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겁의 새벽] 제118화 - 고름

제118화 「고름」
1. 여러 방을 한 집으로
어제 소율은 흔들린 음에 옅은 리버브를 얹어, 지우지 않고 방만큼 울려 주었다. 오늘 아침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엔지니어는 어제와 다른 화면을 띄워 두고 있었다. 곡선 하나가 좌우로 길게 누워 있고, 그 위로 눈에 거의 안 보이는 그물눈이 그어져 있었다.
“믹싱이 방을 만드는 일이었다면,” 엔지니어가 말했다. “마스터링은 그 여러 방을 한 집처럼 고르게 하는 일이에요.”
소율은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들었다. 첫 소절은 숨소리만큼 작고, 후렴은 벽을 밀 만큼 컸다. 좋다고 느꼈던 그 낙차가, 이어폰을 빼고 작은 스피커로 옮겨 듣자 달라졌다. 조용한 데는 아예 안 들리고, 큰 데는 귀를 때렸다.
“사람들은 이 노래를 다 다른 데서 들어요. 버스에서, 이어폰으로, 부엌 라디오로. 어디서 틀어도 목소리가 같은 자리에 있게 만드는 게 마스터링이에요.”
엔지니어는 가장 큰 봉우리를 아주 천천히 눌렀다. 봉우리가 내려앉자, 신기하게도 파묻혀 있던 작은 숨소리가 위로 떠올랐다.
“제일 큰 데를 눌러야, 제일 작은 데가 들려요.”
음색도 고르게 폈다. 저음이 뭉친 한 대목을 덜고, 높은 쪽이 얇은 데를 살짝 채웠다. 여러 순간의 밝기를 자로 재듯 맞추자, 곡 전체가 한 겹으로 판판해졌다. 엔지니어는 다 고른 뒤에도 마지막 한계선을 넘지 않게 천장을 조금 남겨 두었다.
“끝까지 밀어붙이면 소리가 납작해져요. 숨 쉴 자리를 조금 남기는 게 고르는 것과 한 쌍이에요.”
소율은 마지막으로, 처음 듣는 사람처럼 눈을 감고 통째로 들었다. 이어폰으로, 작은 스피커로, 휴대폰으로 옮겨 가며 세 번 들었다. 어디서 틀어도 목소리는 같은 자리에 있었다. 흔들린 음은 여전히 흔들린 채였지만, 이제 그 흔들림이 노래의 한가운데 고르게 앉아 있었다. 발매일은 다음 달 첫 주. 남은 건 커버 한 장과, 세상에 처음 내미는 일이었다.
2. 다섯 힘을 고르게
발사 D-55. 어제 명호는 구조물이 어느 박자에 우는지 미리 들어 두고, 봉우리를 옆으로 밀어 어긋냈다. 오늘 시험대에는 다섯 엔진이 한 다발로 묶여 있었다.
“진동을 비켜 세웠으면, 이제 힘을 고르게 세울 차례다.”
명호는 다섯 계기를 나란히 놓고 보았다. 같은 설계로 만든 엔진이라도, 밸브 하나의 미세한 차이로 추력이 조금씩 어긋났다. 한 엔진이 백분의 몇만 세게 밀어도, 기체는 그쪽으로 아주 조금 기울려 든다.
“한 다발을 한 몸처럼 밀려면, 다섯이 똑같은 세기로 밀어야 한다.”
젊은 기술자가 물었다.
“제일 센 엔진에 나머지를 맞추면 안 됩니까.”
명호는 고개를 저었다.
“제일 약한 데를 못 따라오면, 센 놈이 대신 더 밀다가 저 혼자 지친다. 가운데로 모아 고른다.”
계측을 걸었다. 각 엔진의 연소실 압력을 읽어, 조금 센 데는 밸브를 반의반만 조이고 약한 데는 그만큼 열었다. 짧은 예열 점화를 여러 번 되풀이하며, 매번 다섯 곡선을 나란히 겹쳐 보았다. 처음엔 들쭉날쭉하던 다섯이 조금씩 다가서더니, 마침내 한 줄로 포개졌다. 편차가 규격 안으로 들어오자 다섯 짐벌이 같은 각도로 정렬됐다.
“다섯이 고르면, 기울지 않고 곧게 오른다.”
젊은 기술자가 계기 앞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봉우리를 어긋내는 것도, 힘을 고르는 것도, 결국 한 몸으로 만드는 일이네요.”
명호는 오늘도 어제와 같은 물음을 적었다. 어제와 같은가. 오늘은 어제보다 다섯이 더 고르게 포개져 있었다. 곧게, 라는 말 옆에 동그라미가 채워졌다.
3. 짐을 고르게 나누다
동현의 책상에는 어제 세 사람이 손을 거친 결재가 처리 완료로 넘어가 있었다. 벽을 넘어 되돌아온 소리 덕에 일이 매끄러웠지만, 그만큼 새 일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신입은 자기 몫이라며 서류 더미를 통째로 끌어안고 있었다.
