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공기] 제19화 - 견줌

제19화 「견줌」
1. 532미터
여드레째 같은 시간이 나왔다. 내려가는 데 23분, 올라오는 데 22분. 526미터에서 529미터, 529미터에서 532미터. 철수까지 마흔나흘, 안 파는 날까지 하루.
체를 저울에서 안 내리고 재는 것은 사흘째였다. 첫 토막이 74분, 두 번째가 83분이었다.
재혁이 노트를 폈다. 사흘 치가 나란히 있었다. 78과 71, 81과 76, 74와 83.
“폭이 넓어졌어요.”
“그래.”
“어제까지는 71에서 81 사이였는데, 오늘 74하고 83이 나왔으니까 71에서 83이 됐어요.”
“넓어지거나 그대로거나지. 좁아지는 일은 없어.”
재혁이 74분에 동그라미를 쳤다.
“근데 오늘 첫 토막이 왜 빨랐을까요.”
“몰라.”
“밤새 체가 방에 있었잖아요. 아침 첫 토막은 체가 더 차 있으니까 액이 덜 묻어서 빨리 그친 걸 수도 있는데요.”
“재혁아.”
서진이 장갑 낀 손으로 노트를 덮었다.
”…네.”
“점이 셋이야.”
“네.”
“셋 가지고 이유를 만들면, 오늘부터 너는 그 이유가 맞는 날만 세게 돼.”
“안 맞는 날은요.”
“안 맞는 날은 그날 뭐 다른 게 있었나 보다 하고 넘어가지. 그렇게 한 달 지나면 네 노트에 그 이유가 열 번쯤 확인돼 있어.”
서진이 노트에서 손을 뗐다.
“열 번 확인된 건 아무도 못 지워. 너도 못 지워.”
재혁이 동그라미 옆에 한 줄을 적었다.
「74분. 이유 안 적음. 왜: 점이 셋임.」
마른 무게는 15.03과 14.96이었다. 계산치 15.6에서 각각 0.57과 0.64가 모자랐고, 합쳐서 1.21킬로그램이었다. 어제가 1.23, 그제가 1.21이었다.
“이것도 폭은 아직 말하면 안 되죠.”
“열흘 채우고 말해.”
서진이 노트를 뒤로 넘겼다. 내일 날짜 칸이 비어 있었다. 거기에 먼저 적었다.
「8월 29일. 값 없음. 사유: 계획된 청소일. 이 줄은 8월 28일에 미리 적음.」
“달력에 적혀 있잖아요.”
“달력은 내년에 안 남아. 노트는 남고.”
오전 통신에 인천 회신이 붙어 있었다. 어제 재혁이 첫 줄을 쓴 답신에 대한 것이었다.
「보내 주신 문장을 규정 개정안 앞머리에 그대로 싣겠습니다. 근거 없이 정한 날과 근거가 생긴 날을 나눠 적은 예가 저희 쪽에 없습니다.」
재혁이 그 줄을 두 번 읽었다.
“제가 쓴 게 규정에 들어가요?”
“규정에 들어가는 건 네 문장이 아니야.”
서진이 통신지를 접었다.
“날짜 두 개가 들어가는 거지. 그 두 개가 다르다는 게 들어가는 거고.”
2. 영도
330일째였다. 절단까지 서른닷새. 기록계 한 대로 재는 이틀째 아침이었다.
은재가 스테인리스 통에 얼음을 부수어 넣었다. 잘게, 아주 잘게. 증류수는 얼음이 겨우 잠길 만큼만 부었다. 젓고, 뚜껑을 덮고, 30분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경옥이 통 옆에 와서 앉았다. 은재가 부순 얼음 조각을 손끝으로 짚어 보며 물었다.
“덩이가 크면 왜 안 돼요?”
“덩이가 크면 사이에 물이 고여요. 고인 물은 위쪽이 먼저 따뜻해지고요. 그러면 통 안에 층이 생겨요. 아래는 영도인데 탐침이 꽂힌 데는 영도가 아닌 거예요.”
“그래서 잘게요.”
“잘게, 물은 적게, 젓고. 그러고도 30분을 둬요. 넣자마자 재면 통이 아직 안 식었어요.”
“얼음이 다 녹기 전까지는 계속 영도인 거죠.”
