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공기] 제16화 - 가름

제16화 「가름」
1. 514미터
닷새째 같은 시간이 나왔다. 내려가는 데 23분, 올라오는 데 22분. 508미터에서 511미터, 511미터에서 514미터. 철수까지 마흔이레, 안 파는 날까지 나흘.
같지 않은 것은 벽시계였다. 어제부터 벽시계는 아무것도 정하지 않는다. 정하는 것은 저울이다.
첫 토막은 8시 58분에 걸어 10시 4분에 내렸다. 66분. 두 번째 토막은 12시 20분에 걸어 13시 15분에 내렸다. 55분.
“어제가 65분하고 47분이었어요.”
“두 점이야.”
“두 점이면요?”
“두 점이면 뭘 그려도 직선이라고, 사흘 전에 네가 들었잖아.”
재혁이 웃고 나서 노트에 두 점을 나란히 적었다. 어제 −1.09킬로그램, 오늘 −1.04킬로그램. 계산치는 토막당 15.6, 마른 무게는 15.05와 15.11이었다.
“줄었네요. 0.05.”
“줄었다고 적지 마.”
“왜요.”
“0.05가 우리 저울이 낼 수 있는 헛수보다 큰지를 아직 안 재 봤잖아.”
인천에서 무전이 왔다. 어제 보낸 세 줄에 대한 회신이었다. 항량 기준 채택, 8.5퍼센트 교체 기준 철회 접수, 융해 분리는 하루 2킬로그램 한정 승인.
승인 아래에 질의가 두 개 붙어 있었다.
“5분 간격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0.05킬로그램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서진이 무전기를 내려놓고 한참 있었다.
“없어. 5분은 내가 정했고, 0.05는 눈금이 0.01이니까 다섯 배쯤이면 되겠다고 생각한 거야. 근거는 그게 다야.”
“그럼 뭐라고 답하죠.”
“없다고 답해. 우리가 저쪽한테 시킨 게 그거잖아. 없으면 없다고 적는 칸.”
재혁이 「모름」이라고 쓰고, 옆 칸에 「왜: 정한 사람이 근거 없이 정했음. 정한 사람 한서진」이라고 적었다. 그 칸이 어디서 온 것인지는 둘 다 몰랐다.
회신에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닷새 전에 봉투에 담아 보낸 헌 커터 세 매를 인천에서 재 봤다는 것이었다.
“마모 2.4, 1.6, 1.4.”
“평균 1.8이네요. 저희가 잰 거랑 같아요.”
“같지 않아. 우리는 1.8 한 개를 봤고, 저쪽은 세 개를 봤어. 그러면 가루는 어느 날이 만들어?”
재혁이 잠깐 생각했다.
“제일 무딘 날이요.”
“그러니까 액 비율은 평균을 따라가는 게 아니야. 제일 무딘 한 매를 따라가.”
평균만 적으면 모양이 사라진다. 시추공을 네 군데 재기로 한 것도 그 이유였고, 그때는 얼음이 미는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쇠였다. 새 교체 기준은 날별 마모 실측으로 가기로 하고, 다음 커터는 세 매를 따로 재서 봉투마다 몇 번 날인지 적기로 했다.
무전 끝에 한 줄이 더 붙어 있었다.
「‘줄이는 방법 없음’ 확인. 3월 배편에 저울 1대 추가 발송.」
재혁이 그 줄을 두 번 읽었다.
“적었더니 왔네요.”
“비워 놨으면 아무것도 안 왔지.”
2. 신청서
인천 저온시료동, 327일째. 첫 절단까지 38일.
경옥은 복도 책상에 신청서를 펼쳐 놓고 있었다. 국가교정기관 온도 분야 의뢰서였다. 종이 두 장이었는데 은재가 30분째 붙들고 있는 것은 두 번째 장 중간의 칸이었다.
「요구 측정점」과 「요구 불확도」.
“측정점은 알겠어요. −40, −30, −20, 0. 우리 방은 −30 근처에서만 쓰니까 그 위아래를 촘촘히 넣고요. 그런데 불확도가 뭘 적는 칸인지를 모르겠어요.”
