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공기] 제25화 - 나란함

제25화 「나란함」
1. 562미터
내려가는 데 23분, 올라오는 데 22분이었다. 열나흘째 같은 숫자였다.
556미터에서 559미터, 559미터에서 562미터. 두 토막이었다. 철수까지 서른여덟 날이 남아 있었다.
재혁이 줄자를 폈다. 어제도 묻지 않았고 오늘도 묻지 않았다.
첫 토막 2.96미터, 둘째 토막 2.93미터.
“나흘 치가 됐네요.”
“케이블로는 24미터야.”
재혁이 야장의 숫자를 더했다. 2.96에 2.98, 2.97에 2.94, 2.95에 2.97, 그리고 오늘의 2.96과 2.93.
“23.66이요. 차이가 0.34예요.”
“어제까지가 0.23이었지.”
“오늘 하루로는 0.11이네요. 어제가 0.08이었고요.”
재혁이 연필을 세워 들고 잠깐 있었다. 서진은 기다렸다.
“두 점이에요.”
“그래.”
“그러니까 아직 아무 말도 안 해요.”
“안 해.”
재혁이 두 줄을 따로 적었다. 8월 31일부터 9월 1일까지 합쳐서 0.15, 날별로 못 가름. 9월 2일 0.08. 9월 3일 0.11. 어제 서진이 시킨 대로였고, 오늘은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적었다.
부스러기를 걸러 말린 무게가 나왔다. 15.24킬로그램과 15.27킬로그램. 두 토막이면 계산치가 31.2킬로그램이었다.
“0.69 부족이요.”
“적어.”
이력이 다섯 개가 됐다. 0.65, 0.71, 0.70, 0.74, 0.69.
재혁이 그 줄을 한참 봤다. 어제까지는 늘어나기만 했다. 오늘은 줄었다.
“안 물어봐?”
“열흘 채우고 얘기하신다면서요.”
“판 날로 열흘이야. 청소일은 안 세.”
“그럼 9월 9일이요.”
“9월 9일.”
재혁이 야장 여백에 「9월 9일」이라고 쓰고 동그라미를 쳤다.
헛돎 칸에는 오늘도 기입이 있었다. 첫 토막에서 한 번, 3초쯤. 정확한 초는 못 적었고 못 적었다는 것을 적었다. 사흘째 기록이었고, 서진은 그것도 9월 11일에 본다고 했다.
오후에 인천으로 보낼 봉투에 경사계 반입 요청서를 넣었다. 다음 시즌 물자 목록에 올려 달라는 한 장이었다. 서진이 그 아래에 한 줄을 덧붙였다.
「경사계가 오면, 오는 날부터 재지 말 것. 오기 전 열흘을 지금 방식으로 같이 적어 둘 것. 그래야 올해 값과 내년 값이 이어짐.」
“경사계가 오면 지금 방식은 안 쓰잖아요.”
“안 쓰지.”
“그런데 왜 열흘을 같이 적어요.”
서진이 요청서를 접어 봉투에 넣었다.
“올해 값이 한 시즌 치 있어. 내년 사람이 그걸 버릴지 쓸지를 정하려면, 두 방식으로 같이 잰 날이 며칠은 있어야 해.”
“하나도 없으면요.”
“그러면 올해 건 그냥 옛날 얘기가 되는 거지.”
서진이 봉투를 봉했다.
“오후에 체 얘기하자.”
2. 열여섯에 하나
저온실은 336일째였다. 절단까지 스물아홉 날, 기록계 한 대로 방을 재는 여드레째였다. 2호가 영하 30.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기준 정한 뒤로 쌓는 날」의 다섯째 줄이 나왔다. 9월 2일, 13시간 33분. 바깥 최고 29.0도, 문 두 번, 반출입 없음. 조건은 맞았다.
은재가 값을 옮겨 적고 종이를 내려놨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옥이 그것을 봤다.
“왜 아무 말 안 해요.”
“어제 배웠으니까요.”
“그건 배운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예요.”
은재가 경옥을 봤다.
“둘이 달라요?”
“달라요. 안 하는 건 오늘만 되고, 배운 건 내일도 돼요.”
