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공기] 제26화 - 덧댐

제26화 「덧댐」
1. 568미터
내려가는 데 23분, 올라오는 데 22분이었다. 열닷새째 같은 숫자였다.
562미터에서 565미터, 565미터에서 568미터. 두 토막이었다. 철수까지 서른일곱 날이 남아 있었다.
재혁이 줄자를 폈다. 첫 토막 2.94미터, 둘째 토막 2.96미터.
“닷새 치예요.”
“케이블로는 30미터.”
재혁이 야장의 숫자를 밑으로 내려가며 더했다. 2.96에 2.98, 2.97에 2.94, 2.95에 2.97, 2.96에 2.93, 그리고 오늘의 2.94와 2.96.
“29.56이요. 차이가 0.44예요.”
“하루로는.”
“0.10이요.”
재혁이 그 밑에 다섯 개를 나란히 적었다. 0.06, 0.09, 0.08, 0.11, 0.10.
“오르내려요.”
“그렇지.”
“오르기만 하는 줄 알았어요. 어제가 0.11이었으니까요.”
“오르내리는데 다섯 개가 다 양수야.”
재혁이 다섯 숫자를 다시 봤다.
”…매일 벌어지긴 하네요.”
“매일 벌어져. 얼마씩 벌어지는지가 아직 안 정해졌을 뿐이야.”
서진이 야장 여백에 한 줄을 그었다.
“이건 적어. 매일 벌어진다는 건 닷새로도 말할 수 있어. 하루에 얼마씩인지는 아직 못 해.”
부스러기 통을 저울에 올렸다. 말린 무게 15.22, 15.26. 계산치는 31.2였다.
“0.72요.”
이력은 0.65, 0.71, 0.70, 0.74, 0.69, 0.72였다. 여섯 점째였다. 재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서진도 시키지 않았다. 판 날로 열흘이 되는 9월 9일에 볼 것이었다.
헛돎 칸이 비어 있었다. 오늘은 두 토막 다 소리가 없었다.
재혁이 잠깐 연필을 세워 들었다가, 칸에 「없음」이라고 적었다.
“빈칸으로 두면 안 적은 건지 없었던 건지 모르니까요.”
“누가 가르쳐 줬어.”
“저번에 이 방에서 배웠는데요.”
2. 여섯째 줄
2호 단독으로 아흐레째였다. 온도는 −30.0이었다. 재우기 337일째, 절단까지 스물여덟 날이었다.
은재가 어제 치 표를 뽑아 왔다. 9월 3일, 열세 시간 스물아홉 분. 바깥은 28.4도였고 문은 두 번 열렸으며 반출입은 없었다. 조건은 맞았다.
「쌓는 날」의 여섯째 줄이었다.
은재가 여섯 개를 세로로 적었다. 13:26, 13:33, 13:41, 13:38, 13:33, 13:29.
“줄이 여섯이면 사이가 다섯이에요.”
“몇이에요.”
“둘에 둘에 둘에 둘에 둘이니까… 서른둘에 하나요.”
“다 같은 방향일 확률이요.”
“네. 그런데 안 같아요. 올랐다가 내렸다가 오늘까지 세 번 내렸어요.”
은재가 연필을 놓았다.
“아무 말도 못 해요.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에요.”
경옥이 그 말에 처음으로 웃었다. 마스크 위로 눈만 접혔다.
전화가 온 것은 그 뒤였다. 강릉이었다.
“고치기 전 값도 성적서에 적어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나만 더요.”
경옥이 수화기를 어깨에 끼고 종이를 끌어당겼다.
“그 값에 ± 도 같이 적어 주세요.”
”…불확도요?”
“네. 값만 오면 그 값이 딱 맞는 줄 알거든요.”
끊고 나서 은재가 물었다.
“±가 왜 필요해요?”
“성적서에 −29.7이라고만 오면요, 우리 기록계가 0.3 틀렸다고 적게 돼요.”
“그렇죠.”
“강릉 기계도 자예요. 강릉 기계가 0.1 안에서 흔들리면 우리 건 0.2일 수도 있고 0.4일 수도 있어요.”
“그럼 0.3이 아니네요.”
