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공기] 제8화 - 모자람

제8화 「모자람」
1. 472미터
계량 규칙이 생긴 지 이틀째였다.
우재혁은 첫 토막의 부스러기 통을 저울에 올리고 눈금이 서기를 기다렸다. 13.6.
“열다섯이어야 하는데 열셋하고 조금이에요.”
“1.4 적어.”
“어제도 모자랐고 오늘도 모자라는데요.”
“매번 모자란 게 맞아.”
한서진은 통 바닥에 붙은 젖은 가루를 주걱으로 긁어 쟁반에 털었다.
“안 모자란 날이 오면 그날은 좋아진 게 아니라 뭘 잘못 잰 거야. 저울이 틀렸거나, 통에 어제 것이 남았거나.”
“그럼 어디로 가는 거예요, 모자란 건.”
“세 군데야. 시추액에 젖어서 통 밖으로 흘러나간 게 조금, 올라오다가 구멍 벽에 눌어붙은 게 조금, 나머지는 밑에 가라앉아.”
재혁이 노트에 세 줄을 적었다. 세 줄 다 정확한 양은 모른다고 옆에 적었다.
“그건 왜 적어요?”
“모르는 걸 모른다고 적어 놔야 나중에 아는 사람이 그 줄을 채워.”
두 번째 토막을 올렸다. 12.9였다. 오늘만 3.5킬로가 모자랐다.
“어제 2.7, 오늘 3.5. 합쳐서 6.2예요.”
“합계를 냈네.”
“칸을 만들었어요. 노트 맨 뒤에요.”
서진은 대답 대신 자기 노트를 폈다. 맨 뒤 장에 같은 칸을 그렸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걸 세어서 뭘 해요? 어차피 못 꺼내잖아요.”
“모자란 걸 세어 두면 어디 갔는지 언젠가는 알아. 안 세면 처음부터 그만큼이었던 게 돼.”
“처음부터 그만큼이었으면 안 되는 거예요?”
“안 되지. 밑에 쌓인 게 있는데 없다고 알고 있으면, 나중에 드릴이 내려가다 그걸 밟아.”
시추동 바닥의 구멍은 오늘도 조용했다. 그 안에서 무엇이 얼마나 가라앉는지는 아무도 보지 못한다. 보이는 것은 저울 눈금 두 개뿐이었다.
그날 두 토막, 6미터. 깊이 472미터.
2. 부품
이호기 압축기 부품은 토요일 오전에 왔다. 상자 두 개였다.
노은재가 복도에서 송장을 확인하고 문경옥에게 갔다.
“왔어요. 오늘 붙일까요?”
“오늘은 안 해요.”
경옥은 새벽에 기록한 서식 스물아홉 장을 아직 책상에 펴 놓고 있었다. 제상은 새벽 세 시에 걸어 마흔네 분 만에 끝났고, 방 온도는 이미 영하 30.2도로 돌아와 있었다.
“방은 다 식었는데요.”
“방은요.”
경옥이 셋째 줄 벽 온도계 옆에 놓인, 라벨 없는 통의 기록계를 가리켰다.
“통은 영하 28.4예요. 최고점을 다섯 시 십 분에 찍고 지금 여섯 시간째 내려오는 중인데 아직 1.6도가 남았어요.”
”…늦게 데워지고 늦게 식는다.”
“어제 은재 씨가 잰 거예요.”
은재는 그 말을 듣고 자기가 만든 통을 다시 봤다. 값을 못 내는 파편 얼음이 든, 시료가 아닌 통이었다.
“그러면 이호기를 지금 붙이면 어떻게 되는데요.”
“좋아져요.”
“좋아지는 건 괜찮은 거 아니에요?”
“좋아지는 것도 변화예요.”
경옥이 종이에 선을 하나 그었다.
“두 대가 같이 돌면 방이 설정보다 빨리 내려가요. 얼음한테는 오르는 것도 변화고 내려가는 것도 변화예요. 아직 안 식은 통에 대고 갑자기 끌어내리면, 그건 두 번째 사건이에요.”
“두 번이 아니라 한 번으로 겹쳐요.”
“기억하고 있네요.”
