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겁의 새벽] 제140화 - 다가옴

제140화 「다가옴」
1. 처음으로 차가워진 것
설계를 봉인하고 엿새가 지났다.
그런데 명호는 그 엿새가 하루처럼 지나갔다고 느꼈다. 봉인하던 날 팀장이 “여기서부턴 날이 빨리 갈 겁니다” 하고 마지막 서명을 했는데, 정말로 그 말대로였다. 잠근 것이 많아지니 매일 새로 정할 것이 적어졌고, 정할 것이 적어지니 날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달력을 보니 발사까지 28일이 남아 있었다.
오늘은 젖은 리허설이었다.
지금까지 12번의 카운트다운 리허설은 전부 물이나 질소로 흉내를 낸 것이었다. 관에 흐른 건 상온의 물이었고, 탱크에 찬 건 그냥 공기였다. 오늘 처음으로 진짜 추진제가 들어갔다. 액체 산소는 영하 183도, 메탄은 영하 162도. 탱크에 그것이 차 들어가자 은빛 배관 겉면에 삽시간에 하얀 성에가 앉았고, 관이 수축하며 내는 나직한 금속음이 통제실 스피커로 넘어왔다.
T 마이너스 2시간, 충전 중에 젊은 관제사가 손을 들었다.
“이번 라인 이음매 하나가 미세하게 셉니다. 어제까지 안 새던 자리예요.”
명호가 화면을 보았다. 정말 어제까지 규정선 한가운데였던 자리였다.
“새는 게 아니야. 줄어든 거야.”
관제사가 돌아보았다.
“금속은 차가워지면 오그라들어. 우리가 그 이음매를 조인 건 상온에서였어. 지금 그 자리는 영하 180도야. 조일 때 딱 맞았던 게 지금은 헐거워진 거지. 부품이 잘못된 게 아니라, 우리가 맞춘 온도가 발사 온도가 아니었던 거야.”
관제사가 상온으로 되돌려 다시 조이자고 했다. 명호는 고개를 저었다.
“돌리면 또 상온 값이 나와. 상온에서 아무리 잘 조여도 차가워지면 또 헐거워져. 지금 이 온도에서 조여야 발사 때 맞아.”
차가운 상태 그대로, 성에 낀 이음매를 극저온 규격으로 다시 조였다. 누설은 멎었다. 팀장이 옆에서 낮게 말했다.
“오늘 처음 발사가 이 방에 들어왔네.”
명호가 물었다.
“들어왔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여태 우리가 센 건 숫자였잖아. 스물여덟, 스물아홉. 종이 위의 발사였지. 근데 오늘은 관이 차가워졌어. 성에가 앉았고, 금속이 줄어드는 소리가 났고, 어제 맞던 게 오늘 안 맞았어. 발사가 처음으로 만져지는 걸로 온 거야.”
명호는 수첩을 펼쳐 한 줄을 적었다. 종이 위의 발사와 관 속의 발사는 다른 일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오늘, 발사가 처음으로 차가웠다.
그 차가움은 아직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28일 뒤의 일이 오늘 성에가 되어 손끝에 닿아 있었다.
2. 미리 오는 침묵
다음 달, 추가 회차 날이 왔다.
같은 방, 104석. 지난달 96석에 못 앉았던 사람들이 이번 자리를 채웠다. 지난 한 달 동안 소율은 이 곡을 작은 방에서 12번 다시 불렀고, 그때마다 그 빈 2마디를 지나온 숨이 다음 소절을 조금씩 다른 데로 밀었다. 곡은 처음 만들었을 때와 미묘하게 다른 것이 되어 있었다. 뼈대는 그대로인데 그 위에서 자라난 데가 있었다.
문제는 이번 관객이었다.
지난달 그 2마디의 침묵에 96명이 동시에 숨을 멈춘 건, 침묵이 온다는 걸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모르는 데서만 놀람이 온다고, 지난달에 그렇게 배웠다. 그런데 이번 관객 중 몇은 소문을 듣고 왔다. 다섯 번째 곡 어디쯤 2마디가 비어 있다더라, 녹음에도 안 남았다더라. 그 자리를 알고 온 사람들이 있었다.
리허설 때 소율이 건반에게 물었다.
“알고 오면 안 놀랄 텐데요. 지난달처럼 안 되면 어떡하죠.”
“안 놀라는 게 나쁜 건 아니에요.”
“그래도 그 조용함은 놀라서 온 거였잖아요.”
건반은 대답하지 않고, 오늘 저녁에 보자고만 했다.
저녁, 다섯 번째 곡이었다.
