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공기] 제28화 - 기움

제28화 「기움」
1. 580미터
내려가는 데 23분, 올라오는 데 22분이었다. 열이레째 같은 숫자였다.
574미터에서 577미터, 577미터에서 580미터. 두 토막이었다. 철수까지 서른다섯 날이 남아 있었고, 다음 청소일까지는 이틀이었다.
재혁이 첫 토막을 처리대에 눕히고 줄자를 폈다. 2.96미터. 둘째 토막은 2.94미터.
야장에는 날짜별로 칸이 그어져 있었다. 8월 31일부터 아래로 2.96과 2.98, 2.97과 2.94, 2.95와 2.97… 여섯 줄이었다. 그 아래에 오늘 것을 적었다.
일곱째 날이었다.
“케이블은 42미터 나갔어요.”
“코어는.”
“41.38이요.”
“차는.”
“0.62요. 어제까지가 0.52였으니까 오늘 0.10.”
서진이 장갑 낀 손으로 야장 옆줄을 짚었다. 0.06, 0.09, 0.08, 0.11, 0.10, 0.08, 0.10.
“일곱 개예요.”
“그래서.”
”…방향은 말해요. 크기는 아직 못 해요.”
“폭은.”
“그대로요. 제일 작은 게 0.06, 제일 큰 게 0.11. 폭이 0.05.”
“점이 하나 늘었는데 폭은 그대로야. 그럼 오늘 뭐가 나아졌어.”
”…아무것도요.”
“그럼 오늘은 뭘 한 날이야.”
“적은 날이요.”
“그래. 그것도 한 거야.”
부스러기 저울은 마른 무게로 15.23과 15.24였다. 계산치 31.2에서 30.47을 빼면 0.73. 여덟 점째였다. 9월 9일에 열흘 치로 한 번에 보기로 되어 있었고, 그날까지는 아무 말도 안 하기로 되어 있었다.
헛돎 칸에는 여섯째 날 자리가 비어 있다가, 재혁이 「없음」이라고 적었다.
입도는 넷째 날이었다. 두 종으로 23과 24, 세 종으로 23과 33과 44. 병행에 든 시간은 26분이었다. 어제는 31분이었다. 재혁이 별지에 적었다.
「했음. 26분.」
그 옆에 서진이 한 줄을 더 그었다.
「어제만큼 안 바쁘기도 했음.」
무전으로 인천 회신이 왔다. 둘째 벌 커터 날 세 매의 실측값이었다. 484미터에서 532미터까지 48미터를 쓴 벌이었다.
1.1밀리, 0.7밀리, 0.9밀리.
재혁이 그 값을 두 번 읽었다.
“48미터에 1.1인데, 우리 건 42미터에 0.11이에요. 미터는 비슷한데 값이 열 배예요.”
“그 벌은 끝까지 쓴 벌이고 우리 건 아직 중간이야. 닳는 건 끝에 몰려.”
“그건 알겠는데요. 그래도 열 배는…”
“하나 더 있어.”
서진이 처리대 위 코어를 손등으로 두드렸다.
“그 벌은 484부터 532까지야. 우리 건 532부터고. 미터 수는 비슷한데 같은 미터가 아니야.”
“얼음이 달라요?”
“깊어지면 알갱이가 커져. 위에서는 잘고 아래로 갈수록 큰 알갱이가 작은 걸 먹어. 그래서 밑에 것은 결이 굵어. 굵은 걸 깎으면 부스러기도 굵게 나오고, 굵은 게 날 밑으로 지나가면 날이 받는 힘이 달라.”
“그럼 입도 표하고 마모 표가 이어지는 거 아니에요?”
“이어질 것 같지.”
”…근데요.”
“두 점이야. 두 점으로 선을 그으면 그 선은 우리가 만든 거야.”
재혁이 야장 여백에 적었다.
「48미터 1.1 / 42미터 0.11. 미터가 같아도 같은 미터가 아님. 깊이 구간이 다름. 이어질 것 같지만 두 점임.」
2. 여덟째 줄
339일째였다. 절단까지 스물엿새가 남아 있었고, 냉동기는 열하루째 2호 한 대로 돌고 있었다. 방은 영하 30.0도였다.