그리고 기계 쪽 사정도 있었다. 압축기를 갈려면 냉매를 뽑아내고, 배관을 진공으로 당겨 안에 남은 습기를 다 빼내고, 다시 채워야 한다. 진공을 당기는 데만 반나절이 걸린다.
“급하게 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습기가 남아요. 남은 습기는 팽창밸브에서 얼어요. 그러면 몇 달 뒤에 표가 나는데, 그때 가서는 아무도 오늘을 원인이라고 생각 안 해요.”
”…오늘을 못 찾는다.”
“그래서 반나절을 그냥 당겨요.”
경옥이 정한 시각은 월요일 새벽 세 시였다. 통이 다 식은 뒤이고, 사람이 제일 적고, 기록 서식이 이미 그 시각에 맞춰져 있었다.
은재는 상자 두 개를 뜯지 않고 복도 벽에 세웠다. 그리고 상자 옆면에 유성펜으로 적었다.
도착 8월 17일. 개봉 예정 8월 19일 세 시. 미개봉 사유: 시료 온도 미회복.
경옥이 지나가다 그것을 읽었다.
“그것도 기록이에요.”
3. 열네 날
오정한은 아침에 2번 릴을 걸었다.
이틀 전 오십 도에 여덟 시간 구운 것이었다. 구운 테이프는 다시 물러지기 전까지만 쓸 수 있다. 남은 날은 열네 날이었다.
먼저 속도를 찾아야 했다. 상자에는 아무 표시가 없었다. 초당 19센티로 돌리자 남자 목소리가 낮고 늘어졌다. 38로 올리자 자리를 찾았다.
트랙은 더 성가셨다. 폭이 좁게 두 줄로 나뉜 것을 한 줄짜리 헤드로 읽으면 반대 방향 소리가 같이 들어온다. 정한은 처음 30초를 두 방식으로 다 떠 보고, 뒤집힌 소리가 섞이지 않는 쪽을 골랐다.
옮기는 설정은 늘 같았다. 초당 9만 6천 번, 스물네 자리.
“잡음을 왜 안 지워요?”
작업실에 잠깐 들른 이웃 가게 주인이 물었다. 헤드에서 나는 소리가 복도까지 들렸던 모양이었다.
“지울 수는 있죠.”
“그럼 지우지.”
“이 잡음이 나중에는 정보입니다. 어떤 기계로 녹음했는지, 어디를 지웠는지, 그런 게 다 잡음 속에 있어요.”
“그런 걸 누가 봅니까.”
“저는 안 봅니다. 저 말고요.”
옮기는 데 서른한 분이 걸렸다. 정한은 파일을 만들고 나서, 그 파일의 수를 뽑아 종이에 적었다. 서른두 자리쯤 되는 수였다.
“이건 뭡니까?”
“파일의 지문 같은 겁니다. 나중에 다시 뽑아서 이 수하고 다르면, 그동안 어디서 한 자리가 바뀐 거예요.”
“파일이 상합니까?”
“상합니다. 그게 제일 고약해요.”
정한이 종이를 서랍에 넣었다.
“테이프는 상하면 소리가 이상해집니다. 파일은 상해도 멀쩡하게 들려요. 아무도 모르는 채로 그게 원본이 됩니다.”
사본은 세 벌을 만들었다. 다른 종류의 매체에 두 벌, 그중 한 벌은 다른 건물에 뒀다.
오후에 의뢰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1번 릴은 이번에 못 한다고 말했다.
“열네 날 남았다면서요.”
“열네 날로 두 개를 하면 두 개가 다 나빠집니다. 1번은 굽는 게 아니라 삭는 겁니다. 굽는 것하고 정반대로 다뤄야 하는데, 지금 걸면 첫 바퀴에서 갈라져요.”
“그럼 그건 그냥 놔둡니까?”
“통풍되는 선반에 혼자 뒀습니다. 봉하면 자기가 낸 냄새를 자기가 또 먹고요, 다른 릴 옆에 두면 옆에 있는 것한테 옮습니다.”
“옮아요?”
“옮습니다. 그래서 혼자 둡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정한은 2번 릴의 앞머리를 다시 봤다. 소리가 실리지 않은 선행 테이프에 연필로 쓴 글자 한 줄이 있었다. 지워지지 않은 글자였다.
