요. 기다린 날을 셀 때는 저쪽이 일할 수 있었던 날만 세요.”

습도계 신청서는 서류철 맨 앞에 그대로 있었다. 겉장의 「9월 9일 월요일 아침에 냄」도 안 고쳤다. 표의 습도 칸에는 관측소 값 81퍼센트가 연필로, 그 옆에 「우리 값 아님. 실외임.」이 붙어 있었다.

은재가 벽으로 가서 오늘 그은 일곱째 칸과 여덟째 칸을 봤다. 종이 오른쪽 끝이 좁아서 마지막 칸이 손가락 하나 폭이었다.

“이거 좁은데요. 좁으면 짧게 적게 돼요.”

경옥이 서랍에서 큰 종이를 꺼냈다.

“옮겨 그어요. 열째 장으로. 칸 넓이가 값을 정하면 그건 종이가 아니라 자예요.”

두 사람이 여덟 칸을 다 넓게 잡고 두 줄을 옮겨 적었다. 아홉째 장은 버리지 않고 뒤에 붙여 두었다.

「9월 8일에 열째 장으로 옮김. 값은 같음. 칸 넓이만 다름.」

통은 1,240개였다. 3월에 자리가 넉 통 모자랐고, 옆 연구동 넉 통은 9월 28일까지 보류였다.

“오늘은 뭐 한 날이에요?”

경옥이 장갑을 벗었다.

“어제 우리가 한 걸 적을 자리를 만든 날이에요.”

“그건 어제 일이잖아요.”

“자리는 늘 늦게 생겨요.”

경옥이 벽의 열째 장을 한 번 보고 문 쪽으로 걸었다.

“늦게 생겨도 만들어 놓으면, 그다음부터는 안 늦어요.”


이날 네 군데에서 같은 일이 있었다.

한 사람은 자가 같아졌는데도 두 번 잰 것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잰 물건까지 같아야 했고, 같은 얼음을 두 번 팔 수 없는 곳에서 그것은 영영 오지 않을 조건이었다.

한 사람은 바꾸고 싶은 것을 오늘 안 바꾸고 바꿀 조건을 대신 적었다. 그리고 바꾸기 전에 칸부터 만들었다. 칸에 있는 것을 바꾸면 표가 안 끊기고, 칸에 없는 것을 바꾸면 표가 끊긴다.

한 사람은 누가 이미 손을 댄 물건을 앞에 놓고 자기가 손을 댄 종이를 썼다. 손을 댄 종이가 없는 물건이 어떻게 되는지를 그 릴이 보여 주고 있었다.

한 사람은 오늘 길게 적을 줄을 제비로 뽑았다. 자기가 정하면 자기가 궁금한 것이 길어졌다.

가라앉는 것은 하루에는 안 보인다. 여러 날이 지나고 바닥을 훑어야 겨우 올라오고, 올라온 것에는 날짜가 없다. 그 안에는 지난번에 못 담은 것이 섞여 있다. 우리가 재는 것이 다음번에 잴 것 안에 들어 있다.

그러니 훑어 올린 무게는 그 열흘의 무게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여태 못 담아 온 것의 무게다.

내일은 다시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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