「쌓는 날」 종이에 여덟째 줄이 채워졌다. 9월 5일 것이었다.
13시간 19분.
은재가 그 줄을 적고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위로 앞줄들이 있었다. 13시간 26분, 33분, 41분, 38분, 33분, 29분, 24분. 그리고 오늘 19분.
“내려갔어요.”
“네.”
“어제 정한 게 여덟째 줄하고 아홉째 줄이 둘 다 내려가면 본다는 거였어요.”
“네.”
은재가 종이를 한참 봤다.
”…아홉째 줄은 내일이에요.”
“네.”
“오늘은 안 봐요?”
“네.”
“근데 이미 반은 맞았잖아요.”
경옥이 은재 쪽을 봤다.
“반이 맞았다는 말이 제일 어려운 말이에요.”
“왜요.”
“어제 우리가 정한 건 둘 다 내려가면 본다는 거였어요. 하나 내려갔을 때 어떻게 한다는 건 안 정했어요. 지금 정하면 그건 값을 보고 나서 정하는 거예요.”
은재가 입을 다물었다.
“어제 예순넷에 하나 지우려던 거 기억나요?”
”…네.”
“그게 이거예요. 값을 보고 나서 세는 것.”
“그럼 오늘은 뭘 해요.”
“적고 나와요. 내일 아홉째 줄 적고, 그때 보기로 한 대로 봐요.”
은재가 여덟째 줄 옆에 좁게 적었다.
「9월 6일. 여덟째 줄 내려감. 안 봄. 9월 5일에 둘 다 내려가면 보기로 정했음. 하나는 둘이 아님.」
바깥 온도 칸에는 27.6도가 들어갔다. 29.1, 29.4, 30.0, 28.6, 29.0, 28.4, 28.1, 27.6.
“또 내려갔어요. 방이 오래 버티는 게 바깥이 시원해져서인 것 같은데요.”
“그렇게 보이죠.”
경옥이 성에가 낀 증발기 쪽으로 갔다. 알루미늄 날개 사이에 흰 것이 얇게 앉아 있었다.
“저기 붙는 게 뭐예요.”
”…얼음이요.”
“어디서 온 얼음이에요.”
“공기 중 물이요.”
“우리 표에 물이 어디 적혀 있어요.”
은재가 종이를 봤다. 날짜, 시간, 바깥 온도, 문 연 횟수, 반출입. 다섯 칸이었다.
”…없어요.”
“우리는 온도만 적었어요. 그런데 저기 붙는 건 온도가 시키는 게 아니라 습기가 시켜요. 온도가 내려가면 공기가 물을 덜 안고 다니니까 같이 내려가긴 하는데, 같이 내려가는 거하고 그게 시킨 거하고는 달라요.”
“그럼 지금까지 표가…”
“틀린 건 아니에요. 안 잰 게 있는 표예요.”
“그거 어떻게 적어요.”
“칸을 하나 더 그으세요. 그리고 여덟 줄 다 「안 잼」이라고 쓰세요.”
“「없음」이 아니라요?”
“「없음」이면 습기가 없었다는 말이 돼요.”
은재가 자를 대고 세로줄을 하나 더 그었다. 안 잼, 안 잼, 안 잼… 여덟 번을 썼다.
“습도계 신청은 월요일에 해요. 오는 데 며칠 걸릴 거예요.”
“그때까지는요.”
“관측소 값을 빌려다 적어 두세요. 단, 옆에 「우리 값 아님」이라고 쓰고요. 그건 우리 마당에서 잰 게 아니에요.”
3. 가장자리
이관 마감에서 엿새가 지나 있었다. 하루 30분 넘게 판독을 붙들지 않기로 한 규칙도 엿새째였다.
정한은 셋째 본을 걸었다. 앞 3분의 고역이 죽어 있는 릴이었다. 어제 그 자리를 「손대지 않음」이라고 적어 두었으니 오늘은 옮기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15분쯤에서 왼쪽 계기가 혼자 내려앉았다.
되감아 다시 걸었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만큼 내려앉았다. 오른쪽은 멀쩡했다.