정한은 그것을 40배로 들여다봤다. 획을 꺾는 각도, 세로획 끝에서 살짝 올라가는 갈고리. 1번 릴 케이스에 눌린 자국으로만 남은 그 글자와 같은 버릇이었다.
같은 사람 손이었다.
그런데 지워진 자리와 여기 남은 글자는 겹치는 데가 하나도 없었다. 손은 같고 글자는 여전히 몰랐다.
정한은 뒤집어 놓은 후보 종이를 오늘도 뒤집지 않았다.
“손은 같은데 글자는 모릅니다.”
혼잣말이었다.
“하나 알았는데, 모르는 건 하나도 안 줄었어.”
4. 여드레째
토요일 오전 열 시였다.
유하람은 신청서를 사흘 전에 받아 뒀지만 아직 한 칸도 채우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칸이 못 하는 것만 물었다.
식사 준비를 혼자 할 수 있습니까. 약을 정해진 시각에 먹을 수 있습니까. 최근에 있었던 일을 기억합니까.
하람은 수첩을 폈다.
여섯 줄이 있었다. 일요일에 뭔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는 것. 월요일 단 3센티, 되박음질 두 번. 화요일 서랍, 상자가 셋이면 함. 수요일 참기름집, 사람은 맞고 때가 틀림. 목요일 정숙이라고 불렀음. 금요일 오전 열한 시, 국을 두 번 데웠음, 불은 두 번 다 껐음.
칸이 채워졌다. 처음으로 수첩이 쓰였다.
여드레 동안 적은 여섯 줄이 서식 한 장으로 옮겨 가는 동안, 하람은 자기가 무엇을 적어 왔는지를 처음 밖에서 봤다.
그런데 다 옮기고 나니 종이 위의 어머니는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었다.
불을 두 번 다 껐다는 것을 적을 칸이 없었다. 상자가 셋이면 서랍을 넣는다는 것도 없었다. 되박음질 두 번도, 실이 걸렸을 때 당기지 말라고 손을 막은 것도 없었다.
하람은 여백에 적었다.
미싱을 함. 단 3센티, 되박음질 두 번. 실이 걸리면 안 당기고 푼다. 국을 두 번 데웠지만 불은 두 번 다 껐다. 앞치마 끈을 앞에서 묶던 사람을 기억한다.
칸 밖에 적은 것을 아무도 안 읽을 수도 있었다. 그래도 지우지 않았다.
못 하는 것만 적으면, 종이 위에서 이 사람이 없어졌다.
부엌에서 물소리가 그쳤다. 송미강이 손을 닦으며 나왔다.
“정숙이는 왜 요새 안 오니.”
하람은 언제 왔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건 사흘 전에 그만두기로 한 것이었다.
“이모가 뭐 잘했어?”
“시침. 시침을 잘했어. 손이 빨라.”
“엄마보다?”
“빠르기는 걔가 빨라. 근데 마무리는 내가 했어. 걔는 끝을 안 봐.”
미강이 앉으면서 무릎을 짚었다.
“걔 없으면 못 했어. 둘이 해야 하루에 열 벌 해. 혼자 하면 네 벌이야. 여섯 벌이 모자라.”
하람은 그 말을 두 번 들었다.
혼자 하면 네 벌이라는 말을.
“엄마, 여섯 벌 모자라면 어떻게 했어?”
“미리 말했지. 오늘은 네 벌밖에 안 된다고. 말 안 하고 네 벌 하면 욕먹어. 말하고 네 벌 하면 그건 네 벌인 거야.”
하람은 수첩을 폈다가, 앞장이 아니라 뒷장을 폈다.
거꾸로 쓰기 시작한 쪽이었다. 첫 줄에 「이레째. 오늘은 오전에 왔다.」가 있었다.
그 밑에 두 번째 줄을 적었다.
「여드레째. 나는 열 벌을 혼자 하려고 하고 있다.」
신청서의 주 수발자 칸에 자기 이름을 썼다. 이름 옆에 연필로 작게 (1명)이라고 적었다가, 지웠다.
지운 자리에 눌린 자국이 남는다는 것을 하람은 생각하지 못했다.
앞장에는 일곱 줄째를 적었다.
