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공기] 제12화 - 맞댐

제12화 「맞댐」
1. 490미터
새 커터를 단 드릴이 처음으로 올라왔다.
내려가는 데 23분, 올라오는 데 22분. 어제와 같았다. 달라진 것은 드릴 머리에 붙은 날 세 장뿐이었다.
우재혁은 달력을 봤다. 캠프 철수까지 51일. 동그라미가 쳐진 다음 청소일까지 8일. 그 사이에 파야 할 것이 48미터였다.
그는 인양 시각을 적고 나서 코어를 받았다. 손끝으로 겉면을 훑어보니 어제까지와 감촉이 달랐다. 어제 것은 손가락에 밀가루 같은 게 묻었는데, 오늘 것은 모래처럼 떨어졌다.
“다르네요.”
“응.”
한서진은 부스러기 통을 떼어 저울로 옮겼다. 젖은 무게 16.4킬로그램. 체에 받쳐 30분을 기다렸다가 다시 쟀다. 마른 무게 15.4. 흘러나온 액이 1.0.
계산치는 토막당 15.6킬로그램이었다. 지름 실측 98.4밀리를 넣어 다시 낸 값이었다.
“모자란 게 0.2예요.”
“적어.”
재혁은 적었다. 그러고는 저울 눈금을 한 번 더 봤다. 헌 날 마지막 열흘 동안 이 칸에 적힌 것은 늘 0.5에서 0.6 사이였다.
“0.2면 거의 다 담긴 건데요.”
“거의 다 담겼다는 것도 오늘 값이야.”
두 번째 토막은 마른 무게 15.3이었다. 모자란 것이 0.3. 그날 490미터까지 파고 나서 재혁은 두 줄을 더했다. 오늘 부족분 −0.5킬로그램.
헌 날 열흘 동안은 하루에 1킬로그램 남짓 모자랐다. 절반이었다.
“줄었어요.”
“줄어든 게 아니야.”
“줄었잖아요.”
“어제 것하고 오늘 것 사이에 줄이 그어져 있어. 줄 위아래를 빼면 안 돼.”
재혁은 노트를 폈다. 어제 오후에 서진이 자로 대고 그은 굵은 가로줄이 그대로 있었다. 그 위가 헌 날 열흘, 그 아래가 오늘 두 줄이었다.
“그럼 이 0.5는 뭐예요.”
“오늘 값.”
“어제하고 비교를 못 하면 값이 무슨 소용이에요.”
“내일하고는 해.”
재혁은 액 비율 칸으로 갔다. 1.0을 16.4로 나누면 6.1퍼센트였다. 두 번째 토막은 6.4. 그 칸은 나흘 전에 새로 생긴 칸이었다.
숫자를 적어 넣다가 그는 손을 멈췄다.
“소장님.”
“왜.”
“이 칸은 줄 위에도 있는데요.”
서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네.”
두 사람은 다음 토막을 하러 갔다. 재혁은 자기가 방금 무슨 말을 한 건지 오후까지 몰랐다.
2. 20분
문경옥은 새벽에 자지 않았다.
화요일 오후 5시 20분에 진공 배기가 끝났다. 야간 당직 기사가 밸브를 잠갔고, 두 사람은 게이지 앞에 20분을 서 있었다. 바늘이 500마이크론에서 1,400까지 올라왔다.
“올라오는데요.”
“한 번 더 봐야 해요.”
40분째에 다시 봤다. 1,450이었다.
“거의 그대로예요.”
“그럼 습기예요.”
경옥은 종이에 두 값을 나란히 적었다. 새는 데가 있으면 바늘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간다. 남은 물기가 안에서 계속 김이 되고 있는 거라면 어느 값에서 서서 더 안 올라간다. 물이 낼 수 있는 김의 힘이 거기까지이기 때문이다.
“한 번 재면 올라왔다는 것만 알아요. 두 번 재야 멈추는지를 알고요.”
그 말을 하고 나서 경옥은 잠깐 이상했다. 어디서 들은 것 같은 말이었는데 들은 적이 없었다.
질소를 한 번 밀어 넣어 안을 씻어 내고 밸브를 열어 다시 뽑았다. 밤새 돌렸다.
수요일 아침 7시. 노은재가 문 앞에 와 있었다. 브리틀존 코어를 재운 지 323일째 되는 날이었고, 첫 절단까지 42일이 남아 있었다.
