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공기] 제13화 - 들임

제13화 「들임」

1. 496미터

두 번째 날이었다.

새 커터를 단 뒤로 두 번째 인양이라는 뜻이다. 내려가는 데 23분, 올라오는 데 22분. 어제와 같았다.

첫 토막의 젖은 무게 16.3킬로그램, 30분 받쳐 뺀 액 0.9, 마른 무게 15.4. 계산치 15.6에서 0.2 부족했다. 두 번째 토막은 마른 무게 15.3, 부족 0.3.

“오늘 마이너스 0.5요.”

재혁이 저울 옆에서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들떠 있었다.

“어제도 마이너스 0.5였어요.”

“그래.”

“똑같아요. 새 날은 하루에 0.5씩이에요.”

서진이 장부를 끌어다 두 줄을 나란히 놓았다. 8월 21일 −0.5. 8월 22일 −0.5. 그 아래는 아직 아무것도 없었다.

“점 두 개로 무슨 말을 하려고 그래.”

“두 번 쟀잖아요. 두 번 재야 변화라면서요.”

“두 번 재면 변화는 나와. 근데 점이 두 개면 뭘 그려도 직선이야.”

재혁이 입을 다물었다.

“어떤 점 두 개를 찍어 놔도 그 사이를 잇는 직선은 하나 나와. 그러니까 두 점으로는 이게 직선인지 아닌지를 못 물어. 물어볼 게 없으니까.”

“세 번째부터요.”

“세 번째부터 휘는 게 보여. 안 휘면 그때 직선이라고 적는 거고.”

액 비율은 6.2와 6.5였다. 어제가 6.1과 6.4였으니 둘 다 0.1씩 올라가 있었다.

“이건 올라간 거죠.”

“0.1이 올라간 거야, 아니면 우리가 0.1을 못 재는 거야?”

재혁이 종이에 적으려던 손을 멈췄다.

“같은 시료를 두 번 재 본 적 있어?”

“없어요.”

“그럼 우리 자가 얼마나 흔들리는지도 모르는 거지.”

그래서 두 번째 토막의 남은 가루를 갈라 두 몫으로 나누고, 같은 방법으로 따로 받쳐 따로 쟀다. 6.6과 6.4가 나왔다. 통째로 쟀을 때가 6.5였다. 같은 얼음에서 나온 같은 가루였는데 0.2가 벌어졌다.

“0.2는 우리가 만든 거네요.”

“우리 손하고 저울하고 체가 만든 거야.”

그날 규칙이 한 줄 늘었다.

「액 비율은 소수점 한 자리까지 적는다. 0.3 이내 차이는 변화로 보지 않는다. 근거: 같은 시료 2회 측정 시 0.2 차이. 8월 22일 실측. 이 값은 앞으로 다시 잰다.」

“그럼 어제 오늘 0.1은요.”

“안 올라간 거야.”

“올라갔을 수도 있잖아요.”

“올라갔을 수도 있지. 근데 우리는 못 봐. 못 보는 걸 봤다고 적으면 그게 제일 나빠.”

재혁이 「모름」이라고 쓰고, 그 옆에 「왜: 우리 잣대가 그만큼 흔들림」이라고 적었다.

그 칸은 인천이 만든 것이 아니었다. 인천을 거쳐 오기는 했지만 처음 만든 사람은 인천에 없었다. 저온실에서 왔고, 저온실에서 왔다는 것을 남극에서는 아무도 몰랐다.

2. 0.3도

목요일 아침 8시. 은재는 문을 열자마자 벽의 종이부터 읽었다.

일호기 −29.9. 이호기 −30.2.

“0.3이에요.”

“어제가 0.4였고요.”

“좁혀졌어요.”

경옥은 대답 대신 자기 노트를 폈다. 8월 21일 0.4, 8월 22일 0.3. 그 아래는 비어 있었다.

“0.1은 우리 기록계로 잴 수 있는 크기예요. 분해능이 0.05니까요. 그러니까 이건 판정할 수 있어요.”

“할 수 있죠. 뭘 판정해요?”

은재가 잠깐 생각했다.

”…달라졌다는 것만요.”

“그래요. 좁혀지는 중인지, 오늘 하루가 그런 건지는 아직 몰라요.”

“이유는 두 개죠?”

“두 개예요. 새 압축기가 아직 자리를 잡는 중이거나, 원래 두 대가 그만큼 다르거나요.”

“자리를 잡는 중이면 며칠에 걸쳐 값이 움직이고, 원래 다른 거면 안 움직여요.”