경옥이 기관에 전화를 걸었다. 스피커로 놓고 은재가 받아 적었다.
성적서에는 보정값만 오지 않는다고 했다. 보정값 옆에 확장불확도가 같이 온다. 저온 구간 표준 불확도는 ±0.15도쯤이고, 더 좁게 하려면 상위 등급 의뢰가 되어 비용과 기간이 달라진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은재가 오래 아무 말도 안 했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게 0.3이에요.”
“그렇지.”
“셋째한테도 폭이 있네요. ±0.15면 위아래로 0.3이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신청서 낼 때 알아야지, 성적서 받고 알면 늦어요.”
은재가 「요구 불확도」 칸에 0.1을 적고, 옆 여백에 「사유: 판정 대상 차이가 0.3이므로 잣대의 폭이 0.15면 판정 불가」라고 적었다. 신청서에 없는 칸이어서 여백에 적었다.
“이거 비용 올라가요.”
“싸게 받아서 못 쓰는 종이를 받으면 그건 돈만 쓴 거예요.”
기록계는 두 대를 번갈아 보내기로 이미 정해 두었다. 문제는 딴 데서 나왔다.
“교정은 20도 실험실에서 해요. 상온으로 되돌려서 챔버에 넣는대요. 우리 기록계는 스물세 해 동안 −30에서만 있었는데요.”
경옥이 손을 주머니에서 뺐다.
“데워서 돌아오는 거네요.”
“네. 좋아질지 나빠질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럼 그것도 적어요.”
은재가 「바꾼 것」 칸을 폈다. 첫 줄이 이호기 압축기 교체, 둘째 줄이 병행 기간 연장이었다. 셋째 줄에 이렇게 적었다.
「8월 25일. 교정 위탁 신청. 기록계 1호가 상온을 겪게 됨. 겪은 뒤 값이 달라지는지는 모름. 왜: 스물세 해 동안 안 데워 봤음.」
강릉에서 답장이 와 있었다. 세 통은 잘 있고, 0.6도에 대해서는 저쪽도 이유를 모른다고 적혀 있었다.
“보정표 만들자고 안 하네요.”
“만들면 안 되죠. 우리 방 안에서도 0.3이 있는데.”
경옥이 답장을 썼다. 우리 방 안 두 계기 사이에도 0.3도 차이가 있고, 그러므로 0.6은 두 방의 차이가 아니라 두 계기의 차이일 수도 있으며, 어느 쪽인지는 오늘 저녁에 안다고 적었다. 마지막에 이름을 적었다.
3월 자리 문제는 그대로였다. 필요 132통, 확보 128통, 부족 4통.
“더미 통 두 개를 빼면 두 통이 나와요.”
“안 돼요. 그건 재는 물건이에요. 재는 걸 빼면 다음에 또 모르게 돼요.”
은재가 부족 4통 서류를 꺼냈다. 「8월 17일 인지 / 미해결」. 여드레가 지났는데 종이는 여드레 전과 똑같았다.
“칸이 하나 더 있어야겠어요. 「해 본 것」이요. 미해결도 이력이 있어야죠. 안 그러면 나중에 보는 사람이 우리가 여드레 동안 아무것도 안 한 줄 알아요.”
「강릉 이송 3통 실행 / 1998년 시료 세로 절단 1통 확보 / 더미 통 감축 검토 후 부결(사유: 측정용) / 통로 폭 축소 검토 후 부결(사유: 문까지 가는 길)」.
네 줄이 되었다. 부족 통 수는 하나도 안 줄었는데 종이는 길어졌다.
3. 뒷면
이관 마감까지 엿새.
대구에서 온 봉투를 정한은 아침에 받았다. 12장을 다시 찍어 보낸 지 하루 만이었다.
동규의 판독은 종이 한 장이었다. 위쪽에 밀리미터 목록이 있고 아래쪽에 결론이 있었다.
「넓은 틈 3군데. 1.5 / 1.3 / 1.2. 덩어리 넷.」
정한이 센 것은 넓은 틈 두 군데, 덩어리 셋이었다. 1.5와 1.3이었고 1.2는 틈으로 세지 않았다.