경옥이 종이를 다시 밀어 줬다.
“세어 봐요. 다섯 줄이면 사이가 몇 개예요.”
“넷이요.”
“넷이 다 같은 방향일 확률이 얼마예요.”
은재가 잠깐 셈했다. 열여섯에 하나였다.
“오늘 건 그것도 아니고요. 올랐다 올랐다 내렸다 내렸어요.”
“그러면 이건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에요. 아무 말도 못 하는 거예요. 둘은 아주 달라요.”
경옥이 여백에 「9월 3일. 다섯째 줄. 두 번 오르고 두 번 내림.」이라고 썼다. 어제 적은 줄은 그대로 뒀다.
그다음에 경옥이 새 종이를 폈다.
“9월 28일 것부터 정합시다.”
“아직 스무닷새 남았는데요.”
“1호가 9월 28일에 돌아와요. 돌아오면 그건 교정을 받고 온 자예요. 우리 2호는 안 받았고요.”
“그럼 1호가 더 맞는 거잖아요.”
“맞죠. 더 맞아요.”
경옥이 종이 위쪽에 줄을 그었다.
“더 맞는 자로 바꾸면 오늘부터 값이 좋아져요. 대신 어제까지하고는 남남이 돼요.”
은재는 그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8월에 냉동기 바꿀 때 나흘 같이 돌리셨잖아요.”
“그때는 같은 방에서 같은 날 두 대를 돌렸어요. 이번엔 한 대가 한 달 나갔다가 조정을 받고 와요. 나흘로는 안 돼요.”
“얼마나요.”
“한 달.”
경옥이 받아 적게 했다. 은재가 쓴 것은 이랬다.
「기록계 1호 복귀 예정 9월 28일. 복귀일부터 한 달, 두 대 나란히 기록. 공식 값은 2호. 1호는 나란히만 적음. 10월 29일부터 1호로 넘어감.」
“한 줄 더요.”
“뭘요.”
“이건 9월 3일에 정한 거라고. 값 보기 전에 정했다고.”
은재가 그 줄을 적으면서 웃었다.
“28일에 정하면 28일 값 보고 정하게 되니까요.”
“이제 안 가르쳐 줘도 되겠네요.”
3. 여섯 군데
정한은 아침 아홉 시에 이관본을 끝냈다. 새 의뢰인의 릴 두 본 중 첫째 것, 스물여덟 분이었다. 아무것도 안 건드린 파일이었다.
책상 오른쪽에 그 파일이 있고, 왼쪽에 십몇 년 전 어느 업체가 만들었다는 시디가 있었다.
정한은 두 개를 같이 걸었다. 한쪽의 위상을 뒤집어 더하면, 같은 것은 서로 지워지고 다른 것만 남는다. 남는 것이 업체가 지운 것이다.
처음 1초를 맞췄다. 소리가 거의 없어졌다. 정한은 그 상태로 파일 끝으로 갔다.
끝에서는 하나도 안 지워졌다.
이유는 뻔했다. 릴을 돌린 기계와 그때 업체가 돌린 기계의 속도가 똑같을 리 없었다. 천 분의 일만 달라도 스물여덟 분이면 1.7초가 밀린다. 소리를 서로 지우려면 천 분의 몇 초까지 맞아야 한다. 1.7초는 맞은 게 아니라 딴 자리였다.
전 구간을 늘려 맞추는 방법이 있기는 했다. 정한은 하지 않았다.
“늘리면 제가 손을 대는 겁니다.”
혼잣말이었다. 대신 30초짜리 여섯 군데를 골랐다. 말이 있는 데 셋, 말이 없는 데 셋. 그 여섯 군데만 따로 맞췄다.
여섯 군데에서 남은 소리를 하나씩 적었다.
말이 없는 구간에서는 크게 남았다. 잔잔한 쉿 소리와 낮게 깔린 웅 소리였다. 업체가 그걸 지운 것이다.