“녹는 동안은 그래요. 녹아 버리면 그때부터는 그냥 물이에요.”
2호기 탐침을 가운데까지 밀어 넣었다.
0.10.
경옥이 캐비닛에서 지난 종이를 꺼내 왔다. 8월 19일. 그날 값은 0.05였다.
“0.05 움직였어요.”
“눈금이 얼마예요.”
“0.05요.”
“그럼 눈금 하나 움직인 거예요.”
은재가 종이 두 장을 나란히 놓았다.
“눈금 하나면 움직인 거잖아요.”
“눈금 하나 움직인 건, 안 움직인 거하고 못 갈라요.”
경옥이 탐침을 빼서 마른 천으로 닦았다.
“그리고 하나 더 있어요. 여기서 0.05 높게 읽는다고 해서 영하 30도에서도 0.05 높게 읽는 건 아니에요.”
“왜요.”
“밀리는 게 두 가지예요. 통째로 위로 밀리는 게 있고, 눈금 간격이 늘어나는 게 있어요. 통째로 밀리면 어디서 재도 0.05고, 간격이 늘어나면 영도에서 0.05일 때 영하 30도에서는 0.5일 수도 있어요.”
“한 점으로는 그걸 못 가르네요.”
“못 갈라요.”
은재가 통 안을 들여다봤다. 얼음이 아직 반쯤 남아 있었다.
“그럼 왜 해요.”
“맞히려고 하는 게 아니니까요.”
경옥이 종이에 오늘 값을 적었다.
“이 방에서 우리가 알고 싶은 건, 저 계기의 영하 30.1도가 진짜 영하 30.1도인지가 아니에요. 어제의 영하 30.1도하고 오늘의 영하 30.1도가 같은 영하 30.1도인지예요.”
은재가 자기 종이에 적었다.
「8/28 영도 확인 0.10. 8/19 값은 0.05. 차이는 눈금 하나. 움직였다고 말 못 함.」
적고 나서 물었다.
“‘안 움직였음’이라고 쓰면 안 돼요?”
“그건 움직였다는 말만큼 센 말이에요.”
3. 나와 나
마감까지 사흘이었다. 아침에 대구에서 봉투가 왔다.
동규는 정한이 보낸 대조군 세 값을 쓰지 않았다. 그 대신 자기 값을 두 벌 보냈다. 8월 17일에 잰 것, 그리고 어제 다시 잰 것. 같은 사진, 같은 사람, 같은 자였다.
1.5 / 1.3 / 1.2.
1.4 / 1.4 / 1.2.
편지는 세 줄이었다.
「제 안에서 0.1에서 0.2쯤 흔들립니다. 선생님과 저의 차이를 말하기 전에, 이걸 먼저 보내는 게 순서 같았습니다. 제 폭보다 작은 차이는 선생님과 제 차이가 아니라 그냥 제 손입니다.」
정한은 오전 내내 자기 사진을 다시 쟀다. 지난주에 잰 값은 1.4 / 1.3 / 1.2였다. 오늘 나온 값은 1.3 / 1.3 / 1.1이었다.
자기 안에서 0.1이 흔들렸다. 동규도 0.1이었다.
두 사람의 값을 같은 자리끼리 맞대 보았다. 1.3과 1.4. 1.3과 1.4. 1.1과 1.2.
세 자리 다 0.1이었다. 각자가 자기 안에서 흔들리는 만큼이었다.
정한은 오래 앉아 있었다.
동규는 덩어리를 넷으로 봤고 정한은 셋으로 봤다. 그 차이가 어디서 왔는지 두 사람 다 mm에서 왔다고 믿었다. 그런데 mm는 서로 못 가를 만큼밖에 안 달랐다.
갈린 데는 세 번째 자리 하나였다. 정한이 1.1로 읽고 동규가 1.2로 읽은 자리.
정한이 전화를 걸었다.
“몇 mm부터 틈으로 보십니까.”
저쪽에서 잠깐 조용했다.
“1.2요.”
“저는 1.3입니다.”
세 번째 자리가 거기서 갈렸다. 동규의 눈에는 1.2가 틈이었고, 정한의 눈에는 1.2가 틈이 아니었다. 그래서 하나는 넷을 셌고 하나는 셋을 셌다.