“오늘은 부르셨네요.”
“오늘은 종이가 아니라 바늘이라서요. 바늘은 두 사람이 봐도 한 번이에요.”
20분 뒤 480에서 510으로 올라왔다. 40분 뒤 515였다.
“올라오긴 올라왔어요.”
“멈췄어요.”
“멈춘 거랑 천천히 올라가는 거는 어떻게 갈라요?”
경옥은 대답 대신 40분을 더 기다렸다. 518이었다.
“이렇게 갈라요.”
9시 5분에 냉매를 넣었다. 통을 저울에 올려놓고 줄어드는 무게를 읽는 방식이었다. 3.72킬로그램이 줄었다.
“3.72 들어갔네요.”
“3.72가 나갔어요.”
경옥이 호스를 가리켰다.
“호스에 남는 게 있어요. 회수할 때 못 뽑은 것도 있고요. 넣은 건 아는데 든 건 몰라요.”
은재는 서식 두 칸에 따로 적었다. 「투입 3.72킬로그램(저울)」 「계통 잔류량 모름. 왜: 호스 잔류·회수 손실 미측정.」
9시 20분에 이호기가 돌았다. 소리가 예전보다 조금 낮았다.
두 사람은 문 안쪽에 서서 잠깐 그 소리를 들었다. 선반 스물여덟 줄이 어둠 속에 그대로 있었고, 통들은 이 새벽에 아무 일도 겪지 않은 것처럼 놓여 있었다. 겪지 않게 하려고 새벽을 쓴 것이었다.
“용량이 3퍼센트 큰 거라 그래요.”
“좋은 거예요?”
“모르죠. 다른 거예요.”
은재는 어제 만든 「바꾼 것」 칸에 첫 줄을 적었다. 「8월 20일 05시 20분∼8월 21일 09시 20분. 이호기 압축기 후속 모델 교체. 용량 +3%. 윤활유 종류 다름. 냉매 3.72킬로그램 투입.」
3. 60.00
구운 릴을 옮겨야 하는 날까지 10일이 남아 있었다.
대구에서 전화가 온 것은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선배님, 첫 개 구워서 옮겼습니다.”
“정렬은요.”
“1,000헤르츠짜리 걸었더니 999.7 나왔습니다.”
오정한은 자기 노트를 폈다. 어제 자기 데크에서 나온 값이 1,000.2였다.
“차이가 0.5네요.”
“어느 쪽이 맞는 겁니까?”
“모릅니다.”
한동규가 웃는 소리가 났다. 정한은 웃지 않았다.
“두 개를 맞대면 얼마나 다른지는 압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셋째가 있어야 압니다.”
“셋째를 어디서 구합니까. 표준연구원 갈 것도 아니고요.”
“벽에 꽂혀 있습니다.”
정한은 아침에 한 일을 이야기했다. 콘센트에서 나오는 웅웅거림을 한 시간 동안 녹음해 두었다가, 그것을 자기 데크로 재생하면서 주파수를 쟀다. 59.999헤르츠가 나왔다.
“1분만 재면 안 됩니다. 계통 주파수는 순간순간 흔들려요. 사람들이 한꺼번에 에어컨을 켜면 처집니다. 대신 전력회사가 하루 단위로 그 처진 것을 도로 채워 놓습니다. 시계가 안 늦어지게요. 그래서 길게 재면 60.00으로 모입니다.”
“그럼 선배님 데크는요.”
“0.002퍼센트요. 십만분의 2입니다.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시험 테이프는 1,000.2가 나왔다면서요.”
“그러니까요.”
전화기 저쪽이 조용해졌다.
“기계가 아니라 자였습니다. 서른 해 묵으면서 테이프가 조금 줄어든 겁니다. 줄어든 자로 재면 크게 읽히죠.”
“그럼 제 999.7도……”
“동규 씨도 콘센트를 재 보세요. 데크가 정확하다고 나오면 그 0.3은 동규 씨 테이프가 늘어난 겁니다.”
“그러면 저희 둘 값이 같아집니까?”
“안 같아집니다. 각자 얼마나 어긋났는지를 알게 되는 겁니다. 그게 같아지는 것보다 낫습니다.”
“왜요.”
“같아지면 맞은 줄 압니다. 어긋난 걸 알고 있으면 고쳐 놓고 옮길 수 있고요.”