“0.3이 가운데예요. 폭이 있어야 그게 가운데인 걸 알아요.”
은재가 표를 들여다보다가 말했다.
“3년 전 값하고 이번 값을 직선으로 이으면 되잖아요. 그러면 3년 치를 다 고칠 수 있는데요.”
“이으면 자가 하나 더 생겨요.”
”…네?”
“그 자는 아무도 안 만들었어요. 우리가 방금 만든 거예요. 기계가 3년 동안 고르게 어긋났는지 우리는 몰라요. 한 달 만에 어긋나서 2년 열한 달을 그대로 있었을 수도 있어요.”
“그럼 못 고쳐요?”
“위쪽만 알아요. 3년 중 어느 날도 이보다 더 틀리지는 않았다. 그거 하나요.”
“그거 하나로 뭐 해요?”
“뚜껑이 없는 것보다 나아요.”
은재가 여백에 적었다. 「교정 전 값과 ± 요청함. 9월 4일. 단, 두 값을 직선으로 잇지 않음. 위쪽만 적을 것.」
3. 이음매 열한 군데
마감이 지난 지 나흘째였다. 정한은 새 의뢰인의 릴 둘째 본을 걸었다.
31분짜리였다. 감긴 층 옆면을 갓등에 비추자 흰 줄이 몇 군데 보였다. 층 사이에 끼어 있는 접합 테이프였다.
되감으면서 세었다. 열한 군데였다.
아홉 군데는 대각선으로 잘려 있었다. 두 군데는 직각이었다.
“급했구먼.”
접합면이 직각이면 그 자리를 지날 때 소리가 뚝 끊긴다. 대각선으로 자르면 두 조각이 걸쳐 지나가서 덜 티가 난다. 1983년 방송국 편집대에서 그걸 모를 리는 없었다. 몰라서가 아니라 시간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었다.
문제는 접착제였다. 마흔 해 가까이 감긴 채로 있으면 접합 테이프의 접착제가 옆으로 밀려 나온다. 밀려 나온 것이 이웃 층에 눌어붙는다. 정한은 세 군데에서 그것을 봤다. 테이프 표면에 접착제가 얇게 옮아 있었다.
떼면 자국이 남고, 안 떼면 옆에 계속 옮는다.
정한은 세 군데의 접합 테이프를 떼어 냈다. 떼기 전에 그 자리를 먼저 찍었다. 떼어 낸 것은 작은 봉투 셋에 각각 넣고 겉에 위치를 적었다. 4분 20초, 17분 05초, 26분 40초.
새 접합 테이프를 대각선으로 잘라 붙였다. 붙이고 나서 종이에 적었다.
「접합부 11. 원 접합 유지 8, 재접합 3(4:20 / 17:05 / 26:40). 원 접합 테이프는 봉투에 보관. 버리지 않음.」
그 밑에 한 줄 더 적었다.
「접합부를 지날 때 나는 짧은 잡음은 원본에 있는 것임. 지우지 않음. 열한 군데 시각을 아래에 적음.」
이관하는 동안 전화가 왔다. 어제 보낸 여섯 구간 표를 받은 의뢰인이었다.
“이거… 그러니까 어느 쪽이 아버지 목소리에 가깝습니까.”
“이 종이로는 못 정합니다.”
“그럼 어떡합니까.”
“둘 다 드립니다.”
수화기 저쪽이 조용했다.
“시디에는 없는 게 있고요, 원본에는 없던 게 시디에 생긴 데도 두 군데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아버님인지는 제가 정할 일이 아닙니다.”
”…선생님도 모르시는군요.”
“모릅니다. 대신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는 적어 놨습니다. 그건 나중에 누가 봐도 그대로입니다.”
오후 세 시 사십 분에 정한은 하던 것을 멈추고 판독을 꺼냈다. 넷째 날이었다.
어제 찍은 둘째 글자 사진과 그 전에 찍은 것을 나란히 놓았다. 짧은 획이 있다고 본 자리를, 어제 것에서는 있었고 오늘 다시 보니 애매했다.
조명 각도를 재 봤다. 1도가 달랐다.
정한은 어제 사진을 지우지 않았다. 두 장을 나란히 붙이고 밑에 적었다.