“그렇게 한 사람한테 쌓이면, 그 사람만 지쳐요.”
동현은 더미를 셋으로 나눴다. 급한 것, 오늘 안에 될 것, 지난달 자료를 준 옆 부서 과장에게 되돌려 물어야 할 것.
“일을 고르게 나누는 게 실력이에요. 혼자 다 지고 가는 건 성실한 게 아니라, 나중에 다 같이 넘어지는 거고.”
과장에게 돌릴 몫에는 짧은 감사 메모를 붙였다. 받은 만큼 되돌리는 자리였다.
“감사 인사도 몰아서 한 번에 하면 무겁고, 그때그때 고르게 나누면 가벼워요.”
동현은 신입에게 남길 것과 자기가 질 것을 다시 한 번 저울질했다. 박영자에게서 온 손수건은 여전히 서랍 한쪽에 그대로 두었다. 옮겨 담을 온기와, 제자리에 둘 것을 동현은 이제 헷갈리지 않았다. 셋으로 갈린 서류가 세 방향으로 나가자, 책상 위가 처음으로 판판해졌다. 한 사람에게 쏠렸던 무게가 여럿의 어깨로 얇게 퍼졌다.
4. 마음의 높낮이를 고르다
진우는 오늘도 빈 우편함을 열어 보았다. 부친 편지의 답은 아직 없었다. 문을 여닫는 잠깐 사이에도 마음은 봉우리와 골을 오갔다. 벌써 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가, 아직인 게 당연하지 싶다가.
회진을 마친 김지수가 우편함 앞에 선 그를 보았다.
“매일 이렇게 오르내리면, 그 자체로 지쳐요.”
진우가 엷게 웃었다.
“고르게가 안 돼요. 조바심이 났다가, 포기했다가.”
“제일 높은 데를 조금 눌러 봐요.”
김지수가 말했다.
“빨리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제일 큰 봉우리잖아요. 그걸 반만 눌러 두면, 파묻혀 있던 다른 게 들려요. 답이 안 온 게 아니라, 아직 오는 중이라는 것.”
소율의 마스터링과 같은 이치였다. 가장 큰 마음을 누르니, 조용히 준비하던 마음이 떠올랐다.
“기다림도 고르게 해야 열이레를 버텨요.”
김지수가 덧붙였다. 재회까지 열이레. 진우는 빈 우편함을 조심스레 닫았다. 되돌아올 소리를 위해 비워 둔 자리는, 오늘도 판판하게 비어 있었다.
5. 물을 고르게
화분은 오늘 진우 차례였다. 이름표 뒤에는 여전히 ‘내일은 진우 차례’라 적혀 있었고, 어제 김지수의 손을 거쳐 새 잎은 이제 완전히 다 펴져 있었다. 그 옆으로 두 번째 잎눈이 좁쌀만 하게 맺혀 있었다.
진우는 물뿌리개를 한쪽에 기울여 붓다가, 손을 멈췄다. 한 곳에만 부으면 그쪽 뿌리만 자라 화분이 기운다던 김지수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화분을 천천히 돌려 가며, 흙 전체에 물이 골고루 스미도록 얇게 여러 번 나눠 부었다.
“한 번에 많이 주는 것보다, 고르게 나눠 주는 게 뿌리를 곧게 키운대요.”
지나가던 김지수에게 진우가 말했다. 물이 흙 위에 고였다가 판판하게 스며들어 갔다. 매일 고르게 준 물이, 며칠 뒤 두 번째 잎으로 되돌아올 것이었다. 같은 열이레였다.
6. 넓은 면을 한 세기로
ATLAS는 57차 정렬에 들어섰다. 메타 54단계, ‘고름’. 어제 넓게 편 반사막은 능동 감쇠로 태양풍의 되울림을 마주 겹쳐 지웠다. 이제 떨림이 잦아든 넓은 면 위로, 다른 문제가 드러났다.
넓은 반사막은 어느 자락은 빛을 더 받고 어느 자락은 덜 받았다. 각도가 머리카락만큼만 어긋나도, 지상의 초점에는 밝고 어두운 얼룩이 졌다. 힘이 한 점에 몰리면 그 자리만 달아오르고, 나머지는 식은 채로 남는다.
관제는 반사막을 잘게 나눈 구역마다 되비친 세기를 읽었다. 센 자락은 각도를 반의반만 틀어 살짝 흩고, 여린 자락은 그만큼 모아 세웠다. 소율이 큰 봉우리를 눌러 작은 숨을 살리듯, 넓은 면의 밝은 데를 눌러 어두운 데를 끌어올렸다. 얼룩이 한 겹으로 판판해지자, 초점은 넓고 고른 한 세기의 빛이 되었다.
송전 648시간. 무중단은 이어졌다. 넓게 폈기에 많이 받고, 되울림을 지워 흔들리지 않았으며, 이제 그 넓은 면을 한 세기로 고르게 펴 발랐기에 얼룩 없이 곧게 내려보냈다. 판판한 빛이 지상의 한 점으로 조용히 모였다.