“그러니까 며칠을 봐야 갈려요.”

“나흘로 되나요?”

경옥이 그 말에 손을 멈췄다. 나흘은 강릉 이송 날짜를 먼저 잡아 놓고 거기서 거꾸로 센 숫자였다. 그 숫자에 근거가 붙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안 돼요.”

“그럼 어떡해요.”

“이레로 늘려요. 8월 27일까지.”

“일호기를 옛날 설정으로 사흘 더 두면 전기가 더 들고, 한 대가 아직 새것이니까 여유가 없어요.”

“여유가 없는 거하고 못 하는 거는 달라요.”

은재가 「바꾼 것」 칸을 폈다. 어제 처음 기입한 칸이었다. 부품, 설정값, 물건 놓은 자리, 사람. 그 아래에 은재가 한 줄을 더 만들었다.

「계획: 병행 나흘 → 이레. 8월 22일 변경. 사유: 나흘은 이송 일정에서 나온 수이고 관측 근거가 아님.」

“바꾼 것 칸에 제일 먼저 적어야 할 게 이거였네요.”

“뭔데요.”

“우리가 바꾼 계획요. 부품보다 이게 더 자주 바뀌잖아요.”

오전에는 견적서를 봤다. −30도에서 쓸 수 있는 기준 온도계, 국가 표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성적서가 붙은 물건. 숫자를 보고 은재가 종이를 뒤집었다.

“이건 우리 예산이 아니에요.”

“그렇죠.”

“그럼 셋째는 못 사요.”

“사는 건 못 해요. 빌리는 건 돼요.”

경옥이 다른 종이를 꺼냈다. 교정 위탁 신청서였다. 우리 기록계를 교정기관으로 보내면, 그쪽에서 그쪽 기준으로 −30도를 포함한 몇 점을 재서 성적서를 붙여 돌려준다.

“셋째를 데려오는 게 아니라 우리 걸 보내서 남의 자로 재 오는 거예요.”

“보내면 그동안 그 기록계는 여기 없잖아요.”

“없죠.”

“재는 걸 재는 동안에는 방을 못 재요.”

“그래서 두 개를 번갈아 보내요. 하나 가 있는 동안 하나가 재고, 돌아오면 며칠 같이 돌려서 두 값을 다 적어 놓고, 그다음에 다른 걸 보내요.”

은재가 웃었다.

“겹치는 구간이네요.”

“이 방에서 배운 게 그거 하나예요.”

성적서에는 날짜가 찍혀 나온다. 그 날짜의 성적이고, 돌아온 다음 날부터 다시 조금씩 어긋난다. 그래서 1년마다 다시 보낸다.

“자도 나이를 먹네요.”

“안 먹는 자를 저는 아직 못 봤어요.”

3. 59.982

마감까지 9일. 오정한은 오전에 대구에서 온 회신을 읽었다.

한동규는 콘센트에 작은 변압기를 물려 전압을 낮춘 다음, 거기서 나오는 험을 1시간 녹음했다. 그것을 자기 데크로 재생해 주파수를 쟀다. 59.982헤르츠.

정한이 계산기를 두드렸다. 60에서 0.018이 모자라니 0.03퍼센트. 그 데크는 0.03퍼센트 느리다.

그리고 동규의 정렬 테이프는 1,000헤르츠가 999.7로 읽혔다. 999.7은 1,000에서 0.03퍼센트 낮은 값이다.

숫자가 딱 맞아떨어졌다.

“기계가 느린 만큼만 낮게 읽혔군요.”

전화기 너머에서 동규가 잠깐 조용했다.

“그럼 제 시험 테이프는 멀쩡한 겁니까.”

“멀쩡합니다. 느린 건 데크입니다.”

정한은 자기 종이를 봤다. 어제 적어 놓은 줄이 있었다. 이 데크 −0.002퍼센트, 사실상 정확. 정렬 테이프 +0.02퍼센트, 서른 해 묵으며 줄어든 것.

같은 자리에서 시작한 두 사람의 값이 0.5헤르츠 어긋나 있었는데, 한쪽은 기계가 틀렸고 한쪽은 자가 틀렸다.

“같은 데를 봐도 같은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그러게요.”

“어제 우리가 값만 맞대고 끝냈으면, 둘 다 반씩 틀렸다고 적었을 겁니다. 반반이 아니었어요. 한 사람은 기계고 한 사람은 자였습니다.”

“벽에 꽂은 게 갈라 줬네요.”

“우리가 안 만든 거라서요.”

