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공기] 제20화 - 훑음

제20화 「훑음」

1. 0미터

달력에 동그라미가 쳐진 날이었다. 아홉 날 전에도 같은 동그라미가 있었다.

재혁이 아침에 먼저 코어 배럴을 뗐다. 지난번에는 서진이 떼는 걸 옆에서 봤었다.

“두 번째네요.”

“그래.”

케이블이 내려갔다. 23분. 아흐레째 같은 시간이었다. 바닥에서 40분, 올라오는 데 22분.

깊이는 532미터에서 그대로였다. 철수까지 마흔사흘이 남아 있었다.

통을 열자 젖은 부스러기가 나왔다. 그대로 올리니 11.9킬로그램이었다.

말리는 데 오후까지 걸렸다. 체는 저울에서 안 내렸고, 무게가 안 줄 때까지 기다렸다. 마지막 값이 6.9였다.

재혁이 노트를 폈다. 지난 청소일 이후로 판 날이 여드레였고, 그 여드레 치 부족분이 세로로 적혀 있었다. 1.12, 1.18, 1.30, 1.09, 1.04, 1.21, 1.23, 1.21. 다 더하니 9.38킬로그램이었다.

“9.38 없어졌고 6.9 나왔어요. 지난번엔 열흘 치가 10.4였고 6.1이 나왔어요. 나눠 보면 0.59예요.”

“오늘은.”

“9.38에 6.9니까…… 0.73이요.”

재혁이 두 숫자를 나란히 적었다.

“올랐네요.”

“뭐가.”

“담기는 비율이요. 그때 두 번 재야 변화라고 하셨잖아요. 두 번 쟀어요.”

서진이 노트를 자기 쪽으로 돌렸다.

“6.1은 뭘로 쟀지.”

“마른 무게요.”

“그 뒤로 뭐 바꿨어.”

재혁이 입을 다물었다. 30분 받침을 넣었고, 항량까지 기다리기로 했고, 체를 저울에서 안 내리기로 했다. 세 번이었다.

”…이건 변화가 아니에요?”

“두 번 재도 자가 다르면 변화가 아니야. 자가 두 개인 거지.”

“그때는 두 번 재면 된다고 하셨는데요.”

“했지. 그때는 자가 안 바뀔 줄 알았고.”

재혁이 0.59와 0.73 사이에 줄을 하나 그었다. 이으려던 선이 아니라 끊는 선이었다.

“그럼 오늘 잰 건 뭐예요.”

“6.9는 6.9야. 그리고 하나 더 있고.”

서진이 부족분 합계를 짚었다.

“9.38이 통 밖으로 새 나갔거나, 구멍 벽에 붙었거나, 바닥에 가라앉았거나. 셋 중 어디인지 우리는 몰랐어.”

“네.”

“오늘 바닥에서 6.9가 나왔어. 훑개가 못 담은 것도 있을 테니까 바닥에 있던 건 6.9보다 많아.”

“하한이네요. 지난번처럼요.”

“응. 그런데 하한이 하나 생기면.”

재혁이 계산을 했다.

”…나머지 둘은 합쳐서 2.5를 못 넘어요.”

“그렇지.”

“바닥에 뚜껑을 안 씌웠는데 나머지에 뚜껑이 씌워졌네요.”

“하나를 재면 나머지에 뚜껑이 생겨. 그게 재는 이유야.”

재혁이 오늘 줄을 적었다.

「8월 29일. 진척 0m. 회수 6.9kg(마름). 바닥 침전 하한. 통 밖 유출 + 벽 부착 합계 상한 2.5kg.」

그리고 어제 그어 둔 세로줄 오른쪽 칸에 6.9를 넣었다. 왼쪽 칸에는 9.38이 있었다. 날짜 있는 합계와 날짜 없는 합계였다.

“이거 언제 더해요.”

“안 더해.”

“영영요?”

“우리는 안 더해. 나눠 놓기만 해. 더하는 건 인천이 할 거야. 더할 때 뭘 더하는지 알고 더하라고 나눠 놓는 거고.”

진척 칸에는 0이 적혀 있었다. 그건 아홉 날 전에 이미 배운 일이라 재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적었다.