정한은 테이프를 멈추고 릴을 빼서 갓등 아래로 가져갔다. 옆면을 낮은 각도로 봤다.
감긴 층이 한쪽으로 밀려 있었다. 원기둥이 아니라 아주 완만하게 기운 원뿔에 가까웠다. 밀려 나온 쪽 가장자리가 플랜지 안쪽 면에 닿았고, 닿은 자리에 실같이 가는 주름이 잡혀 있었다.
물러진 테이프였다. 물러진 것은 눌리면 눌린 대로 있는다.
수화기를 들었다. 대구 번호였다.
“한동규 씨. 하프트랙인데 한쪽 방향만 15분부터 레벨이 내려갑니다. 반대쪽은 안 그럽니다.”
“팩이 기울었습니까.”
“기울었습니다. 가장자리가 플랜지에 닿아서 접혔습니다.”
“그러면 접힌 쪽이 위 트랙 바깥일 겁니다. 그쪽이 한 방향이고요.”
“예.”
“펴집니까.”
”…한 번은 됩니다.”
정한은 장력을 낮춰 다시 감았다. 라이브러리 와인드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천천히, 한 번만. 물러진 것은 다시 감는 일 자체가 이미 한 번 쓰는 것이었다.
다시 걸었다. 15분 자리가 아까보다 덜 내려앉았다. 덜이었다. 원래대로는 아니었다.
“한 번 폈는데 반만 왔습니다.”
“두 번 하시게요?”
“아니요.”
“왜요.”
“두 번째는 덜 옵니다. 그리고 편 자리는 편 자리로 남습니다.”
정한은 종이에 적었다.
「15:00 이후 한 방향 레벨 저하. 원인은 팩 기울기로 인한 가장자리 접힘으로 보임. 장력 낮춰 1회 재권취함. 저하 폭 줄었으나 회복은 아님. 재권취는 여기까지만 함.」
그 아래에 한 줄 더 적었다.
「이 릴은 이제 한 번 편 릴임. 처음 상태가 아님.」
의뢰인에게 갈 넉 장짜리 종이 중 둘째 장을 꺼냈다. 못 본 것을 적는 장이었다. 거기에 4시 20분 앞뒤로 히스 바닥 높이가 다르다는 것을 옮겨 적고, 그 밑에 「같은 날 같은 기계가 아닐 수 있음. 확정 아님」이라고 썼다.
첫째 장이 아니라 둘째 장이었다.
잰 것은 잰 것이고, 못 본 것은 못 본 것이었다.
작업대 끝에 봉투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어제 찍은 첫 글자 세로획 사진이 들어 있었다. 봉투 겉면에는 날짜와 각도와 조명 방향만 적혀 있었고, 무슨 글자인지는 아무 데도 적혀 있지 않았다.
정한은 봉투를 서랍이 아니라 상자에 넣었다. 서랍은 자주 여는 곳이었다. 상자 뚜껑에 짧게 썼다.
「2027년 3월에 같은 각도로 한 장 더. 그때까지 꺼내지 말 것.」
4. 순서
스무여드레째였다. 금요일이었다.
보건소는 아홉 시 반에 열었고, 두 사람은 아홉 시 십오 분에 갔다. 주간보호 등록에는 건강진단서가 필요했고, 결핵 검사가 그 안에 있었다.
미강은 신발을 세 번 고쳐 신었다. 집이 아닌 곳에서는 늘 그랬다.
접수대에서 간호사가 물었다.
“성함이요?”
“송미강이요.”
“생년월일 말씀해 주시겠어요?”
“오삼년 삼월 이십일일.”
“주소는요?”
미강이 주소를 다 말했다. 번지까지 말했다.
하람은 그 옆에 서 있었다. 어제 저녁에 미강은 하람에게 회사에 잘 다니냐고 물었었다.
돌아오는 길에 하람은 수첩을 꺼냈다.
「9월 6일. 보건소. 성함, 생년월일, 주소 다 대답하심. 번지까지.」
거기서 한 줄을 띄우고 다시 적었다.