정한은 종이에 세 줄을 적었다. 「8월 21일. 계통 험 1시간 평균 59.999. 이 데크 −0.002%. 시험 테이프 +0.02%. 테이프 쪽이 열 배 크다.」
“선배님, 자를 서로 보내서 맞대 보자고 하실 줄 알았는데요.”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벽은 두 집에 다 있으니까.”
전화를 끊고 정한은 봉투를 꺼냈다. 겉에 「1인의 짐작임. 판독 아님.」이라고 적혀 있고, 그 밑에 「8월 20일. 열지 않음.」이 있었다.
그는 지워진 글자 사진 여덟 장을 골라 따로 봉투에 담았다. 자기 짐작은 넣지 않았다. 대구로 보내는 봉투에는 한 줄만 썼다. 「무슨 글자로 보이는지만 적어 주세요. 제 생각은 안 보냅니다.」
그리고 원래 봉투 겉에 규칙을 늘려 적었다.
「대구에서 판독이 오면 연다. 안 오면 안 연다. 와도 먼저 열지 않는다. 그쪽 것을 종이에 옮겨 적은 다음에 연다.」
4. 지상 2층
열이틀째였다.
유하람은 오전 10시에 갔다가 11시 반에 나왔다.
어머니는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고, 하람이 온 것을 알았고, 열이틀 동안 처음으로 아무 말도 안 걸었다. 하람은 그것도 적었다. 「수요일 오전 10시. 조용했음. 나쁜 뜻인지 아닌지는 모름.」
나와서 주민센터로 갔다.
초본을 뗐다. 주소 변동 이력이 1991년부터 있었다. 그 위는 비어 있었다.
“1989년 것은 없나요.”
“전산으로 옮긴 게 1990년대 초예요.”
“그 전은 없어진 거예요?”
직원이 잠깐 화면을 봤다.
“없어진 게 아니라 안 옮긴 거예요. 종이로 된 건 따로 있는데 보존 기간이 지난 것도 있고요. 조회해서 연락드릴게요.”
하람은 그 문장을 수첩에 그대로 옮겨 적었다. 없어진 것과 안 옮긴 것은 다르다.
주민센터를 나와서 하람은 자기가 나온 초등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학적부는 준영구 보존이라고 했다. 본인 확인을 하고 오후 3시에 회신을 받았다. 1989년 당시 보호자 주소가 지번까지 적혀 있었다.
내 서류에 어머니 주소가 들어 있었다.
하람은 그 자리에 서서 잠깐 그것만 생각했다. 어머니 것은 어머니를 지나지 않는 데서 찾겠다고 규칙을 정해 놓고 이틀을 헤맸는데, 나온 데가 자기 학적부였다. 어머니에 관한 것이 어머니 바깥에도 적혀 있었다. 그것도 처음부터 적혀 있었다.
지번을 들고 정부24에서 건축물대장을 찾았다. 없다고 나왔다. 폐쇄건축물대장으로 다시 찾으니 나왔다.
지상 2층. 연와조. 1971년 사용승인. 1994년 멸실.
그 집은 2층이었다.
하람은 수첩 뒷장, 접어 놓은 「짐작」 칸을 폈다. 거기에는 한 줄이 있었다. 「옛날 집이 2층이었음.」
그 줄에 자를 대고 가로로 그었다. 위에 적었다. 「확인됨. 폐쇄건축물대장. 지상 2층.」
밑에 적었다. 「확인 안 됨. 계단이 몇 칸인지. 어머니가 저녁 6시에 그 집을 생각하는지.」
두 번째 줄을 쓰면서 손이 조금 느려졌다.
집이 2층이었다는 것과, 어머니가 그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는 것은 다른 말이었다. 앞엣것은 종이에 있었고 뒤엣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한 줄에 같이 적으면 둘 다 확인된 것처럼 보인다.
저녁에 최영숙이 종이를 건넸다.
「화요일. 6시 없음. 6시 45분에 문 한 번. 웃으심. 그냥 올라가심.」
하람은 오른쪽 칸에 옮겨 적었다. 「계단 참」이라는 말은 어제 종이에 있었고 오늘 종이에는 없었다. 그것도 그대로 두었다. 없는 날을 없다고 적는 것도 기록이었다.
5. 네 무더기
오후에 재혁은 어제 훑어 올린 6.1킬로그램을 쟁반에 부었다.