2. 19와 1095

331일째였다. 첫 절단까지 서른나흘이 남아 있었다.

기록계 한 대로 방을 재는 것은 사흘째였다. 2호 단독으로 영하 30.0도. 은재가 벽의 기록지에 그 값을 적고, 옆의 두 칸에는 사선을 그었다.

압축기 적산시간계는 어제 것을 오늘 아침에 읽었다. 8월 28일, 13시간 41분. 26일이 13시간 20분, 27일이 13시간 52분이었다.

“세 번째 값이에요. 바깥은 31.2도, 문은 두 번, 반출입은 없었고요.”

경옥이 세 줄을 나란히 봤다.

“셋 다 조건이 달라요.”

“그래서 어제 하신 말씀대로 해 봤어요.”

은재가 노트북을 열었다. 지난 3년 치 로그가 떠 있었다.

“바깥 최고기온 28도에서 30도 사이, 문 두 번 이하, 반출입 없음. 이 세 개를 다 만족하는 날을 골랐어요.”

“몇 개예요.”

“열아홉 개요.”

“적산시간계는요.”

”…아.”

은재가 다시 걸렀다.

“계기 교체 전 게 여덟 개 섞여 있었어요. 빼면 열한 개예요.”

“열한 개.”

“3년 치에서 열한 개요.”

“거기 열한 개라고만 쓰지 마세요.”

“그럼요?”

“고른 걸 셀 때는 안 고른 것도 같이 세요.”

은재가 펜을 멈췄다.

“천구십다섯 날 중에 열아홉 날. 그중 계기 교체 이후 열한 날. 그렇게 쓰세요.”

”…왜요.”

“열한 개라고만 적으면 나중에 이 표를 보는 사람이 그 열한 개가 전부인 줄 알아요.”

경옥이 노트북 화면을 가리켰다.

“천구십다섯 중에 열한 개라고 적으면, 우리가 얼마나 좁은 데를 봤는지가 같이 남아요. 그게 남아야 이 표를 어디까지 믿을지를 그 사람이 정할 수 있어요.”

은재가 적었다. 「1,095일 중 19일. 계기 교체 이후 11일.」

적고 나서 날짜들을 훑어보다가 손이 멈췄다.

“선생님.”

“네.”

“열한 날이 다 7월하고 8월이에요.”

“그렇겠죠.”

“바깥이 28도에서 30도인 날을 골랐으니까요.”

“네.”

“그럼 이건……”

“여름 표예요.”

경옥이 종이 맨 위에 한 줄을 더 쓰라고 했다.

「이 표는 여름 표임. 겨울에는 못 씀.」

“겨울에는 다시 모아야 되네요.”

“겨울 조건으로요. 1월에 바깥 최고가 0도 안팎인 날이 스무 날쯤 있어요. 그건 그것대로 표가 돼요.”

“둘을 합치면 서른 개가 넘는데요.”

“안 합쳐요.”

경옥이 사선 그은 칸 쪽으로 눈을 돌렸다.

“합치면 서른 개짜리 표가 생기는 게 아니라, 열한 개짜리 표하고 스무 개짜리 표가 둘 다 없어져요.”

3. 0.05씩

마감까지 이틀이었다.

아침에 동규가 전화했다.

“선생님, 그냥 문턱을 맞추시죠. 1.25로 하면 어떻습니까.”

“맞추면요.”

“둘 다 넷이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 둘 수가 같아지겠네요.”

“예.”

“같아지는 거지 맞는 건 아닙니다.”

수화기 저쪽이 조용해졌다.

“둘이 따로 잰 게 값이 있는 건, 따로 쟀기 때문입니다. 문턱을 맞춰서 같은 수를 만들어 놓으면 이제 두 개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이대로 두면 셋하고 넷이 그냥 남는데요.”

정한이 자를 집었다.

“둘 다 적읍시다. 그리고 사이도 다 적읍시다. 1.00부터 1.50까지 0.05씩 옮겨 가면서, 그 문턱에서 몇 개가 나오는지 전부요.”

한 시간쯤 걸렸다. 표가 나왔다.