또 조용했다.
”…적어 놓으신 데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손에 붙은 겁니다.”
“저도 없습니다.”
정한이 종이를 당겨 적었다.
「우리는 다르게 잰 게 아니라 다르게 끊었습니다. 값은 같은 데 있었고 문턱이 달랐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서른다섯 해 동안 의뢰인에게 개수를 말해 온 것을 생각했다. 넷입니다. 셋입니다. 그렇게 말했다. 문턱을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머릿속에 있는 것은 말할 것이 못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최종 보고서 초안의 세 번째 칸 제목을 고쳐 썼다.
「몇 개인가: 문턱 1.2로 끊으면 넷. 1.3으로 끊으면 셋. 문턱은 사람이 정합니다. 이 종이에서는 제가 정했고, 그 값은 위에 적혀 있습니다.」
의뢰인에게 갈 종이는 넉 장으로 정했다.
첫 장은 잰 것. 자리마다 mm와, 그 값을 잰 날짜와, 그날 같은 자로 잰 대조군 값.
둘째 장은 못 본 것. 물건 목록이 아니라 방법 목록이었다. 저각도 조명은 조명과 나란히 누운 획을 못 만들고, 투과광은 접착 구간을 못 보고, 마이크로미터는 0.1 아래를 못 가르고, 현미경은 획이 안 겹치는 글자에 아예 안 걸린다.
셋째 장은 문턱. 넷째 장은 답.
답은 두 줄이었다.
「지운 자리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글자는 최소 둘, 최대 다섯입니다. 무슨 글자인지는 모릅니다.」
정한은 넷째 장을 제일 마지막에 놓았다. 서른다섯 해 동안 그 장이 늘 첫 장이었다.
4. 제자리
열아흐레째였다. 수요일 아침이었다.
하람은 어제 적어 둔 종이를 들고 방을 한 바퀴 돌았다.
미싱 서랍 넷, 반짇고리 셋, 장롱 위 상자 둘, 부엌 서랍 하나, 텔레비전 밑 하나.
미싱 서랍을 열었다. 다섯 개였다.
부엌 서랍을 열었다. 비어 있었다.
나머지는 그대로였다. 반짇고리 셋, 상자 둘, 텔레비전 밑 하나. 다 합쳐서 열한 개였다.
하람은 부엌 서랍 앞에 한참 서 있었다.
어제 수만 적었으면, 오늘은 아무 일도 없는 날이었다.
미싱 쪽으로 갔다. 노루발 밑에 천 조각이 물려 있었다. 흰 실로 시침질이 두 땀 가 있었다. 세 땀째는 없었다.
부엌에 있던 것이 흰 실이었다.
어머니는 밥상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하람은 언제 하셨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건 물으면 답이 생기는 종류의 질문이었다.
“실 쓰셨어요?”
“응. 어제 뭐 하나 했지.”
“뭐요.”
“뭐였더라.”
어머니가 신문을 넘겼다.
“하다 말았어. 하다 마니까 뭐였는지 모르겠네.”
하람은 웃었다.
“엄마.”
“응.”
“부엌 서랍에 실 있었잖아요. 흰 거.”
“거기 있었나.”
어머니가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실은 미싱 옆에 있어야지. 부엌에 왜 둬.”
하람이 잠깐 가만히 있었다. 어제 그 실은 부엌에 있었고, 그걸 부엌에 둔 사람은 어머니였다. 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첩에 적었다.
「8월 28일. 실패 열한 개. 수 같음. 자리 하나 다름. 부엌 서랍의 흰 실이 미싱 서랍에 있음. 미싱에 시침질 두 땀. 무엇을 하시려던 것인지는 모름. 앞으로도 모를 것.」
저녁에 최영숙이 종이를 내려 주었다.
「수요일. 6시 없음. 7시 5분에 문 한 번. 계단 참. 손잡이 잡으셨음.」
이틀 연속이었다.
하람은 그 줄을 두 번 읽었다. 좋아하려는 마음이 먼저 올라왔고, 그 마음이 올라온다는 것을 알아챈 뒤에 손이 멎었다.
전등을 간 것이 그저께였다. 그 뒤로 점이 둘이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전등을 도로 어두운 것으로 갈아 놓고 한 주를 더 보는 것이었다. 그러면 갈렸다. 밝아져서 잡으신 것인지, 원래 잡기 시작한 것인지.