두 종이를 나란히 놓고 한참을 봤다. 숫자는 거의 같았다. 1.5와 1.5, 1.3과 1.3, 1.2와 1.2. 위치도 0.1 안쪽이었다.
같은 자리를 같은 수로 봤는데 결론이 달랐다.
정한이 대구로 전화를 걸었다.
“자네 1.2를 왜 셌나.”
“1.1 넘으면 글자 사이라고 보내신 종이에 적혀 있었습니다.”
정한이 눈을 감았다. 자기가 보낸 것은 잰 값과 판정 기준이었다. 안 보낸 것이 하나 있었다.
“대조군을 안 보냈네. 아무것도 안 쓴 옆면을 같은 조명으로 재 보면 종이 결이 만드는 헛간격이 최대 0.9까지 나와. 그래서 1.3은 여유가 0.4밖에 없어 약하다고 적었고, 1.2는 아예 안 셌지.”
수화기 저쪽이 조용했다.
“그러면 제 넷은 셋일 수도 있는 거네요.”
“그건 아직 몰라. 자네 사진의 결이 내 사진의 결이랑 같은지도 안 봤으니까.”
닷새 전에 그는 파일 맨 앞에 기준음 30초를 붙여 보내면서, 보낸 것에는 보내는 방법도 같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자기가 어겼다.
“앞으로는 셋인지 넷인지를 주고받지 마세. 밀리미터를 주고받세. 판정은 각자 종이 밑에 적고 나중에 맞대.”
“기준을 같이 보내면 안 됩니까.”
“보내면 자네 눈이 내 눈이 돼. 자네가 나랑 같이 틀려 버리면 둘이 봤다는 말이 뜻이 없어져.”
“그런데 대조군은 보내셔야죠.”
“그건 보내야지. 그건 판정이 아니라 잰 거니까.”
오후에는 양 끝을 봤다. 왼쪽은 케이스 모서리 3밀리 앞에서 자국이 끊기고, 오른쪽은 라벨 접착 자국에 덮여 있다. 앞면으로는 못 본다. 떼면 볼 수 있고, 떼면 못 되돌린다.
정한은 떼지 않고 종이를 뒤집었다. 연필로 눌러 쓴 자국은 종이를 관통해 반대쪽에 볼록하게 남는다. 앞이 안 보이면 뒤로 보면 된다.
오른쪽은 안 됐다. 케이스 옆면 종이는 안쪽으로 접혀 붙어 있어서 뒷면 자체가 없었다.
왼쪽은 됐다. 모서리 쪽으로 3밀리를 더 들어간 자리에서 볼록한 줄이 두 개 더 나왔고, 그 사이 간격이 1.6밀리였다. 종이 결 헛간격 0.9보다 확실히 넓었다.
덩어리는 넷이 되었다. 오른쪽은 여전히 못 본다.
정한은 「판독한 것」 칸에 적었다.
「왼쪽 끝 1.6밀리 틈 1개 추가 확인(뒷면 관측, 8월 25일). 덩어리 최소 넷. 오른쪽 끝 미관측. 왜: 라벨 접착 자국, 뒷면 접힘.」
그다음 봉투를 꺼냈다. 「판독이 오면 연다. 와도 먼저 열지 않는다. 그쪽 것을 옮겨 적은 다음에 연다.」 옮겨 적었으니 열 차례였다.
안에는 자기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세 자. 가운데가 받침 있는 자. 8월 3일.」
스물이틀 전의 짐작은 오늘 나온 어느 값과도 안 맞았다.
정한은 그 종이를 버리지 않고, 보고서 뒤에 「틀린 짐작」이라는 칸을 새로 만들어 거기 붙였다.
버리면 다음에 또 같은 짐작을 한다.
저녁에 의뢰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정한이 먼저 말했다.
“세 글자가 아닙니다. 넷 이상입니다. 그리고 이름인지도 모릅니다.”
“네 자요? 아, 아버지 성함이 세 자니까… 어머니 성함까지 같이 쓰셨나 보네요.”