1.00에서 1.10까지는 다섯이었다. 1.15에서 1.25까지는 넷이었다. 1.30에서 1.45까지는 셋이었다. 1.50에서는 둘이었다.

동규가 표를 받고 한참 있다가 말했다.

“1.30에서 1.45가 제일 넓네요. 안정적이라는 거 아닙니까. 셋이 맞는 것 같은데요.”

“아닙니다. 넓다는 건 그 사이에 잰 값이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 값이 1.1하고 1.5 근처에 몰려 있어서 가운데가 빈 겁니다. 빈 데가 넓다고 답이 거기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이 표는 뭘 하는 겁니까.”

“어디서 끊었는지에 따라 답이 이만큼 변한다는 걸 보여 주는 겁니다.”

정한이 보고서 3번 칸을 고쳤다. 어제까지 「문턱 1.2로 끊으면 넷, 1.3으로 끊으면 셋. 문턱은 사람이 정합니다」라고 한 줄이던 자리에 표가 들어갔다. 답이 하나가 아니라 층계였다.

오후에 의뢰인이 전화했다. 처음으로 먼저 건 전화였다.

“그래서, 뭐라고 적혀 있었습니까.”

“모릅니다.”

수화기가 조용했다.

“세 글자라고 들었는데요.”

“세 글자라고 들으신 겁니다. 제가 잰 걸로는 최소 둘, 최대 다섯입니다.”

”…아버지 글씨는 맞습니까.”

“연필로 눌러쓴 자국인 건 압니다. 누구 손인지는 모릅니다. 비교할 게 없어서요.”

”……”

“아버님이 연필로 쓰신 다른 종이가 있으면 보내 주십시오. 편지든 장부든, 달력 여백에 계산해 놓으신 거라도 좋습니다. 없으면 이걸로 끝입니다.”

한참 뒤에 대답이 왔다.

“찾아보겠습니다.”

정한이 전화를 끊고 종이를 다시 셌다. 넉 장이었다. 다섯째 장은 만들지 않았다. 봉투에도 안 넣고 책상 위에 그대로 두었다. 이틀이 남아 있었다.

이관은 오후에 마무리했다. 파일 세 벌, 매체 두 종, 한 벌은 시외의 다른 건물. 원본 릴은 상자째 선반에 올렸다.

4. 스무날

목요일 저녁에는 비가 왔다.

스무날째였다.

미싱 노루발 밑에 어제 그 천 조각이 그대로 있었다. 시침질이 세 땀으로 늘어 있었다. 하람이 가까이 보니 세 땀째만 실이 검정이었다.

이어서 한 게 아니라 다시 시작한 것이었다.

“어머니, 이거 뭐 만드시는 거예요.”

“몰라. 손이 하는 거지.”

실패를 셌다. 미싱 서랍 다섯, 반짇고리 셋, 장롱 위 상자 둘, 부엌 서랍 없음, TV 밑 하나. 열한 개였고 자리도 어제와 같았다. 흰 실은 미싱 서랍에 그대로 있었다.

하람이 수첩에 적으려다 잠깐 멈췄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적어도 되나 싶었다. 적어도 되었다. 자리는 열한 군데를 다 눈으로 봤으니까.

「8월 29일. 열한 개. 자리 전부 어제와 같음. 변화 없음.」

계기는 눈금이 있어서 안 움직였다는 말을 못 하고, 실패는 자리가 있어서 할 수 있었다. 하람은 그 차이를 몰랐고, 그래서 편하게 적었다.

아래층 최영숙이 종이를 건넸다. 열한 번째였다.

「목요일. 6시 없음. 7시 20분 문 한 번. 계단 참. 손잡이 잡으셨음.」

사흘 연속이었다.

하람이 그 줄을 두 번 읽고, 좋아하려다가 창밖을 봤다. 비가 계단 쪽으로 들이치고 있었다.

“오늘 계단 젖었죠.”

“아까부터요.”

하람이 수첩 뒷장을 폈다. 열세 줄째를 적었다.

「8월 29일. 손잡이 사흘째. 단 오늘은 비. 계단이 젖어 있었음.」

그리고 한 줄 더 적었다.