말이 있는 구간에서는 작게 남았다. 정한은 그 옆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작게 남았다고 덜 지운 것이 아님. 목소리에 가려서 안 보이는 것일 수 있음. 이 방법으로는 못 가름.」
그리고 말이 있는 여섯 번째 구간에서, 지워지고 남은 것 중에 사람 소리가 있었다. 말의 끝에 붙는 숨소리, ㅅ과 ㅊ 같은 데서 나는 바람 소리였다.
정한은 그 자리를 세 번 다시 들었다.
“잡음만 지운 게 아니었네.”
그다음이 더 걸렸다. 시디에는 원본에 없는 것이 있었다. 두 군데에서 0.2초쯤 되는 짧은 무음이 있었고, 같은 자리의 원본에는 소리가 있었다. 잡음 하나를 지우면서 그 앞뒤까지 통째로 먹은 자리였다.
「지운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없던 것도 생김. 두 군데.」
오후에 의뢰인에게 보낼 종이를 한 장 만들었다. 여섯 구간, 각 구간에서 남은 소리, 시디에만 있는 무음 두 군데. 그게 다였다.
맨 아래에 한 줄만 더 적었다.
「이 종이로는 어느 쪽이 아버님 목소리에 가까운지 못 정합니다.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만 적혀 있습니다.」
세 시 사십 분에 정한은 하던 것을 멈추고 릴 케이스를 꺼냈다. 하루 30분, 셋째 날이었다.
오늘은 아침에 하던 것을 그대로 가져왔다. 빼기였다. 눌린 자국이 있는 자리를 찍고, 같은 조명 같은 자리에서 아무것도 안 쓴 여백을 한 장 더 찍어서, 둘을 뺐다.
종이 결이 빠졌다. 결이 빠지니까 눌린 데만 남았다.
둘째 글자에서 가로획 두 개 아래에 짧은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있는 것 같았다.
정한은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지 않았다. 그리면 그린 사람 손이 들어간다.
「둘째 자리, 가로획 둘 아래에 짧은 획이 하나 더 있을 수 있음. 빼서 나온 상. 그림 안 그림. 사진만 남김.」
셋째 자리는 여전히 아무것도 안 남았다. 빼도 안 남았다.
정한은 어제 적은 두 후보를 다시 읽고 그대로 뒀다. 두 자였을 수도 있고, 세 자인데 셋째만 약하게 눌렸을 수도 있다.
「빼기로도 못 가름. 9월 3일.」
4. 하루와 스무닷새
봉투는 이미 뜯겨 있었다. 미강이 상 위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거 뭐야.”
“어머니 거예요.”
“나 아픈 사람 아니야.”
“네.”
하람은 고치지 않았다. 봉투를 받아서 안의 종이를 폈다.
인지지원등급이었다. 조사원이 다녀간 것이 8월 25일이었으니 아흐레 만이었다.
점수표가 같이 들어 있었다. 옷 갈아입기, 세수하기, 밥 먹기, 일어나 앉기, 방 밖으로 나오기. 신체 쪽은 거의 다 혼자서 함이었다. 실제로 어머니는 혼자서 다 한다. 미싱도 하고 시침도 하고 골무도 낀다.
받을 수 있는 것은 낮 동안 다니는 데 하나였다. 사람이 집에 오는 건 이 등급으로는 원칙적으로 안 됐다.
하람은 점수표를 상 왼쪽에 놓고,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오른쪽에 놓았다.
두 개가 같은 사람을 재고 있었다.
점수표는 8월 25일 오전 한 시간을 잰 것이다. 그날 어머니는 아주 좋았다. 손님이 오면 늘 좋다.
수첩은 스무닷새를 적은 것이다. 서랍은 상자가 셋이면 하시고, 어제 무슨 실을 썼는지는 모르시고, 두 개를 내밀면 고르시고, 시침은 왜 성글게 하는지는 바로 말하신다.
점수표에는 그 칸이 없었다. 점수표는 되냐 안 되냐를 물었고, 수첩에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가 적혀 있었다.
하람은 오랫동안 두 장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수첩 뒷장에 적었다.
「이 표를 내 수첩에 맞춰 고치지 않음. 내 수첩도 이 표에 맞춰 안 고침. 나란히 둠. 두 개가 다른 게 값임.」
「이 표는 하루를 쟀음. 내 수첩은 스무닷새를 적었음. 둘이 다른 걸 잼. 둘 다 맞을 수 있음.」
이의신청 기한이 안내문 아래쪽에 적혀 있었다. 통보를 받은 날부터 아흔 날이었다.