동규는 캡스턴을 조정하겠다고 했다. 0.03퍼센트면 사람 귀로는 안 들리는 크기지만, 이관한 파일이 남는 물건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조정하기 전에 기준음 30초를 하나 저장해 두겠습니다. 조정한 다음에 또 하나 저장하고요. 파일 이름에 날짜를 넣겠습니다.”

정한이 수화기를 고쳐 쥐었다.

“그건 제가 안 알려 드린 겁니다.”

“보내 주신 파일 맨 앞에 30초가 붙어 있던데요.”

”…아.”

방법은 말로만 옮겨 가는 게 아니었다. 물건에 실려서 갔다. 정한은 그날 종이에 한 줄을 적었다.

「보낸 것에는 보내는 방법도 같이 들어 있다. 안 적어 보낸 것도 들어 있다.」

지워진 글자 쪽은 진전이 없었다. 동규는 사진 8장 중 3장이 초점 면이 어긋나 못 쓰겠다고 했고, 대신 요구한 것이 하나 있었다.

“연필 심 굳기하고 종이 두께를 알려 주십시오. 눌린 깊이를 읽으려면 그게 있어야 합니다. 심이 무르면 얕게 눌려도 자국이 넓고, 종이가 두꺼우면 깊게 눌려도 뒷면에 안 나옵니다.”

정한은 서른다섯 해 동안 그 칸을 적어 본 적이 없었다. 서식에 칸을 하나 새로 만들었다. 「매체: 종이. 두께 실측 예정. 필기구: 연필. 심 굳기 미상. 왜: 안 재 봄.」

봉투는 그대로 두었다. 겉면에 한 줄이 늘었다.

「8월 22일. 열지 않음. 사유: 아직 안 옴.」

안 온 날도 적어야 한다. 안 적으면 나중 사람은 그 며칠 동안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고 읽는다.

4. 몇 번째 칸

열사흘째. 목요일 오전 10시.

문을 열자 어머니가 신을 신고 있었다.

“시장 가자.”

하람은 그 자리에 잠깐 서 있었다. 제일시장은 1994년에 없어졌다. 어제 뽑아 온 폐쇄건축물대장에 찍힌 멸실 연도와 같은 해였다.

고쳐 주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었다. 없다고 말하는 것은 고쳐 주는 것이다. 대신 하람은 내용만 물었다.

“뭐 사러?”

“실.”

“무슨 실.”

“검정. 굵은 거.”

“알았어.”

어머니는 신을 벗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가자는 말이 다시 나오지는 않았다.

하람은 오후에 실을 사 왔다. 시장이 아니라 큰길 건너 수예점에서 샀다. 어디서 샀는지는 말하지 않았고, 어머니도 묻지 않았다.

수첩 앞장 왼쪽 칸에 적었다. 「목요일 10시. 시장 가자고 하심. 실. 검정, 굵은 것. 사다 드림. 어디서 샀는지는 말 안 함.」

주민센터 회신은 아침에 왔다. 수기 주민등록표 조회 결과, 해당 없음.

하람은 「없음」이라고 적으려다 손을 멈췄다. 전화를 걸어 물었더니, 1989년 그 주소는 지금 관할이 아니라고 했다. 행정구역이 두 번 바뀌었고, 옛 장부는 옮겨 간 곳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고 했다.

「여기 없음. 다른 데는 안 봄.」

없는 것과 여기 없는 것은 다르다. 어제 창구 직원이 한 말과 같은 말이었다. 없어진 게 아니라 안 옮긴 것.

오후에는 제일시장 자리로 갔다. 상인회는 없었다. 재개발 뒤에 흩어졌고, 그 근처에서 아직 장사를 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일흔 몇쯤 되어 보였다.

하람은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이름도 대지 않았다. 그 골목이 어떻게 생겼었는지만 물었다.

“안쪽 골목 집들은 다 그랬지. 아래는 일하는 방이고 위가 살림이고.”

“다 2층이었어요?”

“거의. 대문 지나서 바로 계단이고.”

“계단은 다 비슷했어요?”

“집집이 달랐지. 땅이 삐뚤어서 어떤 집은 짧고 어떤 집은 한참 올라갔어.”

하람은 그 말을 그대로 적었다. 같은 골목이라고 같은 계단은 아니다.

물어보고 싶은 말이 하나 더 있었다. 그 집 수선하던 아주머니 기억나시냐고. 묻지 않았다. 그 사람과 어머니가 같은 골목에서 몇십 년을 알고 지냈다면, 두 사람의 기억은 이미 서로에게서 온 것일 수 있다. 두 사람이 같은 말을 해도, 서로 얘기해 온 사이라면 그건 확인이 아니다.