「점이 셋인데 조건이 셋이면, 점이 하나씩임.」

첫날은 전등을 간 다음 날이었고, 둘째 날은 전등을 갈고 이틀째였고, 오늘은 비가 왔다. 셋을 나란히 놓을 수가 없었다.

하람이 최영숙에게 새 종이를 그려 줬다. 칸이 늘어 있었다. 날짜, 시각, 문, 계단, 손잡이 옆에 날씨, 전등, 신발, 들고 계셨던 것이 붙었다.

“죄송한데 칸이 늘었어요.”

“많이 안 어려워요.”

최영숙이 종이를 접어 앞치마에 넣었다.

“이거 언제까지 해요?”

“오래 할 거예요.”

“이번 달까지가 아니고요?”

하람이 처음으로 그 말을 소리 내어 했다.

“이번 달에는 안 써요. 겨울에 쓸 거예요. 지금 적는 건 겨울에 오늘하고 대 보려고 적는 거예요.”

올라와 보니 미강이 부엌에 서 있었다.

“요새 자주 온다.”

하람이 멈췄다.

”…자주 와요?”

“응. 자주 와.”

“언제 왔었는데요.”

“그건 모르지.”

미강이 컵을 내려놓았다.

“자주 온 건 알아.”

하람이 방에 들어가서 수첩을 폈다. 열네 줄째를 적었다.

「‘요새 자주 온다’고 하심. 언제 왔는지는 모르심. 자주 온 건 아심.」

거기까지 적고 잠깐 펜을 들고 있다가, 한 줄을 더 붙였다.

「단, 자주 오게 만든 사람이 나임. 이 줄도 증거가 아님. 다만 원인이 나인 건 안다.」

비는 밤까지 왔다.

5. 다섯 번째 줄

오후에 재혁이 회수한 부스러기를 저울 옆에 놓고 체를 꺼내 왔다. 세 겹짜리였다. 눈이 굵은 것이 위, 고운 것이 아래였다.

서진이 그걸 보고 손을 들었다.

“그거 몇 종이야.”

“세 종이요. 이게 더 잘게 나뉘어요.”

“지난번엔.”

”…두 종이었어요.”

재혁이 손을 멈췄다.

“두 종으로 해.”

“세 종이 더 자세한데요.”

“자세한 건 오늘만 자세해.”

서진이 지난 청소일 장을 펴 줬다. 그날 훑은 6.1킬로그램을 재혁이 체 두 종으로 걸러 적어 둔 줄이 있었다. 굵은 쪽 비율 0.31.

“그날 두 종으로 쟀으니까 오늘도 두 종이야.”

재혁이 세 겹짜리를 옆으로 밀고 두 종을 꺼냈다.

거르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굵은 쪽이 확실히 많았다. 재 보니 0.52였다.

“0.31에서 0.52요.”

“체는.”

“안 바꿨어요. 방법도 같고요.”

재혁이 그제야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는 얼굴이 되었다.

“이건…… 이어져요?”

서진이 그 두 숫자 사이에는 아무 줄도 긋지 않았다.

“오늘 처음으로 이어지는 값이 하나 나왔네.”

재혁이 한참 그 줄을 봤다.

“무게는 못 잇는데요.”

“무게는 자를 여러 번 바꿨어. 입도는 한 번도 안 바꿨고. 표마다 자가 달라. 어떤 표는 끊기고 어떤 표는 안 끊겨. 다 끊긴 줄 알고 있으면 안 끊긴 것도 안 봐.”

”…이거 제가 그때 재 놓은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 이게 되지.”

이유는 알 만했다. 지난번 것은 다 닳은 날이 문질러 낸 가루였고, 이번 것은 8월 20일에 새로 간 날이 깎아 낸 조각이었다. 무거운 조각은 액 속에서 금방 가라앉아 통에 담기고, 고운 가루는 오래 떠 있다가 액을 타고 위로 빠져나간다.

“그래서 담기는 비율이 올랐던 거네요. 아까 0.59에서 0.73.”

“그건 아직 말하지 마.”

”…자가 달라서요.”