「단, 물어본 것이 다 오래된 것이었음. 오늘 날짜는 안 물어봤음. 이것으로 좋아졌다고 적으면 안 됨.」
미강이 창밖을 보다가 옛날에 저기가 방앗간이었다고 했다.
하람은 그것도 적었다. 적으면서, 방앗간이 헐린 게 언제였는지는 적지 않았다.
집에 와서 수첩을 폈을 때 하람은 한 가지를 알아챘다.
수첩 왼쪽 위부터 순서가 늘 같았다. 실 양, 실패 개수와 자리, 바늘 수, 오늘 또렷하셨던 것, 그리고 최영숙 종이. 다섯 줄이 처음부터 같은 순서였다.
그리고 바쁜 날 빠지는 것은 늘 아래쪽 두 줄이었다.
하람은 지난 장들을 뒤로 넘겨 봤다. 실 양은 거의 다 있었다. 최영숙 종이는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9월 6일. 수첩 순서가 늘 같았음. 그래서 빠지는 자리도 늘 같았음. 아래쪽이 빠짐.」
「오늘부터 순서를 돌림. 매일 맨 위를 하나씩 내림. 오늘 순서: 바늘 - 또렷하셨던 것 - 최영숙 - 실 양 - 실패.」
「순서를 바꿨다는 것도 적어야 함. 안 적으면 나중에 왜 줄이 뒤바뀌었는지 모름.」
바늘은 둘째 값이었다. 반짇고리 종이갑에 다섯 개. 어제와 같았다.
다만 다섯 개 중 하나가 갑에 없고 핀쿠션에 꽂혀 있었다.
「9월 6일. 바늘 다섯. 어제와 수 같음. 하나가 핀쿠션에 있음. 어제는 다섯 다 갑에 있었음. 수는 같고 자리가 다름.」
최영숙 종이는 19차였다. 일곱 시 오 분에 문 한 번, 계단 참, 손잡이 잡으셨음, 비 안 옴, 새것, 슬리퍼, 없음.
손잡이는 열하루째였다. 시각은 열하루 내내 6시 40분과 7시 40분 사이를 오르내리기만 했다.
뒷장 22줄째에 하람이 적었다.
「손잡이 열하루째. 시각은 오르내림. 손잡이는 안 오르내림. 두 칸이 서로 다르게 움직임. 다르게 움직인다는 것도 값임.」
실 양은 여드레째였다. 흰 실이 조금 줄었고 검정은 그대로였다.
실패는 열한 개, 자리 그대로. 부엌 0, 미싱 5, 반짇고리 6.
하람은 그 장 맨 위에 작게 「순서 바뀜」이라고 적었다.
냉장고에는 아직 아무것도 안 붙어 있었다. 종이는 써 놨다. 붙이는 건 9월 14일 저녁이었다.
5. 반대쪽
오후에 서진이 야장을 들고 시추동 안쪽으로 들어왔다. 케이블 드럼 옆이었다.
“아침에 그거 다시 보자.”
“0.62요?”
“응. 어디서 나오는 건지 후보를 좀 세어 보자.”
재혁이 손가락을 폈다.
“하나, 구멍이 기울었다. 둘, 케이블이 늘어난다. 셋, 코어가 어디서 없어진다. 넷, 재는 게 틀렸다.”
“넷이네. 지울 수 있는 것부터 지우자.”
서진이 야장 뒷장에 삼각형을 하나 그렸다.
“구멍이 1도 기울면 케이블은 얼마나 더 나갈 것 같아.”
”…모르겠어요.”
“만분의 일오야. 6미터에 1밀리도 안 돼.”
“그거밖에 안 돼요?”
“기울기는 처음엔 거의 안 먹어. 그러니까 얕게 기운 건 세어 봐야 안 보여.”
“그럼 많이 기울면요.”
“많이 기울어도 안 보여. 기울면 케이블만 비스듬히 가는 게 아니야. 코어도 같은 구멍에서 비스듬히 나와. 같이 길어져.”
”…똑같이 먹네요.”
“똑같이 먹으면 차에는 안 남아.”
재혁이 야장을 내렸다.
“그럼 애초에 후보가 아니었네요.”
“곧게 기운 거면 그래. 휘어 있으면 조금은 들어와.”