체를 두 개 준비해 뒀다. 눈이 굵은 것과 고운 것. 굵은 체에 남는 것, 두 체 사이에 걸리는 것, 고운 체까지 빠지는 것. 세 무리로 나눠 비율을 재면 가루가 얼마나 고운지가 숫자가 된다.
그런데 시료를 반으로 나누는 데서 막혔다.
서진이 옆에 와서 쟁반을 봤다.
“떠서 나누면 안 돼.”
“저도 알아요. 굵은 게 먼저 가라앉으니까 위에서 뜨면 고운 것만 뜨고요.”
“그럼 어떻게 하려고.”
“그걸 모르겠어요.”
“쌓았다가 갈라.”
쟁반 가운데에 가루를 원뿔로 쌓고, 그 원뿔을 십자로 갈라 네 무더기를 만든다. 마주 보는 두 무더기를 합치면 그게 전체와 같은 것으로 친다. 원뿔로 쌓는 동안 굵은 것이 옆으로 굴러 내려가는데, 네 방향으로 똑같이 굴러 내려가기 때문에 마주 보는 것끼리 합치면 그 치우침이 상쇄된다.
재혁은 두 번 쌓고 두 번 갈랐다. 세 번째에는 손에 익었다.
체질은 3분으로 정했다. 오래 흔들면 고운 가루끼리 눌려 붙어서 굵은 쪽으로 세어진다. 얼음은 영하에서도 서로 붙는다. 젖어 있으면 더 붙는다.
“액을 빼려면 30분 받쳐야 하는데요.”
“받쳐.”
“그동안 붙잖아요.”
“그러니까 액 재는 시료랑 체질하는 시료를 같은 걸로 하면 안 돼.”
재혁은 네 무더기 중 마주 보는 둘은 액으로, 나머지 둘은 체로 보냈다. 결과가 나왔다. 고운 체까지 빠진 것이 42퍼센트.
그는 그 숫자를 들고 한참 서 있었다.
“소장님.”
“응.”
“이걸 어디다 대요.”
“뭘.”
“헌 날 것하고 대려고 잰 건데, 어제 훑은 건 바닥에 가라앉은 거잖아요. 바닥에 가라앉는 건 원래 고운 거고요. 시추하면서 나온 부스러기하고는 다른 겁니다.”
서진이 아무 말도 안 했다.
“헌 날 시추 부스러기는 다 보내 버렸어요. 남은 게 없어요.”
“응.”
“그럼 오늘 이 42는 맞댈 게 없는 거네요.”
재혁은 체를 내려놓았다.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새로 만든 자에는 어제가 없네요.”
“아침에 네가 말했잖아.”
“뭘요.”
서진이 노트를 가져와서 뒤로 넘겼다. 액 비율 칸이었다.
7.6. 7.9. 8.1. 8.3.
그리고 오늘, 6.1과 6.4.
“여기 있어.”
“나흘밖에 없는데요. 그 칸 생긴 지가 나흘이잖아요.”
“그 전 것도 낼 수 있어.”
서진이 앞장으로 더 넘겼다.
“액은 안 뺐어도 젖은 무게는 처음부터 적었잖아. 계산치에서 빼면 남는 게 대충 액이야.”
재혁이 계산기를 들었다. 열 토막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뺐다. 정확한 값은 아니었다. 계산치를 지름 100밀리로 낸 때가 섞여 있어서 마지막에 다시 손을 봐야 했다.
그래도 방향은 나왔다.
7.4. 7.5. 7.8. 7.9. 8.0. 8.2. 8.3. 8.5. 8.6. 8.7.
“올라가고 있었네요.”
“응.”
“열흘 동안 계속요.”
“응. 나도 오늘 봤어.”
서진이 노트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적어 놓기만 하고 안 봤어. 적는 거하고 보는 거는 달라.”
날이 무뎌질수록 가루가 고와지고, 가루가 고와지면 겉넓이가 넓어져서 액을 더 물고 있는다. 그러니까 액 비율은 날이 얼마나 닳았는지를 매일 재고 있던 자였다. 아무도 그렇게 쓸 줄 모르고 열흘을 적었을 뿐이었다.
“그럼 다음 커터는 언제 갈아요?”
“8.5 넘으면 갈아.”