그건 못 하는 일이었다. 어두우면 넘어지신다.
수첩 뒷장에 열두 줄째를 적었다.
「8월 28일. 이틀 연속 손잡이. 전등 교체 뒤로 점 둘. 되돌려 보는 시험은 안 함. 사유: 어두우면 넘어지심. 방법이 없어서 안 한 것이 아니라 대가가 커서 안 한 것임. 이 칸은 앞으로도 비어 있을 것.」
5. 세 매
오후에 날을 갈았다.
헌 날 세 매를 떼어 마이크로미터로 쟀다. 0.31, 0.18, 0.27. 엿새 동안 닳은 깊이였다.
“많이 다르네요.”
“많이 다르지.”
“어느 게 어느 자리 거야?”
재혁이 순서대로 늘어놓은 세 매를 가리켰다.
“뗀 순서대로 놨어요. 왼쪽부터 1번 자리.”
“적어 놨어?”
”…아뇨. 기억해요.”
“그럼 모르는 거야.”
재혁이 잠깐 서 있다가 종이를 가져왔다. 값 세 개를 적고,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자리 미상. 왜: 각인하기 전 날임.」
새 날은 어제 각인한 것이었다. 뿌리 쪽 평평한 면에 1, 2, 3이 새겨져 있었다. 서진이 한 매씩 올려 볼트를 반쯤만 조였다.
“높이 맞춰야 해.”
“높이요?”
“세 매가 같은 높이로 서야 셋이 같이 깎아. 한 매가 0.05만 튀어나와 있으면 그 매만 일해.”
서진이 다이얼 게이지를 커터 몸통에 물렸다. 날 하나씩 밑을 지나가게 돌리면서 바늘을 읽었다. 두 매를 조금씩 내리고 한 매를 조금 올려서 0.02 안으로 들어왔을 때 볼트를 끝까지 조였다.
“이걸 매번 하셨어요?”
“눈으로 봤지. 게이지는 오늘 처음 물렸어.”
재혁이 헌 날 세 매를 다시 봤다.
“그럼 아까 0.31하고 0.18도, 그 매가 나빠서가 아니라 높이가 안 맞아서였을 수 있잖아요.”
“그럴 수 있지.”
“그건 이제 어떻게 알아요.”
“이번 건 못 알아. 다음 건 알아.”
서진이 오늘 맞춘 상대 높이 세 개를 종이에 적어 커터 상자에 넣었다.
“오늘 게이지로 맞춰 놨고 날에 번호가 있으니까, 다음에 뗄 때는 어느 자리 것이 얼마나 닳았는지 나와. 높이도 알고 자리도 알고 마모도 알아. 그게 세 개가 다 있어야 말이 돼.”
작업 끝에 융해 액 걷기를 했다. 규정 밖 3회차가 0.05였다. 어제가 0.06, 그제가 0.05였다. 별지에 세 번째 줄을 적었다.
내일은 안 파는 날이었다. 빈 드릴로 내려가 바닥에 가라앉은 부스러기를 훑어 올리는 날. 재혁이 노트 맨 뒤 누계 칸을 폈다.
“내일 올라오는 건 어느 날짜에 넣어요.”
“못 넣어.”
“열흘 치가 다 섞여 있어서요?”
“응. 그건 날짜가 없는 무게야.”
서진이 누계 칸 옆에 세로줄을 하나 더 그었다.
“합계 칸이 두 개가 되는 거예요?”
“하나는 날짜가 있는 합계, 하나는 날짜가 없는 합계. 둘을 더하면 총합은 맞아. 근데 더해 버리면 날짜가 틀린 표가 돼.”
6. 열세 시간
저녁에 은재가 적산시간계 앞에 섰다.
8월 27일치가 나왔다. 13시간 52분이었다. 그저께가 13시간 20분이었다.
“비교 대상이 생겼어요.”
은재가 두 값을 나란히 적었다. 32분 차이였다.
경옥이 옆 칸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어제 경옥이 시키는 대로 은재가 같이 적어 둔 칸이었다.
바깥 최고기온. 8월 26일 29.4도. 8월 27일 33.1도.