정한이 수화기를 잠깐 귀에서 뗐다.
새 짐작이 자라는 데 3초가 걸렸다.
“선생님.”
“네.”
“제가 앞으로는 숫자를 말씀 안 드리겠습니다.”
“왜요?”
“제가 말하면 그게 선생님 기억이 됩니다. 지난번에도 그랬고 방금도 그랬습니다.”
“그럼 어떻게 압니까.”
“다 끝나면 종이로 드리겠습니다. 종이에는 잰 것하고 짐작한 것이 칸이 갈라져 있습니다.”
“말로 하시면 안 됩니까.”
“말은 안 갈라집니다.”
4. 오전의 어머니
일요일, 열엿새째. 오전 10시.
방문 조사원이 온 것은 10시 정각이었다. 40대쯤 되는 사람이었고, 가방에서 인정조사표를 꺼내 식탁에 폈다. 옷 갈아입기, 세수하기, 식사하기, 방 밖으로 나오기. 항목마다 스스로 할 수 있는지, 부분적으로 도움이 필요한지, 완전히 도움이 필요한지를 고르게 되어 있었다.
조사원이 미강에게 직접 물었다.
“어르신, 오늘 아침 뭐 드셨어요?”
“밥 먹었지. 혼자 차려 먹었어.”
대답은 빠르고 자연스러웠다. 앉은 자세가 곧았고 손님한테 물 한 잔을 내왔다. 사십 년쯤 굳은 절차였다.
하람은 아무 말도 안 했다. 고쳐 주면 어머니가 무너지고, 안 고쳐 주면 종이가 틀린다. 그래서 종이를 따로 준비해 왔다.
조사원이 대면을 끝내고 몸을 돌렸을 때, 하람이 수첩과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열엿새치입니다.”
조사원이 몇 장을 넘겨 보다가 손이 멈췄다.
“이거… 시간대별로 되어 있네요.”
“왼쪽이 제가 있을 때, 오른쪽이 제가 없을 때입니다. 없을 때는 아래층 분이 적어 주십니다. 판단은 안 적고 시각하고 행동만요.”
조사원이 최영숙의 종이를 봤다. 마지막 장은 이랬다.
「일요일. 6시 없음. 7시 10분에 문 한 번. / 계단 참에 서셨는지: 모름. 나는 문소리만 들었음. / 아래에서 몇 번째 칸인지: 못 셈. 왜: 내가 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문 앞이셨음.」
“모른다는 게 이렇게 적혀 있는 건 처음 봐요.”
“모른다고 적을 칸을 드렸더니 종이가 길어졌습니다.”
조사원이 다시 인정조사표를 보더니 조금 곤란한 얼굴을 했다.
“그런데 이걸 어디에 적어야 할지를 모르겠네요. 여기 칸이 없어요.”
하람은 그 말을 들었을 때 이유도 모르게 목 뒤가 서늘했다.
“비고란에 요약해서 적을 수는 있어요.”
“요약하지 말아 주세요. 요약하시면 선생님이 보신 것만 남습니다. 그냥 붙여 주시면 안 될까요.”
조사원이 잠깐 생각하더니, 조사표 뒤에 추가 자료로 붙으면 등급판정위원회에서 같이 본다고 했다.
하람이 종이 한 장을 더 꺼냈다. 아침에 미리 써 온 것이었다.
「본 조사는 오전 10시에 이루어졌습니다. 오전에 보신 것은 오전의 어머니입니다. 저녁 6시 이후의 기록을 함께 첨부합니다. 두 시간대를 한 줄로 이어서 읽지 말아 주십시오.」
조사원이 그 종이를 오래 읽었다.
“이런 걸 써 오시는 분은 잘 없어요.”
“저도 열엿새 전에는 몰랐습니다.”
결과는 그 자리에서 안 나온다고 했다. 조사표가 올라가고 의사 소견서가 붙고 위원회가 판정한다. 신청일부터 30일 이내가 원칙이라고 했다.
하람은 수첩에 적었다.