하람은 셈해 보고 한 줄 더 적었다.
「지금은 안 함. 10월 15일에 다시 봄. 왜: 지금 내 수첩은 스무닷새치임. 그때는 예순이레치가 됨.」
그리고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붙였다.
「단, 10월 15일에 안 하기로 정하는 것도 하는 것임. 그날 종이에 적을 것.」
미강은 그동안 상 저쪽에서 천을 놓고 있었다. 짙은 남색 안감 위에 겉감이 될 천을 얹고, 가위를 들었다가 놓고, 손으로 가장자리를 훑었다.
“딱 맞게 자르면 못 붙여.”
하람이 고개를 들었다.
“얼마나 남기세요?”
“한 센티. 안쪽은 좀 더 줘.”
“왜 안쪽은 더 줘요?”
“나중에 뜯어서 고칠 수도 있잖아. 남겨 놔야 고치지.”
하람은 그 말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고쳐 적지 않았다. 안쪽은 더 준다는 말이 오늘 어디랑 닿는 것 같았는데, 어딘지는 몰랐다.
실 양은 닷새째였다. 흰 실은 어제 줄고 오늘은 그대로였고, 검정은 어제 줄고 오늘도 줄었다. 실패는 열한 개, 자리도 같았다. 부엌 0, 미싱 5, 반짇고리 6.
돌아오는 길에 최영숙의 종이를 받았다. 열여섯 번째였다.
「화요일. 6시 없음. 7시 25분 문 한 번. 계단 참. 손잡이 잡으셨음. 날씨 맑음. 전등 새것. 신발 슬리퍼. 들고 계셨던 것 없음.」
손잡이가 여드레 연속이었다. 시각은 6시 40분, 7시 5분, 7시 20분, 7시 40분, 7시 15분, 7시 5분, 7시 30분, 7시 25분이었다. 오르내렸다.
이유를 대 보고 싶었다. 하람은 8월 27일에 자기가 적어 놓은 줄을 다시 읽고 참았다. 관찰 조건을 바꾼 날 이후의 첫 변화는 증거가 아니라고 그날 적어 놨다.
수첩 뒷장 열아홉 줄째를 적었다.
「여드레 연속. 시각은 오르내림. 여전히 아무 말도 안 함. 오늘 종이가 하나 늘었음. 그 종이는 하루를 잰 것임.」
5. 열흘
오후에 재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오늘부터 세 종으로 바꿀까요.”
“바꿔.”
닷새 전에는 안 된다고 했었다.
“그때는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때는 바꿀 이유가 없었어. 지금은 있고.”
이유는 네 번 적혀 있었다. 8월 21일 값 21과 오늘까지의 값 사이의 차이가 계속 2였고, 손 폭도 2였다. 못 가른다는 말을 나흘 적었다.
“이 방법으로는 2를 못 가른다는 걸 네 번 봤어. 그건 이제 값이야.”
“세 종으로 하면 갈려요?”
“갈릴 수도 있고 안 갈릴 수도 있어. 두 종이면 굵은 쪽 비율 하나야. 값이 하나면 굵은 게 는 건지 고운 게 준 건지 못 나눠. 가운데 칸이 생기면 어느 쪽이 움직였는지가 보일 수도 있어.”
재혁이 체를 가지러 갔다가 서진이 불러 세웠다.
“열흘은 둘 다 해.”
“둘 다요?”
“두 종으로도 재고 세 종으로도 재.”
“일이 두 배인데요.”
“열흘만.”
“열흘 뒤엔요.”
“두 종을 버려.”
재혁이 체를 든 채로 서 있었다.
“버릴 건데 왜 열흘을 해요.”
서진이 별지를 폈다. 「안 끊긴 표」 칸에 줄이 하나 있었다. 입도였다. 이 캠프에서 8월 21일부터 이어져 온 하나뿐인 표였다.