문 여닫이. 두 번, 한 번.
시료 반출입. 없음, 있음.
”…바깥이 4도 가까이 높았네요.”
“압축기는 안팎 차이만큼 돌아요. 바깥이 더우면 더 돌아요. 방이 멀쩡해도 더 돌아요.”
“그럼 32분이 방 때문인지 바깥 때문인지 모르는 거네요.”
“몰라요.”
은재가 잠깐 종이를 내려다봤다.
“그럼 이 값은 못 써요?”
“지금은 못 써요.”
경옥이 창 쪽을 봤다. 밖은 아직 밝았다.
“가을 되고 바깥 기온이 비슷한 날이 열 몇 개 모이면, 그때 그 날들끼리만 봐요. 같은 날씨끼리 봐야 방이 보여요.”
“문 여닫이도 맞춰야 되고요.”
“문도 맞추고, 반출입 없는 날로 고르고요. 그렇게 고르고 나면 열 몇 개가 대여섯 개로 줄어요.”
“그것밖에 안 남아요?”
“그것밖에 안 남아요. 그래도 그 대여섯 개는 서로 말이 돼요.”
은재가 종이 위쪽에 조건 세 개를 미리 적어 칸을 만들어 두었다. 바깥 기온, 문, 반출입.
“이 칸을 안 만들어 놨으면요.”
“석 달 뒤에 표를 펴 놓고, 이 날은 왜 이랬지, 하고 앉아 있었겠죠. 그리고 못 알아냈을 거예요.”
“그러면 두 번째 값은…”
“첫 번째 값을 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게 아니에요.”
경옥이 종이를 은재 쪽으로 밀었다.
“첫 번째 값 옆에 뭘 같이 적었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거예요. 그거 알려고 두 번째를 재는 거고요.”
은재가 웃었다.
“오늘 적은 것도 오늘 안 쓰네요.”
“여기 있는 건 대개 그래요.”
강릉에서 회신이 와 있었다. 거기도 기록계를 같은 교정기관에 보내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12월이었다.
“같은 자를 쓰기로 했는데 시기가 달라요.”
“그럼 그 사이는요?”
“그 사이는 여전히 다른 자예요.”
경옥이 회신 종이 아래에 적었다.
「강릉, 동일 교정기관 위탁 예정. 12월. 그때까지의 값은 여전히 다른 자로 잰 값임.」
마지막으로 은재가 「해 본 것」 칸을 폈다. 옆 연구동 넉 통 이야기가 어제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8/28. 여전히 보류. 사유 같음. 기록계 1호 복귀 9월 28일.」
“같은 사유도 날마다 적어요?”
“안 적으면 언제부터 보류였는지가 없어져요.”
경옥이 벽의 기록지를 봤다. 칸 셋 중 둘에 사선이 그어져 있었다.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없다고 적힌 자리였다.
문을 잠그고 나오면서 은재가 물었다.
“선생님, 스물세 해 중에 제일 오래 기다린 게 뭐예요?”
경옥이 잠깐 생각했다.
“아직 안 끝났어요.”
견준다는 것은 두 값을 나란히 놓는 일이 아니다. 나란히 놓기 전에, 그 둘 사이에 무엇이 같았고 무엇이 달랐는지를 먼저 적어야 하고, 대개 그것을 적고 나면 견줄 수 있는 것이 처음 생각보다 훨씬 적게 남는다.
그래서 남과 견주기 전에 나와 나를 먼저 견준다. 내 손이 하루에 얼마나 흔들리는지를 모르면, 남과의 차이가 남에게서 온 것인지 내 손에서 온 것인지 끝내 모른다. 내 폭보다 작은 차이는 차이가 아니다. 그건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
두 번째 값은 첫 번째 값을 살려 주지 않는다. 첫 번째 값 옆에 무엇을 같이 적었어야 하는지를 알려 줄 뿐이다. 그 말을 듣고 나면 오늘 적는 것들이 오늘 쓰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조금 견딜 만해진다.
같은 것을 세는 사람이 둘이면, 대개 값이 아니라 문턱이 다르다. 문턱은 머릿속에 있어서 적히지 않고, 적히지 않아서 다투게 된다.
적어 놓으면 다툴 것이 없다. 어디서 끊었는지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