「8월 25일 방문 조사. 인지일 8월 25일. 회신 예정일: 30일 이내. 정확한 날: 모름. 왜: 위원회 일정은 이쪽에서 못 봄.」
오후에는 구청에 다녀왔다. 사흘 전에 「해당 없음」으로 돌아온 수기 주민등록표를, 관할이 두 번 바뀐 것을 알고 다른 구청에 다시 신청해 두었었다.
거기 있었다.
소명 자료를 두 번 내고 3촌 이내라는 것을 서류로 보인 끝에 정숙의 말소자 초본이 나왔다. 1989년 주소가 있었고, 미강의 1989년 주소와 지번이 같았다.
자매가 한집에 살았다. 하람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그 2층 집, 아래는 작업방이고 위가 살림이던 집에 어머니와 이모가 같이 있었다.
하람은 손끝이 조금 떨렸는데 그것을 수첩에 적지는 않았다.
「짐작」 칸의 가로줄 위에 적었다.
「1989년 주소 동일. 확인함. 근거: 말소자 초본, 8월 25일 발급.」
가로줄 아래는 그대로 비어 있었다. 계단이 몇 칸인지, 어머니가 그 계단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오늘도 안 나왔다.
어머니를 지나지 않는 데서 확인할 것. 그 줄은 아직 지워지지 않았다.
5. 0.71
남극, 오후 4시.
융해 분리 둘째 날이었다. 어제와 똑같이 두 번째 토막의 부스러기에서 2.00킬로그램을 덜어 유리 용기에 넣고 전열판에 올렸다.
물 위로 뜬 액을 걷어 재니 0.0142킬로그램이 나왔다. 0.71퍼센트.
어제는 1.05퍼센트였다.
“깊어지면 늘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재혁이 먼저 말했다. 그러고는 자기가 대답했다.
“제가 어제보다 빨리 녹였어요. 어제는 설정 2로 40분 걸렸는데,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4로 놨어요. 15분 만에 다 녹았고요.”
“그러면?”
“세게 녹이면 물이 움직이잖아요. 액이 잘게 흩어져서 안 뜰 수 있어요.”
서진이 팔짱을 풀었다.
“확인해 볼래?”
재혁이 용기를 그대로 30분 더 두었다. 30분 뒤 표층에 다시 얇은 띠가 생겼다. 걷어서 재니 0.0038킬로그램이 더 나왔다.
합쳐서 0.90퍼센트. 그래도 1.05에는 못 갔다.
“어제 게 큰 거예요, 오늘 게 작은 거예요?”
“둘 다 작아.”
“네?”
“어제도 다 못 걷었을 거야. 두 개 다 하한이야.”
재혁이 노트 두 칸에 적었다.
「8/24 1.05%(설정 2 / 융해 40분 / 1회 걷음) / 8/25 0.90%(설정 4 / 융해 15분 / 2회 걷음) / 두 값을 잇지 말 것. 절차가 다름.」 「융해: 전열판 설정 2 고정. 완전 융해 후 30분 정치, 걷은 뒤 다시 30분 두고 재차 걷음. 설정값과 소요 분을 매회 기재.」
“또 같은 거예요.”
“뭐가.”
“저번에 체 받치는 시간이 값을 만들었잖아요. 이번엔 녹이는 세기가 값을 만들었고요.”
“그래서?”
“우리가 재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하는 방식이 값을 만들고 있는 거예요. 계속.”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도 안 했다.
밤은 재혁 혼자였다. 두 번째 단독 근무였고, 이번에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 걸쇠는 안 얼었고, 장갑은 한 번도 90초를 안 넘겼고, 화가 나야 할 때 화가 났다.
대신 그는 저울을 쟀다.
체를 저울에 올려 둔 채로 건드리지 않고 다섯 번 읽었다. 15.11, 15.11, 15.12, 15.11, 15.11. 폭 0.01.
그다음 체를 들었다가 다시 올리기를 다섯 번 하면서 읽었다. 15.11, 15.14, 15.09, 15.13, 15.10. 폭 0.05.
노트를 덮었다가 다시 폈다.
항량 판정은 5분 간격으로 잰 두 값의 차가 0.05 미만일 때 그친다. 그런데 재혁은 매번 체를 들어 물받이를 비우고 다시 올렸다. 판정에 들어간 헛수가 0.01짜리가 아니라 0.05짜리였다.