“오늘 세 종으로 갈아타면 이 표가 오늘 끊겨. 그러면 8월 21일부터 오늘까지는 그냥 옛날 값이 돼.”
“열흘 겹치면요.”
“나중에 누가 옛날 값을 새 자로 옮겨 보고 싶을 때, 두 자로 같이 잰 날이 열흘 있으면 옮겨 볼 수 있어. 하루도 없으면 못 옮겨.”
재혁이 별지에 그 줄을 늘려 썼다.
「입도. 9월 3일부터 열흘 겹침. 9월 13일에 두 종 끝. 단, 겹친 열흘이 있음.」
그리고 서진이 부르는 대로 한 줄 더 적었다.
「9월 3일부터 9월 12일까지 두 방법 병행. 이 열흘의 공식 값은 두 종. 세 종은 나란히만 적음. 9월 13일부터 세 종. 9월 3일에 정함. 값 보기 전에 정함.」
두 종부터 쟀다. 사분법으로 두 벌을 나누고, 1밀리와 0.25밀리 체로 3분씩. 8월 21일과 똑같은 방법이었다.
첫 벌 22, 둘째 벌 22.
“폭이 없어요.”
“오늘 두 번이 우연히 같은 거야.”
“그래도 0이잖아요.”
“자가 안 흔들리게 된 게 아니야. 오늘 두 번이 같았을 뿐이야. 그거 안 적어 놓으면 나중에 네가 ‘9월 3일에는 폭이 없었다’고 읽어.”
재혁이 적었다.
「폭 0. 단, 폭이 없어진 것이 아님. 오늘 두 번이 같았음.」
폭 이력이 다섯이 됐다. 2, 2, 1, 2, 0.
세 종은 그 뒤에 쟀다. 1밀리, 0.5밀리, 0.25밀리였다. 굵은 것 22, 가운데 33, 나머지 45였다.
“가운데가 꽤 되네요.”
“그렇네.”
“이게 뭘 뜻해요?”
“오늘은 아무것도 안 뜻해. 견줄 데가 없잖아.”
재혁이 그 줄 옆에 괄호를 치고 「나란히만」이라고 썼다.
커터 마모 실측까지 이틀이었다. 날 높이와 각인 자리는 값이 있고 마모만 없었다.
“모레면 셋이 다 있어요.”
“그날은 세 개로 얘기할 수 있겠지.”
6. 고치기 전
저녁에 은재가 교정 위탁 서류의 남은 칸을 채우고 있었다. 반출한 기록계를 언제 받을지, 어디로 회신받을지 같은 것이었다.
은재가 볼펜을 놓고 물었다.
“교정 받고 오면 더 맞는 자잖아요. 그럼 3년 치는 어떻게 돼요?”
“3년 치는 1호로 잰 거예요. 고쳐서 오면 그건 이제 딴 자예요.”
“그러니까요. 3년 치가 뜬 값이 되는 거잖아요.”
경옥이 수화기를 들었다. 강릉이었다.
통화는 짧았다. 경옥이 부탁한 것은 하나였다.
“고치기 전 값도 성적서에 적어 주세요.”
저쪽에서 뭐라고 했고, 경옥이 다시 말했다.
“네. 받으신 상태 그대로 한 번 재신 값이요. 조정하시고 난 뒤 값 말고요. 둘 다요.”
경옥이 수화기를 내려놓고 은재를 봤다.
“보통은 조정하고 난 값만 적어 와요. 그게 깨끗하니까요.”
“그런데 왜 둘 다요?”
“자를 고치면 오늘부터 좋아져요. 고치기 전에 얼마나 틀렸는지를 적어 두면 어제까지도 좋아지고요.”
은재가 입을 조금 벌렸다.
“3년 치를 고칠 수 있어요?”
“고치는 게 아니에요. 값은 그대로 둬요. 옆에다 적는 거예요. 이 값은 이만큼 틀린 자로 잰 것이라고.”
“그러면 3년 치가 다 맞아져요?”
“아니요.”
경옥이 서류를 정리했다.
“고치기 전 값은 보낸 날의 상태예요. 3년 동안 언제부터 어긋났는지는 몰라요. 그건 여전히 몰라요.”
