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공기] 제48화 - 엶

제48화 「엶」

1. 688미터

목요일 아침 여덟 시에 드릴이 내려갔다.

캠프 철수까지 15일. 케이블 눈금은 682에서 출발했다. 내려가는 데 23분, 올라오는 데 22분. 서른여섯째 같은 수였다. 첫 토막 685. 둘째 토막 688. 새 날로 스물여섯째였다.

토막 길이는 2.96과 2.95. 스물다섯째였다.

케이블 누계 150.00. 코어 누계 147.65. 차 2.35. 증분 0.09.

스물다섯 점이었다. 홀수였다. 가운데는 열셋째 하나였다.

재혁이 작은 수부터 늘어놓고 셌다. 열셋째는 0.09였다.

「가운데: 0.09. 스물다섯 점. 홀수.」

거리 합은 0.20이었다. 새 점이 가운데와 같은 수여서 더해진 거리가 없었다. 어제와 같은 수였다.

0.20을 25로 나누면 0.0080이었다. 셋째 자리에서 끊으면 0.008이었다.

어제도 0.008이었다. 어제는 0.20을 24로 나눈 0.0083을 끊은 것이었다.

재혁은 연필을 놓고 그 두 줄을 나란히 보았다.

「흩어짐: 0.008. 어제 0.008. 같은 수.」

그 밑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어제는 0.0083을 끊은 0.008. 오늘은 0.0080. 같은 수지만 같은 값 아님. 끊는 자리가 같게 만듦.」

연필 끝이 종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셋째 자리에서 끊기로 한 것은 8월에 서진이 정한 것이었고, 왜 셋째 자리인지는 종이에 없었다. 어제까지는 물어보면 되는 일이었다.

오늘부터는 아니었다.

재혁은 야장 왼쪽 여백에 새 말을 하나 만들어 적었다.

「묻고 싶었음: 왜 셋째 자리에서 끊는지. 안 물음. 9/26.」

적어 놓고 보니 그 말이 낯이 익었다. 어디서 봤는지 생각해 보았는데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 어디서도 안 봤을 것이다.

서진이 시추동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늘 세 시에 점검표 마저 채워. 장비 목록이랑 시료 상자 수.”

“예.”

서진은 그 말만 하고 윈치 쪽으로 갔다.

재혁은 야장에 적었다.

「들음: 점검표 세 시. 장비 목록. 시료 상자 수.」

그리고 한 줄 밑에.

「이건 일임. 판단 아님. 일은 듣는 것. 판단은 안 듣는 것. 가름은 내가 함.」

헛돎은 새 열흘의 여섯째 날이었다. 1번 0회, 2번 0회. 10월 1일까지 안 본다.

야장 맨 위 칸에는 「인계서:」라고만 적고 비워 두었다. 칸을 만든 지 닷새째였다.

맨 밑에 한 줄.

「9/26. 안 듣는 날 첫째.」

2. 596

같은 시각 인천은 오후였고, 저온시료동은 재움 359일째였다. 절단까지 6일. 냉동기 한 대로 서른한째 날이었다.

오늘 걷는 사람은 경옥이었다. 은재는 전실이었다.

경옥이 종이에 짐작을 먼저 적었다.

「짐작: 600.」

「이유: 자 595~612. 가운데 603. 내 손은 덜 걷음. 지난 점 593. 가운데보다 밑으로.」

「싶었음: 2. 593보다 위로 쓰고 싶었음. 자 안에 넣고 싶었음.」

은재가 유리창 너머에서 그 종이를 보았다. 안 보이는 거리였지만 몇 줄인지는 보였다. 세 줄이었다.

6시 20분에 경옥이 들어갔다.

주걱과 통을 들고 두 번째 선반 밑으로 갔다. 늘 긁던 자리였다. 손바닥만큼. 9분.

6시 29분에 나와서 저울에 올렸다. 눈금이 흔들리다 섰다. 10초를 세고 읽었다.

은재가 전실 벽에 적었다. 593 옆, 595 옆에.

“자 안이에요.”

“네.”

“짐작 차 4예요.”

“네.”

경옥은 종이에 적었다.

「값 596. 짐작 600. 차 4. 밑. 자 595~612. 안. 밑에서 둘째.」

은재가 방한복 소매를 걷으며 말했다.

“지난 점은 밖이었어요.”

“그때 자로 3 밑이었죠.”

“지금 자로는 2 밑인데요.”

“지금 자로는 안 읽어요. 그때 자를 옆에 적어 뒀잖아요.”