“그러면 어제 그친 게 그친 게 아닐 수도 있네.”
혼잣말이 시추동 안에서 크게 울렸다.
새벽 1시였다. 무전기는 손 닿는 데 있었고 서진은 자고 있었다. 재혁은 무전기를 안 들었다.
노트에 적었다.
「저울 반복성 0.01(안 건드리고 5회) / 재현성 0.05(올렸다 내리기 5회). 8월 25일 실측, 우재혁. 항량 판정 시 체를 저울에서 내리지 않는다. 물받이는 체 밑에 두고 함께 올려 둔다. 부득이 내렸으면 그 회차에 표시한다. 8월 24일·25일 항량 값은 체를 매회 내리고 잰 값임. 오늘부터의 값과 한 표에 넣지 말 것.」
그리고 굵은 가로줄을 그었다. 이 노트에서 세 번째 가로줄이었다.
새벽에 교대하러 온 서진이 노트를 읽었다.
“왜 안 깨웠어.”
“물어보면 반장님 판단이 되니까요.”
“그러다 틀리면?”
“제가 틀렸으면 제 이름이 적혀 있어야죠.”
서진이 노트를 덮고 재혁 어깨를 한 번 쳤다. 그게 다였다.
6. 부호
인천, 오후 8시.
어제 이 시각에 두 기록계의 자리를 서로 바꿔 놓았다. 1분 40초, 문 한 번. 하루를 기다린 것은 열관성 때문이었다. 두 시간 걸리는 것을 두 시간 뒤에 읽으면 따라오는 중을 읽게 된다.
은재가 문 앞에서 장갑을 끼다가 멈췄다.
“선생님.”
“네.”
“들어가기 전에 정할 게 있어요.”
“뭔데요.”
“차를 적을 때 뭘 앞에 놓을 거예요?”
경옥이 은재를 봤다.
“차이는 뺄셈이잖아요. 계기A 빼기 계기B인지, 자리1 빼기 자리2인지를 안 정하고 들어가면, 나와서 부호를 보고 뜻을 갖다 붙이게 돼요.”
”…계기로 해요.”
“왜요.”
“오늘 물어보는 게 계기 얘기니까요. 자리로 적으면 자리가 답한 것처럼 보여요.”
은재가 서식 맨 위에 적었다.
「기준: 계기A − 계기B. 계기A = 8월 24일 20시 이전 일호기 쪽에 있던 것.」
그러고 나서 들어갔다.
자리1의 기록계는 −30.2도, 자리2의 기록계는 −29.9도였다.
자리로 읽으면 어제와 부호가 뒤집혔다. 어제는 자리1이 0.3 따뜻했는데 오늘은 자리1이 0.3 차다.
계기로 읽으면 안 뒤집혔다. 계기A는 어제도 −29.9였고 오늘도 −29.9다. 자리를 옮겼는데 값이 따라오지 않았다. 계기A 빼기 계기B는 어제도 오늘도 +0.3.
은재가 종이에서 눈을 안 뗀 채로 말했다.
“자리가 아니에요.”
“계기네요.”
“방의 두 자리는 같아요. 적어도 0.05 안에서는요.”
경옥이 벽에 손을 짚었다. 손끝이 아니라 손바닥 전체를 짚었다.
“그러면 두 냉동기도 같은 온도를 만들고 있었다는 거예요. 0.3은 기계 차이가 아니라 자 차이였고요.”
“네.”
두 사람이 한동안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럼 이레 동안 잰 게 헛거였네요.”
은재가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눌려 있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뺄 게 없다는 걸 알았잖아요.”
경옥이 병행 표를 짚었다.
“원래 계획이 뭐였어요. 8월 27일 지나면 이호기 값에서 0.3을 빼서 옛 값이랑 같은 자리에 놓는 거였잖아요. 그걸 뺐으면 없는 차이를 우리가 만들어 넣는 거였어요. 스물세 해짜리 표 한가운데에.”