「같은 자리, 조명 1도 차. 한쪽에는 보이고 한쪽에는 안 보임. 어제 것으로 오늘을 덮지 않음. 9월 4일.」
4. 두 시간부터
수요일 오전이었다. 스무엿새째였다.
하람은 어머니 집 부엌에서 주간보호센터 세 군데에 전화를 걸었다. 두 군데는 자리가 없었고 한 군데는 상담이 됐다.
“인지지원등급이시면 주야간보호는 되세요.”
“집으로 오시는 건요.”
“인지지원은 방문요양이 원칙적으로 안 돼요. 낮 동안 다니시는 걸로 쓰시는 거예요.”
하람이 수첩을 폈다.
“처음부터 하루 종일 보내는 건 아니죠.”
“안 됩니다. 두 시간부터 하세요.”
“두 시간이요.”
“처음에 여덟 시간 보내면 대부분 그날로 안 가려고 하세요. 두 시간, 네 시간, 그다음에 늘리는 거예요. 한 달쯤 봐야 해요.”
“두 시간 가서 뭐 하세요.”
“앉아 계셔요. 처음엔 그게 다예요. 그게 되면 다음 게 돼요.”
전화를 끊고 하람은 달력을 봤다.
화요일과 토요일은 하람이 가는 날이었다. 그건 그대로 두기로 했다. 주간보호를 주 이 회, 월요일과 목요일에 두 시간씩 넣기로 했다.
수첩에 적기 전에 잠깐 생각했다. 내가 안 가는 대신 보내는 것인지, 가는 것 위에 얹는 것인지.
「9월 4일. 주간보호 상담. 두 시간부터. 월·목 주 2회. 화·토는 그대로 둠.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얹는 것임. 한 달 뒤에 늘릴지 봄.」
그 밑에 한 줄 더 적었다.
「내가 가는 날을 빼서 만드는 시간이면 얹은 게 아님.」
어머니는 미싱 앞에 있었다. 어제 마름질한 안감을 겉감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하람이 옆에 앉으니 미강이 손바닥으로 겉감의 한 자리를 짚었다.
“여기는 자꾸 뜯어져.”
“왜요.”
“여기가 힘을 받아. 앉으면 여기가 당겨.”
미강이 반짇고리에서 빳빳한 천 조각을 꺼냈다. 손바닥만 한 것을 가위로 네모나게 잘랐다.
“이걸 안에다 한 겹 더 대.”
“겉에서 보이는데요.”
“안 보여. 안쪽에 대니까.”
“두꺼워지잖아요.”
“두꺼워야 안 뜯어지지.”
미강이 그 조각을 안감과 겉감 사이에 넣고 시침을 놓기 시작했다.
“덧대는 거야.”
“덮는 거요?”
“덮는 게 아니고. 덮으면 밑에 게 안 보이잖아. 덧대는 건 밑에 게 그대로 있고 위에 하나 더 있는 거야.”
하람은 그 말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어디랑 닿는지는 몰랐다.
실패는 열한 개였고 자리도 같았다. 부엌 0, 미싱 5, 반짇고리 6. 엿새째였다. 「흰 실 어제 그대로, 오늘 줌. 검정 어제 줄고 오늘 그대로.」
내려오는 길에 최영숙이 종이를 내밀었다. 열일곱 번째였다.
「수요일. 6시 없음. 7시 10분 문 한 번. 계단 참. 손잡이 잡으셨음. / 흐림 / 새것 / 슬리퍼 / 없음.」
아흐레 연속이었다. 시각은 6:40, 7:05, 7:20, 7:40, 7:15, 7:05, 7:30, 7:25, 7:10이었다. 여전히 오르내렸다.
하람은 뒷장 스무 줄째에 적었다.
「아흐레 연속. 시각은 오르내림. 아직 아무 말도 안 함. 오늘 달력에 두 칸이 늘었음. 늘린 것이지 옮긴 것이 아님.」
5. 스물네 분
오후에 재혁이 부스러기 통을 들고 체 앞에 섰다. 병행 둘째 날이었다.
어제는 재혁이 저녁 먹으러 못 갔다.
서진이 통을 들여다보다가 손을 들었다.