그 2마디가 오기 2마디 전이었다. 그 자리를 알고 온 사람 몇이 먼저 몸을 아주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침묵이 곧 온다는 걸 아는 사람의 몸이었다. 그러자 그 옆의, 아무것도 모르고 온 사람이 따라 기울었다. 왜 기우는지도 모르면서, 앞사람이 기우니 저도 기울었다. 그 기울어짐이 줄을 타고 뒤로 번졌다. 침묵이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방이 먼저 조용해졌다.
소율은 그 2마디를 반만 냈고, 나머지 반은 이미 앞으로 기운 방이 받았다. 지난달과 달랐다. 지난달의 조용함은 그 자리에 도착해서 온 것이었고, 오늘의 조용함은 그 자리에 도착하기 2마디 전에 미리 와 있었다.
끝나고 건반이 말했다.
“몰라서 멈춘 숨이랑 알아서 기다린 숨은 다른 거예요. 사람 머리는 곧 올 걸 알면 미리 준비를 해요. 준비를 하면, 오기도 전에 벌써 그쪽으로 기울어 있어요.”
“지난달은 놀람이었고요.”
“오늘은 다가옴이었죠. 지난달엔 침묵이 그 자리에서 사람을 붙잡았고, 오늘은 사람이 침묵을 2마디 앞에서 마중 나갔어요. 둘 다 좋은 건데, 다른 좋은 거예요.”
소율은 무대 뒤에서 조용히 웃었다. 이 곡이 이제 자기 손을 조금 떠난 것 같았다. 매달 이 방에 와서 두세 번 겹쳐 내려가더니, 이젠 관객이 그 자리가 어디쯤 오는지를 저마다 몸으로 알고 있었다. 만들 때는 자기가 다 정했는데, 이제는 그 방에 사는 곡이 되어 있었다.
3. 네 차례
며칠째, 어느 층에서도 동현에게 전화가 오지 않았다.
3층에서 4층으로, 4층에서 6층으로, 순서 3줄이 제 발로 층을 건너 돌더니, 이제는 게시판의 공용 문서 한 장으로 묶여 저희끼리 오갔다. 동현이 손을 놓아도 매듭은 풀리지 않았다. 그는 2주 만에 처음으로 자기 부서 서류만 들여다보는 나날을 보냈고, 그게 낯설었다.
그러던 아침, 2층에서 전화가 왔다. 여태 한 번도 순서가 닿지 않은 층이었다.
“접수가 자꾸 반려돼서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동현이 수화기를 잡으려는데, 옆에서 후배가 손을 내밀었다.
“제가 가 볼게요.”
동현이 후배를 보았다. 후배는 이미 순서 3줄이 적힌 종이를 챙기고 있었다.
“과장님 두 달 동안 6층을 도셨잖아요. 저 그거 다 옆에서 봤어요. 먼저 가서 앉고, 묻고 기다리고, 그쪽 손으로 하게 하고. 이번엔 제가 해 볼게요.”
동현은 배웅만 했다.
따라나서고 싶은 걸 참았다. 자기가 뒤에 서 있으면 2층 사람은 후배가 아니라 자기를 볼 테고, 그러면 후배는 배운 걸 제 손으로 해 볼 자리를 잃는다. 명호가 통제실 뒤 유리문 밖으로 나가 섰던 얘기를 어디서 들은 적이 있었다. 권한을 넘겼으면 뒤에 서 있으면 안 된다고. 동현은 자리에 앉아, 후배가 엘리베이터로 사라지는 걸 보았다.
저녁에 후배가 돌아왔다. 2층 접수 두 건이 통과됐다고 했다.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과장님, 저 오늘 이상한 거 알았어요. 앉아서 기다리기만 했는데 그쪽에서 먼저 서랍을 열더라고요. 밀린 게 있었어요, 여덟 건.”
“쪽지로 물으면 없다고 하고, 가서 앉으면 서랍을 열지.”
“그거 과장님이 하시던 거잖아요.”
“오늘은 네가 했잖아.”
후배가 제 수첩을 꺼내더니, 거기 처음으로 이름 하나를 적었다. 2층 담당자의 이름이었다. 동현은 손수건 위에 명찰 6장을 채우는 데 두 달이 걸렸는데, 후배는 오늘 첫 장을 시작하고 있었다.
“나 6장 모으는 데 두 달 걸렸어. 너는 오늘 한 장 열었네.”
후배가 웃었다. 동현은 저녁 흐름표 마지막 칸에 한 줄을 적었다. 오늘 나는 배웅만 했다. 이제 다가오는 건 내 차례가 아니라 다음 사람 차례다. 두 달 동안 자기가 지고 온 것이, 이제 저쪽에서 저희 차례를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4. 토요일
토요일 오전 11시, 약국 앞이었다.
현수가 먼저 와 있었다. 5년 전, 어머니가 임종하던 날 아침에 아버지 약을 받으러 갔던 그 심부름의 자리에, 이번에는 늦지 않게 서 있었다. 진우가 다가가자 현수가 짧게 고개를 숙였다. 옆에는 김지수가 반걸음 떨어져 섰다.