“아, 예.”

“오늘 것만 지금 자로 읽어요.”

“그러면 9월 19일 줄이 어떻게 돼요.”

9월 19일에 적어 둔 줄은 이랬다. 「경옥 점이 자 밖이면 사람 쪽. 단 한 번은 값일 수 있음.」

경옥이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

“안 풀려요.”

“두 점인데요.”

“두 점이 서로 다른 말을 하니까 안 풀리는 거예요. 둘 다 밖이었으면 사람 쪽이고, 둘 다 안이었으면 값이었어요. 하나씩이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셋째 점이요.”

“9월 30일. 화요일이에요.”

“오늘 정하시는 거예요?”

경옥이 은재를 보았다.

“평일 점은 화요일하고 목요일이에요. 9월 23일에 적었어요. 값 나오기 전에요.”

“아, 그럼 날짜는 이미 있던 거네요.”

“날짜는 값이 못 밀어요. 요일로 정해 놓으면요.”

가을 표 스물여덟째 줄에는 어제 것이 들어갔다. 9월 25일. 열세 시간. 바깥 18.4도. 문 두 번. 관측소 61퍼센트. 「6시 20분. 주걱. 통. 8분. 은재. 혼자. 전실에 경옥.」

「우리가 건드린 줄」은 열엿새째였다.

온도계는 −30.0이었다.

3. 10시 50분

정한은 아침 여덟 시에 종이를 펴고 새로 그은 칸에 수를 적었다.

「짐작: 11:00.」

「이유: 25분 등차. 다섯 점. 8:55 9:20 9:45 10:10 10:35.」

어제 「머리에 든 것」 종이에 적어 둔 수와 같았다. 같은 수를 두 번 적는 것이 이상한 일인지 아닌지 정한은 판단하지 않았다. 판단하면 그것도 머리에 드는 것이 된다.

압흔 사진은 안 보는 날 여섯째였다. 다음 판독은 9월 30일이었고, 그 전까지는 서랍을 안 연다.

그러고 나서 일을 했다. 다섯째 릴의 폐테이프를 걸어 돌렸다. 22회째였다. A-D 통 값은 열넷째로 1.0이었다. 셋째 릴은 여전히 밀려 있었다.

손이 본물건 쪽으로 간 시각은 10시 50분이었다.

정한은 손목시계를 보고 그 자리에 섰다. 손은 릴 통 뚜껑 위 5센티쯤에 있었고, 아직 닿지 않았다.

종이로 가서 적었다.

「값 10:50. 짐작 11:00. 차 10분. 앞.」

등차가 깨졌다. 다섯 점이 25분씩 뒤로 가다가 여섯째에서 15분만 갔다.

정한은 의자에 앉아서 한참 있었다.

적었더니 달라진 것인지, 적지 않았어도 오늘은 10시 50분이었을 것인지. 그것이 오늘의 물음이었고 답은 없었다.

한 점이었다.

「한 점. 못 읽음. 열 점까지 안 읽음. 열 점 뒤에도 못 읽을 수 있음. 그러면 못 읽는다고 적음.」

종이 맨 위로 올라가서 줄 이름을 적었다.

「줄 1: 짐작 없음. 9/13~9/25. 다섯 점. 25분 등차.」

「줄 2: 짐작 있음. 9/26~. 첫 점 10:50.」

「줄 1과 줄 2를 한 줄에 못 씀. 같은 손이지만 같은 줄 아님.」

11시 50분에 갓등을 옮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열이레째였다. 안 했다.

오후에 본물건 릴을 옆에서 보았다. 방에 내놓은 셋째 날이었고 10월 6일까지 열흘이 남아 있었다.

만지지 않았다. 갓등을 낮게 눕혀 릴 옆면에 빛을 거의 눕히다시피 걸었다. 감긴 테이프의 옆면이 나이테처럼 보였다.

세 군데가 살짝 부풀어 있었다. 한 바퀴를 빙 도는 아주 얕은 띠였다.

이음이었다. 옛날에 끊어진 데를 이을 때 뒷면에 붙이는 이음 테이프는 본 테이프보다 두껍고, 그 두께가 한 바퀴를 돌면서 그 반지름에만 얹힌다. 겹이 천 겹이면 두께 하나가 천 번 쌓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자리만은 도드라진다.

부푼 자리 옆으로 색이 살짝 다른 데가 있었다. 이음 테이프의 풀이 수십 년에 걸쳐 옆 겹으로 배어 나온 자국이었다. 배어 나온 데는 감긴 채로 옆 겹과 살짝 붙는다. 풀 때 소리가 나면 이미 늦은 것이다.