「토요일 오전 열 시. 정숙 이야기를 어머니가 먼저 꺼냈음. 시침. 손이 빠름. 마무리는 어머니가 했음. 둘이 하면 하루 열 벌.」
5. 여섯 리터 반
저녁에는 붓는 일이 있었다.
파낸 만큼 시추액을 부어야 한다. 액면이 정해진 깊이보다 내려가면 구멍이 제 무게에 눌려 천천히 닫히기 시작한다. 세우는 게 아니라 안 무너지게만 하는 일이다.
“한 토막에 얼마나 부어요?”
“40리터 조금 안 돼. 코어로 나가는 게 24, 부스러기가 16.”
재혁이 계산했다.
“두 토막이면 여든이네요.”
“그래. 오늘은 몇 들어갔는지 봐.”
배럴을 기울여 붓고, 눈금 달린 가는 강선을 내려 액면을 짚었다. 정해진 깊이에 액면이 닿았을 때, 들어간 양은 일흔셋 하고 반이었다.
“여섯 리터 반이 안 들어갔어요.”
“왜 안 들어갔지.”
”…밑에 여섯 리터 반짜리 뭔가가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재혁이 노트 맨 뒤 칸을 봤다. 저울로 잰 누계는 6.2킬로였다. 얼음은 물보다 조금 가벼우니까 6리터 반이면 6킬로 남짓이다. 대략 그만큼이었다.
“딱 맞아요.”
“이틀 치야.”
서진이 강선을 감으며 말했다.
“액은 차가운 데로 내려가면 쪼그라들어. 붓는 양하고 아래에서 차지하는 부피가 정확히 같지가 않아. 하루치 차이는 그 오차에 다 묻혀.”
“그럼 오늘 맞은 건 우연이에요?”
“우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열흘을 봐. 열흘 치가 계속 같은 쪽으로 어긋나면 그건 오차가 아니야.”
“두 방법이 같이 틀릴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두 개를 하는 거야. 하나만 하면 틀려도 몰라.”
재혁이 계산기를 두드렸다.
“하루에 3.5킬로씩 남으면요, 쉰 날이면 175킬로예요.”
“응.”
“그게 다 밑에 있으면요?”
“드릴이 내려가서 설 자리가 없어.”
서진이 달력을 가져왔다. 남은 날에 표시를 하기 시작했다.
“열흘에 하루씩은 안 파. 빈 드릴로 내려가서 바닥을 훑어 올릴 거야. 그날은 진척 0미터야.”
“안 파는 날을 미리 적어요?”
“그래야 그날이 사고가 아니라 계획이 돼.”
재혁이 그 말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철수까지 쉰다섯 날이고 오늘은 이미 팠다. 남은 쉰네 날에서 안 파는 다섯 날을 빼면 마흔아홉 날이다. 하루 6미터면 294미터. 지금 472미터니까 766미터에서 끝난다.
“760으로 보내 놨으니까 6미터 여유가 있어.”
인천에서 온 전문은 세 줄이었다.
시즌 목표 760미터 하향 접수. 계량 규칙에 대한 질의 세 건. 그리고 마지막 줄.
「1,100미터에서 있었던 일」 수신함. 규정 개정안 검토 자료로 첨부함.
서진은 그 마지막 줄을 두 번 읽었다.
“뭐라고 왔어요?”
“첨부한대.”
“그게 좋은 거예요?”
“응.”
서진이 전문을 접었다.
“사람 얘기가 아니라 자료가 됐다는 거니까. 자료는 다음 사람이 읽어.”
6. 다섯 통
저녁의 저온시료동은 조용했다.
경옥이 계산지를 폈다. 3월에 130통이 온다. 지금 확보한 자리는 124통, 여기에 1998년 통을 세로로 잘라 확보한 한 통을 더해 125통이다.
“다섯 통이 모자랐죠.”
“네.”
“이제 일곱이에요.”
은재가 고개를 들었다.
“더미 통 두 개 때문이에요.”
“네.”
”…제가 두 개 만들자고 해서 다섯이 일곱이 됐네요.”
경옥이 계산지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다섯이 일곱이 된 게 아니에요. 다섯일 때도 자리가 모자랐는데 그때는 얼음 자리만 셌던 거예요. 재는 자리도 자리예요.”