“응. 근데 입도는 같은 자야. 그러니까 입도로만 말해.”

재혁이 무게 표로 돌아가서, 어제 자리에 굵은 가로줄을 그었다. 다섯 번째였다.

“어제요?”

“어제 날을 갈았잖아.”

서진이 말했다.

“어제 그었어야 했어. 오늘 긋는 거야.”

“소급 아니에요?”

“지우면 소급이지. 늦게 적는 건 늦게 적은 거야.”

재혁이 줄 옆에 적었다.

「8월 28일 커터 3매 교체. 이 줄은 8월 29일에 그음. 하루 늦음.」

“이걸로 다섯 번째예요. 8월 26일에 새로 시작했는데 사흘 갔어요. 그럼 언제 표가 돼요.”

“안 바뀌는 날이 열흘쯤 이어지면. 그게 언제일지는 나도 몰라.”

재혁이 노트를 덮었다가 다시 폈다.

“그럼 이 노트는 표가 안 되는 노트잖아요.”

“그렇지.”

서진이 순순히 인정하자 재혁이 더 할 말을 잃었다.

“이 노트는 표가 아니야. 표는 나중에 누가 우리 노트를 보고 만들어. 그 사람이 만들 수 있으려면, 우리가 자를 언제 바꿨는지가 여기 있어야 하고.”

서진이 노트 뒤쪽 빈 장을 넘겼다.

“한 장 따로 써.”

“뭘요.”

“바꾼 날만 모아. 날짜하고 뭘 바꿨는지만.”

재혁이 다섯 줄을 적었다. 젖은 무게에서 마른 무게로 바꾼 날, 30분 받침을 넣은 날, 항량까지 기다리기로 한 날, 체를 저울에서 안 내리기로 한 날, 어제 커터를 간 날.

“표가 안 되면요.”

서진이 말했다.

“표가 안 되는 이유의 목록을 만들어. 그건 만들어져.”

재혁이 그 장 맨 위에 제목을 썼다. 「자를 바꾼 날」이라고 썼다.

그리고 맨 밑에 한 줄을 더 썼다.

「이 목록에 없는 날은 안 바꾼 날임. 단, 우리가 알아채고 적은 것만 여기 있음.」

서진이 그 문장을 읽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혁이 눈치를 보다가 물었다.

“잘못 썼어요?”

“아니.”

서진이 노트를 돌려줬다.

“내가 쓰라고 안 한 줄이라서.”

날 세 매는 상대 높이를 다시 확인했다. 0.02 안이었다. 내일부터는 높이와 자리와 마모가 다 있는 날이었다.

규정 밖 융해 관측은 오늘 값이 없었다. 안 판 날이라 잴 것이 없었다. 재혁이 별지에 적었다.

「8/29. 값 없음. 사유: 청소일. 미리 적은 것 아님. 그날 적음.」

6. 석 달

저녁에 은재가 열한 날짜리 표를 다 만들었다.

가동률이 세로로 열한 줄 있었다. 제일 짧은 날이 12시간 55분, 제일 긴 날이 14시간 10분이었다.

“폭이 1시간 15분이에요.”

경옥이 그 두 값을 손끝으로 짚었다.

“어제 우리가 뭘 봤죠.”

“32분 차이요.”

“그게 어디 있어요.”

은재가 표를 봤다. 32분은 1시간 15분 안에 얌전히 들어가 있었다.

”…안에 있어요.”

“그러면요.”

“못 갈라요.”

은재가 펜을 놓았다.

“그럼 32분은 아무 뜻도 없었네요.”

“뜻이 없는 게 아니라, 뜻이 있는지를 못 아는 거예요. 그걸 알려면 열한 날이 필요했고, 그 열한 날이 3년 치고요.”

은재가 잠깐 그 말을 곱씹었다.

“그럼 이 검산으로 뭘 잡을 수 있어요?”

“1시간 15분보다 큰 것만요.”

“그게…… 얼마나 밀린 거예요?”

두 사람이 같이 계산했다. 계기가 하루에 0.01도씩 밀린다고 치면 한 달에 0.3도, 그러면 압축기가 도는 시간은 대략 40분쯤 달라졌다. 폭 안이었다.