정한은 종이에 적었다.

「이음 흔적: 겉에서 보임. 셋. 풀 배어남 있음.」

「안쪽은 모름. 지금 세면 지금 값. 10/6에 풀면서 셀 것. 그때 값이 진짜 값.」

의뢰인 동규에게서는 오늘도 연락이 없었다. 분모 넷째 날이었다.

「1/4.」

4. 창가

목요일 아침 8시 반에 하람이 어머니 집 문을 열었다.

마흔여덟째였다.

냉장고 자석 밑 종이에는 「오늘: 목요일.」이 있었다. 그 옆에 하람이 지난주에 붙인 종이와 어머니가 정하신 종이가 나란히 있었다. 둘 다 여덟 시 반이었다.

식탁 위 접시는 없었다. 어제 어머니가 버리셨다.

제비 통에서 둘째 블록 둘째 장을 뽑았다. 「실패」였다.

실패는 자리 열흘째 그 자리에 있었고 감긴 실은 11이었다. 어제와 같았다. 바늘은 6이었고 자리 나흘째였다.

「목요일. 실패 11. 자리 열흘째. 바늘 6. 자리 나흘째.」

센터까지는 걸어서 10분이었다. 어머니는 베이지 카디건을 입으셨다.

하람은 주머니에서 어제 적어 둔 짐작 종이를 꺼내 한 번 읽고 다시 넣었다.

「창가 자리 안 비어 있을 것. 어머니 탁자 끝에 앉으실 것. 9/23에 그랬음. 두 번은 둘. 방향 아님.」

들어갔을 때 창가 자리는 비어 있었다.

회색 조끼 어르신이 오늘은 안 나오셨다고 담당자가 말했다.

어머니는 창가를 한 번 보시고, 창에 제일 가까운 탁자 끝에 앉으셨다.

하람은 벽 쪽에 서서 종이를 꺼냈다.

「창가: 비었음. 짐작 틀림. 탁자 끝: 앉으심. 짐작 맞음.」

한 장에 두 개를 적었더니 반이 맞고 반이 틀렸다.

반은 값이 아니었다. 맞았다고 적을 수도 없고 틀렸다고 적을 수도 없었다. 나중에 이 종이를 읽는 사람은 이 점을 어느 쪽으로도 못 센다.

「짐작은 한 장에 하나. 내일부터. 오늘 것은 못 셈. 못 세는 점이라고 적음.」

그리고 한 줄 더 적었다.

「창가 비었는데도 탁자 끝. 비어서 거기 앉으신 것 아님. 왜인지는 안 적음.」

담당자가 다가왔다. 손에 봉투가 있었다. 지난 월요일에 하람이 맡긴 것이었고, 그때는 봉해져 있었다.

봉투는 열려 있었다.

“열었습니다. 읽었습니다.”

“예.”

“고칠 것은 없었어요. 저희가 적는 것보다 자세해서 오히려 저희가 보태야 할 것 같습니다.”

담당자가 봉투를 내려놓고 물었다.

“그런데 이건 언제부터 적으셨어요?”

하람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여름이었다. 여름 어느 토요일이었던 것은 확실했다. 첫 줄에 날짜가 없었다. 수첩 첫 장을 머릿속으로 넘겨 보았는데, 첫 줄은 어머니가 그날 또렷하게 말씀하신 것 하나였고 그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모르겠어요.”

“아, 예.”

“적어 두질 않았어요. 시작한 날을요.”

담당자가 웃었다.

“저희도 그런 게 많습니다.”

하람은 수첩을 꺼내 맨 앞 여백에 적었다.

「적기 시작한 날: 모름. 여름. 토요일. 안 적었음.」

「오늘부터는 시작한 날을 적음.」

담당자가 종이 두 장을 주었다. 센터 둘째 주 기록이었다.

첫 주 것에는 손잡이 줄이 있었다. 둘째 주 것에는 없던 줄이 하나 있었다.

「9/23 월 — 창가 쪽 다른 분 계심. 탁자 끝에 앉으심.」

「9/26 목 — 창가 비었음. 탁자 끝에 앉으심.」

하람이 그 두 줄을 한참 보았다.

“이건 왜 적으셨어요?”

“두 번 같으면 적습니다.”

“이유는요.”

“저희는 왜인지는 안 적습니다.”

“저도요.”