넣을 데는 더 없었다. 통로는 며칠 전에 줄자로 재 보고 20센티를 못 줄인다는 결론이 났고, 위 칸은 사다리와 천장 온도 때문에 더 못 올렸다.
“다른 데로 나누는 건 어때요?”
은재가 물었다.
“강릉 쪽에도 저온실 있잖아요.”
“있어요. 원래 나눠 두는 게 원칙이에요. 한 방이 서면 다 잃으니까.”
“그럼 왜 안 하고 계셨어요?”
“나누면 한 코어가 두 방에 있게 돼요. 종이가 두 배로 들어요. 그리고 옮기는 동안이 제일 위험하고요.”
경옥이 볼펜 뚜껑을 물었다 뗐다.
“그래도 해야죠. 나누는 것도 지키는 거예요.”
전화를 걸어 확인한 결과, 그쪽 여유는 세 통이었다.
“세 통만요?”
“세 통이면 세 통이에요. 대신 아무 세 통이나 보내면 안 돼요.”
“왜요?”
“자른 자리가 한 군데여야 해요. 600에서 620미터 구간처럼 붙어 있는 걸 통째로. 여기저기서 하나씩 빼서 보내면, 나중에 이 코어를 읽는 사람이 순서를 다시 세워야 해요.”
“섞으면 안 된다.”
“섞은 건 못 풀어요.”
일곱에서 셋을 빼면 넷이었다. 네 통은 여전히 갈 데가 없었다.
“남은 네 통은 어떻게 해요?”
경옥이 서식을 한 장 꺼냈다.
“모자란다고 적어서 보내요. 인천 본원하고, 남극 캠프하고.”
“남극에도요?”
“거기서 얼음을 캐서 보내는 거니까요. 받는 쪽이 자리가 없다는 걸 보내는 쪽이 알아야죠.”
은재가 서식을 받아 들었다.
“근데 적어 보낸다고 자리가 생기는 건 아니잖아요.”
“안 생겨요.”
“그럼요.”
“자리가 모자라는 걸 3월에 알면 그건 사고예요. 8월에 알면 그건 숫자예요.”
경옥이 계산지를 접었다.
“숫자는 회의에 올라가요. 사고는 그날 밤에 누가 뛰어다녀요.”
“그래도 못 받으면요?”
“그러면 우리가 못 받은 게 아니라, 우리가 못 받는다고 말한 걸 아무도 안 읽은 거예요.”
경옥이 은재를 봤다.
“그것도 달라요. 다음에 같은 일이 생겼을 때, 우리가 말을 안 한 건지 말이 안 닿은 건지를 알 수 있으니까.”
은재가 서식 첫 칸을 채웠다.
부족 4통. 8월 17일 인지. 미해결.
날짜를 적는 칸에 원래는 「작성일」만 있었다. 은재는 그 옆에 칸을 하나 더 그리고 「인지일」이라고 썼다. 언제 썼는지 말고, 언제 알았는지를 적는 칸이었다.
경옥이 그걸 한참 봤다.
“인지일.”
”…이상해요?”
“아니요.”
경옥이 서식을 받아 서랍에 넣었다.
“그거 좋네요. 다음 서식부터 다 넣어요.”
모자란 것은 없어진 것이 아니다. 어딘가에 있는 것이다.
다만 세어 두지 않으면, 처음부터 그만큼이었던 것이 된다. 그러면 아무도 그것을 찾지 않는다.
세어 두면 그것은 부족이 된다. 부족은 숫자이고, 숫자는 종이에 실려 다음 사람에게 간다.
말하고 네 벌을 하면 그것은 네 벌이다. 말하지 않고 네 벌을 하면 그것은 여섯 벌을 못 한 것이다. 같은 네 벌인데 다른 일이다.
고치는 일에도 때가 있다. 좋아지는 것도 변화이고, 변화가 겹치면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손은 같고 글자는 모른다. 하나를 알아도 모르는 것이 줄지 않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도 알아낸 하나는 적어 둔다.
안 파는 날을 달력에 미리 적으면, 그날은 사고가 아니라 계획이 된다.
그리고 언제 썼는지 옆에, 언제 알았는지를 적는 칸이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