오후 5시에 최영숙이 종이를 내밀었다. 하람은 그것을 받고 곧 나왔다. 6시 전에 나와야 했다.

「수요일. 6시 10분. 문 두 번. 계단 참에 섰음. 3분쯤. 그다음 올라가심.」

계단 참이 다시 나왔다. 월요일에는 있었고, 화요일에는 없었고, 수요일에 또 있었다.

하람은 부탁을 하나 했다.

“혹시 서 계실 때, 아래에서 몇 번째 칸인지만 세어 주실 수 있으세요?”

“몇 번째 칸요?”

“네. 그것만요.”

왜냐고 묻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유를 말하면 그 이유가 최영숙의 눈에 먼저 앉는다.

내가 세면 되지 않느냐고, 계단에 서서 기다리면 되지 않느냐고 하람도 생각했다. 그런데 하람이 계단에 있으면 어머니는 6시에 아래층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어머니에게는 이미 딸이 와 있으니까.

수첩 뒷장 6줄째.

「내가 세면 그 일이 안 일어난다. 그래서 남한테 세어 달라고 했다. 그건 미룬 게 아니다.」

5. 회색 띠

오후 인양분 두 번째 토막이었다.

재혁은 겉면을 깎기 전에 작업등을 내려 코어 옆에 바짝 대고, 빛이 표면을 스치도록 각도를 낮췄다. 요 며칠 시작한 버릇이었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었다.

띠가 하나 보였다. 회색이었고, 두께는 2밀리쯤이었다.

“선생님.”

서진이 와서 같은 각도로 봤다.

“재구나.”

“496.3미터요.”

424.6미터에서는 반듯한 면으로 두 동강이 나고 나서야 그 회색을 봤다. 얼음은 재가 낀 자리부터 갈라진다. 거기가 제일 약하다.

오늘은 깨지기 전에 봤다.

“절단선 어디로 잡을까요.”

“띠에서 3센티 떨어뜨려. 위쪽으로.”

“그냥 피하면 되는 거예요?”

“자르는 데 힘이 들어가면 거기부터 가. 오늘은 알고 있으니까 안 보내면 돼.”

재혁이 표시를 하고 노트에 적었다. 496.3미터, 회색 띠, 두께 2밀리, 절단선 3센티 회피, 성분 분석은 인천.

“이게 몇 년 전이에요?”

“우리 층 세기로는 1,950해쯤.”

“그 화산이 뭔지는요.”

“몰라. 재를 뜯어서 유리 알갱이 성분을 봐야 알아. 화산마다 성분이 자기 지문 같은 게 있어서, 그린란드에서 나온 재하고 맞대면 같은 산인지 아닌지가 나와.”

“그린란드까지 갔어요?”

“공중으로 가면 반대쪽 극까지 가. 크게 터지면.”

서진이 장갑을 벗지 않은 채로 코어 옆을 짚었다.

“우리가 세는 층은 우리가 세는 거야. 밑으로 갈수록 오차가 쌓이고, 쌓인 오차는 우리가 못 봐. 우리 손으로 센 거니까.”

“그래서 이게 필요한 거군요.”

“이건 우리가 안 만들었어.”

재혁이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어디서 들은 말 같았는데 들은 적이 없었다.

“여긴 밖에서 뭘 못 들여와요. 비행기도 다음 달에나 와요.”

“그렇지.”

“그럼 셋째를 못 구하잖아요.”

“밖에서 못 들이면, 안에 원래 들어 있던 걸 찾는 수밖에 없어.”

인천에서 온 회신도 그날 왔다. 액 비율 8.5퍼센트를 커터 교체 기준으로 삼자는 제안에 대한 답이었다.

기준으로 못 쓴다고 되어 있었다. 8.5는 커터 한 벌이 닳는 동안 나온 값이고, 커터 한 벌은 표본이 하나다. 세 벌쯤 겪어야 그게 이 얼음의 성질인지 그 한 벌의 성질인지가 갈린다.

“그럼 이번 시즌에 두 번 더 갈아야 기준이 하나 생기네요.”

“이번 시즌엔 안 생겨.”

“그럼 언제 생겨요.”

“생기는 건 다음 사람 거야. 우리는 잠정이라고 쓰고 쓰는 거고.”