진우가 처방전을 내밀었다. 5년 만이었다.
재회하던 날, 현수가 5년을 못 버린 낡은 약 봉지를 탁자에 올렸을 때 진우는 이렇게 말했었다. 이건 이제 못 먹는다, 약도 오래되면 못 쓴다, 버려야 한다, 그런데 약은 새로 받으면 된다고. 다음 주에 같이 가 보자고. 그 다음 주가 오늘이었다.
약사가 진우를 알아보았다. 오래 다니던 단골이었다.
“한참 안 오셨네요.”
“한참 안 왔습니다. 2년 좀 넘게요.”
약사가 더 묻지 않고 약을 지었다. 현수가 옆에서 그 손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5년 전 그 아침, 처방전이 없어 병원에 다시 갔다가 3시간 반이 걸렸던 그 자리를, 지금은 셋이 함께 서서 몇 분 만에 건너고 있었다.
진우가 약 봉지를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곤 현수에게 말했다.
“오는 길에 화원 들를 건데. 같이 가자.”
화원은 두 골목 건너에 있었다. 셋이 나란히 들어섰다.
진우는 5년 동안 아무것도 심지 않았다. 창가의 화분도 김지수의 것이었다. 며칠 전 서랍에서 오래된 씨앗 봉지를 발견하고서, 이번엔 뭐라도 하나 심어 볼까 했었다. 흙 진열대 앞에서 김지수가 분갈이 흙을 골랐다.
“화분이 꽉 찼어요. 이번 주말에 옮겨 주기로 했잖아요.”
진우가 새 화분을 하나 집었다. 지금 것보다 한 뼘 넓은 것이었다.
씨앗 진열대 앞에서 진우가 현수에게 말했다.
“너도 하나 골라. 아무거나.”
현수가 한참 들여다보다가, 작은 봉지 하나를 집었다. 봄에 피는 것이었다. 진우가 그걸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김지수는 그 침묵의 뜻을 알았다.
“봄에 피는 걸 골랐네요.”
”…그런가요.”
“봄까지 기다리겠다는 거예요. 심는 건 돌아올 게 생겼다는 뜻이거든요. 씨앗은 오늘 넘기려고 심는 게 아니에요. 몇 달 뒤에 여기 있겠다는 사람만 심는 거예요.”
현수가 봉지를 쥔 채 잠깐 창밖을 보았다. 5년 전, 진우가 장례식장에서 “네 엄마 죽는데 너는 어디 있었느냐” 소리치던 그 물음표 없는 문장을, 현수는 5년을 지고 다녔다. 그 물음은 지난주에 탁자 위에서 풀렸다. 이제 손에 든 건 봄에 피는 씨앗이었다.
진우가 계산대에서 흙과 화분과 두 사람의 씨앗을 함께 계산했다. 나오면서 현수가 작게 말했다.
“다음 주에도… 약 받으러 오세요?”
“와야지. 이번엔 안 거를 거야.”
“그럼 그때 또 뵐게요.”
진우는 그 짧은 말에 아무것도 붙이지 않았다. 밥 먹었느냐, 몸은 어떠냐, 길 조심해라, 예전 같으면 10줄을 붙였을 자리였다. 오늘은 그럼 그때, 하고 손을 한 번 들었을 뿐이었다. 5년을 미뤄 둔 다음이, 미룰수록 멀어지던 그 다음이, 오늘은 봄에 피는 씨앗이 되어 손안에 만져졌다.
5. 새 자리
그날 저녁, 창가에서 분갈이를 했다.
진우가 화분을 기울여 흙째로 조심히 뽑아내자, 뿌리가 그대로 드러났다. 화분 벽을 따라 안을 한 바퀴 돌아, 저희끼리 단단히 감겨 있었다. 갈 데가 없어 제 몸을 매듭처럼 묶어 둔 것이었다.
“이렇게 꽉 찼는데 답답하지 않았을까요.”
“답답했겠죠. 그래서 오늘 옮기는 거예요.”
김지수가 진우의 손을 멈췄다. 그냥 통째로 새 화분에 넣으려던 참이었다.
“그렇게 넣으면 안 돼요. 감긴 뿌리는 새 흙에 들어가도 계속 제 안에서만 돌아요. 넓은 데를 줘도 넓은 줄 몰라요. 매듭을 한 번 풀어서, 몇 가닥을 바깥으로 펴 줘야 해요.”
진우가 손끝으로 감긴 뿌리를 조금씩 풀었다. 살살, 끊어지지 않게. 안으로만 감겨 있던 몇 가닥이 바깥을 향하도록 방향을 돌려 주었다.