은재가 「모름」 칸을 폈다. 보름쯤 전에 자기가 만든 칸이었다.
“그럼 소용이 없는 거 아니에요?”
“뚜껑이 생겨요.”
경옥이 손으로 위쪽에 선을 하나 긋는 시늉을 했다.
“3년 치가 얼마나 틀렸을 수 있는지, 그 위쪽이 정해져요. 지금은 그것도 몰라요. 지금은 위가 없어요.”
은재가 적었다.
「3년 치 전체를 한 값으로 고칠 수 없음. 언제부터 어긋났는지 모름. 단, 교정 전 값이 오면 3년 치 오차의 위쪽은 알 수 있음.」
그다음에 인수 서식 이야기를 했다. 「안 잼」과 「해당 없음」이 들어간 새 서식은 3월 130통부터 쓰기로 돼 있었다.
“한 시즌은 옛 서식도 같이 적어요.”
“두 번 적어요?”
“한 시즌만요.”
은재가 웃었다.
“오늘 이 방에서 나온 말이 다 그거네요. 한 달 같이 돌리고, 한 시즌 같이 적고.”
“겹쳐 놓은 만큼만 건너갈 수 있으니까요.”
은재가 벽에 종이를 붙였다. 여섯째 장이었다. 복귀 계획서였는데, 아래 장과 모서리를 2센티 어긋나게 붙였다.
붙이면서 은재가 뭔가를 알아챘다.
“1호가 9월 28일에 오네요.”
“그렇죠.”
“옆 연구동 넉 통 보류도 9월 28일인데요.”
경옥이 그 종이를 봤다.
“그러네요.”
“어제 근거 없다고 하셨잖아요.”
“없어요. 지금도 없고요.”
경옥이 장갑을 벗었다.
“근거하고 이유는 달라요. 근거는 종이에 적을 수 있어요. 이유는 사람 안에 있고요. 제가 그날을 계속 보고 있었으니까 그날이 나왔겠죠. 그건 근거가 아니에요.”
“그래도 적으면 안 돼요?”
“적어도 돼요. 근거 칸에 적지 말고 다른 데 적어요.”
은재가 여백에 적었다. 「9월 28일을 고른 이유: 기록계 복귀일을 계속 보고 있었기 때문일 수 있음. 근거 아님. 9월 3일 기록.」
통은 1,240개였다. 3월에 넉 통이 모자랐고, 절단까지 스물아홉 날이 남아 있었다.
불을 끄기 전에 은재가 물었다.
“오늘은 뭐 한 날이에요?”
“나란히 놓은 날이에요.”
“붙인 게 아니고요?”
“붙이면 하나가 돼요.”
나란히 놓는 것은 둘을 붙여 하나로 만드는 일이 아니다. 하나를 빼고 남는 것을 보려고 놓는 것이다.
빼려면 먼저 정확히 나란해야 한다. 천 분의 몇 초가 어긋나면 아무것도 안 지워지고, 지워지지 않으면 무엇이 없어졌는지도 안 보인다. 그러니까 나란함은 결과가 아니라 조건이다.
겹쳐 돌리는 열흘은 일이 두 배가 되는 열흘이 아니라 나중 사람이 딛고 건널 자리를 만드는 열흘이다. 딱 맞게 자른 천은 붙일 데가 없다. 안쪽은 좀 더 남긴다. 나중에 뜯어서 고칠 수도 있으니까.
자를 고치면 오늘부터 좋아진다. 고치기 전에 얼마나 틀렸는지를 적어 두면 어제까지도 좋아진다. 그것으로 어제가 다 맞아지지는 않는다. 다만 어제가 얼마나 틀렸을 수 있는지, 그 위쪽이 생긴다. 위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편이 낫다.
같은 사람을 두 개의 자로 재면 값이 다르게 나온다. 하루를 재는 자와 스무닷새를 재는 자는 서로 다른 것을 잰다. 그럴 때 한쪽을 다른 쪽에 맞춰 고치면 자가 하나가 되고, 하나짜리 자는 틀려도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고치지 않고 나란히 둔다.
두 개가 다르다는 것, 그것이 오늘 얻은 값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