담당자가 하람을 보았고, 하람이 종이를 접었다.

최영숙 씨 종이는 그날 새벽에 이미 적어 둔 것이었다. 39차였다. 목요일은 두 분이 같이 나오시는 날이다.

「목요일. 6시 20분 문 한 번. 두 분. 계단 참. 손잡이 잡으셨음. / 흐림 / 새것 / 슬리퍼 / 손에 든 것: 없음.」

손잡이는 열여드레째였다.

5. 8번

남극은 오후였다.

토막 끝 짝 표기는 5와 6, 11이었다. 열이레째였다. 열일곱 점이 되었고 홀수여서 가운데는 아홉째 하나였다. 아홉째는 11이었다.

거리 합 10을 17로 나누면 0.59였다. 0.6밀리였고 눈금은 1밀리였다. 선은 15였고 오늘 11은 선 밑이었다.

부족분은 스물여섯 점째였다. 마른 무게 15.20과 15.18을 더해 30.38. 부족 0.82. 쏠림을 뺀 값 +0.11.

「안 봄. 열엿새째.」

날짜 있는 합계에 여덟째 날 0.82를 적고 누계 6.37을 적었다.

입도는 스물셋째였다. 세 종. 21분.

세 시에 철수 점검표의 장비 목록과 시료 상자 수를 채웠다. 「잔여 작업」 칸은 9월 28일 뒤에 채우기로 한 대로 비워 두었다. 회신 기한은 10월 3일이었다.

그러고 나서 재혁은 아침에 접어 둔 야장 첫 장을 폈다.

흩어짐 밑에 「30점까지 다섯」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30점이 무슨 30점인지 종이에 없었다. 이번 벌의 30점인지, 이번 시즌 전체의 30점인지, 아니면 새 날로 세는 30점인지.

9월 20일에 「열 점」이 두 갈래로 읽힌 일이 있었다. 그때는 물어볼 수 있었다.

재혁은 연필을 들었다가 놓았다.

오늘 값은 이미 보았다. 0.008이었고 25점이었다. 지금 30점의 뜻을 정하면, 값을 알고 정하는 것이 된다.

「9/26. 「30점」이 무엇의 30점인지 종이에 없음. 두 가지로 읽힘. 오늘 값 봄. 그래서 오늘 안 정함. 내일 아침 첫 토막 전에 정함. 값 보기 전. 혼자 정함.」

그 밑에 인계서 여덟째 줄을 썼다.

「8. 야장에 수만 적힌 줄(「열 점」 「30점」 「열흘」 「닷새」)은 무엇의 몇 점인지 옆에 적을 것. 9/20에 한 번, 9/26에 한 번 두 갈래로 읽혔음. 두 번 다 값을 본 뒤에 발견함. 다음 사람은 이 줄을 먼저 읽고 시작할 것.」

그리고 줄 끝에 한 마디를 더 붙였다.

「이 줄은 안 물어보고 적음. 우재혁.」

이름을 적은 것은 처음이었다.

서진이 윈치 기록을 들고 지나가다 멈췄다.

“인계서 몇 번이야?”

“8번입니다.”

“그래.”

재혁이 종이를 덮으려다 말았다.

“보여 드릴까요.”

“보여 줘도 돼.”

“보여 드리면 선생님 말이 들어갈 것 같은데요.”

“내가 아무 말 안 하면 되지.”

“아무 말 안 하시는 것도 말이에요.”

서진이 잠깐 있다가 웃었다.

“그럼 됐어.”

서진은 종이를 안 보고 갔다.

재혁은 야장 맨 위 칸에 적었다.

「인계서: 있음. 8번. 혼자.」

칸을 만든 지 닷새째였고, 그 칸이 아침에 비었다가 저녁에 채워진 것은 다섯 번째였다.

6. 이름

오후 세 시에 저온시료동 사무실에서 경옥과 은재가 마주 앉았다.

은재가 오늘 값과 어제 값을 나란히 놓고 보다가 물었다.

“선생님, 「자」라는 말 언제부터 썼어요?”

경옥이 종이를 넘겼다.

“9월 중순쯤이요.”

“며칠이요.”

”…모르겠어요.”

은재가 서류철을 뒤로 넘겼다. 자라는 말이 처음 나오는 종이를 찾으려는 것이었는데, 처음 나오는 종이는 찾을 수 있었지만 그 종이가 처음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앞 종이에는 「폭」이라고만 되어 있었고, 폭이라는 말이 언제부터 자로 바뀌었는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선생님이 먼저 쓰셨어요, 제가 먼저 썼어요?”