재혁은 인천 보고에 네 줄을 적었다. 입도 42퍼센트는 오늘부터의 기준선이며 헌 날과 맞댈 수 없다. 맞댈 수 있는 것은 액 비율뿐이다. 나흘치는 실측이고 그 앞 열흘치는 젖은 무게에서 되짚은 추정이므로 두 구간을 한 줄로 잇지 말 것. 다음 커터 교체 기준을 액 비율 8.5퍼센트로 제안한다.
마지막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어제가 있는 자는 어제부터 적고 있던 자뿐임.」
6. 두 줄
저녁 8시에 두 사람은 서식 앞에 섰다.
일호기 −29.9. 이호기 −30.3.
“0.4 차이 나요.”
“나요.”
“어느 쪽이 맞아요?”
“몰라요.”
은재가 볼펜 끝으로 두 값 사이를 짚었다.
“0.05도는 못 가른다고 하셨잖아요. 0.4는 가를 수 있는 거고요.”
“다르다는 건 알아요. 어느 쪽이 다른 건지는 몰라요.”
“그럼 나흘 겹쳐서 뭘 알아요?”
경옥이 두 줄을 손끝으로 나란히 짚어 내려갔다.
“얼마나 다른지를 알아요. 그거면 나중 사람이 건너가요. 8월 24일 뒤로는 이호기 값만 남는데, 그 값에서 0.4를 빼면 옛날 값하고 같은 자리에 놓을 수 있으니까요.”
“겹치는 나흘이 지나면 그 나흘은 없어지는 거 아니에요?”
“겹친 나흘은 나흘만큼이 아니에요. 그 뒤로 계속이에요.”
은재는 잠깐 생각하다가 셋째 줄을 짚었다. 더미 통이었다. 값 못 내는 파편 얼음과 기록계만 든 통. 두 냉동기 어느 쪽에도 매달려 있지 않은 통.
“저건 셋째 아니에요?”
경옥이 웃었다.
“셋째 맞아요. 반쯤.”
“반쯤이요?”
“그 기록계도 그저께 나랑 같은 얼음물에 담근 거예요. 같은 날, 같은 물, 같은 사람 손으로요. 다 같이 어긋나 있으면 셋이 모여도 안 갈라져요.”
“그럼 뭐가 완전한 셋째예요?”
“우리가 안 만든 거요.”
경옥은 그 말을 하고 나서 스스로 조금 놀란 것 같았다. 노트를 펴서 그 문장을 자기 손으로 적었다.
「셋째는 우리가 안 만든 것이어야 함. 현재 없음. 왜: 다 우리 손으로 맞춘 것임.」
은재는 「모름」 칸에 한 줄을 더했다.
「일호기와 이호기 중 어느 쪽이 맞는지 모름. 왜: 둘을 갈라 줄 셋째가 없음. 아는 것: 0.4도 차이. 기간: 8월 21일∼24일.」
문을 나서기 전에 은재가 돌아봤다.
“오늘 저 부르신 거요.”
“네.”
“바늘은 두 사람이 봐도 한 번이라고 하셨는데, 어제 종이는 혼자 읽으라고 하셨잖아요.”
“바늘은 안 적혀 있어요. 놓치면 없어요. 종이는 적혀 있고요.”
경옥이 불을 껐다.
“같이 볼 게 있고, 따로 봐야 볼 게 있어요.”
맞대는 일은 두 개를 나란히 놓는 일이 아니다. 나란히 놓기 전에, 둘이 같은 것을 재고 있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바닥에 가라앉은 것과 파내면서 나온 것은 같은 가루가 아니고, 아침의 사람과 저녁의 사람은 같은 사람이 아니며, 종이에 적힌 집과 사람이 걸어 내려가는 계단은 같은 명제가 아니다.
같은 것을 재고 있었다면, 맞댄 자리에서 얻는 것은 어느 쪽이 옳은가가 아니다. 얼마나 다른가다. 옳고 그름은 셋째가 있어야 갈리는데, 셋째는 대개 우리 손으로 맞추지 않은 것이어야 하고, 그런 것은 흔하지 않다. 다만 가끔 벽에 꽂혀 있다.
그리고 맞댈 짝은 새로 만들 수 없다. 새로 만든 자에는 어제가 없다. 어제가 있는 자는 어제부터 적고 있던 자뿐이고, 그런 자는 대개 아무 뜻 없이 며칠씩 채워 온 칸의 모양을 하고 있다.
적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르다.
노트는 벌써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