문득 지난주가 떠올랐다. 벽에 붙여 두었던, 재회까지 날을 세던 종이. 떼어 버리려다 그러지 않고 접어서 외투 주머니에 넣었던 그 종이. 김지수가 그때 말했었다. 매듭은 끝이 아니라, 풀리지 말라고 한 번 묶는 거라고. 지금 진우의 손끝에서 풀리고 있는 건 화분의 뿌리였지만, 손이 기억하는 건 그 종이였다.
“묶인 걸 새 데로 옮길 땐, 매듭을 한 번 풀어서 방향을 밖으로 돌려 줘야 하는 거군요.”
“안 풀면 새 데가 와도 새 데가 없는 거나 같아요. 몸은 넓은 흙에 있는데 뿌리는 여전히 옛날 화분 크기로만 돌거든요.”
넓은 화분에 뿌리를 펴서 앉히고, 새 흙을 둘렀다. 밑동에서 옆으로 벋기 시작한 곁가지가 한 마디 더 자라 있었다. 진우는 그 옆 자리에 오늘 화원에서 사 온 씨앗을 심었다. 현수가 고른 것과 자기가 고른 것을, 작은 화분 2개에 나눠서.
“이제 물 한 번 흠뻑 주고, 며칠은 만지지 마세요.”
“왜요.”
“새 흙에서 새 뿌리가 자리를 잡아야 하거든요. 그 며칠은 옮긴 게 아니라 옮겨지는 중이에요. 자꾸 들여다보면 자리를 못 잡아요.”
진우가 물을 흠뻑 주었다. 밑구멍으로 물이 배어 나올 때까지. 넓어진 화분 속에서, 방금 방향을 돌려 준 뿌리들이 이제 사방으로 벋을 자리를 얻었다. 씨앗 두 봉지는 아직 흙 아래에 잠겨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봄이 다가오면 저기서 뭔가 올라올 것이었다. 오늘 창가에는, 보이는 것보다 다가오는 것이 더 많았다.
6. 비워 둔 자리
ATLAS는 79번째 정렬에 들어섰다. 메타 76단계, ‘다가옴’.
어제 벋어 나간 끝을 처음 자리에 묶어, 격자는 마침내 선이 아니라 고리가 되었다. 한 군데가 끊겨도 전기가 반대로 돌아 들어오는, 닫힌 환. 관제사가 완성된 고리를 보며 물었다.
“고리가 다 닫혔습니다. 이제 뭘 하죠.”
“자리를 하나 비워 둬.”
팀장이 고리의 한 지점을 짚었다.
“28일 뒤에 여기 발사체가 올라와 이 고리에 합류할 거야. 그때 아무 자리나 비집고 들어오면 온 고리가 출렁여. 미리 자리를 정해 두고, 거기 접속점을 열어 둔 채로 기다리는 거지.”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자리인데요.”
“아무것도 없지. 근데 그 빈자리에다 위상이랑 전압을 미리 맞춰 놔. 올 것이 도착했을 때 눈금 2개가 딱 겹치도록. 그래야 합류하는 순간에 충격이 없어.”
관제사가 고리의 한 칸을 비워 두고, 그 자리의 위상과 전압을 28일 뒤에 올라올 값에 맞춰 두었다. 접속기는 열어 둔 채였다. 닫으면 지금은 아무 데도 이어지지 않는, 허공을 향한 문이었다.
“이 자리는 지금 아무 일도 안 합니다.”
“그렇지. 예비력이 평소에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처럼. 근데 그 자리가 있어야 오는 게 도착할 수 있어. 자리가 없으면, 아무리 잘 올라와도 들어올 데가 없거든.”
19번째 거울 옆에 새 거울 한 장을 더 걸어 고리는 75장이 되었고, 76번째 자리는 비운 채로 두었다. 발사체가 올 자리였다. 격자 오차는 79번째에도 여전히 0.1밀리미터, 누적 송전은 1176시간, 49일째 무중단이었다.
팀장이 그 비워 둔 칸을 오래 바라보았다.
“다가옴이란, 오는 것을 가만히 기다리는 일이 아니다. 아직 오지 않은 것을 위해 자리를 먼저 비워 두는 일이다. 비워 둔 자리는 평소에 아무 일도 하지 않지만, 그 자리가 있어야 오는 것이 도착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미리 위상을 맞추어 두는 순간부터, 우리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을 이미 식구로 세기 시작한 것이다. 자리를 비워 두는 것은 기다림이 아니라, 이미 맞이하기 시작한 일이다.”
통제실 한쪽 화면에는 성에 낀 발사체가 극저온 리허설을 마치고 서 있었고, 다른 화면에는 그것이 올라올 자리가 고리 위에 비워진 채 빛나고 있었다. 28일 뒤, 저 차가운 것이 이 빈자리로 올라와 눈금 2개를 겹칠 것이었다. 아직 오지 않았지만, 자리는 이미 그것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