“그것도 모르겠어요.”

경옥이 연필 끝으로 책상을 한 번 두드렸다.

“어제 우리가 줄 이름을 나눴잖아요. 줄 1, 줄 2.”

“네.”

“그건 날짜가 있어요. 어제 나눴으니까요. 그런데 「자」는 날짜가 없어요. 이름이 먼저 생기고 그 이름으로 앞엣것까지 다 불러 버린 거예요.”

“앞엣것도 자로요.”

“네. 8월에 적은 폭도 지금 우리는 자라고 읽어요. 그때 그건 자가 아니었어요.”

경옥이 새 종이를 한 장 꺼내 맨 위에 칸 이름을 적었다.

「이름 붙인 날.」

그리고 지금 쓰는 말들을 적어 내려갔다.

「자 — 모름. 9월 중순. 안 적었음.」

「폭 — 모름.」

「짐작 — 모름. 9월 중순.」

「그때 자 — 9/25.」

「짐작 줄 1, 2 — 9/25.」

거기까지 적고 멈췄다.

“「싶었음」은요?”

은재가 서류철을 폈다. 9월 20일 종이 여백에 날짜가 적혀 있었다.

「9/20. 붙이고 싶었음: 저녁 점. 안 붙임.」

“9월 20일이에요.”

“있네요.”

“이건 왜 있어요?”

경옥이 그 여백을 오래 보았다.

“그날 그게 손이 아니라 종이라서 여백에 적었거든요. 여백에 적으려니까 날짜가 필요했어요. 날짜를 남기려고 적은 게 아니에요.”

“우연히 남은 거네요.”

“네.”

경옥이 종이에 「싶었음 — 9/20.」을 적고 그 옆에 괄호를 쳤다.

「(우연히 남음.)」

“우연히 남은 게 제일 정확해요. 정확하려고 적은 게 아니라서요.”

은재가 그 줄을 옮겨 적으면서 말했다.

“이름을 붙인 날을 모르면요, 그 이름이 몇 점을 덮고 있는지 모르는 거잖아요.”

“네.”

“이름이 값보다 넓네요.”

경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름은 붙일 때 적어야 해요. 값은 나온 뒤에 적지만 이름은 붙이는 순간에 적어야 해요. 붙이고 나면 언제 붙였는지는 아무도 안 봐요.”

수송팀 칸에는 「목요일. 안 옴.」이라고 적었다.

12월 심의 둘은 그대로 벽에 나란히 있었다. 강릉 넉 통은 3월이었다. 기록계 1호는 9월 28일에 돌아온다. 절단까지 6일이었다.

은재가 나가면서 물었다.

“내일도 사무실이세요?”

“내일은 금요일이라 사무실이에요.”

“그럼 걷는 건 제가요.”

“네. 그리고 내일은 이름 안 붙일 거예요.”

“왜요?”

“오늘 하나 붙였으니까요. 하루에 하나면 충분해요.”

온도계는 −30.0이었다.


그날 네 사람이 한 번씩 열었다.

재혁은 물어보지 않고 적은 줄 끝에 제 이름을 넣었고, 경옥은 이름을 붙인 날을 적는 종이를 폈고, 정한은 짐작 칸의 첫 점을 찍었고, 하람은 봉투가 열린 것을 확인하고 수첩 맨 앞에 시작한 날을 적었다.

여는 것은 안에 든 것을 꺼내는 일이 아니다. 안에 든 것이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를 같이 꺼내는 일이다. 언제부터인지를 모르면 열어도 반만 열린 것이다.

이름은 값보다 넓다. 값은 그날 하나지만 이름은 붙이는 순간 앞엣것까지 전부 덮는다. 그래서 이름을 붙인 날을 모르면 그 이름이 몇 점을 덮고 있는지 모른다.

짐작 하나에 둘을 적으면 반만 맞는다. 반은 값이 아니다. 못 세는 점이라고 적는 수밖에 없다.

같은 수가 나와도 같은 뜻은 아니다. 합이 같고 나눈 수만 늘었는데 셋째 자리에서 끊으니 같은 수가 되었다. 끊는 자리가 뜻을 만든다.

혼자 적은 줄에는 이름을 쓴다. 물어서 나온 줄과 안 물어서 나온 줄은 같은 종이에 있어도 같은 줄이 아니니까.

그리고 어떤 것은, 남기려고 적은 것이 아니어서 여백에 날짜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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