“잠깐. 어제 어떻게 나눴어.”
“국자로 반씩 떠서요.”
“보여 줘 봐.”
재혁이 통을 기울였다. 위쪽 몇 센티가 아래보다 눈에 띄게 거칠었다.
“굵은 게 위에 있어.”
“굵은 게 무거운데요.”
“무거운 게 가라앉는 건 물에서지. 마른 가루는 반대야. 흔들리면 고운 게 틈으로 새어 내려가. 남은 굵은 게 올라오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통 들고 오면서 흔들렸겠네요.”
“쭉 흔들렸지. 그러니까 위에서 반, 아래서 반 뜨면 두 벌이 아니라 굵은 벌하고 고운 벌이야.”
서진이 판 위에 통을 쏟았다.
“쌓아. 위에서 부어서 원뿔로.”
재혁이 부었다. 서진이 그 위를 판판하게 눌러 폈다.
“십자로 넷을 갈라. 마주 보는 두 개끼리 합쳐.”
”…이러면 굵은 게 나뉘어요?”
“완전히는 아니야. 그냥 퍼 담는 것보단 훨씬 나아.”
체질이 시작됐다. 두 종은 4분이었다. 세 종은 오래 걸렸다. 0.25밀리 체가 자꾸 막혔다. 얼음 가루가 습기를 먹으면 눈에 끼어서 눌어붙는다.
재혁이 체를 뒤집어 붓으로 뒷면을 털었다.
“이거 털어 낸 건 어디로 세요.”
“그 체에 걸린 걸로 세. 안 그러면 고운 쪽이 늘어.”
세 종은 11분이 걸렸다. 나누는 데 9분이었다.
재혁이 시계를 보고 야장에 적었다.
“스물네 분이에요. 어제까지는 4분이었고요.”
“두 배가 아니지.”
“두 배하고 조금 더요.”
“그 조금 더가 병행을 무너뜨려.”
서진이 별지를 꺼내 재혁 앞에 놓았다.
“열흘 하기로 했잖아. 하루 24분이면 열흘에 네 시간이야. 지금 적어.”
재혁이 적었다. 「하루 24분. 열흘 합 4시간.」
“못 지킬 것 같으면 지금 줄여. 여덟 날로 줄이든 다섯 날로 줄이든.”
“왜요.”
“사흘 하다 그만두면 겹친 게 아니라 구멍이 나. 겹칠 자리를 만들려고 시작했는데 구멍이 남으면 아무것도 안 한 것보다 나빠. 그 사흘을 믿게 되거든.”
재혁이 잠깐 있다가 말했다.
“안 줄일게요.”
“그러면 바쁜 날에도 해.”
두 종은 첫 벌 23, 둘째 벌 21이었다. 폭 2였다. 이력은 2, 2, 1, 2, 0, 2였다.
세 종은 23, 32, 45였다. 어제는 22, 33, 45였다.
“이틀 됐어요.”
“어제 건 나누는 방법이 달라. 견주지 마.”
재혁이 어제 줄 옆에 적었다. 「9월 3일 값은 그냥 퍼 담아 나눈 것임. 오늘 것과 견주지 말 것. 지우지는 않음.」
인천에서 회신이 와 있었다. 경사계는 다음 배편에나 실린다고 했다. 11월이었다. 올 시즌 안에는 못 온다는 뜻이었다.
재혁이 종이를 읽고 서진을 봤다.
“그럼 열흘 겹칠 것도 없네요. 올해 건 그냥 옛날 얘기가 되는 거예요?”
“아니.”
“어제는 하나도 없으면 옛날 얘기가 된다고 하셨는데요.”
“두 방식 사이를 못 잇는 건 맞아.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쟀는지는 적혀 있어. 못 잇는 것하고 모르는 것은 달라.”
서진이 요청서 사본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올해 도착 불가 회신. 9월 4일. 요청서는 남겨 둠. 내년 사람이 처음부터 다시 쓰지 않게.」
커터는 내일 뜯는다고 했다. 높이도 있고 각인 자리도 있었다. 마모만 없었다.
“내일이면 셋이 다 있어요.”
“셋이 있으면 뭐 할 건데.”
”…아직 아무 말도 안 해요.”