은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저께 선생님이 서른 날짜리 거짓말이라고 하셨잖아요.”

“네.”

“우리 검산은 그걸 못 잡네요.”

“못 잡아요.”

경옥이 종이 아래쪽에 줄을 그었다.

“석 달이면 0.9도예요. 그러면 두 시간쯤 달라져요. 그건 폭 밖이에요.”

”…석 달짜리는 잡고요.”

“네.”

은재가 그걸 그대로 적었다.

「이 검산의 감도: 대략 석 달에 1도. 그보다 느린 밀림은 못 잡음.」

적고 나서 한 줄을 더 붙였다.

「못 잡는다는 것을 여기 적어 둠.」

경옥이 그 줄을 오래 봤다.

“그거면 됐어요.”

그러고는 벽에 새 종이를 한 장 붙였다.

「이 기간의 온도 기록은 느린 밀림에 대해서는 근거가 약함. 기록계 1호 교정 위탁 중. 미리 적음.」

은재가 그 종이를 보고 물었다.

“그럼 이 한 달 기록은 못 쓰는 거예요?”

“써요.”

경옥이 압정을 눌렀다.

“뭐에 쓸 수 있는지가 적혀 있는 채로 써요.”

옆 연구동 넉 통 건은 그대로였다. 은재가 오늘 날짜를 적고 같은 사유를 다시 썼다.

방을 나서기 전에 선반 쪽을 봤다. 1,240통이 어제와 같은 자리에 있었다.

“선생님.”

“네.”

“오늘은 아무것도 안 늘었어요. 표만 하나 생기고.”

경옥이 문을 잠갔다.

“오늘은 훑은 날이에요.”


훑는 일은 파는 일이 아니다. 훑어서 나온 것은 오늘 생긴 것이 아니라 그동안 안 나온 것이다. 그래서 훑은 날의 무게에는 날짜가 없고, 날짜가 없는 것은 날짜가 있는 것과 같은 칸에 넣을 수 없다. 둘을 더하면 총합은 맞지만 표는 틀린다.

하나를 재면 나머지에 뚜껑이 생긴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것이 셋인데 그중 하나를 재면, 잰 것에는 하한이 생기고 안 잰 둘에는 합쳐서 상한이 생긴다. 답을 주지 않아도 모르는 데의 크기는 줄어든다.

두 번 재면 변화가 나온다고 했는데, 두 번 재도 자가 다르면 변화가 아니라 자가 두 개다. 그러면 그 사이에 줄을 긋는다. 잇는 선이 아니라 끊는 선이다. 다만 표마다 자가 다르다. 무게는 끊겨도 알갱이 크기는 안 끊길 수 있고, 다 끊긴 줄 알고 있으면 안 끊긴 것도 안 보게 된다. 오늘 이어진 한 줄은 아홉 날 전에 누가 재 놓았기 때문에 오늘 이어졌다.

고른 것을 셀 때는 안 고른 것도 같이 센다. 열한 개라고만 적으면 그 열한 개가 전부인 줄 알고, 천구십다섯 중에 열한 개라고 적어야 우리가 얼마나 좁은 데를 봤는지가 같이 남는다. 좁게 본 것은 흠이 아니다. 좁게 본 줄 모르는 것이 흠이다.

문턱을 맞추면 두 사람의 수는 같아진다. 같아진 것은 맞은 것이 아니다. 따로 잰 두 값이 값을 갖는 이유는 따로 쟀기 때문이다.

표가 안 되면 표가 안 되는 이유의 목록을 만든다. 그것은 만들어진다. 자를 언제 바꿨는지를 적어 두면, 표를 못 만든 사람도 표를 만들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넘길 수 있다.

못 잡는 것의 크기를 적어 두면 못 잡는 것도 자리가 된다. 서른 날짜리 거짓말은 못 잡고 석 달짜리는 잡는다고 적어 두면, 다음 사람은 적어도 어디를 더 봐야 하는지는 안다.

그날 네 자리에서 사람들은 각자 아무것도 파지 않은 날의 무게를 쟀다.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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