“휘면 왜 달라져요?”
“케이블은 팽팽해. 휜 구멍 안에서 안쪽으로 질러가. 구멍은 휜 대로 돌아가고. 그러면 케이블이 구멍보다 짧아져.”
”…짧아져요?”
“응.”
재혁이 야장을 다시 폈다. 42.00과 41.38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우리 건 케이블이 긴 쪽인데요.”
“그래. 방향이 반대야.”
“그러면요.”
“방향이 반대면 원인이 아니야. 크기는 안 세도 돼.”
재혁이 첫 줄에 줄을 그었다.
“둘째는요.”
“케이블은 늘어나. 무거운 게 매달려 있으니까. 지금 574미터면 20센티 넘게 늘어나 있을 거야.”
“그럼 그게 답 아니에요?”
“이레 전엔 532미터였어.”
”…아.”
“532미터일 때도 이미 늘어나 있었어. 우리가 세는 건 그 이레 동안 새로 벌어진 거야. 42미터 더 깊어진 만큼만 더 늘어나. 그게 2센티쯤이야.”
“우리가 보는 건 62센티고요.”
“서른 배 차이야.”
재혁이 둘째 줄에도 줄을 그었다. 그러다 손을 멈췄다.
“근데요. 케이블 늘어나는 거는 처음부터 계산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그냥 계산해서 빼면 되는 거 아니에요?”
“뺄 수 있어. 빼면 깊이가 더 맞아져.”
“그럼 왜 안 빼요.”
“빼면 그 칸은 잰 값이 아니라 계산한 값이 돼. 나중 사람이 우리 표를 볼 때 그게 잰 건지 계산한 건지 몰라.”
”…두 칸을 만들어요?”
“그래. 잰 것 한 칸, 계산해서 뺀 것 한 칸. 계산에 쓴 식도 옆에 적어. 나중에 그 식이 틀렸다고 밝혀지면 잰 칸은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하니까.”
재혁은 오후 내내 야장 뒤쪽에 새 표를 그었다. 잰 케이블 길이, 계산한 늘어남, 뺀 값, 그리고 식.
“이제 셋하고 넷이 남았어요.”
“응.”
“어느 쪽이에요?”
“몰라.”
“둘 중 하나잖아요.”
서진이 처리대 위 토막 끝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끊긴 자리는 매끈하지 않았다. 얇은 조각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이가 나가 있었다.
“토막 끝은 깨끗하게 안 끊어져. 매번 몇 센티씩은 부스러기로 가. 6미터에 10센티면 한 토막에 5센티야. 나올 만한 숫자야.”
“그럼 셋이네요.”
“나올 만한 숫자라는 건 답이 아니야. 재 봐야 알아.”
“어떻게 재요?”
“오늘부터 토막 끝을 찍어. 인양할 때마다 두 장씩. 자를 대고. 그러면 열흘쯤 뒤에는 끝이 얼마나 나가는지 눈으로 세어 볼 수 있어.”
재혁이 셋째 줄과 넷째 줄에는 줄을 긋지 않았다. 그 아래에 적었다.
「9월 6일. 후보 넷 중 둘 지움. 구멍 기울기(케이블과 코어에 똑같이 먹어 차에 안 남음. 휘어 있으면 케이블이 짧아지는 쪽이라 방향이 반대임), 케이블 늘어남(이레치로는 2센티, 우리가 보는 건 62센티). 남은 것 둘: 코어 쪽 손실, 재는 방법.」
그리고 마지막 줄.
「지운 게 둘이고 남은 게 둘임. 남았다고 맞은 건 아님. 우리가 아직 못 떠올린 다섯째가 있을 수 있음.」
서진이 그 줄을 읽고 아무 말도 안 했다. 야장을 덮고 밖으로 나갔다.
밖은 밝았다. 밤 열 시가 되어도 밝을 것이었다.
6. 가을 표
저녁에 경옥이 새 종이를 꺼냈다. 어제 「가을 표」라고만 써 놓은 종이였다.
“조건을 다시 잡을까요.”
“어떻게요?”
“두 가지 길이 있어요. 좁게 잡거나, 넓게 잡거나.”