6. 마흔 초
저녁에 경옥이 인수 서식 두 장을 나란히 놓았다.
옛 서식과 새 서식이었다. 새 서식에는 「안 잼」과 「해당 없음」이 따로 있었고 옛 서식에는 그 칸이 아예 없었다.
“3월 130통부터 새 걸로 가요. 그런데 한 시즌은 옛 서식도 같이 적어요.”
“두 장을 다 쓰는 거예요?”
“네.”
“합치면 안 돼요? 한 장으로.”
“합치면 새 서식의 두 칸이 옛 서식의 빈칸 하나로 뭉개져요. 그럼 왜 새로 만들었는지 모르게 되죠.”
은재가 서식을 들고 셈을 했다. 한 통에 옛 서식을 다 채우는 데 걸리는 시간을 재 봤다. 마흔 초였다.
“130통이면 87분이요.”
“두 시간 잡으세요.”
“그거 두 시간, 3월 어느 날에요?”
경옥이 달력을 봤다.
“배가 들어오는 날은 안 돼요. 그날은 통 받는 데만 하루가 가요. 다음다음 날로 잡아요. 지금 잡아요.”
“3월인데요.”
“3월에 잡으면 3월에 안 해요.”
은재가 웃으려다 말고 적었다.
경옥이 그 위에 한 줄을 더 적게 했다.
“바쁜 날에 못 채운 통이 생기면요, 그 통은 다시 못 채워요.”
“그럼 몇 통 빠지는 거죠.”
“아무 통이나 빠지는 게 아니에요.”
은재가 연필을 멈췄다.
“바쁜 날 것만 빠져요.”
“네. 그러면 남은 표는 한가한 날 표예요. 빠진 자리가 아무 데나가 아니면, 남은 것도 아무거나가 아니에요.”
”…그건 값이 치우친 거네요.”
“치우친 걸 모르는 게 더 나빠요. 못 채우면 그 통에 「못 채움. 바쁜 날.」이라고 적어요. 빈칸으로 두지 말고요.”
벽에 종이가 일곱 장이 됐다. 새로 붙인 것은 2센티 어긋나 있었다.
통은 1,240개였고 3월에 넉 통이 모자랐다. 옆 연구동 넉 통은 9월 28일까지 그대로 보류였다. 절단까지 스물여덟 날이었다.
불을 끄기 전에 은재가 물었다.
“오늘은 뭐 한 날이에요?”
“덧댄 날이에요.”
“얹은 거요?”
“밑에 걸 안 뜯고요.”
덧대는 것과 덮는 것은 다르다. 덮으면 밑에 있던 것이 안 보이게 되고, 덧대면 밑에 있던 것이 그대로 있고 그 위에 하나가 더 있는 것이 된다. 그래서 덧댄 자리는 반드시 두꺼워진다.
두꺼워진 것을 감추면 나중 사람이 그것을 원래 두께로 안다. 그러니까 두껍다고 적는다. 여기는 두 겹이고, 왜 두 겹인지는 이렇다고.
덧대는 일은 공짜가 아니다. 두 배가 아니라 두 배하고 조금 더 든다. 그 조금 더를 미리 세어 놓지 않으면 며칠 만에 그만두게 되고, 그만두면 겹친 자리가 남는 것이 아니라 구멍이 남는다. 구멍은 아무 데나 나지 않는다. 하필 바쁜 날에 난다. 그래서 남은 것도 아무거나가 아니게 된다.
값 하나만으로는 그 값이 딱 맞는 줄 안다. 폭이 같이 있어야 그것이 가운데인 줄 안다. 두 점을 직선으로 이으면 그사이가 다 아는 것이 되지만, 그 직선은 아무도 만들지 않았고 방금 우리가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잇지 않고 위쪽만 적는다. 뚜껑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
밑에 것을 안 뜯고 위에 한 겹을 더 대는 일. 두 시간을 여덟 시간 앞에 놓는 일. 어제 사진을 지우지 않고 오늘 사진 옆에 붙이는 일. 떼어 낸 접합 테이프를 봉투에 넣어 두는 일.
두꺼워지는 쪽을 고른다는 뜻이다.
두꺼워야 안 뜯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