노트에는 이렇게 적혔다. 「잠정 기준 8.5퍼센트. 표본 1벌. 기준 아님. 8월 22일 인천 회신.」

6. 세 통

목요일 저녁. 강릉으로 보낼 세 통을 골랐다.

은재는 목록을 두 번 훑고 나서 물었다.

“1998년 거요?”

“네.”

“그거 다 읽은 거잖아요.”

“다 읽었죠.”

“다 읽은 걸 보내면, 안 아까운 걸 보내는 거 아니에요?”

경옥이 장부를 덮었다.

“나누는 건 여기가 다 없어졌을 때를 생각해서 하는 거예요. 안 아까운 걸 보내면 나눈 뜻이 없어요.”

“그럼 제일 아까운 걸 보내야 하는데요.”

“다 읽은 게 제일 아까운 거예요.”

은재가 잠깐 조용했다.

“그때 기계로 읽은 거니까요.”

“네. 그때 기계로 읽었으니까요. 나중 기계로 다시 읽을 게 그거예요.”

세 통은 연속된 깊이 구간이었다. 사이를 건너뛰면 그 구간은 순서가 끊긴다. 나눌 때는 덩어리로 나눈다.

포장은 두 겹으로 했다. 기록계를 통 안에 하나 넣고, 상자에도 하나 붙였다.

“상자 것만 보면 늦게 알아요. 방 공기가 5도 올라가도 통 속은 0.4도쯤 움직이고, 그것도 2시간쯤 뒤에 제일 높아요. 상자 것만 있으면 사건이 다 끝난 다음에 알아요.”

“통 안에 든 게 시료 온도고요.”

“시료가 실제로 겪은 거예요.”

떠나기 전에 세 통의 온도를 다 재서 적어 두었다. 은재가 이유를 먼저 말했다.

“떠나기 전 값이 없으면 도착해서 뭘 봐도 비교를 못 해요.”

“그거 어디서 배웠어요?”

“모르겠어요. 그냥 그렇던데요.”

같이 보낼 서류를 두고 한 번 걸렸다. 은재는 우리 서식을 같이 보내자고 했다. 인지일 칸, 모름 칸, 왜 모르는지 칸, 바꾼 것 칸. 저쪽도 이대로 적으면 나중에 두 방 기록을 맞대기가 쉽다.

“보내요. 강요는 하지 말고요.”

“왜요? 서식이 같아야 맞대기 편하잖아요.”

“편하죠. 그런데 저쪽이 우리 식으로만 적으면, 저쪽 기록은 우리 방이 하나 더 생긴 거예요.”

은재가 손을 멈췄다.

”…같이 어긋나겠네요.”

“우리가 안 보는 데는 저쪽도 안 봐요. 우리가 만든 칸이니까요.”

그래서 한 줄을 붙여 보냈다. 「참고용임. 그쪽 서식은 그쪽 것대로 쓸 것. 맞댈 때는 두 서식의 차이부터 적을 것.」

밤 8시. 두 곡선은 오늘도 나란히 그어졌다. 영하 29.9와 영하 30.2.

“강릉이 셋째예요?”

“반쯤요.”

“또 반쯤이에요?”

“같은 나라에 있고, 같은 데서 배운 사람들이고, 우리가 서식까지 보냈잖아요.”

“그럼 완전한 셋째는요.”

“아직 없어요.”

“있기는 해요?”

경옥은 잠깐 생각하더니 노트를 폈다. 어제 자기가 적은 줄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몰라요. 없으면 없다고 적어요.”

「셋째는 우리가 안 만든 것이어야 함. 현재 없음. 8월 22일 기준. 교정 위탁 신청 예정. 그 성적서가 셋째의 자리에 올 수 있는지는 받아 보고 정함.」


들인다는 것은 바깥에서 물건이 하나 들어오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만들지 않은 눈금이 방 안에 하나 생기는 일이고, 그것이 생기는 순간 그동안 우리가 만든 눈금들이 전부 서로를 확인해 주고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우리 손으로 맞춘 것은 아무리 여럿이어도 같은 방향으로 어긋나 있다. 서식을 나눠 주면 눈도 같이 나눠 준 것이고, 눈을 나눠 준 상대는 우리가 안 보는 자리를 똑같이 안 본다. 그래서 셋째는 사 오는 것이 아니라 빌리는 것이고, 빌릴 수 없는 자리에서는 원래 그 안에 들어 있던 것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우리보다 먼저 와서, 아무 뜻 없이 거기 눌려 있던 것.

점 두 개는 무엇이든 직선으로 만든다. 그래서 두 점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세 번째부터 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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