“좁게 잡으면요.”
“바깥 28도에서 29도 사이인 날만 셈해요. 그러면 안에서 안 기울어요. 대신 며칠 안 들어와요.”
“넓게 잡으면요.”
“25도에서 30도. 날은 많이 들어와요. 대신 그 안에서 계속 내려가요. 어제 본 그거예요.”
“둘 다 안 좋은데요.”
“네.”
”…셋째 길은 없어요?”
“있어요.”
경옥이 연필로 종이 위쪽을 가로로 그었다.
“조건을 안 잡는 거예요.”
“안 잡아요?”
“날을 고르지 말고 다 넣어요. 대신 그날 바깥 온도랑 습도랑 문 연 횟수를 옆에 다 적어요. 값 하나에 딸린 것들을 같이 남겨요.”
“그러면 어떻게 비교해요?”
“우리가 비교하는 게 아니에요.”
은재가 연필을 놓았다.
“나중 사람이 해요. 온도가 얼마나 먹는지, 습기가 얼마나 먹는지 빼 보는 건 그 사람들이 해요. 우리는 뺄 수 있게만 적어 놔요.”
“그럼 우리는 답을 못 보잖아요.”
“네.”
”…괜찮아요?”
“조건 잡아서 우리가 답을 보면요, 그 답은 그 조건에서만 답이에요. 그리고 우리가 무슨 조건으로 골랐는지는 종이에 안 남아요. 남는 건 고른 날들뿐이에요.”
경옥이 새 종이 맨 위에 줄 제목을 썼다. 날짜, 쌓은 시간, 바깥 온도, 습도, 문, 반출입. 여섯 칸이었다. 습도 칸은 비어 있었다.
“이 칸이 언제 채워져요?”
“습도계 오면요. 그전에는 관측소 값 넣고 「우리 값 아님」이라고 옆에 쓰세요.”
“두 자가 섞이는데요.”
“섞이는 게 아니에요. 두 자를 다르다고 적어 놓는 거예요.”
3월 14일 통보에 회신이 두 통 와 있었다. 수송팀은 3월 12일 입항 일정이 아직 확정 전이라 했고, 옆 연구동은 그날 두 사람 중 하나는 어렵다고 답해 왔다.
“한 사람이면 어떻게 해요.”
“어렵다는 말이 지금 왔잖아요. 3월에 왔으면 그날은 벌써 지나가 있어요.”
경옥이 벽으로 갔다. 종이 여덟 장이 2센티씩 어긋나게 붙어 있었다. 그 옆에 아홉째 자리를 손가락으로 재 두었다.
통은 1,240개, 3월 부족 넉 통, 옆 연구동 넉 통 건은 9월 28일까지 보류 그대로였다.
나서기 전에 은재가 물었다.
“오늘은 뭐 한 날이에요?”
경옥이 새 종이를 선반에 세워 놓았다.
“안 잰 걸 안 쟀다고 적은 날이에요.”
“그건 값이에요?”
“값도 아니고 자도 아니에요.”
“그럼요?”
“구멍이에요. 구멍인 줄 알면 나중에 메울 수 있어요.”
기운 것은 어긋난 것과 다르다.
어긋난 것은 한 번 맞추면 된다. 기운 것은 맞춰도 다시 기운다. 그래서 기운 것은 고치는 일이 아니라, 어느 쪽으로 얼마나 기우는지를 적는 일이 된다.
기울기는 처음엔 거의 안 먹는다. 1도로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그래서 기운 것을 알아채는 사람은 기울기를 본 사람이 아니라, 오래 세어 본 사람이다.
그리고 어떤 것은 크기를 세기 전에 방향으로 먼저 지워진다. 방향이 반대면, 그것은 아무리 커도 원인이 아니다.
후보를 지우면 목록이 짧아진다. 짧아진 목록이 맞은 목록은 아니다.
안 잰 것은 표에 안 보인다. 그래서 안 잰 자리에는 안 쟀다고 적어야 한다. 빈칸은 눈이 넘어가지만, 안 쟀다는 글씨는 걸린다.
펴는 것도 한 번은 된다.
두 번은 안 되고, 편 자리는 편 자리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