은재가 숨을 한 번 내쉬었다. 입김이 불빛 속에서 천천히 퍼졌다.
“그러면 어느 쪽이 옳은 거예요? −29.9예요, −30.2예요?”
“몰라요.”
“모르는데 뭘 안 거예요.”
“차이가 어디 있는지를 알았죠. 자리에 없고 계기에 있어요. 옳고 그른 건 우리 둘로는 못 갈라요.”
“셋째요.”
“오늘 아침에 신청했잖아요.”
은재가 웃으면서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15분마다 하던 그 버릇을 요새는 20분에 한 번쯤 한다.
기입을 시작했다.
「8월 25일 20:00. 자리 바꿈 판독. 기준 계기A − 계기B. 8/24 +0.3, 8/25 +0.3. 부호 안 바뀜. 차이는 자리에 없고 계기에 있음. 어느 쪽이 옳은지: 모름. 왜: 셋째 없음. 교정 위탁 신청 8월 25일. 회신 예정: 모름. 병행 기간 종료 후 0.3 보정 시행하지 않음.」
경옥이 그 줄을 읽고 나서 자기 노트를 꺼냈다. 스물세 해치가 든 노트였다. 한참 넘겼다. 1998년, 2003년, 2004년, 2011년, 2019년, 2022년.
“여기 어디에도 어느 계기로 잰 건지가 안 적혀 있어요.”
”…”
“제가 스물세 해 동안 적은 게 방 온도인 줄 알았는데, 저 계기가 읽은 수였어요.”
은재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지금 적으면 돼요.”
“스물세 해 걸 어떻게 지금 적어요.”
“어제도 그러셨잖아요. 2003년을 어제 적으셨잖아요.”
경옥이 노트 앞장 여백에 적었다.
「본 노트의 온도값은 저온시료동 벽 기록계 1대의 지시값임. 어느 개체인지는 2011년 교체 이전 구간에 대해 미상. 계기 간 차이가 존재함을 2026년 8월 25일 확인(0.3도). 2026년 8월 25일 기입. 기입자 문경옥.」
지운 데는 없었다. 하나도 안 지웠다.
나오면서 은재가 문고리를 잡고 물었다.
“0.3이 어디 있는지는 알았고요.”
“어느 쪽이 옳은지는 몰라요.”
“그것도 적어요.”
“적었어요.”
차이를 적을 때는 무엇을 앞에 놓았는지부터 적어야 한다. 뺄셈은 순서를 안 적으면 부호가 뜻을 잃고, 뜻을 잃은 부호는 나중에 보는 사람이 자기 좋을 대로 읽는다.
어느 쪽이 옳은지 못 갈라도 그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는 가를 수 있다. 소재를 가르는 일과 옳고 그름을 가르는 일은 다른 일이고, 대개 앞의 것이 먼저다. 앞의 것을 안 하고 뒤의 것을 하면 없는 차이를 만들어 넣게 된다.
평균은 셋을 하나로 만든다. 셋 중 하나만 먼저 닳아도 평균은 조용하다.
같은 자리를 같은 수로 보고도 결론이 갈릴 수 있다. 그럴 때 어긋난 것은 눈이 아니라 기준이다. 그래서 주고받아야 하는 것은 셋인지 넷인지가 아니라 밀리미터다. 앞이 안 보이면 뒤로 보고, 떼면 못 되돌리는 것 앞에서는 반쪽만 보고 반쪽은 못 봤다고 적는다.
말은 갈라지지 않는다. 종이는 갈라진다. 잰 것과 짐작한 것을 한 입으로 말하면 듣는 사람 안에서 둘이 붙어 버리고, 붙은 것은 나중에 떼어지지 않는다.
방법이 없다고 적어 놓았더니 물건이 왔다. 비워 놨으면 아무것도 안 왔을 것이다. 모른다고 적을 칸을 주면 종이가 길어지고, 해 본 것을 적을 칸을 주면 미해결에도 이력이 생긴다. 숫자는 하나도 안 줄었는데 종이만 길어지는 날을 헛된 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틀린 짐작은 버리지 않는다.
버리면 다음에 또 같은 짐작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